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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 레비어스
여긴 도대체 어디일까.
지크는 생각했다. 기억하려고 애써도 마치 물줄기처럼 기억들은 새어나가 버린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닌지도 모른채 지크는 그저 누워있었다.
등에 차가운 촉감이 느껴지며 동시에 그 차가움이 점점 고통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크는 상관없었다. 이 정도 아픔은 누구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니까. 정작 참을 수 없는건 이 어둠이였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되짚어 나가려고 애썼다. 그래야만 했다. 아니면 자신이 정말로 사라질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크는 무서웠다. 무서워서 아무거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거라고 해봤자 이상하게 얽혀있는 이상한 검은색 줄 같은것 뿐이였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떠올려낸건 최근의 일이였다. 벌써 몇달이 지났는지는 물론 모른다. 그냥 몇달이 지났구나 하고 대충 생각하는 것이다.
지크의 가정은 불우했다. 법에 안걸리도록 몰래몰래 지크 혼자 있을때도 많았다. 이웃집 사람은 지크가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지크의 집에 아이가 있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아빠는 썩을놈이였다. 언제나 엄마를 때렸다. 언제나 술을 먹었지만 정신을 깨어있는지 엄마를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그고 때렸다. 지크는 그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
지크는 아빠가 돌아오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물에 젖은 생쥐처럼 가엾게도 덜덜 떨고있어야만 했다. 엄마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크를 위해서 모든 폭력을 참아내고, 견뎌냈다. 아무리 맞아도 꿋꿋이 일어나고 아무리 심한말을 들어도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기만 했다.
지크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크는 엄마랑 눈이 마주칠때마다 눈을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엄마의 얼굴에는 늘 상처가 있었다. 멍 자국, 입술이 터진 자국, 긁힌 자국등. 지크는 그 상처들을 보기가 싫었다.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크는 엄마가 당하고 있는 일이 가정폭력 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몰래 몰래 조금씩 조금씩 조사했다. 그리고 지크는 10살의 나이에 엄마가 왜 그렇게 참고 사는지 깨닫게 되었다.
가정폭력임을 신고해서 아빠랑 떨어져서 살려고 하면 아무래도 VAWA(violence against woman act)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경찰에 신고한 경찰기록, 상담기록, 신체 상해를 증명할 사진 확보, 때리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했을 때 그 상황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증인확보 등을 해 두어야 했다. 청원서 신청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주권자 가해자의 이민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가족관계를 증명해야 하며 가해자와 함께 살고 있었음을 증명, 같이 기거하는 동안 폭행당한 사실이나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해 등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배우자인 경우는 가해자와 실제 결혼임을 증명해야 했다.
지크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마음도 조금 알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영주권을 받지 못하면 추방당하는 것이였다.
지크는 그저 자신을 이대로 있자고 결정을 내렸다. 지금으로서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크는 잘 모르겠고, 엄마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밤 사건은 일어났다.
어느때처럼 아빠가 술 병을 한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오자 지크는 평소처럼 재
빨리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자신의 하나뿐인 파란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귀를 막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또다시 아침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그런데 오늘따라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쩔쩔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크는 엄마아빠의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엄청난 불안감이 지크를 덮쳐왔다. 중간중간 지크의 이름이 들리고, 지크는 그때마다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때 갑자기 쾅 하고 누군가가 지크의 방문을 걷어차왔다. 지크는 놀라서 최대한 몸을 벽쪽으로 붙였다.
엄마의 애원하는 소리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크는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엄마가 뺨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지크는 덜컥 겁이 났지만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덜덜 떨리는 몸을 그 작은 손으로 부여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뻗어서 문 틈으로 상황을 보려고 할 때.
「빌어먹을 꼬맹이새끼!!」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뜯어져 날아왔다. 지크가 그 문에 부딪혀서 고꾸라졌다. 아픔과 놀람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고 했지만 아빠가 지크의 입을 큰 손으로 세게 막는 바람에 목소리를 전혀 낼 수가 없었다.
「뭘 노려봐!!」
아빠가 매섭게 소리치며 우락부락한 손을 휘둘러서 지크의 뺨을 후려졌다. 엄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찌나 세게 뺨을 때렸는지 지크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아빠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눈으로 더럽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지크의 너무나도 작은 몸 위에 올라타서 지크를 고정시키고,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지크는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얼한 느낌만이 정신을 감싸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지크는 직감했다. 그 때 지크의 시야에 엄마가 보였다.
엄마의 갈색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엄마는 흐느껴 우는 듯 했다. 그리고 힘 없이 기어나갔다. 그리고 뭔가를 손에 쥐었다. 지크는 너무 놀라서 엄마를 막으려고 했지만 아빠가 시끄럽다며 더 강한 폭력을 휘둘러 지크는 엄마를 막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표정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처럼 흐리멍텅하지만, 마치 아빠가 아까까지 들고있던 술병을 품에 꼬옥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희망을 바라는 모습 같기도 했다.
엄마는 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앙상하고 마른 몸을 아빠에게 들키지 않게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살금살금 아빠의 뒤로 다가왔다.
안돼, 안돼, 안돼. 지크는 지금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의 행동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자칫하면 정당방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막아야 한다. 엄마와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라고 지크는 마음속에서부터 외쳐왔다. 눈물이 눈 앞을 가려서 눈을 꼬옥 감았다.
