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92화 (192/202)

Master Smith (192)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 아샨드의 몸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의 수려했던 외모가 급격하게 바뀌어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입안의 송곳니가 두꺼워졌다. 그에 걸맞게 몸집도 커졌다. 평범해 보이던 뿔은 소용돌이치면서 유선형으로 길게 자라났고 온몸의 근육이 선명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위아래서 뾰족하게 드러난 이빨. 불덩이를 집어삼킨 듯 불타는 용광처럼 타오르고 있는 목구멍. 지옥 불을 연상케 하는 공허한 눈빛은 바라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힘이 어디서 이렇게 나오는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전신에 착용된 황금빛 갑주가 주된 원인이리라. 그리고 그 장비들이 모두 어디서 난 것인지도 반쯤 확신한 상황이다.

투구, 상의, 하의, 신발, 장갑, 팔 보호대, 어깨보호구, 방패, 무기까지. 전부 헬리오스에서 만난 야도스의 말 대로다.

“크으으으······.”

“몸 좀 키웠군. 더 얻어맞고 싶은가 보지?”

차원이 다르게 힘이 증폭했다지만 저렇게 커다란 몸집으로는 나를 상대할 순 없다. 스피드에서 완전히 밀릴 테니까. 그 순간 내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아샨드의 몸이 보통의 사이즈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되겠지.”

“그러면 반칙이지. 그 커다란 몸뚱이 놔두고 소형화라니?”

가지가지한다. 이러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 내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둘의 충돌로 대륙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내 힘 앞에 몸이라도 얼어붙었느냐?”

“네놈의 전력을 보고 확신했다. 나는 너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잠깐 장소를 옮겨보실까?

나는 주변을 마력으로 뒤덮었다. 마왕과 나를 감싼 마력의 결계. 이곳은 무한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평행세계였다.

“공간 복제와 무한한 마력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세계······. 이 정도였나? 내가 과소평가 하고 있었군. 네 힘은 인간과 악마의 수준을 뛰어넘었어. 토르. 어쩌면 그 녀석보다도······.”

“이곳만큼 싸우기 편한 곳은 없지. 서론은 집어치우고 덤벼라.”

“기어코 결판을 내겠다는 소리군. 그럼 보여 봐라! 네놈의 전력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이곳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고차원 공간.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에 이 결계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오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네놈과 싸우리라. 전력을 다해 부딪치리라. 팔이 뜯기면 발로, 발이 뜯기면 깨물어서라도.

“라그나로크 리미트 해제.”

《사용자의 의지가 라그나로크에게 전해집니다. 1시간동안 사용자의 모든 신체적, 잠재적 능력이 개방되고 최대 한계치의 힘을 끌어냅니다.》

몸에서 이질적인 반응이 찾아왔다. 주체하기 힘든 심장박동.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흥분. 덜덜덜 떨리는 팔과 다리. 눈에는 이제껏 보지 못한 방대한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샨드의 숨소리, 땀 분비량,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과 솜털 하나하나 흔들리는 것 까지 전부 보였다.

《리미트 해제완료 남은 스퍼트 타임 59분 58초.》

《라그나로크가 당신의 죽음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라그나로크의 의지가 전해집니다.》

‘아저씨 미쳤어!? 내가 리미트 해제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리미트 개방을 취소하면 HP와 MP가 일정량 줄어든 걸로 끝나니까 빨리 취소해!’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저씨 죽는다니까?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그녀의 말대로다.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세상일이 잘 되든 말든 결국 죽으면 의미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라그나로크. 사람에게는 목숨을 바쳐가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도 해.

“목숨을 걸면서 까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추억이 있으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죽음이 확정된 선택을 할 필요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네 자아가 창조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했을 때. 너는 어떤 느낌이었지? 그 외로움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널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너는 내게 필요한 존재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돼.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지킬 거야. 목숨 걸고.

라그나로크가 우울한 목소리로, 아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지켜 달랬어? 난 어찌되든 상관없어. 그냥 아저씨가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은······.”

나는 짧은 웃음을 남겼다. 라그나로크가 마지막까지 필사적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현재 의식을 완전히 되찾았다. 남은 시간 1시간. 그 안으로 아샨드를 죽이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끝났나?”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시작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뭐냐.”

