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01)
이사벨라의 공개처형이 쿠샨의 공개처형으로 바뀌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마그르스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숲속. 그곳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에는 레이나를 비롯한 길드원과 이사벨라가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면 희소식은 쿠샨이 살아있다는 것. 나쁜 소식이라면 쿠샨이 당장이라도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오두막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이사벨라는 바닥을 싸돌아다니는 들쥐 한 마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며칠째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영혼 없는 빈껍데기처럼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게르덱은 이사벨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카스티바에게 속삭였다.
“저러다 이사벨라님이 정말 쓰러지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쿠샨일은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답답해 죽겠어.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토니오와 담화연, 게르덱과 카스티바는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부분이 있었다. 길드하우스에 남아있던 그란다와 마르코. 리나와 모나스를 그날 광장에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장소에 그들도 함께였다면 분명 지금 자신들과 같은 상황이었으리라.
“그 사람들은 안전하겠지?”
“저희 길드에 소속되어있지 않았으니까요. 분명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그곳에 안토니오와 담화연님이라도 남겨뒀다면······.”
게르덱은 안토니오와 담화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곳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담화연의 힘이 컸지만 고귀하신 호족신에게 이런 열악한 상황으로 끌어들인 것은 송구한 일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담화연이 별로 신경 안 쓴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지만 카스티바와 게르덱에겐 눈치보일 일이었다.
“그나저나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다신 마그르스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안토니오의 질문에 확답을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레이나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쿠샨은 붙잡혀있지, 당장이라도 생사가 위급하지, 그렇다고 우리들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내가 갈게.”
며칠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이사벨라가 입을 열었다. 사실상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본래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 내가 돌아가서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 아닌가?
그러나 레이나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곳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데 다시 죽으러 돌아가겠다고? 쿠샨이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까지 이곳에서 도망치게 도와줬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서 어쩌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그르스로 돌아가는 것은 반대. 의견마저도 기각할 것이다. 이사벨라를 다시 잃고 싶지 않으니까. 더 이상 헤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레이나 냉정하게 생각해. 내가 붙잡히지 않으면 너희들도 다신 마그르스로 돌아갈 수 없어. 현재 인간들에겐 마그르스가 유일한 안전 에어리어인데 그 장소로 다신 못 돌아간다고. 그게 자살 행위라는 것쯤은 알고 말하는 거지?”
그 부분에 대해선 카스티바와 게르덱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이사벨라 본인이 자수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녀가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이사벨라님이 일부러 죽으러 가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우린 마그르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우린 가족이잖아?”
아무리 확실한 해결방법이 있다한들 그것이 가족 중 누군가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은 다수의 의견이라 한들 이루어질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너희들이 날 가족으로 봐줘서 정말 고마운데, 나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야. 쿠샨이 죽어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 너희 전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이사벨라······.”
레이나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카스티바도 게르덱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한 사람의 동료가 죽으러 가겠다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는가? 보다 못한 안토니오가 결국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다 같이 가요.”
“뭐?”
이사벨라의 눈썹이 움찔하고, 움직이고 안토니오가 재차 입을 열었다.
“다 같이 가자고요. 우리 가족이잖아?”
줄리는 안토니오의 의견에 맞장구치면서 유쾌하게 소리쳤다. 이도저도 못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을 거면 다 같이 죽어! 살 거면 다 같이 살고! 이 정신을 일깨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다름 아닌······?
줄리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이상한 얼굴로 자문했다.
‘다름 아닌 누구더라? 기억이 날 것 같은데······.’
각설하고, 다 같이 돌아가기로 무언의 확정이 났는지 모두가 안토니오의 주장에 반문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사벨라도 그들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잔잔한 미소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어쩔 수 없다니까. 이 인간들······.”
마그르스로 돌아가기로 한 결전의 다음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눈부신 아침햇살과 상쾌한 숲속의 아침공기. 죽기 딱 좋은 날씨라고 이사벨라는 아침부터 이상한 감상에 젖었다.
“이사벨라.”
“일찍 일어났네. 레이나.”
