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8)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재수가 좋았다.

    우리형, 정확히 둘째형은, 어머니의 특명을 하사받고 정탐겸하여 김치를 건네주러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입구를 찾으라 건물을 한바퀴 돌던 형은 안돼-! 라는 소리와 함께 어떤 직감에 의해 위를 올려다보았고 사람이 떨어져내리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치따윈 던져버리고 바로 뛰어간 형은, 13층에서 떨어지는 나의 충격을 줄이기위해서 뛰면서 팔에 코트를 감았고 떨어지는 나를 아슬아슬하게 토스했다. -배구하듯이.

    그리고 형은 두팔이 뎅강 부러졌고.

    나는 형이 충격을 완화시켜주어서 일미터에서 떨어진 정도의 충격과 생채기외에는 받지 않았다. 단지 심장이 좀 놀라서 오랫동안 팔딱거리는 물고기처럼 발광했을 뿐.

    나는 기절했고, 형은 낙하한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러 다가가다가 떨어진 자가 자신의 동생이었음을 확인하고 같이 기절했다고 한다. -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제 다시는 민형이하고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내게도 소중한 자식이야. 내게도......!”

    어머니의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누구를 향해 있는건지는 보지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해, 신우다. 

    “다시는, 필요불가결한 일이 아닌 이상에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신우가 말했다. 그 무덤덤한 목소리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을 잡을꺼니? ......나는 지금 실연을 당하고 있다. 저 녀석은 나중에 말할지도 몰라. 옛날에 사촌을 좀 좋아했는데 어릴때 다 그렇지, 뭐. 그래도 나는 너에대해서 그렇데 담담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드디어 그 집을 나온것이다.

    집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막내동생이시군요.”

    생글생글 웃는 누나가 다른 사람같아서 내가 슬쩍 불편해하는 사이 다섯째형이 얼굴 굳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애사업이 망쳐지는 경우 동생이고 뭐고 없다고 일장 연설-이라기보다는 협박-을 해댄 누나를 기억하고 있는지라, 전원 필사적이었다.

    사실 어머니의 한달용돈 압수, 라는 단서가 더 무섭기도 했지만.

    “자기, 그냥 편안히 말 놔아~”

    애교스런 누나라니, 닭살돋는다. 하지만 누나가 저 매형후보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이다. 무려 대학시절부터 점찍어놓고 스토킹짓을 하면서 쫓아다닌끝에 사귄것이다. 누나의 연애스토리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하소설 한편은 거뜬히 나올것이지만, 여하간 누나의 본성을 알고 사귄 유일한 남자이며, 누나를 저렇게까지 길들인 역시 유일무이한 무서운 사내는 그 대하소설 전편을 거의 모른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나만 하겠어요? 난 당신의 쓰리사이즈도, 당신의 집주소도, 주민등록번호도, 초등학교때 첫 뽀뽀한 여자애 이름도 아는걸요. 

    “아, 저도요.”

    내가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다시 빙긋 웃었다. 누나는 행복하게 웃고있다. 저 매형될 사람이 정말 좋기는 좋은가보다. 저 매형될 사람이 “터프하다는 건 알고있다.”며 예전에 웃은 걸 생각하고, 우리 오형제는 정말 괜찮은 남자가 누나에게 장가드는 것을 절망하면서 술을 마신적이 있다. 누나와 이란성 쌍둥이이자 늘 쥐어박히고 사는 불쌍한 둘째형이 ‘이제 세상에 남자가 발붙일 곳은 없어어-’라고 밤거리에서 소리소리 지르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이 이란성이신 그 분이시군요.”

    둘째형도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다. 만면에 가득한 미소가 형의 의지-와 누나의 협박강도-를 보여주는 듯 하다. 별로 닮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매형이 웃는다.

    “올해 신년에는 할아버지께도 인사드려야지.”

    ......벌써 겨울이다.

    찬란한 여름은 갔고, 나는 수능도 쳤다. 누나는 결혼하려고 하고, 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준형이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애였는데, 결국 헤어졌다.

    -뭐가 문젠데?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 한참만에 못 잊은 사람이 있어서, 라고 말하고 뺨을 맞았다. 종로 한복판에서 가방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는...... 내 첫키스 상대를 생각했다.

    약속을 정해서 서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그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그냥 헤어지는 것. 의무적으로 전화를 하고, 타인보다 좋아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감정은 없는 그런 연애. 지나치게 강렬한 체험때문인지, 나는 그 연애가 무미건조하다고 느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돼.

    내게 연애의 대전제는 그것인 모양이다. 그래서 신우도 민정이도, 내게는.......결국 보내야 할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나 보다.

    누나가 부럽다.

    저렇게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에게 무조건 달려드는 누나가.

    -난 스믈둘에 그를 만났어. 넌 이제 겨우 스믈하나인걸.