“토르와 싸웠을 때. 네놈은 지금과 같이 전력을 다했나?”

“내가 숨겨둔 힘이 있을까봐 두려운 거냐?”

“대답해라.”

“크하하하! 그래. 나는 토르와 싸웠을 때 전력을 다했다. 바로 지금처럼. 무슨 상관이지? 네놈이 이곳에서 죽는 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두려워?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아직까지 힘을 숨겨두고 있다면, 네 전력이 지금이게 전부라면······.

“네놈은 죽는다.”

《해방(解放)상태에 돌입합니다.》

내 몸을 주위로 6개의 무기가 떠올랐다. 각각 라그나로크의 6개 클래스에서 볼 수 있는 무기였다. 지금은 제4식 단도를 들고 있기 때문에 한 자리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대검을 떠올렸다. 그러자 영겁의 화염으로 둘러싸인 화염의 대검이 손안에 생겨나고 제4식 ‘절망의 단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동동 떠다녔다.

방어구도 클래스에 맞게 즉시 바뀌었고 상태정보도 변한 뒤다. 전체적으로 클래스가 교차되는 시간은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즉,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걸맞은 무기와 장비로 교체가능하며 스타일리쉬한 전투를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간다.”

밑도 끝도 없이 전투시작. 대단한 기세를 내뿜으며 도약한 바드는 주체할 수 없는 속도감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샨드를 이미 지나친 상태였다. 몸이 가벼워도 심하게 가벼웠다.

“네놈······ 어떻게?”

아샨드 본인도 깜짝 놀랐는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바드를 사납게 노려보며 묘한 의구심에 잠겼다.

‘생각보다,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무슨 꼼수를 부린 거냐!”

아샨드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무수히 많은 마기의 낫을 휘날렸다. 족히 수만 개가 넘는 검은 낫들은 내 머리위로 빗발쳐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느려.’

낫의 속도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눈 안에 낫 한 자루 한 자루가 전부 들어왔다. 그 사이에 날아오는 궤적들이 머릿속으로 정리된 상태가 되었다.

나는 날아오는 낫들을 피하지 않고 한 손의 대검으로 전부 받아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날카로운 낫들을 쉴 새 없이 쳐내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피할 필요가 없는 낫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거대한 대검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두르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걸 걸고넘어질 이유는 없다.

투카카카카카카카카카!

“신이 제작한 장비란 실로 대단하군. 모든 면에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그나로크를 착용한 내 힘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에 여유를 품어도 무관할 정도였다.

“우쭐대지 마라 우매한 종족아.”

아샨드가 나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대검을 소환했다. 놈의 다리를 갈라버리려던 순간 공격을 받아낸 아샨드가 그르렁 거리며 나를 응시했다.

이번엔 아샨드에게로 공격권이 넘어갔다. 거침없는 참격에 진득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굉장히 손쉬웠다. 시야 속에서 그의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앞날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네놈······.”

공격을 받아가는 과정에서 위화감을 느낀 그가 비로소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 마왕의 찌르기가 들어왔다. 나는 대검의 넓은 면으로 녀석의 칼끝을 막아낸 다음 제4식 단검을 소환했다.

《제4식(暗) 개방: 라그나로크 세트에 어둠속성이 부여되고 어둠데미지와 어둠방어력을 증가시킵니다. 단도 숙련도가 100%상승하고 전체적인 데모닉 스킬 데미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방어구의 성질이 천갑옷으로 변환됩니다. 방어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민첩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저주에 대한 면역력이 100%로 상승합니다.》

장비가 천갑옷으로 변환된 탓에 몸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대검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소환된 단검은 피에 굶주린 듯 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아샨드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앞날을 예측했다.

‘가로 횡베기.’

한 템포 빠르게 점프하자 발밑으로 아샨드의 검이 지나갔다.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굳어졌지만 그럴 틈도 없이 내 손은 놈의 목과 팔을 거침없이 지나갔다.

아샨드의 목에서 가느다란 선이 그어지고 그 안에서 피가 흥건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맥과 힘줄이 끊이진 마왕의 팔은 힘없이 툭. 떨어지고 고반논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단해. 대단하다고! 토르도 이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지는 못했거늘!”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건가?”

나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그의 턱부터 이마 끝까지 베어 넘겼다. 아샨드의 얼굴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찢어발겨졌다.

