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36화 (3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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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iara

    「이거인가?」

    레일이 부하 연구원이 자신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서 놓아둔 자료들을 보고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부하는 상사의 앞에 있어서인지, 안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는것인지 잔뜩 긴장해서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맞습니다. oraTio와는 능력자들의 정보를 공유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공유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군.. 수고했어, 이제 나가도 된다.」

    「네.」

    연구원이 레일이 나가라는 명령을 하자 그제서야 숨통이 트인 듯 아까보다는 나름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대로 몸을 되돌려서 문 앞까지 걸어나갔다. 그리고 문 손잡이에 손을 뻗으려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보니 레일씨.」

    「뭐야?」

    연구원이 가져온 자료를 샅샅이 흝어보고 있는 레일이 뭐냐는 듯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상처는 괜찮습니까? 조금 더 휴식을 취하시는 편이..」

    「아아,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러자 연구원은 '그렇습니까'라는 말을 내뱉으며 조용하게 문 밖으로 나갔다.

    레일은 확실하게 실력있는 과학자이자, 연구원이였다. Diara의 지사에 있는 연구기관에서 일할때도 본사까지 그 명성이 들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아버지는 무려 초능력을 개발해낸 사람이였다. 그 영향이 그에게까지 미쳤을 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물론, 그 영향이란 좋은것만이 아닌, 나쁜 의미도 품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 라는 것이 레일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겠지. 오랫동안 그의 옆에서 일해온 연구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마치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결핍된 것 같았다. 아니, 다른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앞만 보고 달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연구원이 알게된 때는 '지크 레비어스의 실험'부터였다. 연구원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때부터, 레일은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

    레일은 연구원이 나가자 곧바로 자료를 툭하고 책상위에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비열한 조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미국 국적으로 만들어놓은 모양이군. 하지만 한국인.. 아하하하하!」

    갑자기 그는 뭐가 그리 웃긴지 사무실용 의자에 등을 기대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킨 그의 표정은 마치 연약한 새끼동물의 앞에 서있는 하이에나와 같았다.

    「겨우 이런걸로 나를 속이려고 하다니, 어림도 없지. 그녀가 타입A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명백한 조작이다. oraTio 놈들.. 마치 했던 약속을 잊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걸 보면 가증스럽군.」

    레일의 이에서 빠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뭐, 괜찮아. 좋은 실험체.. '돌연변이'를 발견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레일의 방에서, 다시 한번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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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크씨의.. 상태는 어떤가요..?」

    능력의 훈련을 마친 린나가 레인이 내민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물어왔다. 레인은 좋은 표정이 아니였다.

    「그게.. 거짓말로도 괜찮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야. 젠장.. 그 자식 때문에 잊고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

    린나는 레인의 말에 동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크는 기억을 잊을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레일때문에 그것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은 린나도 알 수 있었다.

    「지크씨는 지금 어디 계신가요?」

    「지크의 방에 있어. 레이븐이 안정을 취하라고 말해서 말이야.」

    「그렇군요..」

    린나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니 그것을 본 레인이 린나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린나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걱정스러운 얼굴의 레인이 그 앞에 서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오히려 린나 쪽이야.」

    「에.. 소녀.. 말인가요?」

    린나의 손을 레인이 부드러운 손길로 잡아 주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린나는 조금 움찔 했다.

    「그렇게 갑자기 능력을 폭주했으니 나름 신체에 무리가 갔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요, 이 정도는 괜찮은걸요?」

    린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평소처럼 환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보였으나 레인은 미간을 좁힌 그대로 린나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봐봐, 지금도 이렇게 웃지만. 얼굴이 창백해서 핏기가 없어.」

    그 말에 린나는 조금 놀라면서 자신의 볼에 양 손을 갖다대었다. 어, 정말.. 평소와 달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뺨에 린나는 놀랐다. 본인도 본인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린나는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 훈련도 끝났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씻고 바로 푹 자도록 해. 훈련도 린나가 하겠다고 해서 마지못해서 해준 거니까.」

    「레인씨는 상냥하세요.」

    린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답 대신에 레인의 칭찬으로 답했다. 레인이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린나는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oraTio에 온 것을 지금도 기뻐하고 있어요. 그때 만난 것이 레인씨와 제이슨씨여서 다행이에요.」

    린나의 순수한 마음에 레인은 조금 뺨을 붉혔다.

    「그래도, 소녀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그치만..」

    「소녀는 자신의 몸 하나 챙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가 아니니까요!」

    그 말은 확실했다. 린나는 확실한 아이였고, 또 믿음이 가는 아이였다. 하지만 너무 남을 위하는 느낌이 있어서, 그것이 레인은 걱정인 것이였다.

    「..뭐 알았어. 하지만 역시 제대로 쉬어.」

    「네, 그럴 생각이었답니다. 아, 그 전에..」

    린나가 갑자기 눈을 깜빡이며 말을 끝자 레인은 응? 이라고 소리내며 린나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지크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레인의 입이 살짝 열린다.

