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8)

  

오자마자 신우가 내 가방을 던져버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왤까.”

신우의 낮은 목소리와 담배향이 나는 품에, 조금 화가 가라앉았다.

그래.....너가 무슨 죄냐.

다 내가 잘난 탓......

속으로 농담하며 기분을 전환하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왤까. 너는 대답해줄 수 있을까. 민형아......나는 오늘 처음으로......너한테 미움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라앉던 화가 다시 치솟으려고 한다.

“있잖아,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너무나 어렵고, 나쁜 사람이 되는건 정말로 쉬워. 그런데 좋은 사람이 되도 나는 그저 네 사촌일 뿐이고 나쁜 사람이 되면 어쨌든 네가 날 죽어도 못 잊게된다면.”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용히 심장을 파고들었다.

“나쁜 놈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잊은게 너에게 상처가 된거야?

......그런 기억은 잊어버리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냐?

“키스하게 해줘.” 

“안돼.”

키스라니!

나도 아직 못해본 키스를 너한테 바치란 말이냐!

내가 고개를 흔드는 걸 잡고 막무가내로 키스해오는 신우의 얼굴에 가슴이 저려와서- 삐뚤어지게 속으로 꿍시렁대도, 나를 좋아해 마지 않는 이 남자의 얼굴에는 동정을 금할 수 없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신우는 그저 가만히 입술을 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고개를 흔들지 않고, 거친키스가 아니라서 예상외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아무것이든 행동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뺨을 타고 흘러, 우리둘의 겹쳐진 입술에 떨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신우의 입술때문인가.

신우의 눈물때문인가.

아니면....... 말을 잘 못하면 안될 것 같은, 신우의 광기때문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몸을 사리고 있는 나 때문인가.

신우는 확실하게 고백하지 않았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게 세상에서 통하지 못할, 나 자신도 상상해 본일이 없는 그런 류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신우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도 눈을 감았다.

우리는 그렇게 입술을 맞대고만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신우가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우는 나를 보면서 참고있는 것이다. 무언가를.......절박한 심정으로도 도리질치면서 참고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첫키스를 묻는다면, 나는 이 키스를 말할 것이다. 남자끼리라 하더라도, 부모 형제 누구와 했던 그 인사성 키스와 전혀 강도상 다를게 없다해도.

그 키스는 너무나 처연하고, 상냥하고.......

슬펐으므로.

나는 내 고통으로 행복해하던 신우를 보면서 느꼈던 배신감보다도, 차마 더 이상 키스하지 못하는 신우의 눈물을 보고 더 마음이 아팠다.

신우가 아파하지 않길 바란다는 마음에 나는 결국 ‘타인으로 같이 살아가는 고통’을 알려주겠다는 생각을 접고야 말았다.

신우는 같이 자자고 말했다.

섹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의 팔을 베고 온몸을 뱀처럼 밧줄처럼 얽은채 잠에 빠져드는 신우를 느끼면서 나는 정작 잠이 들지 못했다. 자신이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유치한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타인으로 같이 살아가는 고통이라니. 그의 아버지와 내가 다를 바가 없는 짓 아니던가.

나를 끌어안은 바위같은 두 팔.

이 팔의 소유자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가 상처입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는 상처입을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마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해서 새벽녘에야 겨우 비몽사몽상태로 졸음이 왔다. 신우는 내가 조금 움직일때마다 다시 나를 끌어안는다. 놓치 않겠다는 그 의지에 조금 슬퍼졌다.

그 막무가내의 애정에 서글퍼졌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매력이 아닌, 신우의 골라잡기에 당첨결과라는 것을 알고있으므로.

내가 완전히 그를 떨구면, 그는 다른 사람을 볼까?

아니면, 그래도 내게 미련을 가질까.

내일부터는 어떤 얼굴로 그를 만나봐야 하는 것일까.

다정하게 인사해주자.

언젠가 다가올 그 때에 안녕,이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지금은 상냥하게 말해주자.

나만을 바라보는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나는 상처입겠지. 그래도 이 남자의 상처만은 못할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걸까.

너는 내가 아무리 차갑게 대해도 내게 끌려오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왜 너를 끝까지 잔인하게 대하지 못한 걸까.

신년. 보람차게 시작해야 할 연초에.......왜 우린 또 만난걸까.

