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87화 (8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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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나는 사장입니다

    나는 사장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대기업 oraTio를 책임지며 일하고 있는, 사장. 폴 크라우스 입니다.

    여기까지가 나의 자기소개이다.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이 말하는 것만 같은 틀에 박힌 자기소개. 사실 학교같은건 나와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만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평균적인 기상시간은 새벽 5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1시. 마리는 이런 생활을 줄곧 해오고 있는 나를 걱정하고 있으나, 애초에 나에게는 이 정도의 수면시간으로도 충분하다. 몸이 지치는 감이 있지만, 그것은 느낌일 뿐으로 나에게는 별다른 짐이 되지 않는다. 졸음 정도는 이겨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적절'한 수면시간이라는 것은 개개인 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는 분명 이 적절한 수면시간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적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뭐, 변명이라면 변명이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리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은 새벽. 정확하게 새벽 5시이다. 아찔하게 더웠던 여름의 더위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하고, 가을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의 새벽은 유난히도 추웠다는 말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덮고 있는 오리털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올리고 싶지만, 몸은 멋대로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어느새 멍하니 바닥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이였다.

    느릿느릿, 휘청휘청한 걸음으로 욕실로 향한다. 분명 나의 뇌는 확실하게 깨어나 운동할 준비를 끝마친 것 같은데. 이 몸이 문제다 언제나. 그래서 일부로 샤워기의 온도를 왼쪽으로 살짝 더 기울였다. 예상대로 찬 물이 쏟아져 내렸다.

    확실히, 찬물을 맞으니 몸이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바짝 긴장한 상태. 실수 하나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

    샤워를 끝마치고 옷을 갈아입어,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갑자기 폰에서 벨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실수로 벨소리 크기를 최대로 키워놓은 건지, 쩌렁쩌렁하게 외쳐대는 폰을 잽싸게 잡아서 화면을 보았다.

    [아버지]

    「아.」

    자동적으로 입에서 외마디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쩌면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면 이유는 높은 확률로...

    더이상 시간을 주체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오른쪽 귀에서 들려오는 굵직하고도 낮은 목소리는, 여전히도.. 낯설다.

    「마이렌.」

    아버지는 내가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네, 아버지. 무슨 일이신가요.」

    내가 일어나는 시간을 겨냥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폴이 오늘 귀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주일동안은 이쪽에서 호출하기 전까지는 얼씬도 하지 마라.」

    「...예.」

    아무래도, 2주 뒤에 온다는 것을 한 주 앞당긴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무미건조하게 할말만을 나에게 전하더니, 더이상 할 말은 없다 라며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어째서일까, 익숙한 일인데도 폰에서 울리는 높고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전화가 끊긴 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허무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내 자기소개의 거짓이 밝혀진다.

    텔레비전에서도, 인터뷰에서도 회사에서도 내가 사용하는 '폴 크라우스'라는 이름은 내 것이 아닌 형의 것. 내 이름은 마이렌 크라우스.

    나는 형의 대리를 하고 있다.

    나는, 사장이 아니다.

    사장실을 포함해서 회사의 지상부분에만 가면 안되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은 지하에서 조용하게 형이 일하는 것을 보태라는 말. 그걸 알기에 나는 준비하는 것을 멈추거나 늦추지 않고 더 서둘렀다.

    oraTio.. 그러니까, 지하에 있는 능력자들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가 나의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가짜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알고 있는 사람 정도라면 레이븐과 지크, 마리.. 그리고 지금 회사에 있지 않은 셀리 정도일까. 린나의 경우에는 모르겠다. 예전에 레이븐이 실수로 내 사정을 망각하고 린나에게 내 이름을 흘린 적이 있는 모양이다. 몇년전의 일이라서 한 사람의 이름쯤 머릿속에서 잊어버릴 가능성이 많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린나는 총명한 아이니까.

    나는 흰색의 내가 직접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두 장 껴입는다. 약간 쥐색이 감도는 검은 마이를 걸치고, 꼼꼼하게 옷 매무새를 정돈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쓰고다니는 바보같은 표정의 종이봉지를 집어 들었을 때, 나는 그 앞에 있는 거울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는 표정을 힘껏 찌푸린다. 그러자 거울속에 비친 마이렌 크라우스도 표정을 찌푸리고 있다.