“오늘이야. 다시 돌아가는 날이.”
이제 와서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할까봐 두렵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무서워.”
뼛속이 시릴 만큼 무섭고 두려워. 하지만 너희들을 잃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어. 미호가 죽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내 힘이 한계에 부딪쳐서 무력해졌을 때, 그 상황에서 너희를 잃는 것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어.
그러니까 후회 안 해. 너희를 위해 죽는 것도, 쿠샨을 위해 죽는 것도. 그 무엇에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
오늘따라 이상하게 기분이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이사벨라가,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마그르스로 복귀하는 길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들떠있는 것일까?
쓸데없이 화창한 아침하늘, 따듯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결. 왠지 좋은 예감이 들기 까지 했다. 도대체 뭘까? 이 느낌의 정체는?
“레이나? 어쩐지 상태 좋아 보이는 얼굴이네?”
“저기 카스티바. 나만 그래? 이상하게 기분이 붕 떠있는 건······.”
“응? 너도 그래? 요즘 자연과 함께 살아서 그런가? 며칠 전부터 그런 느낌이 점점 더했지 아마?”
그때 열심히 앞장서서 걷고있던 게르덱이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웅장한 성벽. 철벽보안의 거대 요새. 빈틈없는 마법결계와 감시자들. 이곳은 인류의 마지막 거점지. 마그르스다.
잠시 후 마그르스 성 내부에서 거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는 족히 수백에서 수천. 뿐만 아니라 성벽 위에서 대량의 마나가 몰려들어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르덱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혀를 찼다.
“준비성이 철저하군요.”
게르덱은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의 심기를 최소한 덜 건드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게르덱은 무기를 내려놓고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멈추어라!”
순백색의 백마를 타고 앞으로 달려 나온 두 사람. 한 사람은 며칠 전 공개집행을 집도한 디포네. 다른 한 사람은 대마법사이자 인류의 수호를 맡은 아게도브였다.
“결국 돌아왔군요. 레이나님.”
“쿠샨님은 어디 있어? 살아있다는 것은 알고 왔으니까 발뺌하지 마.”
“아아~ 물론이죠. 당신들이라면 돌아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설마 죽을 위기에 처한 동료를 버리고 갈 만큼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여간 거슬렸는지 게르덱이 디포네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쿠샨님이 어디 있느냐 물었습니다!”
“성깔 더러운 성급한 사람이네요. 하기야 게르덱님은 이전부터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반동분자가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드리죠. 그를 데려와라!”
디포네는 강철갑주를 철컹이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병사들 틈에서 수십 개의 자물쇠가 잠긴 칼을 찬 남자가 피범벅이 된 상태로 비척대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맨 정신으로 보기에는 자극적인 상처들. 맨살 곳곳에 핏물이 흘러나오고 아물지 않은 살점에는 날카로운 칼침이 박혀있었다.
“쿠샨님!”
“죽어가는 고깃덩이를 불러봤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을 테니까요.”
게르덱은 분노로 치를 떨며 소리쳤다.
“그러고도 네놈이 인간이냐! 쿠샨님은······ 쿠샨님은 인류의 영웅이다!”
“영웅?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는 마족의 처형을 방해했습니다.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졌다고 해서 군법을 함부로 어겨서야 되겠습니까?”
그녀는 지난날의 고통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마족을 향한 분노. 7년 전의 고통. 디포네에겐 마족은 경멸 그 자체보다 더한 존재였던 것이다.
“됐습니다. 제 발로 찾아와 주셨으니 미뤄주었던 처형식을 진행하도록 할까요. 플로스티아 길드원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쿠샨님과 같은 반동분자 행위는 인류에게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 이 자리에서 다들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일어선 디포네의 눈빛이 이사벨라에게로 향했다. 자비는 없다는 눈. 마치 사냥에 실패한 늑대가 눈앞의 먹잇감을 다시 한 번 조우한 눈이었다.
이사벨라는 기를 죽이지 않고 수호기사의 앞까지 걸어 나왔다. 오랜 기간 전투를 하지 않고 잠적한 덕분에 마기며, 마력이며 상당히 떨어진 졌다. 이젠 666악마의 축에도 들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어떻게든 반항하고 싶었으리라.