“물리적인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것 같더군. 아니면 치유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던가. 그래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복구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데미지도 회복되는지, 치유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공격해도 부활하는지 말이다. 나는 기괴하게 찢겨나간 아샨드의 머리를 한손으로 움켜쥐고 마기를 쏟아 부었다.

“멸(滅)”

라두스의 데모닉 스킬은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기술이다. 라그나로크 제4식의 버프로 인해서 데모닉 스킬의 피해량이 대폭 상승했으니 최상급 파괴 기술의 위력은 두말 할 것 없었다.

아샨드의 정수리로 검정색 실선이 내려왔다. 그리고 몇 초 뒤 천지를 깨부수는 소음을 동반해 심판의 기둥이 그의 머리위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샨드의 몸이 산산조각 나고 사지가 불탔다. 하벨스 대륙과 같은 모습으로 복제된 페러렐 월드는 방금 전 일격으로 인해서 이곳은 동일한 대륙이라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대륙이 송두리째 소멸하고 행성의 한 가운데에 거대한 나락의 구멍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악마들의 정수를 흡수해서 상승시킨 마기, 라그나로크의 리미트 해방. 그 결과 대륙이 파멸했다. 정말 끔찍한 장비가 아닐 수 없다.

“기대 이상이군. 살아있단 말이지?”

“······크큭!”

아샨드가 적안에 살기를 드리우면서 으르렁 거렸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게 쳐 맞아 놓고 아직까지 여유로운 이유. 내가 너를 죽이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한 이유겠지. 하지만 그거야 찾아내면 된다.”

“나를 죽일 때까지 계속 쳐부수겠단 소리냐?”

“괴롭나? 하기야 부활하는 것과 아픈 것은 별개의 내용이겠군. 어디한번 팔다리가 뜯겨나가는 고통을 잔뜩 느껴봐라.”

나는 단검을 공중에서 받아낸 다음 온몸의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아샨드는 바드의 속도를 잡아내기 위해서 온 정신을 집중했다.

‘기는 느껴지나 움직임이 빠르군.’

“늦어.”

아샨드가 뒤늦게 반응하여 팔꿈치를 휘둘렀지만 타오르는 듯한 격통은 정면에서 찾아왔다.

뒤쪽에서 나타나는 동시에 앞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단검은 아샨드의 이마에 깊숙이 박혔고 손잡이를 통해서 마기가 흘러들어왔다.데모닉 스킬의 기본. 흑(黑)이었다.

검은 기운이 아낌없이 방출되자 아샨드의 내장과 그 안의 뼈가 송두리째 소멸했다.  바드는 그 충격으로 멀리 날아가려는 아샨드의 뿔을 낚아채 그의 타오르는 눈과 후두부를 단검으로 찔러 넣고 몸을 회전시켜 손목을 완전히 양단내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어딜 감히!”

아샨드가 팔을 휘두르며 데모닉 스킬 펼쳤다. 넓은 범위로 폭발하듯 튀어 오른 그가 지면을 뒤엎었다. 손을 한번 휘두른 것만으로 눈에 보이는 땅이란 땅은 죄다 헤집어 버리고 수평선 너머까지 터트려버렸다. 그러나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조차 바드의 잔상을 따라잡지 못했다.

“느리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푸슉푸슉!

바드가 아샨드의 등, 허리를 한 토막씩 도륙내고는 새롭게 무기를 교체했다.

《제5식(光) 개방 라그나로크 세트에 빛 속성이 부여되고 신성데미지와 신성방어력을 증가시킵니다. 총 숙련도가 100%상승하고 데모닉 스킬의 데미지가 반감합니다. 방어구의 성질이 중갑으로 변환됩니다. 상대방 피격시 HP와 MP를 일정량 흡수합니다.》

양손에 쥐어진 무기는 십자가가 그려진 성스런 쌍권총이었다. 마족이 성속성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라그나로크와 계약한 자는 제5식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다.

탕탕! 두발의 탄환이 화약을 터트리며 초음속으로 날아가 아샨드의 미간과 입안에 명중했다. 코끝을 찌르는 화약 냄새와 시원한 사격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갼드는 처참하게 터져나간 머리통을 움켜쥐고 괴롭게 울부짖었다.

“역시, 금기란 대단하군. 라그나로크의 힘이 이렇게까지 압도적이었단 말인가?”

