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30화 (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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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 레비어스

셀리는 강화 유리로 이루어진 벽에 살짝 손가락 끝을 대었다.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떨리는 것은 벽이 아닌 셀리의 손가락이였다. 일단은 확인해야 한다. 무슨 실험인지 확인을 해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셀리는 꼬옥 주먹을 쥐었다.

아까부터 심장이 터질것같다. 이건 분노의 감정인가, 두려움의 감정인가, 아니면 공포의 감정인가. 셀리에게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란 떨리는 자신의 팔을 손으로 부여잡는 것 밖에 없었다.

레일은 그런 셀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심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타인을 보는것이 레일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준비는 됬나?」

「네, 문제 없습니다.」

타닥타닥 하는 요란한 키보드 소리가 끊겼다.

「좋아, 그럼 시작해.」

「시작!」

레일의 지시에 맞춰서 연구원 하나가 크게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서있던 또 다른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 하더니 기계에 작게 달려있는 빨간 스위치를 누르고, 밑에 있는 레버를 몇개 조작했다. 그러더니 아까 멎었던 우우우웅 하는 신경 거슬리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얼마나 극악무도한 실험이길래.. 셀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지크의 몸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작게 떨리고 있던 손이, 갑자기 뭔가를 잡는 것처럼 움찔움찔하고 반복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셀리는 놀라서 지크의 손을 주시했다.

「윽.. 아..」

지크의 조그맣고 갸냘픈 신음이 들려왔다. 아니, 신음이라기 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고통스러워서 내뱉는 비명.

지크의 움찔거리던 손은 이제 마치 바닥을 긁듯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신에 힘이 없는지, 곧 두 팔은 추욱 늘어졌다. 레일은 그 모습이 불만족스러운 듯 했다.

「저게 문제라니까, 예전에는 좀 더 소리도 치고 벽을 쾅 치기도 하고 나름 분노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제는 아예 포기해버린 것 같죠? 하여간 귀찮은 녀석이라니까.」

셀리가 그런 레일의 말을 듣고 뭐라고 하려고 하던 그때, 레일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레일의 옆에 앉아있던 연구원이 척 하고 레일에게 뭔가를 전해주었다.

저건.. 마이크?

레일은 마이크를 툭툭 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아- 아- 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웃음기를 띄우며 말했다.

「보이지? 네 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

레일이 한 말은 셀리를 당황시켰다. 대체 무엇을 하는 거야 이 사람은! 셀리는 레일을 쳐다보았다.

「네 능력이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살릴 수 있어. 100%로. 네 능력은 시답잖은 것이 아닌 굉장한 것이거든. 그러므로 다시 한번 해볼까? 자, 하나 둘 셋!」

레일이 '셋'이라고 외치는 동시에 손가락 두개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계를 조작하던 연구원이 무언가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지크의 손이 들어올려져서 파르르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잡으려는 듯한 그런 손 동작. 파르르 떨리던 작은 손은 곧 다시 시체처럼 추욱 떨어졌다. 그걸보고 레일이 말했다.

「이런, 잘 안된 모양이네. 아쉬워라~ 만약 네가 모두를 구했었더라면 적어도 너희 엄마가 널 버릴 일은 없었겠지.」

「뭐..!?」

갑작스런 얘기에 셀리의 눈이 번쩍 떠졌다. 버려..? 그건 또 무슨 얘기지?

「레, 레일씨.. 버리다니..?」

「후후, 셀리씨는 신경쓰지 마세요. 그냥 거기 얌전히 서서 보고 계시면 되는 겁니다.」

레일이 참견하지 말라는 투로 셀리에게 말했다. 셀리는 움찔했다.

레일이 마이크에 좀 더 입을 가까이 붙였다.

「자, 다시 간다. 준비하렴.」

눈만 감고 들으면 정말로 상냥한 어투였지만, 현실은 끔찍한 악마의 형상이였다. 레일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미쳐가는 것 같은 희번뜩한 눈동자. 셀리는 소름이 끼쳐서 레일에게서 몇발짝 떨어졌다. 셀리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 남자에게.

그리고 다시 한번 지크의 팔이 부르르, 쾅.

「역시 안되는 건가? 역시 너는 버려질 운명이라는 거네?」

그 말에 지크의 몸이 지금까지 봤던 거와 다른 정도로 크게 떨렸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위태로운 몸짓으로 지크는 바닥을 두 손으로 짚고, 자신의 상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이 다한건지 결국에는 반만 몸을 일으킨 어정쩡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셀리는 보았다.

지크의 얼굴을.

지크의 특이한 머리칼은 땀에 젖은건지 축축하게 지크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헐렁한 실험복 사이로 보이는 것은 거의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이였다.