    누나는 그렇게 위로했지만.......모르겠다. 신우이상의 누군가가 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이상,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 상대라는게 존재한단 말인가?

    “민형아.”

    누나의 부름에 황급히 고개를 들자 누나의 눈이 매섭게 쏘아졌다. ‘죽/고/싶/지.’ 실제로 내게는 관대하고 관대한 누나라는걸 알지만 바로 웃었다.

    “죄송해요, 매형. 잠깐 딴 생각을.......”

    “아.....매형이.....라..... 좋네요, 그 말. 고마워요.”

    매형될 남자가 붙임성좋게 웃어준다. 그 웃음을 보자 철딱서니없는 누나는 ‘나이스!’라는 시선으로 잘했다는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을까봐 온몸으로 내게 표현하고 있다.  

    부럽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이.

    올해 신년식은 호텔에서 하신다고 한다. 어머니나 작은 어머니의 수고가 줄어서 다행이라고 다들 말했다. 나는 그와중에도 신우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짤막하게 신우가 후계자로 확실히 인정받는 자리가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셔서, 나는 그럼 멀리서 보겠구나 - 그런 생각을 했다. 앞에서 인사조차 할 수 없다. 멀리서라도 보는게 어디인가. 여전할까. 그 큰 키도, 마른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근육투성이의 몸도, 그 입술도, 그 목소리도.

    딱 한번 신우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예전에 신우에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참 매정하게 굴었는데.

    “여보세요?”

    그 말에 그저 울기만 하는......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만으로 가득한 그 전화를 나는 왜 계속 들고있었을까. 분명히 신우였을 것이다. 계속 울기만 하는 그 전화를 들고 나도 울어버렸다. 하지만 울지 말라던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왠지.......신우라는걸 모르는 척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나도 입을 막고 울다보니 어느 새 신우처럼 꺽꺽거리고 있었다. 전화기가 꺼질때까지....... 우리는 계속 아무말도 없이 울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두시간이나 울고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마음은 뭘까. 저 사람만이 이 마음을 알고있을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수 없는 내 마음속 아주 작고 중요한 마음을 저 사람만 알고있다는 이 기묘한 공감은 어떻게 세워지는 것일까.

    왜 나는 민정이와 이런 공감을 가져보지 못할까.

    민정이와 사귄 것은 신우의 집에서 나온 직후였고, 나는 수능날 민정이와 헤어졌다. 그 전부터 헤어지고 싶었지만, 민정이의 수능성적-같은 학원생이었다. 재수생이었다는 말이다.-이 걱정되어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여름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것은 정말 숨막히도록 더운 여름, 밖의 후끈거리는 열기와는 이질적으로 선선한 집안에서였다.

    그는 이제 나를 잊었을거야.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을거야.

    레스토랑에서 집으로 자리가 옮겨졌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신우가 못견디게 보고싶었다.

    “엄마.”

    내 말에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신다.

    “나 편의점 다녀올께요.”

    “얜 맨날 이렇게 빠지려고 든다니깐. 금방 오기야.”

    어머니는 기분좋게 나를 보내주셨다. 집에서 태연하게 걸어서, 코너를 돌자마자 큰 길가로 뛰었다. 바지 주머니에 잡히는 만원짜리 두장이 느껴졌다. 

    “택시!!”

    택시는 금방 잡혔다. 택시를 타고 가는내내 신우를 떠올렸다. 그 애절한 키스를, 그 미친듯한 행동을, 일방적인 말들을. 

    그러나 정작 아파트앞에 서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네가 아파트에서 떨어지면서까지 떨궈낸 남자야.

    ......이민형, 네가 그랬다고. 그저 보고싶다는 이유로 흔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좀 더 가볍게 인사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랬다면......

    인정해야했다.

    차갑고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올려다 보는 높은 아파트 윗층에 사는 미친놈이 나는 좋다는 것. 옛날부터 나는 그가 좋았다. 나를 좋아해주는 그가 좋아서, 그가 다른 아이랑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필사적으로 방해했던 기억이 왜 이제야 나는 걸까.

    그가 나를 좋아했던 것은, 교활한 내가 그가 좋아할 짓을 하면서 그 마음을 밀고 당긴탓이다. 우월감에 휩싸여서 마치 스타처럼 행동했었지. 그것은 모두......너의 시선을 못박기 위해서.

    그래서 그 때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너가 존재한다는 것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네가 있다는 것이. .....너의 모습중에 내가 모르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하지만 그 상처가 치유되진 못해도, 내 괴로움을 즐겁다는 듯이 웃는 너를 잊을 수는 없어도, 한가지는 분명히 알고있다. 너는 내 괴로움을 즐긴 것이 아니라는것을. 너는.....대신 떨어져주겠다고 말했으니까. 너는, 그저 나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 상태로라면.......

