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스러운 키스였다. 그리고 물론, 브레이크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 키스이기도 했다. 내쪽이 좀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키스도 애무도 시작한것도 나였고, 먼저 단추에 손을 댄 것도 나였다. 당황한 신우가 나를 살피면서 조금 건성으로 키스해오는것에 화가나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더니 킥킥거린다.
말랐다. 그때의 그 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는 신우만큼의 마음을 신우에게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게 공평하지.
“......아직도 하고 싶어?”
내 말에 신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하는 것이 들키지 않기를 빌면서 나는 최대한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아 키스했다.
“하자.”
신우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참고있을 뿐, 다시 그 소유욕은 심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나는 그저 골라잡은 상대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 반대로 내가 신우처럼 소유욕을 느끼는 상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안타까움은, 애절함은 사랑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신우의 목에 팔을 감고 그를 느낀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도 나도 결국 변하지 않았지만.
“좋아해.”
그 말이 사랑이라는 건 아니지만.
신우가 옷을 벗기던 손을 멈추지 않은채 대답했다.
“괜찮아.”
“정말?”
궁금했다. 너와 같은 마음이 아니어도 너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도데체 왜 인지.
“응, 내가 사랑하고 너는 좋아하고. 그럼 되잖아.”
이상한 한국어다.
그래도 됐다고 말하는 신우의 얼굴은 체념도 절망도 아닌 정말로 기뻐하는 얼굴이어서, 나는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눈을 다시 감자 신우의 손이 티셔츠 안쪽을 파고들었다.
손이 성기에 닿아서 긴장했다. .......싫다? 아니 조금 거북스럽다. 신우의 혀가 귓가를 맴돌고 귓밥을 살며시 무는 것을 느끼면서 몸이 조금 떨렸다.
“허니문.....인가.”
내 말에 신우가 응, 하고 웃더니 입술을 겹쳤다. 겹친 입술 사이로 농후한 혀가 뒤로만 가는 나를 끌어당겼다. 몸이 자꾸 뒤로만 가는데 신우는 상관없다는 듯이 내 몸을 끌어당겼다. 키스와 애무속에서 점차 처음처럼 나도 타올라서 다시 신우에게 달라붙었다. 키스하고 신우의 옷을 마저 벗기고, 신우의 배와 등을 만지면서, 신우가 내 유두를 머금자 나도 신우의 귀를 애무했다.
어떻게 벗겼는지, 어떤 애무를 받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삽입직전까지도 나는 물위에 둥둥 뜬 기분으로 신우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신우의 발기한 성기가 허벅지에 느껴졌지만 이미 거부감은 없었다. 도리어 진심으로 저걸 어떻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은 잘 모르지만, 여하간 내 몸으로 신우에게 절정을 주고 싶다는 기분은 충만해있었다.
“아, 잠깐.”
온몸이 욱씬거리고, 신우의 손으로 인해 눈앞에 스파크가 튀기 직전, 신우는 나를 떼놓았다. 자세히 보이 예전 어머니가 보여주신 줄리에뜨 숙모와 닮은 듯도 하다. 새빨간 입술이 조금 벌려져 있어서 색기있다고 생각했다. 상의는 완전히 벗겨져서 바지도 후크가 풀어헤쳐져 그 안의 브리프가 보이는채로 신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뒷모습을 보니 허리가 정말 가늘어져있다. 조금의 울퉁불퉁한 것도 없이 맨질거릴 것 같은 등이다.
그리고 책상에 가서 로션을 들고 왔다.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한쪽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한쪽손으론 내 고개를 들어서 - 침대밖에서 허리를 숙여서 키스해오는데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말라서 그런지 선이 좀더 가는 신우가 키스하면서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
천천히 바지가 벗겨진다.
“미치겠어.......”
신우가 작게 속삭였다.
“완전히.......온 몸이 나같지가 않아서.......”
신우도 그런 느낌인걸까? 온몸이 둥둥 뜨는 것 같은 기분인걸까. 신우도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느낌인걸까.
“I want you. only you."
