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45)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전에 있었던 일을 안주거리 삼아 시시덕거렸을 때까지는 좋았다. 상원도 간간이 핸드폰을 보며 부모님께 연락이 오는지 체크했고 

동석도 웃으며 걱정말라고 연락이 오면 자신이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갑자기 대진이 찌개 안주가 먹고 싶다고 알탕을 시키자 승완이 맥주와 알탕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소주 한병을 시켰을 무렵이었다. 

상원이 더 이상 마시면 안 될 것 같다고 거절을 하자 승완이 딱 한잔 정도는 괜찮을 것 이라고 한잔을 권유했고, 한잔은 두잔이 되고 두잔은 석잔이 되었고...

결국에 이 상황에 이르게되었다. 

"으하하하하 시발 진짜 내가 얼마나 회를 잘 뜨는 줄 알아? 주방장 형님들도 내 칼솜씨를 보면 다들 놀란다고 크하하하하 조석희새끼 회쳐버릴꺼야"

"회쳐버려...회쳐버려"

동석이 옆에서 음습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어우 술마시니까 뽀순이들 보고 싶네 우리 뽀순이들!"

대진이 공중을 향해 손을 허우적 거리며 뽀순잉과 뽀순퀴의 이름을 외쳤다. 상원이 히죽거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 난 뽀순 퀴 싫어! 애는 착하지만 난 걔 별로야"

"으하하하 조석희 개새끼는 애도 나쁘고 별로 잖아"

상원이 갑자기 손으로 깔깔거리고 웃는 승완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야 그러지마 왜 우리 석희 욕해 으앗!"

승완이 사정없이 상원의 손등을 깨물었다. 

"에이. 퉤 우리석희? 우리 석희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돼. 난 니네 사귀는거 반대다!"

그러자 상원이 망설임 없이 바닥에서 흙을 쥐어 승완의 얼굴에 뿌려버렸다. 

"으악!!"

승완이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괴성을 지르자 동석과 대진은 박장대소를 해댔다. 

"야, 인마! 무슨 짓이야"

"흙 들어갔으니까 찬성해주는거다?"

상원이 승완의 팔을 붙잡고 애교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대박 이상원 완전 대박 하하하하"

"한승완 눈에 흙들어갔는데 어쩔거임? 크크크"

"꺼져! 시발 절대 싫어. 그 새끼 진짜 걸리면 뒈지는거야"

승완이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며 시근덕 거렸다. 아무리 술에 취해 이성이 희미해져 있는 이 상황에서도 그의 호불호는 확실했다.  상원이 끈질기게 승완에게

매달려 찬성해달라고 졸랐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가! 이놈아 가버려!! 업어주고 키워줬더니 아주 그냥 제대로 삐뚤게 자라가지고"

상원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승완이 팔에 매달린 그를 떨쳐내며 소리쳤다. 

" 야 니네 아빠 화났다 빨리 가라 크크크"

"우리 아빠? 우리 아빠가 어디있어?"

상원이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을 잃어버린 아이같은 가련한 상원의 모습에 승완이 시발 하고 욕을 내뱉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웬수, 웬수 같은놈"

"헤헤헤 승완아"

상원이 손을 번쩍 펼쳐친구의 등을 안았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헤어졌던 가족처럼 서로를 힘차게 끌어 안았다. 

"승완아 내 친구 내 친구들 헤헤헤 "

"얘 술 취하니까 완전 골 때리네, 크핫"

대진이 상원의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흩트려주었다. 동석도 그런 상원이 귀엽다는 듯이 뺨을 꼬집어 주려 손을 뻗었다. 술에 취해 상원의 뺨 대신 한승완의 

팔뚝을 꼬집은 것이 약간의 소란을 빚게 했지만,

"으악 시발 손 치워 어딜 꼬집고 지랄"

"아 드러워 한승완 얼굴 기름"

동석이 자신의 손가락을 보고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우 시발 벌써 자정이 넘었네 가자 집에 가야지 "

대진이 시계도 없는 손목을 보고 동석과 승완의 옷을 잡아 끌었다. 상원이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잘가 얘들아 나중에 또 봐"

몸까지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상원은 친구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세 사람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자 상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몸을 돌렸다. 

