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130화 (1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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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운명을 바꾸는 방법

    *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비가 내리다니, 별로 흔치 않은 일인데도. 아린은 비를 보고는 들떠 있었다.

    「... 네 놈이 왜 이런 짓을...」

    윌리엄은 잭에게 한 손으로 들린 채 였다. 윌리엄의 하얀 가운이 흔들흔들 흔들렸고, 비 속에서 양 손으로 아린과 윌리엄을 든 채로 걸어가던 잭은 저택 뒷 쪽으로 나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흙 바닥에 윌리엄과 아린을 내려 놓았다.

    「와아, 밖이다! 밖으로 나왔어!」

    처음으로 밖에 나온 것은 잭도 마찬가지였다. 잭은 폐에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지금까지 맡아온 먼지 가득한 공기의 탓이었다.

    아린은 신나게 주변을 맨발로 뛰어다니다가 얌전히 있으라는 윌리엄의 말을 듣고는 금방 얌전하게 변했다.

    윌리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잭을 바라 보면서 내키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 시험관 안에서... 그건 외부에서 조작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텐데.」

    「그건 아린이 열어 주었는걸?」

    윌리엄의 말을 아린이 끊고 들어오자, 윌리엄은 굉장히 성난 표정으로 아린을 노려 보았고 아린은 움찔하면서 뒷걸음질쳤다.

    「어째서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그런 짓을 한 거지?!」

    윌리엄이 화를 내자, 아린은 겁난 목소리로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야 물 속에 있어서, 괴로워 보였으니까...」

    「아린 넌...!」

    윌리엄이 소리를 지르기 직전, 조용하게 잭이 끊고 들어왔다.

    「... 이제, 그만하자.」

    잭의 말에 윌리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잭을 쳐다 보았다. 잭은 윌리엄과 눈을 맞추었다. 잭의 눈빛이 진지하자 윌리엄은 움찔하고 놀랐다. 잭은 옆에서 아린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잭의 옷 자락을 잡아 당기고 있는 것도 알았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신은 알고 있을 거야.」

    「네.. 네 놈...」

    「아린, 말해. 너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

    잭은 명령하는 것이 아닌, 상냥한 어조로 아린에게 말했고 잭의 말을 들은 아린은 두 손을 꼭 모아서 기도하는 것 처럼 만든 뒤 조심스럽게 윌리엄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아린은 고개를 들어서 윌리엄의 눈을 바라 보았고, 윌리엄은 그런 아린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린은 순진하고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기, 있잖아... 아빠.」

    「...」

    윌리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린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이제... 이 '놀이'는 그만 하자...?」

    「...무슨.」

    윌리엄의 이마에서 땀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물 한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아린 있잖아, 아린이랑 똑같이 생긴 언니... 만났어. 그리고 잭 오빠랑도 똑같이 생긴 사람도 만났고...그러니까, 아린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언니는 아린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좀 더 크고.. 아린이랑 똑같이 재울 수 있는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 언니 앞에 있었을 때 아린은.. 싫었어.」

    아린은 잠시 숨을 내쉬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예전에 잭 오빠가 말했어. 우리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그 때 아린은 오빠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걸. 자기랑 똑같은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좀 더 쿵 하고 팡 하고.. 그러면 아린쪽이 진짜가... 아닌 거지?」

    「진짜든 진짜가 아니든 관계 없지 않느냐. 너는 그저...」

    「하지만 재미 없는 걸!」

    아린이 강하게 외치자 윌리엄은 움찔 놀랐다. 지금껏 아린이 윌리엄에게 부정을 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한 번 잠들면 쥐들도 새들도 다시 깨어나지 않는 거야? 어째서 추욱 늘어져 버리는 거야? 왜 다시 깨어나지 않는 거야? 그런 건 싫어, 아린은 좀 더 좀 더 놀고 싶은 걸! 잠 재우는 거, 하고 싶지 않아!」

    「너...」

    잭이 큰 목소리로 말하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자.」

    아린과 윌리엄의 시선이 잭에게로 쏠렸다.