그때 알수없는 느낌이 지크를 덮쳐왔다.
지금까지 땀이 나고 뜨거웠던 몸이 갑자기 식어서 얼음장같이 차가워지기도 하고, 또 다시 뜨거워지기도 하며 반복되었다. 아빠는 이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손 끝과 발 끝에서 부터 느껴지는 묘한 느낌. 마치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순식간에 지크의 몸을 스물스물 타고 올라왔다. 이상하게 아까까지만 해도 죽은 시체처럼 추욱 늘어져 있던 몸에 힘이 불끈 솟아올라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지크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높이 병을 들었다. 병의 상표가 지크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있는 힘껏 아빠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치려고 하는 순간.
1초도 안되는 시간. 지크의 눈에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광경.
아까까지만 해도 지크의 몸을 깔고 앉아있었을 아빠가 와그작 하는 괴기한 소리를 내며 튕겨졌다. 입을 막고 있던 아빠의 손이 사라지자 탁 하고 숨이 트여졌다. 묘한 느낌은 사라졌다.
지크는 상황을 정리하지 못해 눈만 굴리고 있었을 뿐이다. 엄마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크를 보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서 힘없이 병이 떨어졌다. 데구르르 굴러갔다.
「... 지크..?」
엄마의 금빛 눈동자가 불안감에 휩싸여서 덜덜 떨고 있었다. 지크는 몸을 일으켰다. 입 안에 짭잘한 피 맛이 감돌았다.
「..엄..마..」
지크가 엄마라고 부르자 마자 엄마는 후다닥 지크에게로 달려와서 지크의 몸을 껴안았다. 지크는 정신을 잃었다. 지크의 엄마는 흠칫 하고 아빠를 살폈다.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았다.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그걸보고 지크의 엄마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크의 엄마는 더 이상은 한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너무 충격을 받은 탓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나 무섭고 불안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지크의 엄마는 결정을 내리고 후다닥 재빠른 몸놀림으로 자신의 옷가지와 지크의 옷가지를 전부 챙겨서 집에 하나뿐인 여행용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필수적인 생활용품들만 전부 챙기고, 지크의 얼굴을 씻어주고 옷을 입혀주었다.
지크의 엄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확실히, 자신이 봐도 너무나도 초라해보이는 몰골이었다. 지크의 엄마는 흐르는 피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집을 나갔다.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일단은 지크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그 생각뿐이였다.
그리고 지크의 엄마와 지크는 정말로 남들이 보기에는 불행의 끝을 달리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둘은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 지크도 그 정도로 행복함을 느낀적이 없다. 제대로 엄마의 품에 안길 수 있었고, 엄마도 보기 힘들었던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크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적었던 것 같다. 지크의 엄마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찾아오고 있었다. 돈의 한계. 체력의 한계. 그리고..
어느날 엄마는 지크에게 남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지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절대로 그 힘을 쓰면 안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 알았지? 약속이야. 절대로, 절대로 안돼.」
지크는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을 했다. 남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본인이 무서웠다.
그리고 또다시 지크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13살이 되고, 지크는 어느때 처럼 터덜터덜 학교로 갔다. 지크는 다른 아이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지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싫었다.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두려웠고, 자신의 사정을 아이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 갑작스런 침입이였다.
거의 아무렇게나 쏟아지는 총알들. 발포소리가 귀가 터질것 같이 시끄러웠다. 지크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 자신은 너무나도 놀랐다. 그리고 아빠한테 맞을 때와 같은 느낌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진 것도 기억하고 있다.
옆에 있었던, 어제 보고, 인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볼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피가 터지면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선생님도 쓰러졌다. 모두가 쓰러졌다.
지크 혼자 살아남았다.
지크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시체한테 깔려있었다. 이제 더이상 총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몸 위에서, 온기가 느껴져서, 만져 보았더니, 손에 피가 잔뜩, 묻어서.
지크는 알고 있다. 이것도 자신의 그 이상한 힘이라고. 보았다. 총알이 지크에게로도 날아갔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지크의 몸에 닿기 일보직전, 그대로 튕겨져서 앞에 있던 아이의 몸을 꿰뜷었다.
지크는 자신의 피로 흥건히 젖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나, 살릴 수 있었어.. 모두를 살릴 수 있었어..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런데도.. 지크는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나도 총을 맞고 죽었으면 나았어. 그러면 더이상 엄마가 괴로워하는 있도 없었을 것이다. 지크는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곧 이어 지크는 구조되었다.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했지만 지크는 거부했다. 그리고..
엄마는 지크를 버렸다.
「어이- 지금까지 쉬었지? 계속할테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손님이 보고 있어.」
레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크는 몸을 움찔 했다.
아냐, 그만, 그만해. 제발 그만해주세요. 그만.. 하지만 소리칠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얘기해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 작품 후기 ============================
가정 폭력에다 총기난사까지.. ㅎㄷㄷ;;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주권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해도 참고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기난사 사건은 그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따온것이 맞습니다만, 아이디어만 따온 것이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코멘 주시는 분들 모두 알러뷰 우리 같이 코멘 밭을 이루어나가여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꾸욱! 코멘도 달아주시면 이 작가의 사랑을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