"나나나, 눈누나나 나나"

의미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던 그의 앞을 장신의 남자가 가로막아 섰다.

"어?"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끝내주게 잘 생긴 남자가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아"

상원은 입을 딱 벌리고 탄성을 질렀다. 

"우리 석희만큼 잘 생긴 사람이 또 있었다니"

"...."

상원이 손을 들어 그 남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더듬어 만졌다. 오뚝한 콧날과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미간이 조석희와 매우 닮은 남자였다. 

"잘생기셨네요"

상원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눈앞의 남자는 조석희와 매우, 엄청나게 매우, 닮아있었지만 조석희는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조석희라면 집 앞에서 이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정말 잘 생기셨습니다"

상원이 다시 힘을 주어 말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처럼 그의 눈은 놀라움과 설렘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내가 지금 그 얘기 듣자고 여기서 두 시간동안 서  있었는지 알아?"

남자의 험악한 일갈을 듣자 상원이 흠짓하고 어깨를 떨었다. 

그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울긴 뭘 잘했다고... 하아 말을 말자 젠장"

"...우리 석희가 목소리는 더 멋있는데"

울먹이면서도 우리석희 자랑을 상원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석희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아냐 . 성격은 진짜 나빠도 멋있다. 끝내주게 멋있다. 운도 좋고 

너무너무 멋있다. 성격이 좀 안좋긴 해도 짱 잘생겼다. 목소리도 완전 좋고 영어도 캡 잘한다.  성격이 더러워도 난 조석희가 좋다. 

우리 석희가 제일 멋져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술주정을 늘어놓는 상원을 조석희는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성격 안 좋은거 이제 알았어요? 아예 광고를 하지 그래?"

"조석희는 개새끼다!!!!"

상원이 두 손을 모으고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석희는 황담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저기에 불이 커지면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까지 

생겼다. 

"선배 미쳤어?"

"아...사람들이 다 싫어하면 좋겠다"

"뭐라고요?"

"...나만 좋아하면 좋겠어"

"뭘 선배만 좋아해"

"석희"

상원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만 좋아하면 좋겠따. 나만 석희 좋아하고 싶어"

"선배만 좋아해. 됐어?"

상원이 갑자기 조석희를 와락 끌어 안았다. 조석희는 이전까지 상원에게 약간의 알콜 섭취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당장 

그 생각에 수정을 가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끌어안아?"

"....미안해"

"뭐라고?"

"잠깐만...잠깐만 이러고 있을께"

조석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상원은 분명 자신을 조석희 닮은 잘생긴 행인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렇게 끌어안았으니 이건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며칠 간 미국에 갈 일이 생겨  잠시 얼굴을 보러 왔더니 연락두절, 한 술 더 떠 고주망태가 되어 비틀거리며 와서 한다는 소리가 조석희 개새끼에

외간 남자로 추정되는 인간까지 끌어안아?

"가지가지 하는군"

"....석희 보고싶다"

"보고 있잖아요"

"어, 그런가?"

상원이 흐릿한 눈을 하고 헤헤 웃었다. 조석희가 상원의 코를 비틀어 쥐어 사정없이 흔들었다. 

"으악 아파"

"you`re impossible" (너 진짜 구제불능이다)

"맞아 미션 임파서블이다. .... 아 집에 어떻게 들어가지 쫒겨날거야. 분명 쫓겨나고 말거다. 나 외출금지인데"

머릿속을 스친 우울한 생각에 상원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거기 너 상원이냐?"

"어? 아버지다"

상원이 대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야지 하고 몸을 돌리려던 상원의 턱을 쥐고 조석희가 짙은 키스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와 

동시였다. 술에 취해 따끈하게 달아오른 점막을 혀로 핥아주자 상원이 새된 신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매달렸다.

조석희는 일부러 상원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잘 보이도록 몸을 틀어 상원의 허리를 한손으로 바싹 끌어 안았다. 

부드러운 입술을 혀로 맛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키스를 마쳤다. 

"....아"

아직도 무슨 일이 잇었던 것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원이 멍한 얼굴로 입술을 만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문 앞에 서있던 상원의 아버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조석희는 허리를 숙여 상원의 귀에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고 사라졌다. 

-잘자요. Apple선배.

그 목소리를 듣자 상원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화려한 술주정은 거기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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