    「..싫다..」

    갑자기 나온 혼잣말에 혼자 놀라서 흠칫한다. 아무래도 요즘의 나는 꽤나 혼잣말이 많아진 것 같다. 나는 그러면서 거울속을 살짝 응시한다.

    창백한 피부, 그런 창백한 피부에 어울리는 짧은, 살짝 한쪽 머리 끝만 위로 뻗쳐있는 새하얀 머리카락.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살짝 소름이 끼친다. 나란 사람은 놀랄 정도로 혈색이 돌지 않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내가 제일 혐오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가 가지고 있는 푸른색의 왼쪽 눈, 금빛의 오른쪽 눈.

    나는 눈을 찌푸린다. 옛날부터 나는 이런 내 눈을 정말 질색으로 싫어 했었다. 내 몸의 밸런스가, 밸런스가 흐트러진 것이 이 눈을 통해 표현된것만 같았기에. 그리고 마치 그것은 내가 불량품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알람시계를 보고 거울에서 눈을 떼고, 종이봉지를 머리에 썼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된다. 오늘같은 경우에는 스케줄이 굉장히 빡빡했다.

    형은 이걸 감당하지 못할 것이므로 내가 보좌해야 한다.

    집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눈에 띄지않는 검은 승용차를 타고 oraTio에 오자 마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살짝 놀랐다.

    「마리양? 지금 사장실에 있을 시간이 아닌가?」

    「알아요.」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회색눈을 지그시 떴다.

    「사장님께서 잘 도착하셨나 궁금했던 것 뿐이니까요.」

    「그래, 고맙네. 이제 슬슬 올라가보게나, 오늘은 .. 아버지도 와 계시니까 말일세.」

    「알았어요, 깨지기 전에 올라갈게요.」

    마리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나서, 사뿐사뿐 뛰어서 자동문을 통해 oraTio의 본사로 들어갔다. 마리는 정말이지 7년전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본인은 본인 입으로 꽤나 바뀌었다고 얘기하는데, 옛날부터 봐온 입장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총명하고, 이성적인 듯 하지만 사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맨 처음 지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를 굉장히 늙은 사람으로 생각했었는 것 같다. 난 올해 30세가 되었다. 아직은 젊다는 이야기다.

    .. 아마도.

    예전에 보았던 연구기관에 뒷문이 있었듯이, oraTio에도 당연히 능력자들만 알고 있는 뒷문이 존재한다. 나는 그곳을 통해서 지하로 들어간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아이들과 조우하기 전에, 확실하게 신발 안쪽에 들어있는 깔창도 점검한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나타난다.

    지하의 식당과 연결되어, 그곳에서 밥이나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어!」

    아, 린나도 있었는 듯 하다. 린나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방긋 웃으면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이제 린나도 15살이니 확실하게 숙녀티가 나지만, 행동들을 보면 여기 처음 왔을 때랑 똑같다.

    그리고 린나의 주위로 여러명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사장님..!」

    타무라가 날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고.

    「.. 또 땡땡이 친거야?」

    그 옆에 있던 세라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면서 조용히 묻는다. 지금까지 이렇게 내가 지하에 있어야 했던 날에는 땡땡이를 치는 척, 그리고 마리가 혼자서 고생하는 척.

    「하하, 용서해 주게나. 너무 힘들어서 말일세.」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면서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쩔수 없다는 듯, 하지만 매우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분명 이때만큼은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 있으면 확실히 부담도, 긴장도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모르겠다.

    지금도, 종이봉지속의 나는 웃고 있지 않았으니까.

    ============================ 작품 후기 ============================

    여러분 안녕하세요 레바시아 입니다! 조금, 스토리를 정리하고 돌아왔..습니다만 나아지..는건 모르겠네요. 다 작가가 못나서 그래요. 꽤나 아쉬워서 나중에, oraTio의 경우에는 완결을 내고도 다시 리메이크 하고 싶어...

    네, 이야기가 사장님의 시점으로, 정확히는 마이렌의 시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에피소드 7은 마이렌의 이야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코멘트 답>

    외로운사신님- 저야 감사합니다 (_ _)

    비공사님-호빈이는 긍정적인 아이죠 ㅎ,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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