    계속 서로에게 갇히게 되고, 계속 서로는 이해할 수 없어지겠지. 너를 사랑하지만, 너를 사랑하는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잖아.

    결국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그 곳에 가서 신우를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쩌면 겨우 안정된 신우를 다시 가지고 노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비틀리고 비틀려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관계. 구역질이 난다.

    누군가 날 좀 구해줘.

    그냥 날 사랑해줘.

    따듯하게, 평온하게. - 그래서 내가 그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줘.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파왔다.

    신년식에서 만난 신우는 놀랍도록 야위어있었다. 그래도 그는 예의바르게 웃고, 손님 접대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역시 장손이라며 호탕하게 웃으셨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위상한다는 듯이 뷔페음식을 집어먹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형들과 이야기하던가 음식을 먹거나 오랜만에 본 작은집 사촌들과 놀면서 때때로 신우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데.

    신우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내가 너무나 신우가 나를 쳐다보길 바란것이리라. 그 사람의 애정이 부담스럽다면서도 나를 쳐다보길 바라다니.

    난 정말 이기적이다.

    삼월이 왔다.

    신우와 키스하고 애무하고 그에게 모든 몸이 반응했던 작년 삼월은 그저 추억과 기억만으로 남고, 나는 술독에 빠지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이신우!”

    과 선배가 부르는 이름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느님 맙소사. 신우가 G대에 들어왔다고? 그러나 왜......? 그리고 무엇보다 신우의 성적을 아시는 할아버지가 그것을 허락했을리 없지 않은가. Y대도 갈 수 있는 아이를 도데체 왜 G대에?

    동명이인이야, 이민형.

    그러나 시선에 잡힌 것은 신우였다. 그 몸이, 그 눈이, 그 피부가, 그 체향이, 그 목소리가,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서......온몸이 떨렸다. 안겨버릴 것 같아서 “선배, 저 먼저 가요.”라고 말하고 바로 뒤를 돌아서 걸었다. 걷다가, 나중에는 뛰어버렸다. 신우는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필요불가결한 일이 아니면.......

    신우를 좋아해. 하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아. 그런데도, 이 마음은........

    이 오염된 마음은, 그저 좋아하는 것만은 아닌 이 마음은......뭐라는 명찰을 붙여야 하는 거지?

    집에 가고 싶었다. 오한이 나서 도저히 학교에 있을 수 없었다. 힘들었다. 신우와 모르는 척을 한다는게, 아니 좀 더......그래, 신우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게. 아니, 신우가 이제 더 이상 나를 보지도 않는다는게.

    “오랫만이구나.”

    교문을 나서서 정류장쪽으로 걸으려는데 빵빵 거리는 클랙션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큰아버지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손짓을 하고 계셨다. 가까이가자 인사를 하시는데, 안색이 썩 좋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고 싶은데.

    그러나 큰아버지는 잠깐이면 된다며 차를 타라고 하셨고, 내게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그 차는 십분정도 달려서 외진 골목길에 섰다.

    “도와다오.”

    처음으로 둘만 있게되서 본 큰아버지는 약해보였다. 옛날 신우를 보면서 귀찮아하던 그 남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주식에 관한 이야기라면 작은 아버지에게 형제 모두 톡톡히 설교들은 뒤라 -절대로 큰아버지에게 주지 말라는- 곤란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을 때 큰 아버지는 핸들에 묻은 머리를 들지 않고 말했다.

    “신우가......아파.”

    방금전에 멀쩡한 신우를 보고 뛰쳐나왔는데요? 

    “.....민형아.”

    큰 아버지가 내 이름이나 알고계실까 의심스러웠는데, 알고계셨던 모양이다. 나를 부르시는 그 목소리는 큰 아버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메말라있어서 놀라웠다.

    “내게도 신우는 소중한 아들이란다.”

    정/말/로?

    큰아버지의 그 싸늘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내가 의심스러운 얼굴이라도 한건지, 조금 웃으신 큰아버지가 고개를 드셨다. 

    “정말이야. 줄리에뜨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걸.......한참뒤에 깨달았거든.”

    어릴때는 닮았지만, 지금은 큰아버지와 붕어빵인 신우의 어디가 그 아름다우신 숙모와 닮았다는건지? -사실 줄리에뜨숙모는 큰어머니라고 불러야 맞지만, 줄리에뜨 숙모 본인이 큰어머니라는 개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숙모라고 우리는 부르곤 했다. 그나마도 줄리에뜨 숙모가 프랑스로 돌아간뒤에는 완전히 호칭이 뒤섞였지만.

    여하간, 나는 큰아버지의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그 광기는 유전이었던 것이다.

    “신우가 아프단다. 밥도 제대로 안먹고, 위험한 짓이나 하고 다니고, 어느 날 갑자기 사고라도 날까봐 큰아버지는 지금 걱정이 말이 아니란다.”