    「그건 잘 모르겠네. 방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만나줄까나..? 뭐, 린나라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랄까, 둘이 정말 서로를 챙기는구나? 뭐야뭐야 무슨사이야.」

    그 말에 린나는 순진하고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뺨을 붉히면서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에요!」

    그 시각, 지크는 레인이 말한대로 얌전하게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방은 에어컨이 나오고 있는지 시원한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지크는 에어컨을 자신이 틀었는지 안틀었는지도 제대로 기억을 못해서 어리둥절했다.

    그나저나 분명히 시원하다. 숨이 제대로 탁 트이자 지크는 그제서야 힘껏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이렇게 목이 따가울까. 왜이렇게 머리는 지끈거릴까. 혹시 냉방병? 지크의 목덜미부터 이어진 쇄골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땀은 뭘까.. 지크는 손으로 쓱 땀을 훔쳤다.

    분명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것은 분명했다. 레일이 설마 oraTio에 찾아올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체 뭐지? 그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지? 설마 다시 자신은 노리는 것일까 하고 지크는 생각해보았지만, 그랬었더라면 지금이 아니라 더 일찍 찾아왔었겠지 하고 지크는 생각을 접었다.

    그런데, 이상해. 지크는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나, 괜찮은걸까?

    지크가 이상하다고 느낀것은 너무나도 안정된 자신의 상태였다. 이제는 상태가 좋아도 이상하다고 느껴야된다니, 지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배게의 푹신한 촉감이 얼굴에 전해지는 거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자신의 냄새.

    분명 예전의 지크라면 어제의 일로 굉장한 타격을 받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마치 새하얀- 감옥 같았다. 그 공간에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것도 처음 몇 주 뿐이였다. 그 뒤로는 완전히 손을 놓았다. 이미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터, 마이크를 입에 대고 혐오스러운 목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이는 악마같은 남자.

    그 남자가 나에게로 찾아왔다. 지크는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복잡한 것, 그거 뿐이였다.

    어째서일까.. 지크는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들이 내쉬었다. 아니, 한숨이라기 보다는 심호흡에 비슷하려나.. 지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차가운 물이라도 끼얹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폰을 손에 들고 시선을 앞으로 옮길 때-

    「.........」

    ..에?

    「지크씨, 이제 괜찮으신건가요?」

    아니, 순간적으로 앞에 있는 이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애는 누구지요?! 라고 지크는 생각했다. 아니, 누군지는 알고 있어. 그래 분명 린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던 12살에 한국인에 매일매일 머리카락에 자그마한 방울을 묶고 다니며 짤랑짤랑 귀여운 소리를 내고 다니는 린나가 확실한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

    지크는 당황해서 그 표정을 전혀 숨길수가 없었다. 지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대체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린나를 바라보고 있자, 린나는 순진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면서 말했다.

    「아, 어떻게 들어오셨냐고 말하시는 건가요? 그게, 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열려있던거냐!!!!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않은 자신에 대해 지크는 패닉.

    「그래서 다시 나가서 제대로 노크를 했는데.. 지크씨가 대답이 없으셔서.. 그래서 살짝 살펴보았는데 지크씨, 침대에 엎드려계시길래.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뭔가 잘못됬어. 크게 잘못됬어. 지크는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런것보다 전부 보여지고 있었어?! 당장이라도 이불을 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지크는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며, 린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물론 화이트 보드로.

    『남자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

    그러자 린나가 고개를 갸웃 했다.

    「어째서 안되는 건가요?」

    이 패턴 많이 봤어. 어디선가 많이 봤어. 지크는 기억을 헤짚으면서 아까부터 왜인지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글씨를 써내려갔다.

    『안된다면 안돼.』

    딱 봐도 막무가내인 설명.

    아니 하지만 이 설명에는 이유가 있었다. 방금, 린나가 '어째서 안되는 건가요-' 하면서 순수하게 물어온 것이 그 이유다. 지크가 추측하기를, 린나는 분명 순수하디 순수하게 자란 어린 소녀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그쪽'의 지식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라고 지크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쉽게 말하자면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는 정도가 되겠지.

    「지크씨, 소녀가 싫은 것인가요..?」

    큰일났다. 린나가 상심한 얼굴로 지크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았다. 중요한 것이므로 두번 반복했다. 귀여워.. 가 아니라,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왜 싫은걸로 받아들이는 거야!

    지크가 세차게 고개를 내젔자 린나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에요.」

    지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린나가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의 화제를 바꾸면..

    「그런데 지크씨, 왜 남자분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 것인가요?」

    ..이 안된듯 하다. 제발 누가 좀 와줘. 지크에게는 이 어리고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한테 그 이유를 설명할 만큼의 패기는 있지 않았다. 하지만 린나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궁금한 듯이 지크를 바라보면서 입가에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크는 린나에 대해서 새로 안 것이 있다.

    호..호기심이.. 엄청나구나.

    일단 지크는 린나의 수준에 맞춰서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을 하기로 했다.

    『린나같은 여자아이한테 나쁜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아아아아아아, 지크는 겉으로는 나름 평정을 유지하면서 쿨하게 웃고 있었지만 지금 속으로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색하고 민망해서 어찌할 줄 모르면서 아아아아아. 한마디로 패닉입니다.