「잠깐만요..! 식생활은 제대로 챙겨주고 있는 겁니까!!」

그걸 본 셀리가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레일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자 레일은 셀리를 흘끔 바라보더니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지요, 귀한 실험체인데 죽어버리면 곤란하잖아요? 세끼 꼬박꼬박 식사가 나가고, 잠도 적정 수면시간동안 재웁니다. 뭐, 그 수면시간 동안 자는지 안자는지는 저희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셀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레일을 있는 힘껏 살벌한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레일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한번 친 다음에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래, 전부 너의 책임이야.」

「뭐..?」

레일은 매우 담담한 목소리로 지크에게 소리쳤다.

「전부 너의 잘못이고, 너 때문에 모두가 다 죽은거고. 너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야. 사실은 너도 알고 있었지?」

「잠깐.. 레일씨..」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괴물이야. 젠장, 기껏 실험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버리면 잘 진행되지 않잖아. 뭐, 이제 거의 마무리만 남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를 인간 병기로 만들어야 하는 목적이 나한테는 있어. 그러므로 오늘 이 손님이 너의 상태를 보고 가망이 없으면 어떻게 너를 처분할지 정할테니까 그렇게 알렴.」

그때 지크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셀리와 레일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지크의 텅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느낌이 마치 텅 비어서 안에 그림자만 차있는 깨진 그릇에서 물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았다. 이미 그 금빛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진다고 해봤자 절망과 슬픔 뿐이였다. 살아있다는 느낌 자체가 들지 않았다. 아니, 이미 이런생활을 반복해서 겪는 지크에게는 살아있는 것 보다 못할 것이다.

셀리는 자신의 몸이 격렬하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크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지크는 셀리를 주의깊게 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저 먼 곳을 바라본다는 느낌으로 텅 빈 눈빛으로 셀리를 바라볼 뿐이였다. 그래, 그저 바라볼 뿐이였다.

「...데려가겠어요.」

「네?」

셀리는 힘껏 심호흡을 한 후, 그리고 또다시 힘껏 내쉬었다. 목이 탁 트이는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지크는 제가, oraTio로 데려가겠어요.」

「..네? 농담이시죠, 그런 농담은 재미 없답니다. 셀리씨.」

「어차피 처분한다면서요? 그럼 괜찮지 않나요?」

레일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셀리씨.」

「그럼 어떤 문제인가요!」

셀리는 그렇게 소리친 다음에 강화유리리를 퍽 하고 주먹으로 내리쳤다. 주먹이 욱신거리며 아파도 상관없었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피가 흘러내려도 상관 없었다.

「이 벽을 열어주세요!」

셀리가 요청하자 연구원들은 서로 곤란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지만 셀리가 다시 한번 요청하자 곧 마지못해 벽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이어지는 순간이였다. 드디어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순간이였다.

셀리는 천천히 지크에게로 다가갔다. 지크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든 말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아니, 아예, 눈치를 못채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내가 절대로 oraTio에 데려가줄게. 약속할게.」

셀리가 지크의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것 같은 작은 어깨를 잡고 얘기할 때도.

지크는 그저 먼 곳을 보고 있을 뿐이였다.

「저기.. 심리검사..!」

레일이 셀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셀리는 이미 빠르게 뛰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린 직후였다.

「젠장, 일이 복잡하게 되버렸네요. 그러게 먼저 입을 막을 협박부터 하자고 했잖아요 레일 씨.」

연구원 중 하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레일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레일은 어느새 표정이 평소처럼 온순해져 있었다.

「아니, 이게 기회일수도 있어.」

「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레일은 몸을 돌려서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너희들은 세상에 돌연변이가 이 꼬마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하지만 발견되지 않았잖아요?」

그러자 레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있어. 없다면 지금부터 태어나게 될거야. 그것이 나의 계산이야.」

「레일씨의 계산이라면 믿을 수 있긴 하지만서도.. 정말로 그럴까요.」

레일은 열린 강화유리 사이로 들어가서 지크의 턱을 잡고 들어올려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아까 셀리와는 다르게 지크가 반응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아탈 때가 된거야.」

「뭐를 말입니까.」

「그야 물론 실험체지. 언제까지고 이 녀석으로 만족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 레일은 지크의 턱에서 손을 떼었다. 지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떨고 있었다.

「레일씨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가 이 실험을 하는 목적은 대체 뭐인가요?」

「이 바보야, 물론 초능력도시의 건설을 위해서잖아?」

연구원 두명이 목적에 대해서 욱신각신 하자 레일이 의연한 목소리로 그걸 말렸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에.. 아닙니까?」

「딱히 목적같은 건 없었어.」

그러자 연구원 두 명은 상당히 놀란 듯 하다.