“그래. 네놈이 영영 말소시키려 했을 만하다.”

탕!

나는 아샨드의 입안에 시원하게 한발 날려주었다. 퍼억! 하고, 살점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아샨드의 경이로운 회복력 덕분에 놈은 금세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이다.

“헉헉······!”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고 있군.”

“현자의 돌은 신의 돌이 아니라 재앙의 돌이었나 보군. 너 같은 괴물을 만들어 내다니.”

“나는 그저 대장장이일 뿐이야.”

제1식 검.

나는 칼을 뽑아들어 아샨드의 왼팔을 베어 넘기고 몸을 낮추어 하부를 겨냥했다.

제4식 단도.

검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양손에 단도가 붙잡혔다. 발목과 무릎, 허벅지의 힘줄을 순차적으로 끊어 넘기고 단도를 던져 양쪽 손목을 관통시켰다.

아샨드가 이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반격을 시도했다. 수십 개의 어둠의 창이 나타나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온 것이다.

제6식 창.

단도가 접어 들어가고 이번에는 창날이 달려있는 기다란 봉이 붙잡혔다. 토룡이 새겨진 기다란 장봉. 뭉툭하게 튀어나온 창끝에는 보이지 않는 첨예한 기운이 아른거렸다.

나는 봉을 회전시켜 매섭게 날아오는 창의 폭격을 튕겨내었다. 청산유수와 같은 몸놀림으로 공격을 흘려내고 틈이 생기면 아샨드에게 반격했다. 신체감각이 극에 달했기에 아샨드의 틈이 눈에 빤히 보였다.

창은 처음 써보는 무기였으나 라그나로크 제6식 특수효과로 창 숙련도가 100%증가했기에 창의 장인만큼 뛰어난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는 최고의 창술사가 된 것이다.

“괴물 같은 녀석.”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 아샨드가 거리를 벌렸다. 폭발력 있는 움직임으로 수십 미터나 거리를 두는 게 역시 마왕은 마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나는 옅게 조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제6식을 힘껏 날렸다. 무식한 근력이 고스란히 담긴 투창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아샨드의 어깻죽지를 단번에 꿰뚫었다.

그 순간 아샨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빈손이었던 바드가 날아오는 창을 낚아채서 자신 쪽으로 다시금 창을 던진 것이다.

아샨드는 있는 힘껏 기합을 터트려 바드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맞은 바드는 몇 미터나 날아간 뒤에 겨우 몸을 추슬렀다.

“역시 만만찮군.”

“기어오르지 마라.”

아샨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 즉시 바드 주위로 어둠의 기운이 덮쳐들었다. 슬라임의 액체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걸로 모자라서 기분 나쁜 살기까지 뒤덮고 있으니, 건들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맹독에 저항합니다.》

‘맹독이었군.’

맹독성 유해액체가 사방을 에워쌌다. 여기서 기화된 기체는 독가스가 되어 중독을 일으킬 것이다.

‘일단 탈출을······.’

“어딜 도망가려고?”

탈출 경로에 서있던 아샨드가 팔을 뻗어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대뜸 복부로부터 깊고 강렬한 충격이 전해져 내 몸은 액체더미로 뒹굴어 날아갔다.

질펀한 액체 속에 자빠지자 고약한 냄새와 함께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맹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일정시간동안 명중률과 집중력, HP가 줄어듭니다.》

‘이런 개떡 같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샨드를 상대하기가 껄끄러워 졌다. 게다가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아샨드를 남은 시간 안에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라그나로크 해방(解放)상태 남은 시간 22분 11초.》

“당황한 모양이군.”

“고작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거냐?”

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운 현기증이 대거 몰려오자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불안정해졌다.

‘위험하겠어.’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위기감이 떠올랐다. 머릿속은 회피를 명령하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서 피해야······!’

푸욱! 퍽퍽퍽! 퍼퍽!!!!

창과 검, 거대한 낫이 온몸을 꿰뚫었다. 타는 듯한 고통에 신음마저 막혀 헛바람만 들이켰다.

“끄으으윽!”

“방심은 금물이지. 이 승부는 내가 이긴 것 같군. 너는 날 처리할 방법을 모르고 있어.”

아샨드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고반놈의 검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내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채앵!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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