너는 왜 변함이 없는걸까.

-잠들기 직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 하나.

너는 왜......이렇게 절박할까.

그렇게 한번 동정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들고나자 신우를 차갑게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같이 살면서 알게 된 신우의 지극정성은 도저히 그렇게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종일을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저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얼굴이......난감하게 만들었다.

나는 끝을 보고 있어.

막말로 나는 너에게 어떤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니고,

너와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그런데도.

신우는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모든 일을 혼자했다.

마트를 갈 때는 같이 가서 장을 봐왔다.

학원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이미 학원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원에서 왕따가....... 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모두는 침착했다.

그리고 정말로 의외였던 것은 준형이가 신우를 한번 더 보고 싶다며 눈을 번쩍이는 것이다. 너도 광기눈파냐; 라고는 차마 못 물어본 내가 신우에게 물어보겠다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신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난 걔 싫어.”

......그러나, 신우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마다 준형이는 열심히 인사했고, 동갑이면서도 존대로 인사하고 허리까지 숙여보이는 준형이는 신우에게 껌이 되어 씹혔다.

신우는 그러나 같이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다. 내가 바락바락 우겼기 때문이다. 네가 공부하고 싶으면 다른 학원가라. 정 그 학원을 가겠으면 내가 학원을 옮기겠다. - 그 말에 그럼 끝나고 바로 오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신우는......기다린다.

나를, 내 모든 것을,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

언젠가, 종지부를 찍는 건 내가 될터인데.

도데체 언제쯤 해야 할지.

무엇보다도 아직 신우는 침묵하고 있다.

“민형아, 왔어?”

“잘자.”

“씻을거야?”

“영화볼래?”

그 모든 말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신우는 그런 말 외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키스는 밤에 내가 돌아올 때로 결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입술만 겹쳤던 신우는 이제 농후하게 키스를 해댔다. 나는 키스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신우의 키스는 열렬하고도 집요했다. 한시간 이상을 계속 키스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느낀다는 것은 분명, 신우가 키스를 잘 하는 것일테지.

처음에는 혀의 출입에 당황만 하던 나도 어느새 거기에 끌려가고 응해진다. 키스는 계속된다. 밀고.....당기고. 빨아들이고, 훑어내리고. 입술을 훑은 혀가 천천히 입술 안쪽을 핥아간다. 혀의 뿌리쪽, 핏줄인지 알 수 없이 튀어나온 곳을 잇몸쪽으로 당길때, 나는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천천히 우리는 금기를 넘고 있었다.

문앞에서 키스하던 우리는, 삼월이 되서는 거실의 쇼파까지 서로에게 키스를 하면서 움직였다. 삼월 중순, 왠지 모두들 새로 시작하자는 무드로 힘이 넘쳐나는 그 때. 신우는 처음으로 입술이 아닌 목에 키스를 했다. 옷이 벗겨진것도 아니었고, 애무도 굉장히 간단한 곳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트리고 손등에 키스를, 손목에 자국을 남기는 신우의 행위는, 조용하고 느릿해서 내가 애가 닳을 정도였다.

이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미래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비열하게도, 신우가 주는 안락함과 쾌락에 빠져서 신우를 놓기가 싫어진 그 쯤.

신우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자 식구들도 신우에게 적의를 누그러뜨린 그 쯤이었다.

나에게 소개팅 제의가 들어온 것은.

그리고 무지 예쁘다는 준형이의 침튀기는 대사에도, 나는 신우를 생각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소개팅은 한번쯤 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아직도 신우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 나......내일 대답해도 되?”

할꺼지, 할꺼지, 할꺼지? 계속 물어보는 준형이에게 그렇게 물어보자 준형이가 한참을 투덜거린 끝에 그러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신우와 키스하는 도중에도 내 머릿속은 그 소개팅으로 꽉 차 있었다. 하고 싶었다. 길고 까만 생머리. 작은 키. 마른 몸. 여성스러운 성격. 준형이가 마구 웅변했던 그녀들은 나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짧은 머리에 멀대처럼 커서 근육이 빵빵한 미친놈이 생각나더란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같았다.

“신우야.......”

