소설리스트

18화 (18/45)

주변을 돌아보자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자신인 귀신 옷으로 갈아입혀지고 학교 뒷산으로 올려보내졌다. 모두 제비를 잘못 뽑아 

생긴 불행이었다. 

시계도 핸드폰도 챙기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축제 이벤트의 일환으로 담력훈련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학생회 임원들이 그 일을 주관해 집무를 맡게 된 것까지도 괜찮았다. 그러나 귀신 역이 필요하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말이 나왔을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상원은 어김없이 끝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나무젓가락을 뽑아들었다. 

오컬트가 자신에게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설명할 기회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뒷산에 세워진 허름한 교사 2층 구석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게 된 그는 공포감과 긴장, 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나고 나니 사방이 새카만 어둠이었다. 아래층에서 같이 귀신역할을 하던 학생회 후배들이 아직 있는 것은 아닌가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교사를 당장이라도 벗어나 학교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상원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옷 때문에 초여름임에도 한기까지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이성을 잠식한 공포때문에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상원은

차라리 이대로 기절해서 내일 아침에 눈뜨길 기도했다. 움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청각이 예민해졌다. 

상원은 교사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뒤이어 두런두런 이어지는 말소리는 분명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잇음을 확신시켜주었다. 

"...!"

상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날이 밝을 때까지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지금 올라오는 사람을 잡아야 했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교태어린 여자의 웃음소리 뒤에 낯익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두사람이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오자 상원은 자신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을 확신했다. 

계단 앞에 선 상원이 자신이 알고 있는 후배에게 인사를 먼저 해야 할지 상황 설명을 먼저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교사에 울렸다. 

상원은 아차 싶었다. 자신의 차림새가 상대편에게 충분히 오해를 살만하다는 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난...."

상원의 고민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말을 마치기 전에 얼굴을 강타한 충격으로 그대로 바닥에 쓰려졌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아 학교로 

내려올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발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다음 순간 눈을 뜬 것은 학교 양호실 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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