영어로 빠르게 말하는 신우의 말에, 원하는 건 오직 나라는 말에, 사실 너는 아무나 골라잡은 거일지도 모르는데도, 나는 기뻤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옷을 벗기는 신우에게 계속 파고들었다. 키스는 다시 이어졌고, 신우의 손이 등을 타고 오싹거리는 척추를 지나 엉덩이에 닿았다. 차가운 액체가 닿는데도 나는 막연히 로션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뭔가가 침입할 때까지도.
“뭐, 뭐야? 뭐하는거야?”
정신이 번쩍 든 내가 눈을 확 뜨는데, 신우가 손가락을 빼지도 않고 물었다.
“......싫어?”
싫냐구. 지분거리는 손가락이 싫지는 않았다. 조금, 좋았는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또 더럽고, 사실 손가락을 뺐는데 갈색 이물질이라도 묻어있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태산같지만, 싫지는 않았다. 키스가 그랬듯이, 애무가 그랬듯이, 성행위란 신우에게 기대게 만드는 게 있는 것 같다. 정확히는 신우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신우로 가득차는 그런것이다.
“아니, 싫진 않아.”
“좋지도 않은거네?”
신우가 예민하게 물어왔다.
“......조금은.”
손가락이 빠지려고 한다. 빡빡한 곳을 나가는 손가락이 왠지 안타깝고 애가탄다. 특별히 그 손가락이 나에게 키스나 애무같은 쾌감을 던져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그 손가락이 내 몸 속에 들어가있다는게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고 있었고, 나는 허리를 뒤틀며 말을 이었다.
“좋아. 조금이지만, 좋아.”
손가락이 빠르게 들어왔다. 아마도 그 손가락 끝까지 신우가 단번에 넣어버린 것 같다. 따가움과 생생하고 낯선 감각에 놀라 신우를 꽉 끌어안자 다른 손으로 신우가 나를 안았다. 목젖이 애무당하자 온몸이 찔끔찔끔 움직인다. 이미, 사정할 것 같다.
“......움직이고 있어.”
신우의 말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다. 얼굴이 벌개졌으리라. 내가 신우의 품으로 얼굴을 넣어버리자 신우가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 이걸로 가버릴 것 같아.”
“손가락만으로?”
정말 이해가 안가서 묻자 신우가 환하게 웃었다. 사심없는 해맑은 미소에 가슴이 두근. 뛰었다.
“......반쯤은 상상으로.”
“상상이라니?”
“손가락이 아니라 페니스라는 상상으로.”
직통으로 쾌감이 달렸다. 그 말이 완전히 머리를 후려치듯 했다.
“조이지 마.”
부드럽게 책망하는 그 말투에 부끄러웠지만 나는 신우의 몸에 얼굴을 완전히 묻었다.
“넣어줘.”
그 이후부터 신우의 애무는 강도가 더욱 거세어져갔다. 신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 몸을 모두 핥아서 녹일 것처럼 훑어내렸다. 찌푸린 얼굴이.......의외로 섹스를 할 때 사람은 표정이나 성격조차 틀려진다는 걸 깨달았다. 신우는 찌푸리고 있었다. 괴로운 듯이, 그리고 간간히 조금 웃었다. 그런데 그 얼굴에 가슴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신우의 손가락이 크기를 늘려갈수록, 나도 초조해졌다. 몇 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곳은 이미 크게 벌어져있다. 약간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정도로, 그리고 그 공기로 인해 내가 그 곳을 적시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끈적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있다. 자꾸 이상한 소리 때문에 나는 더욱 초조해지고 민망해졌지만 신우는 왠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로 간단하게 “공기가 빠지는 소리일 뿐이야.”라고 말해줬다. 그게 좋았다. 다정하고 다정한 신우가 분명 초조해하고 있는데도 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이.
우리는 어차피 최악의 커뮤니케이션만을 해대었다. 차라리, 몸쪽이 솔직할지도 몰라.
신우가 갑자기 손가락을 빼냈다.