「그럼 도대체 이 실험을 왜 하시는 겁니까,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레일은 흠- 하고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 자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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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셀리는 사장님의 사무실에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너무 동요하고 있었던지라 그런 추한 모습을 마리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서 헐레벌떡 올라왔다. 사장님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의자에 몸을 기대서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마이렌이 앉아있었다.

「셀리씨, 차라도 드릴까요?」

셀리의 상태가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마이렌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셀리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네, 부탁할게요.」

역시 사장님과 단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세이렌은 마이렌을 보냈다. 마이렌은 포근한 미소를 살짝 지어주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래서,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급하게 찾아왔지? 지금 자네 얼굴도 엉망진창이고.」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면서 엄청 울었기도 하고. 셀리는 쪽팔렸지만 지금은 쪽팔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셀리는 사장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했다. 셀리는 또다시 울컥 할 뻔했지만, 역시 사장님은 사장답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일단 진정하게, 어떡하고 싶다고?」

「..데려오고 싶어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눈썹을 까딱했다. 역시 이대로는 안된다. 사장님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 셀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 지크는 돌연변이에요.」

「..돌연변이?」

「실험체가 아닌, 선천적인 초능력자요. 쉽게 말하자면 영화의 히어로같은 겁니다.」

사장님이 책상 위에 두 손을 포개었다. 좋았어! 이것은 사장이 흥미를 가진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셀리는 내키지는 않지만 지크의 군사적 가치라던가 회사에 가져올 이익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사장님은 나름 귀기울이고 있었다.

「.. 알았다네.」

「정말입니까?!」

예상외의 반응에 셀리는 놀랐다. 사장이 이렇게 흔쾌히 알았다고 할 사람이였나? 그렇게나 지크가 가져올 이익에 대해 관심이 많은건가? 만약에 맞다고 하면 후자일것이다. 사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자신의 아들인 마이렌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하긴, 자기 아들을 제물로 삼은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니까.

「한번 Diara와 협상을 해보지. 명심하게, '협상'이네. 그쪽의 반응을 살펴야해. 그리고 이쪽에서도 알맞은 제안을 준비해둬야 하고.」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결과적으로는 지크는 oraTio에 오는 것이 되었다. 셀리는 또다시 놀랐다. 설마 이렇게나 빨리 데려올 수 있었을 줄은 몰랐다. 적어도 몇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나중에 사장은 셀리만 따로 불러내서 얘기했다.

「나도 놀랄 정도로 협상은 척척 진행됬네. 오히려 흔쾌히 그쪽에서 레비어스를 보내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서 일단은 결과는 이렇다만.. 알아두게.」

「무엇을 말인가요?」

「조건이 있었네.. 하지만 그 조건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셀리 자네는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만 알아두게나.」

셀리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사장이 알필요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셀리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크를 데려오는 역할은 셀리가 스스로 나섰다. 그 아이는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할 테지만. 그래도 그 지옥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다는 것으로도 셀리는 너무너무 기뻤다. 연구시설에 도착해보니 지크는 연구원 한명이 데리고 나와있었다. 셀리는 연구원에게 인사를 했다. 레일과 같이 있었던 연구원은 아니였다. 이 사람은 지크를 아는 걸까?

「셀리 피롯씨 이지요? 레일씨에게서 연락을 받고 제가 대신 마중을.」

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구나. 셀리는 일부로 상냥하게 웃으면서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붉은색의 약간 닳은 후드잠바를 입고있었다. 그것도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굉장히 헐렁해보였고, 후드덕분에 얼굴이 잘 안보였다. 지크는 그저 인형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였다.

「안녕? 혹시 나 기억나니?」

셀리는 연구원을 떠나보낸 후 그자리에서 몸을 숙여서 지크와 눈을 맞추었다. 지크는 땅만 바라보다가 셀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살짝 눈빛을 올려서 셀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셀리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눈을 다시 내리깔아버렸다.

「이곳에서 이제 떠날거란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가는거야.」

지크가 끄덕했다. 다행히도 말은 잘 듣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마음을 닫은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고 셀리는 생각했다.

「그럼 자 차에 타렴.」

셀리가 차 뒷문을 열어주자 지크는 뭔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더니 차에 올라타려고 애썼다. 몸에 너무 힘이 없어서 힘차게 차로 올라타는 것도 못하는 지크를 보며 셀리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지크는 또래아이들에 비해서 몸집이 너무 작았다. 아마도 영양에 관련된 문제인것 같았다. 얼핏 보면 8살아이와 동갑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셀리는 지크의 살짝 들어올려서 차에 태워주었다. 지크의 몸을 잡자 지크가 굳었으나 지크는 얌전했다.

