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32화 (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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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크 레비어스

    「.. 왜그랬냐...」

    자신의 팔을 잡고 치료해주는 레이븐을 보며 지크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였다. 레이븐의 눈에는 생기가 없어보였다. 딱 봐도 걱정을 많이 한 것이 드러났다. 지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

    지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킬 뿐이였다. 레이븐은 그런 지크의 손을 잡았다.

    「..걱정시키지 마라..」

    지크가 입술을 꾹 물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븐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넌 이제부터 내 연구실에서 나랑 같이 지낸다. 24시간 내내 감시할테니까 그리 알아.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너가 자초한 일이니까.」

    지크는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지크는 생각했다. 왠지 레이븐이랑 같이 있는다고 하면 악몽을 꾸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 무엇보다 신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크는 레이븐과 함께 있을때면 본인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더 크게 자각할 수 있었다.

    지크의 상태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지크의 생각대로 더 이상 악몽을 꾸지도 않았고, 밥도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물론 레이븐이 입에 꾸역꾸역 쳐넣은 것이였지만. 일단 먹은건 먹은거다.

    그리고 지크의 상태가 거의 좋아졌다고 판단한 레이븐은 지크를 학교에 보냈다. 학교 측에는 지크의 성대에 이상이 있다고 거짓말을 쳤다.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지크에게는 중학교의 교육이 맞지 않아 다닌지 몇개월도 안되서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그것도 명문대. 레이븐은 지크의 성격을 걱정했으나 역시나 지크는 잘 해냈다. 물론 화이트보드로..

    그리고 18살로 지크는 졸업했다. 레이븐이 그런 지크한테 다가와서 물었다.

    「너 이제 뭐할거냐? 너한테는 선택지가 엄청많다고. 천재의 특권이다. 부럽네..」

    그러자 지크는 뭔가 호기심이 똘망똘망 넘치는 예전의 눈빛으로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예전과 다른게 있다면 이제는 지크의 키가 레이븐보다 더 크다. 레이븐은 그게 좀 기분 나빴지만 어쩔수가 없는 것이였기 때문에..

    『백수 해보고 싶어.』

    「맞을래?」

    그런데 진짜로 그는 백수가 됬습니다. 물론 완벽한 백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많은 곳에 초청받기도 하고, 책도 쓰고 그랬기 때문에.

    그러다가 이번에는 레이븐에게 사건이 터졌다. oraTio의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건이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레이븐은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단정했던 머리카락은 정돈이 안되어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수염도 정리를 안하는지 까슬까슬하게 언제나 나있었다. 그리고 레이븐은 타인하고 접촉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장이 된 마이렌과 지크만이 레이븐한테 접촉할 수 있었다. 지크는 많은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레이븐을 힘내게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거 지크에게는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레이븐도 지크에게는 간간히 말을 걸어왔다. 비록 힘이 하나 없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이라고 하더라도, 지크에게는 그게 나름 기뻤기 때문에 지크는 레이븐과 같이 있었다.

    둘은 이미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레이븐은 지크를 아들처럼 여기고 있었다. 지크에게는 레이븐이 형이자 아빠였다. 여느때처럼 지크는 레이븐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의자를 거꾸로 돌려서 거의 책상에 엎드려 쓰러져 있는 레이븐의 입에는 언제나 담배가 물려져 있었다. 옆에 있는 재떨이에는 수십개의 담배꽁초가 쌓여있었다. 그만큼 공기도 안좋은 곳이지만 지크는 여의치 않고 어느새 초라한 레이븐의 몸을 뒤에서 살짝 끌어안았다.

    「..위로해주는 거냐..」

    레이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크는 레이븐의 몸을 숙여서 레이븐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이븐은 기침하는 것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 기특한 짓도 할 줄 아는군.. 그런데 미안하다. 고맙지만.. 괜찮다고는 못 말해주겠네.」

    그래도 괜찮았다. 지크는 한참동안 가만히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지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19살. 지크는 마이렌의 권유로 oraTio의 정식 사원이 되었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와서 높은 계급을 따낸 지크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여사원들)

    19살의 마지막. 12월. 레이븐의 눈동자도 이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지크는 역시 레이븐은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레이븐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일어서는 구나 라고.

    「너 담배 안펴봤지?」

    「...」

    「하여간 순수하다니까. 누가 보면 야동도 안본 사람처럼 보이겠네.」

    그러자 지크가 화이트 보드를 꺼내들었다.

    『야동이 뭐야?』

    「...」

    레이븐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레이븐이 지크에게 담배를 내밀자 지크는 의아한 눈빛으로 받긴 받았지만 멍하게 있었다.

    「자.」

    레이븐이 지크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자 마자 지크는 기침을 내뱉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레이븐은 웃었다. 레이븐이 웃은것은 오랜만이였다.

    20살이 되었다. 이제 성인이라고 셀리는 말했지만 지크는 솔직히 말해서 실감이 안났다. 달라진게 있다고 하면..

    oraTio에 신입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신입이 지금까지 안온 것은 아니지만, 요번 신입은 조금 특이했다. 타인에게 관심을 안가지는 지크도 관심을 가질만큼.

    한국인이라고 했다. 12살이라고도 했다. 어리구나. 벌써 그 나이를 어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본인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왠지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녀는 어째서 옥상에 온걸까? 어째서 그때 나를 보고 '저기'라고만 말하고 그 뒤로 말을 이으려고 하지 않은 것일까. 지크의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질문들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래도 금방 자신에게서 흥미를 뗄 것이라고 생각해 지크는 일부로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척 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통한 것 같지 않다.

    콜라를 주었더니 울상을 지었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겁쟁이처럼 도망쳤는데도 바로 다음날 케이크를 가져다 주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울고있는 지크를 껴안고 '괜찮다'라고 말해주었다. 어째서였을까, 정말로 그때 모든것이 괜찮다고 느꼈던 것은.

    레인과 레이븐은 지크에게 '린나가 너한테 흥미가 많은 것 같네.'라고 말했다.

    '오히려 흥미가 많은 것은 이쪽이야' 라고 지크는 마음속에서만 말했다.

    ============================ 작품 후기 ============================

    으앙아아아아앙ㅇㅇ아 끝났어요 지크편!!! 기쁨의 함성을 내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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