    「당신도 우리랑 똑같은 클론이라는 거, 알고 있는걸! 당신도 내가 그걸 눈치 챘다고 생각해서 그 방에 가둔 거 아니였어?」

    잭은 있는 힘껏 외친 다음에 씩씩거렸다. 아린은 그저 멍하게 잭을 바라보고 있었고, 윌리엄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잭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이런거, 당신이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잖아! 더이상 우리들을 생산해보았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실험은 막히고 있다는 것을!」

    윌리엄은 조용하게 말했다. 말투가 달라진 채로. 아니면 이것이 윌리엄의 '원래' 말투였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래도 나는...오리지널의... 」

    「오리지널의 연구를 어째서 이으려고 하는거야,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들은... 클론은 아무리 해도 모든면에서 오리지널을 따라잡을 수 없어. 그건 '능력'도 '두뇌'도 마찬가지인걸!」

    그리고 잭은 아린과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우리들의 나이를 더 이상 급속성장 시킬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잖아.」

    윌리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같은 클론을 만드는 것은 그만두자..」

    잭은 눈이 따끔따끔거리고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뭘까 이건, 병이라는 것에 걸린 걸까? 아까 오리지널이 자신을 껴안았을 때도 느꼈던 것이었다.

    잭은 마지막으로 윌리엄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잘못이라는 건, 불행하니까..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걸.」

    잭의 말이 끝나고, 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오로지 빗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고, 세 사람은 비를 그대로 맞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이 뒤를 돌아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 붙잡으려는 아린을 잭이 저지했다.

    「아...」

    아린은 손을 뻗었지만, 이미 저 멀리 그저 터벅터벅 숲 속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윌리엄의 등에는 닫지 않았다.

    잭은 떠나는 윌리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리지널의 연구를 이어서 클론을 생산해 내는 것, 정말로 그것이 윌리엄에게 있어서 오로지 하나의 목표였던 것일까. 그래서 저렇게 떠나버리는 것일까.

    「있잖아, 오빠...」

    「응.」

    「아린 있잖아, 아까부터 여기가 너무 아파.」

    아린은 자신의 가슴 부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린은 어떻게 되는 거야? 있잖아, 아까부터 자꾸 눈에서 이상한 게 나오는 걸. 멈춰지지가 않는 걸.」

    아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잭의 옷 자락을 잡고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잭은 아린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가슴부근이 욱신욱신 거렸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있는 부근이, 아팠다. 하지만 다친 것 아닌 것 같았다. 어딘가를 다쳤을 때의 아픔과는 비교도 안되게 아팠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잭이 대답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린은 고개를 숙였다. 잭은 생각했다. 어쩌면 윌리엄 처럼 자신들도 이 곳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마주하는 밖이라는 세계에서, 한 걸음을 뗄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잭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잭!아린!」

    누군가가 잭과 아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따뜻하고도 따뜻한 목소리. 잭은 아린과 함께 뒤를 돌아 보았다. 린나가 이 쪽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다급하게 잭과 아린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린나를 바라 보며 잭은 생각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표현을 잭은 리처드가 옛날에 주었었던 책으로 알고 있었다. 윌리엄은 데이터를 발견하고 나서 믿는 것을 그만 두었다. 아린에게는, 믿음을 받는 쪽이었다. 리처드와 레일은 믿을 수 없었다. 윌리엄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만약에 저 사람을 믿기로 결정했는데, 버려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분명 엄청 아플거야. 가슴의 고통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아프겠지. 아픈건 싫었다. 그러므로 믿지 말자고 결정했다. 자신과 아린은 클론이었다. 태어난 것 만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것을 잭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나가 달려와서 아린과 자신을 껴안았을 때 무심코 생각해 버린 것이다.

    이 사람이면 설사 버려진다고 해도, 믿어 보고 싶다고.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에피소드 9의 에필로그입니다. 그리고 본 작의 에필로그가 끝나면 완결입니다.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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