“......싫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지만, 사실 부끄러워 할 시간도 없었고 여건도 되지 않았다. 싫다는 내 입을 막으면서 신우는 다시 나를 애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무는 잠처럼 늘어지게 만드는 것이어서 그곳은 움찔거리는채로, 나는 천천히 신우에게 기대었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윽.......”
이게 뭔지, 분명히 알고있다.
신우가 삽입한 것이다, 내 항문에 자신의 것을 넣은 것이다. 찢어질 것 같은 공포가 격통을 이기고 있을 정도로 무서웠다.
신우가 움직이지 않은채로 고백했다.
“겁이 나.”
나만 무서운건 아닌가보다. 신우는 더할지도 모르지. 신우는 이런걸 알고있었고 또 생각해왔고, 시도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시도를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신우도 무서울지도 모른다. 내가 자신을 또다시 밀쳐낼까봐. 앉혀진채로 삽입되어서 신우를 내 힘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머리를 안자 그가 내 맨가슴을 핥았다.
“.......또다시 너를 상처입힐까봐 두려워. 나는......내 그런 행동들에 네가 무서워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괜찮아.”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길.
“......나는 상처입지 않아.”
그 말에 신우가 안도하는 것처럼 한숨을 뱉었다.
“젠장, 이렇게 하면 안되는건데.”
뭐가 안된다는 걸까? 신우가 천천히 나를 눕혀주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그 곳을 더 벌려서 아프게 만든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것처럼 예민해져서, 신우의 손길조차 따갑다.
그러나 누웠을 때는 차라리 편해졌다. 몇 번이나 크게 심호흡을 하자 그럭저럭 견딜만해진 것 같아서 그제서야 신우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신우는 걱정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그가 힘이 세고 멋진 몸을 하고 있을 때보다, 마르고 연약한 지금이 더 마음에 든다. 안타까워져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진다. 손을 뻗어 그의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주자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지 마.”
나는 웃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바랬다. 이 마음이 그에게 전해지길.
“......해줘.”
신우가 움직이면서, 먼저 터뜨린 건 나였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도 신우를 보고 있으면 참을만한 고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신우가 움직이는 거라던가, 신우의 것이 조금이라도 액을 흘리면 그 느낌이 드는 것이-그곳에서 엉덩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런 느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신우가 나 때문에 미치는게 무서운데도, 나 때문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몰아붙이는 것이 좋은,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더, 더, 더, 더.......!”
내가 조르자 어떻게도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찌푸리고 허리를 흔드는 신우가 보기 좋았다. 결국 먼저 가버린건 나였던 것 같다. 완전히 탈진한 나를 계속 흔들고, 그리고 성기를 빼려는 신우를 막은 것도 나였다.
“그냥 해.”
“하지만......잠깐 놔.......아......!”
신우의 액이 터지는 것을 멍한 머리로 느끼면서 나는 조금 웃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이 제멋대로 흐른 것으로 보아 사실은 울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떴을 때는, 신우가 내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은 뒤였다.
“이게 뭐야?”
내 말에는 답하지도 않고 신우가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쓸쓸한 눈에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 제멋대로인 남자에게 빠지기는 빠졌나보다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왜 그래?”
“또 상처입힌거 같아서.”
바보다.
나는 그에게 전혀 상처입지 않았다. 그에게 상처입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옛날일이다. 쓰레기통일이나 멋대로 동거하게 만든거나 나를 강간하려고 든거나, 그것들은 모두 옛날일이다. 상처입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그 상처가 아물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일로는 상처입지 않았다.
“난 괜찮은데.”
나를 조금 살피던 신우가 나가더니 죽을 가지고 돌아왔다.
“우선 발열제를 넣어뒀어. ......찢어지지는 않았으니까.”
뭐가 찢어져?
......맙소사, 마른침을 삼켰다. 면팔리는 소리를 꼭 면전에서 할건 뭐냐.
“그럼 됐지, 뭐.”
야윈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확실히 옛날같은 예쁘장한 미모는 어디에도 없고, 눈앞에 있는 것은 확실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남자. 이 남자하고 얽혔던 작년과 올해를 떠올려보면서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널 용서하지 않아.”