「출발할게. 안전벨트 매렴.」

혹시나 차가 흔들리면 그대로 지크도 힘없이 넘어질것 같아서 셀리는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말했다. 지크는 주위를 흠칫흠칫 둘러보더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안절벨트를 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잡고있었다. 손은 보일듯 말듯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출발해서 셀리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도로가 꽁꽁 얼어있어서 이거 위험한걸. 셀리는 안전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어?」

셀리가 의아한 소리를 내자 지크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셀리는 창문을 열더니 그곳으로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팔을 빼서 살펴보니 하얗고 몽글몽글한것이 살짝 묻어있었다. 셀리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말했다.

「눈이 오는구나.」

셀리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왜 눈을 보니까 기뻐지는 걸까. 지크를 살펴봤는데 지크는 이상하게도 새파란 낯빛으로 떨고있었다. 무슨일이니 하고 얼른 지크의 상태를 살펴본 셀리는 말했다.

「춥니?」

아아, 사실 셀리도 춥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였다. 자동차 히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틀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셀리는 안절부절했다. 그러다가 밖을 내다보던 셀리는 뭔가를 발견한 듯 지크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렴.」

지크가 셀리를 바라보기도 전에 셀리는 차에서 내리더니, 급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지크는 창문에 붙어서 셀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추욱 늘어져서는 얌전히 앉아서 무릎을 모으고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마도 또 다시 혼자 남는다는 불안이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셀리는 지크를 그런 불안에 떨게 할 사람은 아니였는지 금방 돌아왔다.

「많이 기다렸지? 자, 이거 두르렴.」

「...?」

지크가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지도 않고 셀리는 새하얀 입김을 내쉬면서 지크에게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조금은 따뜻할거야. 아아 참, 밀라나가 아픈 바람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는구나. 」

셀리는 밀라나를 탓했다. 지크는 그런 셀리의 말을 듣고 있다가 조심스런 느낌으로 셀리가 자신에게 둘러준 목도리를 살짝살짝 만져보았다. 포근포근하고 약간 까슬까슬한 느낌. 지크는 편안한 한숨을 내쉬면서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크의 떨림이 멈추었다.

「그럼 갈게.」

셀리는 그런 지크를 보면서 미소를 지어준 후, 다시 회사를 향해 출발했다. 셀리가 차를 운전하면서 살짝 지크에게 입양 얘기를 꺼냈으나, 지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젔자 그 얘기는 그만했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마리였다. 하지만 마리는 지크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친해지리라고 셀리는 믿었다. 마리도 지크도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어? 처음보는 아이인데.. 누구야?」

베스테가 셀리에게 물어오자 셀리는 말했다.

「지크 레비어스라고 해요. 오늘부터 우리 회사의 새로운 식구니까 많이 예뻐해줬으면 좋겠어요.」

「헤에.. 그건 걱정안해도 돼. 나는 어린아이를 정말 좋아하니까. 그렇지, 역시 맛있는걸 만들어 줘야겠지.」

베스테는 그 말을 남기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셀리는 지크에게 회사에 대한 것을 설명했다. 지크는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잘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자~ 완성이에요.」

조금 오래 시간이 지났다고 느낀 순간 베스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에요?」

「몽블랑.」

「맛있어보이네요. 지크, 단 과자나 케이크 좋아하니?」

지크가 멍한 눈빛으로 베스테가 들고있는 몽블랑을 바라보았다. 지크 앞으로 내밀어주자 지크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한입 먹었다. 그리고 움찔했다.

「달지?」

베스테가 웃으면서 묻자 지크는 고개를 끄덕했다.

「단 걸 좋아한다면야 언제나 나한테 만들어달라고 해도 괜찮아. 지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들어줄테니까.」

역시 아이를 좋아하는 베스테답게 베스테는 너무나도 상냥하게 지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지크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셀리에게 지크가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이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셀리가 지크가 마음속으로 말한것을 중얼거리자 지크가 움찔 하며 셀리를 쳐다보았다. 셀리는 그런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마치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지크에게 셀리는 말해주었다.

「그건 너의 마음대로야.」

「..?」

지크가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모두와 친해지면 되는거야. 널 구속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가 마음대로 한다고 해도 화를 내는 사람도 없어.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면 마음껏 해도 돼. 슬픈 일이 있다면 고민을 털어놔도 되고, 기쁜일이 있다면 다른사람과 나누어도 돼. 너를 무섭게 하는것도 없어. 너를 두렵게 하는 것도 이곳에는 없어.」

지크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알겠니? 이제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는거란다.」

지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곧 지크의 큰 눈에서 굵직한 눈물방울들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크는 울면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고, 자신의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했으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셀리는 그런 지크를 자신의 품으로 안아주었다.

그러자 지크는 잠시 머뭇하더니 곧 셀리를 작은 두 손으로 꼬옥 하고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지크의 과거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기대해주세요!

,, 린나는 언제나올까...

추천코멘을 하신다면 제가 뽀뽀해드려여 쪽쪽ㅉ곶ㄱㅉ꼭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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