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7 / 0133 ----------------------------------------------
7.5
자박자박, 풀이 밟혀서 나는 소리는 오랜만이라서 기분이 좋습니다. 두 팔을 넓게 벌려서, 불어오는 바람을 꼬옥 안아보아요. 분명 몇년 만에 이 곳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무나도 정겹고 익숙한 바람의 냄새입니다.
「음, 상쾌해요!」
저는 있는 힘껏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저는 묻습니다.
「레인씨와 제이슨씨는 어떠세요?」
제 뒤를 따라오시고 계시던 두 분께서는 서로를 쳐다보시더니, 곧 저를 다시 바라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두 분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레이슨씨가 저의 옆으로 걸어오시면서 중얼거리시듯 말하셨습니다.
「처음 너를 데려올때는 여기는 몰랐으니까 말이야..」
레이슨씨는 앞에 있는, 두 개의 무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레인씨와 제이슨씨의 첫 방문입니다. 저는 에헤헤 하고 살짝 소리내서 웃은 다음,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무릎을 끓고 살짝 앉았습니다. 풀이 다리에 닿아 간질간질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오랜만이에요.」
마치 어머니 아버지가 대답해주시는 것 처럼, 바람이 한번 더 저를 흝고 지나갑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제이슨씨와 레인씨가 제 뒤에 와서 서 계시는 게 눈을 감고 있어도 소리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
「응?」
레인씨가 제 중얼거림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오십니다.
「3년동안 돌보지를 못했는데, 잡초도 자라있지 않고 깨끗해요.」
저의 말에 레인씨가 무덤을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제이슨씨는 그저 눈을 깜빡이십니다. 저는 다시 한번 웃었습니다.
「에헤헤.」
저의 웃음소리에 레인씨는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제가 웃은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레인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중에 감사인사라도 드리러 가야겠어요.」
「에?」
「레인씨, 제이슨씨.」
제 부름에 제이슨씨와 레인씨는 제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저는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절을 할건데, 같이 하시지 않을래요?」
레인씨와 제이슨씨는 다른 나라분이시니까, 저는 한번 여쭤보았습니다. 레인씨와 제이슨씨는 잠시동안 가만히 있으셨습니다. 레인씨께서 먼저 입을 여셨습니다.
「응, 같이 할래.」
레인씨의 말을 듣고 제이슨씨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레인씨는 무덤을 또 다시 바라보셨습니다. 레인씨의 눈빛은 굉장히 진지하고 숙연했습니다.
「린나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제가 물건을 올리고, 무덤 주변에 술을 조금 뿌리고 있는 동안 레인씨와 제이슨씨는 움직임 없이 무덤의 앞에 앉아계셨습니다. 제가 다가가니 두분은 살짝 떨어져서 제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제가 절 하는 것을 따라하셨습니다.
절이 끝나자, 제이슨씨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뭐랄까, 그런 느낌이 들어.」
「무슨 말이야?」
「정말로 린나의 부모님이 보고 듣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
제이슨씨의 말에 저는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소녀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러자 제이슨씨께서 저와 눈을 맞추시고는, 살짝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제대로 전해드리지 않으면 안되겠네.」
레인씨께서 자신감 흐르는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린나의 양어머니로서, 앞으로 절대로 린나를 아낌없이 보살피고, 사랑하겠다고.」
「레인씨..」
저는 감동을 받아, 레인씨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 때 레인씨와 제이슨씨를 따라가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다시 한번,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럼 여기가 린나가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곳이야?」
「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저 밑의 마을분들의 집에서 신세를 졌지만 말이에요. 우와, 지붕이 몇 장 떨어졌네요.」
목재로 지어진 이 산속의 집은, 이미 꽤나 먼지와 벌레와 구멍들로 가득했습니다. 으음,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산속이라서 그런지 조금, 춥네.」
레인씨가 그렇게 말하시면서 살짝 팔을 문지르셨습니다. 그걸 들으신 제이슨씨께서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레인씨에게 덮어 주셨습니다. 레인씨가 당황하신 표정이 되었습니다. 제이슨씨, 나이스! 에요!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지의 냄새가 났습니다. 조금 더 안으로, 어머니와 제가 지냈던 방으로 들어가니 순간 저의 눈은 어딘가에 멈췄습니다.
잠시 뒤, 레인씨께서 저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레인씨께서는 옷장 앞에 앉아있는 저를 보고는 물으셨습니다.
「뭐하고 있니?」
「아, 레인씨!」
저는 레인씨가 서 계신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제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습니다. 레인씨의 시선이 제 얼굴에서 제가 들고있는 물건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건.. 혹시 액자니?」
레인씨께서 제게 몇발짝 다가오시더니 그대로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제가 들고있는 액자를 자세히 보십니다. 액자 안에 있는 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젊었을 때의 어머니, 그리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버리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옷장에서 발견했어요.」
옷 소매로 액자에 묻어있는 먼지들을 닦아내며 저는 행복해 보이는 두 분의 얼굴을 뜷어져라 응시합니다. 레인씨는 한동안 말 없이 저와 함께 액자를 응시하시다가, 조용히 입을 여셨습니다.
「가져갈까.」
「네?」
레인씨가 제 손에서 액자를 가져가시더니, 가방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집' 탁자위에 세워놓으면 될 것 같지 않니?」
그리고는 레인씨께서는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벅차올라 눈 앞에 계신 레인씨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레인씨, 감사해요..!!」
레인씨는 웃으시며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제이슨씨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레인씨께서 제이슨씨를 바라보시며 불만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뭐야, 지금 린나와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맞아요.」
제가 웃으면서 레인씨의 말을 거들자, 제이슨씨는 움찔하며 놀라셨습니다. 그러더니 살짝 삐지신듯한 얼굴로 손에 들고있던 하얀 종이를 보여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참 미안하네! 난 그저 최근에 온 듯한 편지가 있길래 전해주려고 한 거 였다고!」
제이슨씨의 말에, 레인씨와 저 둘 다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습니다. 편지? 저와 어머니의 집에 온 편지..? 그렇다면.. 저는 제이슨씨에게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이슨씨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제 손 위에 편지를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바로 받아들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저는 제이슨씨와 레인씨에게 말했습니다.
「레인씨, 제이슨씨!」
「응?」
「귀신씨, 퇴치하러 가시지 않으실래요?」
============================ 작품 후기 ============================
다음편부터 에피소드 8의 시작입니다. 브루스 가족이 주역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