“좋은 얼굴이네요. 하지만 어쩌실 생각이죠? 당신같이 약화된 마족은 아게도브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항은 무의미 합니다만?”
“순순히 죽을 테니까 쿠샨과 이 사람들은 살려줘.”
이사벨라는 주먹이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참아내면서 그녀에게 약속을 강요했다. 이제 와서 제안을 하는 것도 뻔뻔하지만 디포네는 별 상관없으려니 하고 어깨를 으쓱인다.
“당신 목숨하나로 여기 모두의 목숨과 쿠샨의 목숨을 바꾸시겠다? 뭐, 상관없겠지. 영웅 쿠샨에게 신세하나 빚져놓은 셈 치도록 하죠!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으로 하겠습니다. 평생 지옥의 밑바닥에서 개처럼 일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이 제안을 듣고 있던 레이나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사벨라! 다같이······. 다 같이 죽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니. 너희는 아직 죽으면 안 돼. 너희는 살아야 해. 그게 옳아.”
이사벨라는 여한 없다는 듯 디포네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남은 것은 심판의 검이 목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쿠샨. 나도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 내가 인간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끔 만들어준 당신에게 감사해.’
지금의 나는 마음만큼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눈꼬리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반짝이는 물 조각이 턱을 타고 미끄럼 탔다. 디포네의 검이 서서히 하늘을 향해 태양광을 반사시켰다. 죽음의 기운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꼈다. 두꺼운 족쇄를 칭칭 감아낸 쿠샨은 분노로 치를 떨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쿠샨은 타들어가는 목을 어떻게든 찢어내면서 그녀에게 한 마디를 내던졌다.
“죽지마라! 이사벨라!!!!!!!”
“죽어버려! 마족년!!!!!!!!!!”
기괴한 기합성을 터트리며 디포네의 안광이 번쩍였다. 허공을 찢어발기는 예기어린 섬광이 터지고 스산한 검날이 이사벨라의 목 위로 떨어졌다. ‘정말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이사벨라가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베어 물었다.
죽음이 그녀의 목을 파고들기 직전. 어디선가 강력한 돌풍불어와 그들을 덮쳤다. 동시에 수호기사의 검이 무언가에 가로막히듯 멈춰 섰고 귓가를 울리는 맑은 쇳소리가 그 일대에 울려퍼졌다.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 틈에서 드러나는 한 사람의 그림자. 이사벨라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항상 이런 식이야. 이러니까 맘 놓고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고.”
“누, 누구냐. 너는!”
“나? 알려줘도 모를걸?”
정체불명의 인물은 당돌한 어투로 디포네의 검을 맨손으로 부러뜨리며 말했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누구하나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연갈색의 봉두난발. 저녁노을을 연상시키는 적안. 한손엔 보기에도 장난 아니게 강해보이는 황금의 망치가 들려있다.
자신의 검이 젓가락처럼 부러지는 모습을 본 디포네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7년 전 예고 없이 열려버린 마계의 문. 마왕의 완전 부활. 난데없는 마왕의 소멸. 인류의 승리 아닌 승리······.”
그는 디포네의 검 손잡이를 빼앗아 엿가락처럼 구부리고는 바닥으로 던져 넣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엠페러 길드의 갑작스런 붕괴. 쿠샨의 새로운 길드창설. 갑자기 희대의 루키로 떠오르기 시작한 플로스티아 길드. 허나 그 과정은 본인조차 모르고 있다지?”
그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바스러진 철 조각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디포네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하벨스 대륙의 절반이 날아간 마족전쟁 발발. 그 역시 악마 라두스를 소멸시킨 인물이 발견되지 않았음. 전쟁은 어영부영 인간의 승리로 넘어간 유례······.”
모두가 남자의 갑작스런 난입과 모순으로 뒤덮인 과거의 언급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순된 역사에는 누군가 한 사람이 빠져있어. 아니,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수십 명 존재할지도 모르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 말이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레이나는 직감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분명 낯선 사람이었지만, 그가 바로 자신이 찾아 헤매던······.
