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상원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잇던 조석희가왜요, 하고 심상한 말투로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와 계신데... 외박했잖아. 진짜 혼날거야"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외국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해서인지 가끔 상원은 그와 대화를 나눌때 현격한 문화차이를 느꼈다...... 아니 어쩌면 단순한 성격차이일 수도 있지만,
"오늘 돌아가시는데 배웅도 안해드렸으니까 당연히 혼나지"
상원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있던 조석희가 놓아주질 않았다.
"석희야...."
"선배 저를 너무 나쁜 놈으로 만들지 마세요"
"...무슨 소리야?"
넌 원래 나쁜놈이잖아.
"선배 조부모님들이 살아계신걸, 귀찮아하게 만들지 말라고"
"....."
상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놈이라고 해도 얘는 왜 이렇게 성격이 나쁜 것일까.
"나 가봐야 해"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선배 여기서 지내요"
"...."
"여기서 지내. 내 옆에서 계속"
계속, 이란 단어가 상원의 심장에 직격으로 꽂혔다. 사랑에 한없이 약한 남자 이상원의 눈에 하트가 그려졌다
"석희야..."
"선배 부모님한테 오늘 가서 말씀드려요"
"오늘은 좀...."
가뜩이나 말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굳이 오늘 꺼낼 필요는 없었다. 화가 난 부모님께 이런 얘기를 꺼내면 오히려 성공률이 적어질텐데.
"오늘해요. 오늘 안되면 내일도 안되는 거 마찬가지잖아"
조석희식 논법에 상원이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줄거지?"
조석희가 다시 한번 힘주어 물었다 몇 번이나 거절을 했는데도 계속 같은 질문을 하는 그의 마음에 상원은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를 위해서 오늘 꼭 가서 말하자.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일단 그렇게 하자.
"응 그럴게 , 그렇게 할게"
상원이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석희가 상원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상원이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조심, 조심 쓸어내렸다.
맹수를 길들인 조련사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상원은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의미의 만족을 느끼고 있는 조석희의 입가에도 야릇한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