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45)

"생각보다 짐이 없네요"

"응 가구도 별 필요 없고 책하고 옷만 있으면 되는데 뭐"

상원이 가져온 짐을 조석희는 심상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석연찮은 태도였다. 

"이 중에서 선배가 제일 아끼는 물건이 뭐예요?"

"뭐?"

"가장 아끼는 물건이 뭐냐고요"

대화라는 것은 흐름이 있다. 던져지는 말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이 대화이다. 

지금 상원은 자신이 지난 대화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고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끼는 물건?"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차원에서 되물었다. 

"네"

조석희가 상원의 짐을 살피며 대답했다.

"글쎄 이건가?"

상원이 몇 개 챙겨온 CD중 하나를 꺼내며 대답했다. 

"좋아하는 가수에요?"

조석희가 CD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CD한장이 상원에게는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동한 것이다. 

"응 좋아해. 그거 싸인 받은거야. 콘서트 갔다가 운이 좋아서 싸인CD받은 거야."

상원은 그날의 행운을 잊지 못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간 것도 기분이 좋았는데 좌석번호가 행운권에 당첨되어서 싸인 CD까지 받았으니 주변에 종종

자랑을 늘어놓을 정도로 운이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조석희는 마뜩찮은 눈을 하고 CD케이스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가사집을 꺼냈다. 

"잘 생겼어요?"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 아니야. 노래가 좋으니까 좋은거야"

"다른 놈이잖아. 저번거랑,이건 누구예요"

"루시드 폴, 노래 좋아 한번 들어봐"

"귀찮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조석희는 CD를 돌려주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면서도 상원은 그가 언제  CD를 돌려줄까 기다렸지만 그는 끝까지 그걸 들고 있었다.

"그거 여기 넣어둬야 하는데"

책 정리까지 마친 상원이 돌아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조석희가 손에 들고 있던 CD를 들어 보이며 이거요? 하고 묻는다. 

상원이 손을 내밀었다. 

"아 , 이거 저 빌려주세요"

"응? 아까 안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예"

"...그런데 왜 빌려가?"

조석희가 소리없이 웃었다. 

아름답고 사악한 옆모습을 보던 상원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 인질로 잡혔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집을 나가기라도 하면  CD는 

다시 볼 수 없겠구나. 미안하다 싸인CD야. 내 생각이 짧았다. 

"배고프시죠? 밥 먹고 섹스할까요? 아니면 섹스하고 밥 드실래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상원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냥.... 그거 밥만 먹으면 안 되는거야?"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초저녁이었다. 아직 짐정리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몸을 겹치게 되면 오늘 하루는 날려버리게 되는 셈이었다. 

상원의 곤란함을 읽은 것인지 만 것인지 조석희는 그럼 밥 차려놓을게요. 라고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결국 그의 말 어디에서도 오늘 섹스는 건너뛰겠다는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상원은 조그많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단한 하루를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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