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ucky charm 1화 (1/45)

Lucky charm

"선배 합격 축하해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던 조석희가 상원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흔들었다. 

"한번만 더 해볼게. 혹시 모르잖아"

"뭘 더 해봐요. 합격이라고 나와 있는데"

인상을 쓰고 조석희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툭툭 두드렸다. 거기에는 상원의 이름과 수험번호, 합격을 축하한다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상원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 잘못된 것일 수도 있잖아. 전산상의 문제라든가"

"그래서 아까도 학교에 전화해서 문의해봤잖아요"

"...그래도"

상원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혹시 모르니까 한번만 더 확인해보자, 라고 중얼거렸다. 집에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 했을 때 상원은 인터넷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고, 전화로 

두번째 확인을 했을때는 주민등록번호를 잘못 누른것 같다고 했다. 결국 조석희는 상원을 데리고 집 근처의 피씨방으로 와서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눌러 확인시켜줘야 했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이번엔 전산상의 문제라니.

"이쯤에서 그냥 기뻐하면 안돼요?"

"혹시 모르잖아. 섣불리 믿었다가 합격 취소라도 되면...."

상원의 눈시울에 근심이 스쳐갔다. 작년에 거의 합격을 손에 쥐었다가 마지막 구술면접을 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안타갑게 재수를 했던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상원이 겪었던 불행한 일들을 전해 들으면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게 보통이다. 

거의 다 붙은 대학에 구술면접만을 남겨두고 교통사고가 나서 불합격했다는 얘기는 어디에 가서 꺼내지 못할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상원은 그런 현실성 없는 불운을 주변에 달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덜컥 합격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가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니 조석희는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드려요, 총장하고 통화라도 시켜드리면 직접 확인할래요?"

서울대 총장하고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통화는 가능할 거라고 조석희는 생각했다. 상원이 그걸로 안심하고 자신의 합격사실을 받아 들인다면 노력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아니 괜찮아"

상원이 두 손을 내저으며 얼른 대답했다. 

"그럼 믿으실 거죠?"

"응"

"축하해요 선배"

조석희가 다시한번 축하인사를 건네자, 상원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조그만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하는 상원을 조석희는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안 믿겨진다. 내가...합격이라니"

상원이 손가락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어루만지면서 감격에 겨운 얼굴을 했다. 작년에 인도로 걷고 있던 그를 트럭이 뒤에서 들이받는 바람에 상원은 

한달가량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올해 무사히 시험도 보고, 논술도 치르고 면접까지 마치고 합격을 손에 넣은 이 상황이 상원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선배 잠시만"

조석희가 상원의 등 뒤에서 손을 뻗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상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경쾌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냐,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의 

화면도 다른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목뒤에 닿은 니트의 감촉만이 그의 감각을 지배했다. 

"합격했네"

담담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축하 안해줘요?"

"....어?"

"합격"

조석희가 모니터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가리켰다. 상원은 그제야 깜짝 놀라서 이번에 시험을 본 것이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미안. 깜빡했어. 깜빡할게 따로 있지, 미안 정말. 아,아니 축하해! 합격 축하해 석희야"

쉬지도 않고 자책에서 사과, 축하까지 상원은 한번에 늘어놓았다. 조석희가 피식 웃더니 그런 상원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럼 이제 선배 아닌가?"

"응?"

"같은 학교, 같은 학번이니까 선배 아니잖아요"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의 같은 학번으로 대학에 붙었으니 조석희의 말이 옳았다. 더 이상 선배라는 호칭으로 불리기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따. 

사실 상원이 희재고를 자퇴한 시점에서  선배라는 호칭은 효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석희는 줄곧 상원을 선배라고 불러왔고 상원 역시

거기에 의견을 달지 않았다. 

"아, 그렇겠다.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름 불러야 하나?"

상원은 조석희가 자신을 상원선배 내지는 선배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파충류의피부처럼 서늘한 조석희의 목소리가 내는 "ㅅ" 발음이 특히나 마음에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이름만으로 불러준다면 그 또한 좋았다. 

......실은 그냥 어떻게든 불러만 줘도 좋을 것 같았다. 

"형? 상원 형?"

"---!!!"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상원은 놀라 얼굴빛이 변했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아니, 한층 가까운 느낌이 드는 호칭이었기에 이내 입이 귀에 걸리고 말았다. 

"아니면 그냥 상원아?"

"---!!!"

지화자, 이건 더 좋구나!

"어색하네요"

"아, 아니야 괜찮아"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를게요 선배"

조석희는 선배, 라는 부름에 상원은 온몸의 신경이 초콜릿으로 변하는 기분을 맛보았다. 조석희가 허리를 숙여 멍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상원의

귀에 속삭였다. 

"집으로 가요 상원선배"

그리고 그는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걸어갔다. 상원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일어나 조용히 조석희의 뒤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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