그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손을 꼭 쥐었다.
“그러나, 널 좋아해. 나도 널 상처입혔고, 너도 날 상처입혔다고 해서 그게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너도 날 사랑한다면서? 그러니까, 서로.......갚아나가자. 나는 어릴때와 똑같이 어리광도 심하고, 제멋대로고,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것에 우월감을 느껴. 네가 날 가둘까봐 무섭고, 네가 날 힘으로 어떻게 할까봐도 겁나.”
“안 그래, 더 이상은 그러지 않아.”
“응......”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소한, 이신우는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하간, 그러니까.......사귀어보자. 정식으로. 내가 싫다면 넌 손떼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도록 노력해보는거야. 네가 싫다면 나도 너와 헤어져 다른 사람을 좋아하도록 노력해볼테니.”
신우가 날 확 잡아채서 자신의 품으로 넣었다. 여전히 숨막힌다. 그래도,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난 네가 정말로 좋아, 너밖에 없어, 나는.......”
신우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해.”
이 마음은 내겐 사랑이기 때문에. 신우가 정말 내 말을 알아들었을지, 명심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해두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내게는 나 자신의 힘이 있기 때문에. - 이 것은 신우의 덕이다. 신우와 만나면서 나는 내 힘을 길러 내 발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언젠가 신우도 나로 인해 변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신우가 끌어안으면 무섭고, 신우의 집착은 광기를 더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게 자립할 힘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분노하신 아버지와 누나와 형들에 의해 초죽음이 된 둘째형의 피를 토하는 애원으로 인해 나는 집에 들러야 했다. 정말 형의 꼴은 말이 아니다. 특히 누나한테 맞았는지 어그적거리고 걷는 폼이 그곳을 채인 모양이다. 모두가 나에게 할말이 있다며 굴러떨어지듯이 이층에서 내려와 현관에서 나를 맞았는데, 그 모두를 “시끄러워, 안 들어가!!”라고 소리쳐 물리치신 어머니가 아버지를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라고 명령하신 뒤(;) 안방으로 데려와서 앉히자 마자 물으셨다. 좋아하느냐고. 한참만에 그렇다고 대답한 나를 어머니는 유심히 보셨다.
“신우의 어디가 좋으니?”
“밥 잘하고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돈도 잘 벌 것 같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내가 주절주절 말하자 어머니가 피식 웃으신다.
“우리 막내아들, 언제부터 이렇게 능청이 늘었나....... 민형아. 신우의 어디가 좋으니. 엄마 속이지 말고.”
어머니 얼굴이 까실하다. 어머니는 분명 내가 집을 나간 시점서부터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내 걱정만을 하셨을 것이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제 아들은 한때 자길 죽일뻔 했던 정신병자에게 장가들겠다는 말을 할 참이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실까.
“......제가 안 돌봐주면, 죽어버릴 것 같아요.”
“죽고 사는건 그리 쉽지 않지.”
어머니의 부정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때 거의 난민꼴이던 신우를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걔한테는 제가 필요해요.”
어머니가 나를 살펴보신다.
“사랑은......구걸도 봉사도 아니란다. 그런거와는 전혀 틀리지. 엄마는 이해할 수 없구나. 할아버지는 너를 신우한테 보내라고 난리고, 아무래도 큰아버지가 손을 쓰신 것 같아. 할아버지에게는 단 하나의 장남이니까, 큰아버지말이라면 회사도 다 넘기실 분 아니냐.”
처음알았다. 큰아버지를 할아버지가 그렇게나 총애하고 계시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 엄마는, 네가 신우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전부 두고 걔한테 가겠다는건지 도통 이해가 안가. 신우에게 네가 필요하다면, 엄마도 네가 필요해. 아닐 것 같니?”
알고있지만.
“저는.......엄마, 저는요....... 혼자 살 수 있어요. 혼자 선택하고 그 댓가를 혼자 책임질 나이와 능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 말에 어머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신우를 좋아해요. 걔도 제가 필요하지만......저도 걔가 필요해요.”
