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128화 (12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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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운명을 바꾸는 방법

    「응.」

    린나가 알던 지크와는 다른, 살짝 앳된 듯한 낯선 목소리. 하지만 필시 지크가 어렸을 때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겠지.

    아린이 잭이라고 부른, 지크의 클론은 무언가 물같은 것으로 흠뻑 젖어있는 자신의 몸을 한 번 바라 보더니 다시 린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잭은 말했다.

    「오리지널...」

    잭이 말한 단어에, 충격을 받아 크게 떠진 린나의 눈이 더욱 커졌다. 린나의 동공은 유례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지금 잭은 오리지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 잭이 말한 말은.

    잭은 적어도 아린이 린나의 클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잭은 린나를 위 아래로 흝어 보았다. 린나는 지크의, 아니 잭의 금빛 시선을 느끼고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길 수 없었다. 린나는 생각했다.

    아린 만으로도 상당히 버거웠는데, 이 곳에서 잭까지 합세한다면 린나로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린나는, 잭을 공격할 용기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크가 아린을 공격할 수 없었듯이.

    잭은 아린에게로 시선을 옮기더니, 나근한 듯한 목소리로 아린에게 얘기했다.

    「아버지가 저 사람을 잠재우라고 얘기했어?」

    「응, 그랬어!」

    아린은 잭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오빠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아린과 잭은 상당히 친밀한 사이인 듯 했다. 하지만 왜 이런 암흑으로 뒤덮인 방에 잭이 있는 것인지 린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 린나는 최대의 위기인 것은 분명했다. 지크의 클론이라는 이야기는, 아까처럼 지크의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oraTio최강이라고 불리는 지크의 클론을 린나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인지는 린나도 몰랐다. 지금까지, 지크와 싸워보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린나는 잔뜩 경계했다. 도망갈까? 하지만 어디로...? 레일과 블레어에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린나가 식은 땀을 흘리면서 대책을 찾고 있을 때, 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은, 잠 재우면 안돼.」

    「엣?」

    「...에?」

    잭의 말에, 아린도 린나도 둘 다 동시에 놀란 소리를 냈다. 잭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곤조곤 아린에게 이야기했다.

    「아마, 아버지의 판단 미스일거야. 이 사람은 오리지널이기 때문에 아직 쓸모가 있을 텐데.」

    「하, 하지만... 하지만 아빠는 정확한 걸! 아빠가 어째서 틀렸다고 오빠는 말하는 거야?」

    아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잭에게 열심히 물었다. 윌리엄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아린이 잭의 말 한마디에 망설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잭은 아린의 '잠 재운다'가 죽인다는 의미인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 화났다거나 그런게 아닐까.」

    잭은 그렇게 말하면서 린나를 힐끔 쳐다 보았다.

    「하지만.」

    그런데 갑자기 잭이 말을 이었다. 아린은 잭에게 더 따지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전부... 물거품이 된 다면, 오리지널을 잠 재우라는 판단도 내릴 수 있겠지.」

    그리고 잭은 린나에게로 한 걸음 다가왔다. 린나는 움찔하며 경계태세를 취하면서, 아린과 잭의 이야기에 온통 신경을 집중했다.

    도대체 뭘까, 이 잭이라는 지크의 클론은 너무나도 영석한 것 같았다. 아린과는 다르게....

    「아린, 아버지에게로 가.」

    「엣? 하지만 나는, 나는 언니를...」

    아린이 망설이자, 잭은 상냥한 말투로 아린을 달래듯이 말했다.

    「아마 아버지,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을 걸?」

    「엣-?! 하지만 거기에, 알고 있는 연구원 오빠도 있고.. 아, 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 가보는 게 어때?」

    잭의 말에 아린은 으으 하고 내키지 않는 다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결국에는 말했다.

    「우응, 그럼 가볼게. 오빠가 말하는 거니까...」

    지금 아린은 윌리엄에게서 내려진 명령보다 잭의 말을 택했다. 그렇다는 말은, 아린은 윌리엄보다 잭을 더 신뢰한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린나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린이 종종걸음으로 방을 벗어나자마자 잭의 시선은 다시 린나에게 꽂혔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금빛의 눈에, 여전히 린나는 움찔하며 놀랐고 이윽고 잭이 린나에게 말했다.

    「꽤나 놀란 표정이네요.」

    잭이 사용하는 존댓말을 듣고는 린나는 더욱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잭은 계속해서 말했다.

