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미안, 부모님께서 조부모님하고 외조부모님들께도 다 연락을 해서 지금 오시는 중이라고 해서..... 정말 미안해"
대학에 합격했다고 양쪽 조부모님까지 불러들였다는 부분에서 조석희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부모 한번 참아주는 것도 그에겐 대단한 인내였다.
"그래서 지금 가겠다고?"
조석희가 다시 매서운 눈을 하고 묻자 상원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내일올게. 내일 자고 갈게 응?"
"오늘 자고 가요"
"오늘은 안 돼"
"아까는 자고 간다면서요"
"....미안해"
사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 차이는 없었다. 아래 욕심도 채웠겠다 그리 급한 문제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심정이 나서 상원을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가지 마세요"
"석희야...."
상원의 눈망울에 자괴감이 가득 차올랐다. 사정이야 어쨌든 한입으로 두 말을 한 셈이니 견실한 성격의 상원은 죄책감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 커다란 집에서 나 혼자서 외롭게 있으라고요?"
"...석희야"
아까와는 다른 부름이었다.
지금까지 이 큰 집에서 혼자 너무나도 잘 지내온 주제에, 어떻게 저런 식으로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조석희가 외롭다니 지나가던 개가 들으면
웃다가 사례들려 쓰러질 소리였다.
"외로워요 선배"
"...."
"선배 없으면 밤에 잠도 못 잔다고요"
"...."
너 원래 불면증 환자잖아. 석희야.
"그러지 말고 아예 같이 살자고요 선배"
"......그게"
"이제 대학도 합격했으니까 여기서 같이 살아요"
상원이 몇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조석희는 끈질기게 여기서 같이 살자고 권했다. 학교도 그만두고 재수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부모님이 친구도 아닌 후배와의
동거를 납득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로 상원은 계속 조석희의 청을 거절했다.
"여기서 같이 살 거죠?"
조석희가 이번엔 아예 다짐을 받아낼 요량으로 끈질기게 물어왔다. 같이 살면 상원이 집에 갈때마다 벌이는 이 실랑이를 끝낼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선배 대답해요"
"나...."
"네 선배"
"나 갈게!"
상원이 조석희의 어깨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붙잡을 새도 없이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조석희는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취급에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책을 집어 던지며 온통 삑 소리로 처리될 법한 영어로 된 욕설을 거칠게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