    자신을 큰아버지라고 지칭하는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는 한 큰아버지는 늘 스스로를 ‘나’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는데.

    “부모란 아이가 어떻게 될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존재지. 신우가 너를 몇 번이나 위험에 떨어뜨렸으니 성우나 제수씨가 그러시는게 이해는 간다만...... 그러나 내게는 둘도없는 소중한 자식이야. 그리고 그 애가 네가 없어서 망가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부모로서 무척 가슴이 아파. 도와줬으면 좋겠다.”

    “어떻게요?”

    신우가 나 때문에 위험한 일을 하고 다닌다고 한다.

    나 때문에 밥도 안먹는다고 한다.

    나 때문에.

    ......내가 없어서.

    “많은 걸 바라지는 않으마. 그냥 가끔......신우랑 밥이라도 먹어다오. 조금 더 시간을 보내주면 더 좋겠고. 신우는 이틀에 한끼도 제대로 안먹으면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어울리네요, 오토바이라니.”

    태평하게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신우를 떠올리던 나였지만.

    “며칠전에 사고가 나서 위험했어. 오토바이는 보험도 들어주지 않을정도로 위험한거고, 그리고 신우가 타는 건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거란다.”

    사고?

    “사고라뇨?”

    체온이 내려간다.

    오한이 가면갈수록 심해진다.

    “교통사고. 많이는 안 다쳤지만 오토바이는 산산조각났지. - 그리고 신우도 그렇게 될뻔했고.”

    하느님 맙소사!

    “말씀대로 할께요......큰아버지, 저 학교에 좀 다시 데려다주세요.”

    신우를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선배에게 물어보자 의외로 동아리방에 있다고 선선히 대답해 준 까닭이다. 동아리에 쳐들어가서 신우를 끌고나왔다. 신우는 어색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게 전부로, 내 손에 잡힌 손을 충분히 힘으로 빼낼 수 있으면서도 빼내지 않고 그저 끌려나왔다. 우리는 캠퍼스 구석에서 대치했다. 나는 그를 노려보고, 신우는 계속 다른 곳만 보았다.

    나를 보지 않는 신우에게 더 화가 나다가......브이넥의 스웨터에서 드러난 앙상한 쇄골에 마음이 아파져버렸다. 얼마나 엉망으로 살고있는걸까? 가까이서보니 눈밑도 새까맣다.

    “너, 요즘 뭐하고 사는거야?”

    내 말에도 신우는 대답이 없다. 다른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는 그가 싫었다.

    “대답해, 이신우!”

    그리고 그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내 앞에 들이대자, 그가 처음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상처입은 눈이 나와 마주치고, 그의 눈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러지 마.”

    그가 내 손을 재빨리 자신의 얼굴에서 떼네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내 손을 잡아떼는 그 손길은 예전처럼 부드러웠다.

    “......나 정말로 힘들게 살고있어. 네가 없어서......무척 힘들어. 그러니까 이렇게 아는 척 하지 마.”

    힘없는 목소리가 기가 막혔다.

    “......그래서? 힘들어서, 그래서? 그래서 죽기라도 할셈이야?!”

    내 말에 신우의 몸이 움찔한다. ......맙소사, 미쳤어. 신우는 정말로 죽을셈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왜 굶거나 위험한 짓을 하는거지? 차라리 나처럼 13층에서 떨어지면 되잖아? 나에게 봐달라는 시위라도 하는건가, 짧은 시간에 그렇게 생각해보았지만 앞뒤가 안맞는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런거잖아. 나는 알지도 못하는데.

    “왜......이렇게까지 해야 되?”

    너는 왜 이렇게 절박한걸까.

    전에도 들었던 의문이 다시한번 들었다. 그러나 내 입을 단속하기도 전에 그 말이 먼저 튀어나가버려서 당황한 건 오히려 내쪽이었다.

    “그러는 너는.......왜 그렇게까지 내가 싫은데?”

    신우가 작게 물었다. 미약하고 미약한 목소리에 심장이 아팠다.

    “싫지 않아.”

    내 말에 신우가 쿡, 하고 웃었다. 등을 돌리는 그 뒷모습은, 내 기억과는 달리 크기만 할뿐 빼짝 말라있었다.

    “......좋지도 않지.”

    “좋아해.”

    “그만둬!”

    신우가 소리질렀다. 그래도 차마 다시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지 않는 그가 야속했다. 나를 쳐다봐. 왜 나를 외면하고 그래. 내가 좋다며. 그래서 그렇게......말라버렸다며.

    “충분히 힘들어. 네말대로......평생 괴로워할테니까.”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평생 괴로워하라고. 하지만 그때는 신우가 사랑스럽다고 느껴서 하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건 파멸뿐인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때는 그 사람 말도 듣고 괴롭더라도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위해서 나아가라는 뜻이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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