    「네, 클론이에요. 아린이랑, 저 둘 다. 아버지의 손에서 태어난 복제품들이죠.」

    「아..」

    린나는 잭이 자신을 복제품이라고 칭하는 것에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곧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냐고 묻는 것 같네요.」

    「에.. 네..」

    「간단해요, 나는 첫번째 실험이라서 기본적인 교육도 받았었고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학문도 배웠어요.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아버지의 데이터를 훔쳐봤기 때문이에요.」

    「데이터를...?」

    데이터라고 하면 레일이 oraTio로 보내고 있던 그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제 경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제 오리지널과 당신이 선택된 이유는 Type-B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렇죠?」

    잭의 말에 린나는 조용히 마른 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Type-B의 경우에는 감정에 따라서 능력의 변화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 더 있어요.」

    「하, 하나 더 있다고요?!」

    린나가 놀라며 소리쳤다. 지금까지 린나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잭이 말한 듯이, 감정에 의한 변화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그들도 그 것 밖에 알지 못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잭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를. 윌리엄이 만든 클론으로서.

    잭은 순순히, 두번째를 린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기억이에요. 즉, 트라우마라는 거에요. 무언가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갑작스럽게 능력치 자체가 높아지는 듯 해요.」

    그 순간, 린나의 머릿속에서 지크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기억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는 듯 해요. 그러므로 저로서는 오리지널이 무슨 트라우마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요.」

    「그건.. 그것 만큼은 안돼요!!」

    린나가 소리쳤다.

    「그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실험이에요!! 그런 경험을 다른 이에게도 겪게 하다니, 그런 건 정말로 하면 안되는 일이에요!」

    린나의 말에 잭이 눈을 깜빡이면서 린나를 응시했다. 린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신은 제 오리지널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제 상관 없어요. 저는 이미 아버지에게 있어서 방치되는 존재나 마찬가지니까.」

    잭은 그렇게 말하더니,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엣, 잠시만..」

    린나가 잭의 눈을 보고 당황하자, 잭은 말했다.

    「이걸로 시간 끌기는 된 것 같네요.」

    「시간 끌기...라니...」

    린나는 말하다가 아차 했다. 잭은 클론에 대한 이야기로 린나를 잡아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린이 레일과 블레어가 있는 방으로 빨리 향하도록.

    「당신에게는 죄송한 일이겠지만, 저와 아린에게는 중요한 일이에요.」

    잭의 눈이 한번 반짝이는 가 싶더니, 갑작스러운 힘이 린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감각에 린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윽.. 아흑...!」

    「죽이지는 않을 거에요. 당신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에게 당신을 가져다 줄 뿐.」

    린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크게 소리쳤다.

    「어째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윌리엄에게 따르는 건가요!」

    린나의 외침에, 잭은 대답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린나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잭을 바라보고 있자 잭은 결국 조용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아버지를 막으러 온 거잖아요? 더 이상 실험 하지 못하도록.」

    잭의 무표정한 얼굴이 점점, 변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린과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잭의 말에, 린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잭의 눈썹이 휘어지고 눈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잭은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험으로 태어난 반 인륜적인 존재인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아버지가 저희를 책임지는 건가요? 어떻게요? 만약 책임을 진다고 해도 저희들은 그저 처분되는 것 아닌가요?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살아 있으니까, 태어났으니까 저희는 살고 싶어요!」

    「그...건..」

    린나는 고통속에서, 잭의 말이 더욱 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잭의 말이 맞았다. 만약에, 윌리엄을 막게 된다면 잭과 아린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잭의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중력은 갑작스럽게 린나를 더욱 강하게 꽈악 짓눌렀고 린나는 자신의 입에서 피가 흘러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잭은 그런 린나를 보았고, 다행히도 능력의 강도가 조금 줄어 들었다. 정말로 잭은 린나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처분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는 이유는 알고 있겠지만. 아린은... 아린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린은 절대로.」

    아린뿐만 아니라 잭도 아린을 정말로 아끼고 있었다. 린나는 이제서야 잭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잭은 클론으로서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민하고, 자신 혼자서 생각하고, 분명 잭은 아린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클론이라는 사실조차.

    린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잭의 생각을 알게 된 이상 더더욱.

    「소녀가...」

    린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윽고 땅을 손으로 짚고는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잭이 움찔하고 놀라면서 능력의 세기를 강화시켰지만, 린나는 버텼다. 이미 린나의 옷은 물론이고 몸은 상처 투성이에 심한 상처도 있는 듯, 피로 범벅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린나는 외쳤다.

    「소녀가, 제가!! 책임을 질게요!!」

    「에.」

    잭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린도 당신도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저, 그저 윌리엄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있을 뿐, 저는 더 이상 누구도 쓸데없는 희생을 당하지 않게 할 거에요!!」

    「하, 하지만.」

    잭의 말을 끊고, 린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리처드씨도, 희생당한 일반인 분들도, 레일씨도, 블레어씨도, 아린도, 잭도 그리고 지크씨도!!」

    그러니까 지금 이런 곳에서 일어서지 못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린나는 몸을 일으켰고, 잭의 손이 살짝 떨려 왔을 때, 그 순간 방금의 린나처럼 잭이 무언가에 짓눌린 듯 쓰러졌다. 자연스럽게 린나를 향한 잭의 능력은 풀렸고 린나는 순식간에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능력이 사라지자, 일순간 세상이 도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린나..!」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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