    린나가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입을 열기도 전에 지크가 광속으로 글씨를 써서 린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나쁜짓이 뭔지는 마리나 레인한테 물어봐.』

    린나의 표정이 놀란 것이 되어간다.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읽었냐는 그런 표정. 린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지크씨도 소녀에게 나쁜 짓을 하시는 건가요?」

    이게 만약에 게임이였다면.

    분명 크리티컬! 이라는 글자가 순식간에 지크의 가슴을 꿰뜷었을 것이다. 지크는 필사적으로 손을 저었다. 아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지크는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방금 지크씨가..」

    『모든 남자들이 그런건 아니야.』

    이대로 가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린나에게 이상한 상식을 심어줄 것 같아서 지크는 끄응 하고 신음했다. 설마 20이라는 창창한(이라고 해도 창창한 짓은 한번도 안했지만)나이에 어린 딸을 가진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다니, 이것은 참으로도.. 아이러니? 아니,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린나는 아까부터 선생님 앞에 있는 학생처럼 지크의 화이트보드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지크씨는 나쁜짓을 안하시니까 와도 괜찮은 것이지요?」

    지크는 온몸의 기운이 순식간에 쑥 하고 전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돼, 더 이상은 무리. 정신을 차리고 보면 침대에 쓰러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신.

    「지크씨? 어디 아픈 곳이라도?」

    마음이 아파, 마음이..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나저나 소녀는 지크씨의 사복차림을 처음 봐요.」

    아..? 그랬던가? 지크는 멈칫하다가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본인은 다른 능력자들하고는 달리 상위 간부쪽에 속하기 때문에 항상 정장을 입는 것 뿐이였다. 뭐, 그렇다고 해도 레인이나 마리같이 바쁘진 않지만. 지크는 국가에서도 꽤나 주시하고 있는 능력자이기 때문에.

    「멋지세요!」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지크의 얼굴이 화악 하고 붉어진다. 원래 순진한 어린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어른에게는 큰 감정을 부여하는 법이다. 지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짜로 지크가 멋진 것은 나름 사실이였다. 마치 조각과도 같은 아름답고 정교한 미모에, 각 잡힌 라인. 그리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몸도 상당히 탄탄하고 휼륭한 편이였다. 물론 린나는 이런것을 알리가 없으니까 그냥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한 것 뿐이였다.

    「그래도, 걱정했어요.」

    린나의 한마디에 지크의 눈이 살짝 뜨인다.

    「그래도 지크씨가 괜찮아 보이셔서 소녀도 안심이에요.」

    린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나 린나의 웃음을 다른사람의 기운을 돋구게 해준다. 정작 린나 본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린나와 눈을 마주했다.

    지금 지크는 침대에 앉아있으니 서 있는 린나와 시선 차이가 별로 안나서, 그래도 나름 쉽게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지크는 손을 뻗어서 린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뺨에 살짝 온기가 손 끝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역시나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힘들어보이는 얼굴.

    린나는 갑작스러운 지크의 행동에 살짝 놀란 듯 했으나 곧 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손을 지크의 손에 겹쳤다.

    지크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빛이 퐁 떠올랐다. 린나의 얼굴이, 뭔가 평소와는 다르게.. 지크가 항상 생각하던 느낌하고는 달랐다.

    그건 아마도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지크가 린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린나를 항상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자세하게 볼 수 있으니까.. 지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묘한 감정이 울렁였다.

    지크는 린나를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무엇이든 잘 헤쳐나갈것 같은. 모두를 이끌어가는 아이. 그녀의 앞에 서면 슬픔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전부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지크는 느꼈다. 린나가 지크를 감싸려고 할 때. 지크의 앞에 서서 있는 힘껏 자신의 감정을 내뿜고 있는 린나를 지크는 뒤에서 바라보았다. 굉장히 강인하고 빛이나는 듯했지만 지크는 알고 있었다.

    린나의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린나의 등은 너무나도 작았다. 그저 어린 소녀.. 그 작은 등, 어깨, 몸집에서 어떻게 힘을 내는 걸까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레일에게 힘을 쓰려고 하는 린나는, 너무나도 위태로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털썩 풀어질 것 같아서. 연약하고도 가느다란 등이 너무나도 애처로워 보여서.

    그래서 지크는, 손을 뻗었다.

    지크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 작은 소녀 덕분이다. 가녀리고 연약한 소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을 지크는 깨달았다. 그래서, 지크도 린나를 잡아주고 싶었다. 넘어지지 않게. 쓰러지지 않게.

    지크가 린나의 뺨에서 놀라지 않도록 살짝 손을 떼자 린나는 에헤헤 하고 소리내서 웃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없는 그 목소리에, 지크는 자신의 안에 있던 감정이 두근, 하고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지켜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힘을 키워서라도.

    나도, 그녀가 힘들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작품 후기 ============================

    20살에_12살_ 딸_ 가진 느낌_.txt

    선추코 사랑합니다 하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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