키스하다말고 조금 얼굴을 뗀 신우가 왜 그러냐는 얼굴이다. 아이처럼 천진한 얼굴. 거기다 대고 나는 말했다.

“나 내일 미팅하느라 늦을 거 같아.”

“Meeting? 스터디 그룹같은 건가?”

“......아니.; 여자애들하고 노는건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평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자애들과 놀아? .......뭐하고?"

"술마시고 노래방가고......“

“And go to hotel?"

넌 너무 미국적이야.

우리나라에서 소개팅 한번에 호텔 갈 리가 있냐.

-아무래도 히어링 능력이 향상된 듯 하다;

“그건 아니겠지만.”

신우가 나를 내려다본다. 웃는걸까? .......뭐가 아련하게 표정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 웃는걸까?

“안돼. 절대로 안돼.”

“......이신우. 네가 된다 안된다 할 수 있는 문제가.......”

"하자.“

목적어가 빠져서 뭘 하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신우를 쳐다보는 내게 신우가 다시 키스해왔다.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채로, 나는 그 키스에 끌려들어갔다.

키스. 키스. 키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키스가 나의 온 몸에 떨어져내렸다. 쇼파에 눕혀진채로 키스를 하고 신우가 이끄는대로 침대에 올라왔다.

“잠깐만.......”

때로 이성이 고개를 쳐들고 내게 소리친다. 너 미쳤어? 당장 정신 안차려? 쟤가 누군데 네가 지금 여기서 이래. 이신우라고, 널 가두고 웃던 그 녀석이란 말이야. 그런데도 신우의 키스에 잠겨서 이성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만다. 복잡한 머리를 지우라는 듯 신우의 손이 눈위로 다가와 눈을 감겼다.

.......집을 떠나올때 아버지의 손은 따듯했지만 약했다. 힘내라는 듯이 아버지는 머리를 만지면서도, 입으로는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신우의 손은 뜨겁고, 강했다. 

그 손이 명령했다. -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잠깐, 신우......”

온 몸을 신우가 자신의 모든 몸을 통해서 절박하게 잡고있다. 입술로 손으로 다리로 시선으로 목소리로, 신우는 내게 매달려왔다. 침대와 신우사이에 껴서 신우를 올려다봤다.

내려다보는 신우와 눈이 마주쳤다.

“난 나쁜 사람이 되는거겠지?”

신우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It's my honeymoon."

그는 자신의 허니문이라고 말한다.

신우는 우리의 허니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달콤하게 저리는 것은 나의 몸인가, 나의 마음인가.

귓가에 키스하는 신우의 숨결이 크게 들려서 몸이 흠칫거렸다.

“신우......잠깐만.......”

안돼.

난 아직 너에게 제대로 내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어.

너에게.......오해하게 만든게 나일지도 몰라.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나는 말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신우.......”

신우가 나를 감싼다.

신우가 키스를 하면서 내 말을 막는다. 

신우가......나를 막는다.

“.......”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깊게 키스하면서, 내 남방단추를 천천히 풀러내리면서...... 신우가 천천히 속삭였다.

“섹스하자.”

어느새 벌어진 바지의 입구, 신우는 손을 넣어서 나의 것을 훑어내렸다. 그 손의 뜨거움과 난생처음 닿아오는 감촉........그리고 나는 어이없게도 두어번 쓸어내림에 방출하고 말았다.

그 순간 에로틱한 분위기는 모두 멈춰버렸다.;

나는......내가 생각하던 상상과는 달리, 내가 조루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옆에서 신우가 당황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잠깐, 민형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틀려, 틀리다구. 그건 그런게 아니고-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다 말이지, 그래나 누구나 다 말이지. 응? 게다가 우리 너무 갑자기 해서 그럴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의 못미더운 시선에 신우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너도 이런 적 있다는 거야?”

“......나.....는 너랑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마 그런일이 없었던 걸거야.”

씁쓸하게 미소지으면서 어느새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는 - 다정한 나머지 후려쳐서 죽여버리고 싶은 이 얄미운 사촌에게 나는 정곡을 후벼파주었다.

“.......그렇다면, 너랑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렇게 되는데 너는 왜 멀쩡해?”

신우가 굳는 것을 보면서 정말 조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까맣게 번져갔다.

“그게 아니라고......”

신우의 난감한 말도 아득하게 들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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