“걔가 뭘 해주는데?”
“아무것도 안해줘도, 걔가 필요해요. 저는......신우를 전혀 상관없는 타인처럼 살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셨다.
“......걘 널 새취급한 애야. 기억하고 있니? 널 새장에 넣고 길들이려고 한거라고. 널 사람으로서 대하는게 아니라 새처럼 취급한 그 아이에게, 정말로 넌 가고 싶니?”
대답은......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 신우는 나를 새취급했다. 하지만 괜찮아. 내게는 힘이 있으니까. 신우가 다시 나를 비인간적으로 대하고 구속하려 들면, 나도 거기에 대응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 죽일 수는 있어도 나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고, 나는 늘 신우에게 알려줄 것이다.
“네, 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내게 두가지 당부를 하셨다. 하나는, 힘에 부친다면 반드시 어머니께 기댈것. 절대로 혼자 해보겠다고 하다가 상황을 되돌이킬 수 없을때까지 몰아넣지 말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반드시 가족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기억할 것. 다음에 또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내가 살든 죽든 신우는 죽는거라며 어머니는 그렇게 강조하셨다.
대문을 나서자 신우의 무쏘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왔네.”
신우의 말에 그를 끌어안았다. 조수석에서 끌어안자 엉거주춤 안긴 그가 불편할텐데도 손을 뻗어 나를 마주 안았다.
"나한테 잘해.“
내 말에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응,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께.”
......한국어를 잘 모르는 애다.; 그래도 나는 간이고 쓸개고 전부 먹어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그 상처는 그대로인데도 역시 한걸음 더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은, 사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신우와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을 골랐다.
큰아버지는 줄리에뜨 숙모를 닮은 것을 깨닫고 아들로서 인정하게 된 신우가 게이라는 것을 알게되자마자 기가막혀하셨지만, 그뿐이었다. 후에 문제가 생기면 조카이니 언제든 떨어뜨리게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신건지 내게 “어쨌든, 잘 부탁한다.”고 짧게 말씀하셨다. 신우는 자신의 아버지앞에서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큰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우리가 같이 산지 한달이 좀 넘은 때였다.
“신우야.”
내말에 그가 “응......”하고 불분명하게 답하면서 내 귀에 키스했다. 그런 그의 머리를 한손으로 감싸면서 등뒤의 그에게 기대어 말했다.
“......또 같이 자자.”
내 말이 그저 자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신우가 아무말도 하지않고 키스하듯이 귀에 혀를 넣고 움직였다. 어질거리는 시선을 위로 올렸더니 나무로 된 천장이 보인다. 나는 이 천장을 얼마나 보게 될까. 너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게 될까. 그런 걱정이 소용없다는 것을 이제 알고있다. 신우의 손이 셔츠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 뿐인다. 신우와 함께.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신우의 말이 귓가에서 들려 오싹하다. 그 숨소리가 같이 섞인 잠긴 목소리는 숨이 막힐정도로 내 성감을 불러일으키는 데가 있었다. 나도 그를 끌어안고 내가 먼저 키스하며 속삭였다.
“사랑해.”
신우가 함박미소를 짓는걸 보면서 다시한번 그에게 키스했다. 그가 숨막히게 끌어안는다. 그래도......숨이 막히지는 않는다는걸 알고있는 내가 여유롭게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신우야, 사랑을 좀 줄여.”
내 말에 신우가 무슨말이냐는 듯 미간을 좁혔다.
“나도 사랑을 좀 키울께.”
갑자기 신우가 푸하하하, 하고 웃는다. 나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거실을 돌면서 웃는 그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돌려지면서 나도 웃었다. 사랑을 줄이든 키우든간에 그런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좀 그랬으면 좋겠을 뿐이었는데.
신우의 웃음소리는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나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춤추면서, 신우는 웃고 또 웃기만 했다. 웃음소리와 몸이 빙글빙글 돈다. 그래도 좋다, 지금은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