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118화 (11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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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운명을 바꾸는 방법

    「만약 그게 아니더라고 해도 분명 실험 일지와 자료들을 다 처분할 정도로 양심적이지 않은 실험일거야. 그건 분명하지.」

    마이렌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이리저리 화면을 만지며 조작했다. 마이렌은 지도 앱을 클릭하고는 모두가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탁자 위에 휴대폰을 올려 놓았다. 모두가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여서 화면에 집중했다. 마이렌은 뉴욕의 지도를 확대하고는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곳이야. 이 곳에 윌리엄의 비밀 연구소가 있어. 몇년간 찾아다녔지.」

    마이렌의 목소리에 찾아다니느라 힘들었다는 기색이 분명하게 묻어나 있었다. 마리는 화면을 바라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잠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아아, 블레어나 헬렌을 이용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리스크가 너무나도 커. 그리고 능력의 창조자인 윌리엄이 과연 무언가 연구하면서 능력자들에 대한, 특히 들킬 경우에 대한 대비를 해 놓지 않았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마이렌의 말에 지크는 아무 반응 없었고, 브라이엇과 마리는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언가 꼬투리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 조사한다는 목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제일 좋겠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서 한참동안 의논을 가장한 회의는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고, 윌리엄의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였다. 시간이 늦어 졌으므로 4명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마이렌과 마리의 경우는 예전과는 달리 이제 정말로 oraTio의 사장과 비서였으므로 지상에도 얼굴을 비춰야 할 터였다.

    마이렌과 마리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지크와 브라이엇은 둘만 남았다.  브라이엇은 추욱 쳐져서는 말했다.

    「하아.. 큰일이네, 그치? 나로서도 지금 너무 일이 꼬여버린 느낌이야..」

    「...」

    지크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브라이엇은 지크를 바라 보았다. 지크가 침묵인 것은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브라이엇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 연구소, 보고싶네.」

    지크가 혼잣말인지, 브라이엇에게 하는 말인지 중얼거렸다. 브라이엇은 지크의 말을 듣고 응? 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크는 입을 다물고 그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라이엇은 지크도 가는 거냐며 배웅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브라이엇에게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 왔다.

    「윽?!」

    브라이엇이 머리를 부여 잡고 휘청 거렸다. 지크가 놀라서는 브라이엇을 잡고 지탱해 주었다. 브라이엇은 바로 고개를 들고는 지크에게 소리쳤다.

    「지금 가려는 생각이지?! 윌리엄의 연구소에 가려고 했지!?」

    브라이엇이 한쪽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지크는 자신을 강하게 노려보는 브라이엇의 눈빛에 움찔하고 놀랐지만, 부정할 수 없는지 고개를 돌렸다. 브라이엇은 그런 지크에게 날카롭게 외쳤다.

    「안 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지금 지크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미래가, 미래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단 말이야!! 지금도 그래,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가서, 너무나도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서 나로서는 따라 잡을 수가 없어..!」

    브라이엇은 괴로운 지 눈을 찡그리며 감았다. 지크는 그런 브라이엇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듯 했지만, 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섣불리 가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크는 정말로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때 브라이엇이 눈을 크게 떴다. 지크는 그런 브라이엇을 보고는 놀라서 왜 그러냐면서 브라이엇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크는 깨달았다. 브라이엇은 지금 지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멍한 눈빛으로 미래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보인 것이었다.

    지크는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다가 브라이엇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지크는 물었다.

    「뭐가 보였어?」

    「...」

    브라이엇은 침묵으로 답했다. 브라이엇은 고개를 숙여 버렸다. 지크는 브라이엇의 어깨를 잡으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 부탁이야, 말해줘.」

    브라이엇은 지크의 부탁에 눈을 감더니, 결국에는 보았던 것을 털어 놓았다.

    「선명하게 보였어. 내가 말했던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와 지크가 조우하는 장면이.」

    「그 말은...」

    「너가 지금 윌리엄의 연구소로 향한다면,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와 만나는 것은 확실하다는 이야기야.」

    지크는 브라이엇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확실히 정한 듯 했다. 이것 봐, 이럴 줄 알고 말 안하려고 한건데. 브라이엇은 마지막으로 지크르 설득하려고 애썼다.

    「지크, 너무 위험해. 미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다 깜깜하단 말이야. 불안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 걱정 마, 브라이엇. 나는 안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 처음부터 겉만 보고 올 생각이었어.」

    지크는 진심이라는 듯 브라이엇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 그리고 그 말은, 거기에 린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네.」

    「그.. 그렇기는 하지만.」

    「... 정말이야, 린나가 있더라고 해도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에 브라이엇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지크를 바라 보았다. 지크는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 말을 덧붙이면 덧붙일수록 오히려 신뢰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브라이엇은 한숨을 쉬면서 지크를 살짝 밀어 냈다.

    「..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미안.」

    브라이엇은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 오더니, 미소를 지었다.

    「사과같은거 하지마, 불안해지잖아! 그냥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돌아와. 아마 사장님이 아시면 날뛸테니까.」

    브라이엇의 말에,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이엇의 배웅을 받으면서 지크는 브라이엇의 방을 나섰다. 지크는 빨간 목도리를 제대로 고쳐 맨 뒤, 복도를 걸어 갔다.

    *

    린나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자연스럽게 야행성이라도 된건지 린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부비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당연하게도, 레일의 방이었다. 깜깜한 방에서, 문 틈으로 무언가 빛이 새어 들어왔다. 린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방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더욱 더 빛이 새어 들어 왔다.

    그 빛의 정체를 알게 된 린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불도 안키고 계속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눈이 나빠지는 거에요.」

    린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걸어가서 거실의 불을 켰다. 레일은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자 짜증내면서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시력이 얼마인.. 됐다, 어차피 양쪽 다 2.0이겠지.」

    린나는 레일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맞췄기 때문이었다.

    「착각하지 마, 나는 전에 너의 데이터를 본 적이 있다고. 그리고 원래 Type-B의 경우 일반인이나 Type-A와 비교했을 때 신체적 조건이 꽤나 좋은 편이야.」

    「그런.. 건가요?」

    「그래.」

    레일의 말에 린나는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린나는 시력도 청각도 후각도 남들 보다 뛰어난 면이 있었지만, 체력쪽으로는 딱히 뛰어남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직 린나가 어려서인 탓도,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린나는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린나는 1인용 소파가 있길래 그 곳에 털썩 앉았다. 별로 레일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린나는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레일에게 말했다.

    「질문해도 되나요?」

    「귀찮아지면 대답 안해줄거다.」

    흠, 튕기는 사람 같으니라고. 린나는 레일의 말을 듣고 질문했다.

    「왜 살인 같은 걸 한거에요?」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니야. 뭐, 그것은 우연이 50%, 아버지의 뜻이 50%라고 말해주지.」

    여전히 의미심장한 대답을 해주는 레일에게 린나는 진심으로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린나는 꿋꿋이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나요?」

    「아니, 언론에까지 보도가 되었으니. 한 동안은 일어나지 않겠지. 참고로 요번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너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움직이기 전까지 정부도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

    「흐음...」

    이건 기뻐해야할 일인지 아닌지 참으로 미묘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에 또다시 연재합니다. 완결까지 달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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