‘제3자.’
디포네가 다시 한 번 그의 정체를 되물었다.
“네, 네, 네놈은 누구냐 물었다!”
“훗. 한번은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지. 다음에 보면 꼭 체포하겠다 어쨌다 하더니 이렇게 쫄아서야 날 잡아가두겠나? 뭐,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라두스와 라그나로크, 현자의 돌의 힘을 빌려 아샨드를 소멸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아샨드의 불사를 제거하는데 나의 존재를 대가로 바치는 것만으론 부족하더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줄줄이 흘러나왔다. 이를 지켜본 아게도브는 갑작스레 난입한 불청객을 마법의 힘으로 억누르려 했으나,
파지직!
불청객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오는 방대한 마력이 아게도브의 마법을 거부했다.
‘이럴 수가? 저 망치는 무엇이기에 스스로 움직인단 말인가!’
불청객은 아게도브를 싸늘한 눈으로 흘겨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샨드의 불사능력을 없애기 위해 추가로 지불한 대가는 존재감 이외에도 내 모든 기억이었다. 라그나로크의 힘을 완전히 해방한 나는 아샨드를 처리하는데 성공했지만 몇 분 뒤 사망과 동시에 모든 것을 망각하고 말았지.”
아게도브는 7년 전 과거를 떠올렸다. 아샨드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떴을 때는 연합군과 인간군은 한창 마족과 사탄을 대적하고 있었다. 즉, 아샨드를 처리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것.
‘설마 이자가?’
“여기서 문제다. 죽었던 내가 이렇게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능청스럽게 웃으며 디포네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주는 그가 모두에게 질문했다. 당연히 그 이유를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로 침묵을 지킬 뿐이다.
“내가 부활한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누군가 나를 떠올리는 것. 내가 기억을 찾아내는 것. 운 좋게도 이를 충족시킬만한 요소가 주변에 존재했다.”
이때 아게도브가 반박을 제시한다.
“모순이다. 네놈의 존재를 전부 지워버리고 자신의 기억조차 없앴는데 네놈을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 있을 리 없다.”
불청객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세 개다. 나를 떠올린 것은 사람이 아닌 도구. 그것들이 나를 부활시켰다.”
미호가 남긴 목걸이, 황금의 모루. 그리고············
“이 녀석.”
그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한 사람은 눈꽃처럼 새하얀 장발과 눈썹을 빛내는, 마족의 뿔과 꼬리를 가진 라두스. 그 옆에는 귀족적인 레드드레스를 착용한 청초한 여성이다.
“라그나로크. 아샨드를 죽이는데 한 몫 한 유물등급 방어구지.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한 상태라 구별이 안갈 테지만 뭐, 이런 설명은 당신들에게 무의미 하겠고.”
아게도브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유물등급?”
“대마법사라면 들어본 적 있겠지. 유물등급의 아이템은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한마디로 라그나로크는 나에 대한 기억을 《잠시》잃었던 것뿐이다. 그녀는 7년이 지난 지금 영면에 들어간 나의 무덤을 찾아냈고 부활시켰다. 기억은 말할 것도 없이······.”
그는 두 가지 아이템을 그들 앞에 확인시켰다. 하나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휴대용 모루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목에 걸려있는 조잡한 목걸이였다.
“내겐 아주 의미 있는 물건들이지. 이것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알려줄 의리는 없고.”
“아저씨. 서론이 긴 것 같은데요?”
라그나로크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투정했다. 그제야 불청객이 “아!”하고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니.
“너희들은 이거 하나만 알아두면 되는 거야.”
그는 순박한 미소를 지었지만 억양만큼은 결코 가볍게 하지 않았다. “건들면 죽여 버리겠어.”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그가 말했다.
“여기 있는 내 가족들 건드리면 다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머릿속에 똑똑히 메모해둬.”
그가 등 뒤에 길드원들을 바라보고 여름바다 같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한 마디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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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대장장이(Legend Smith) 바드가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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