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87)
담화연이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는 몰라도 마족의 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쿠샨은 이를 놓치지 않고 전군에게 명령했다.
“마법사들은 적들의 전투력부터 측정하라! 놈들이 경직된 틈을 놓치지 말고 공격하라!”
쿠샨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간군이 매섭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군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마족이 아닌 다른 종족이었다.
“잠깐! 고블린들이 인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이변에 인간군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함께 진격하던 고블린들이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령의 힘으로 각성한 마족들의 마기가 일시적으로 주변 몬스터들의 포악함을 증가시킨 것이었다.
담화연이 빠른 속도로 신령의 힘을 수거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족들의 영향을 받은고블린들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쿠샨은 당황하지 않고 소리쳤다.
“증가된 마기의 영향으로 광포화 된 거다. 모두들 고블린과 떨어져!”
그때였다. 멀리서 거대한 폭풍바람이 지면을 가로지르며 수십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차가운 핏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새로운 적인가?”
“아니야. 저건······.”
레이나의 입술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공격을 날린 장본인이 누군지 레이나는 눈치 챈 것이다.
‘꼬마야?’
콰아아앙!!!
두 번째 후폭풍이 레이나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그 바람의 뒤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마나를 이용한 마법이라면 마나통달 스킬로 무효화 시키거나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단순한 무력에서 나온 검풍이었다. 레이나는 정면의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정신 차리십쇼 레이나님!”
게르덱이 나를 껴안고 몸을 굴린 덕분에 피해는 없었다.
“가봐야겠어. 누가 이러는지 알 것 같아.”
“미쳤어요?! 어떤 괴물인지는 몰라도 이만한 공격을 날리는 허무맹랑한 녀석이란 말입니다! 가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그 애는······. 그 애는 내가 아니면 막을 수 없어. 놔줘.”
레이나의 고집에 쿠샨이 다가왔다.
“혹시 소문의 그 고블린이냐?”
“아마도 그럴 거야.”
“녀석은 바드가 만든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지켜줄 수 없는데 괜찮나?”
레이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무조건 갈 거야.”
“좋다. 서둘러 가보지. 놈을 막지 않으면 인간군의 피해가 커질 테니까. 카스티바와 게르덱은 이곳에서 노엘의 상황을 지켜보며 싸우고 있어라. 금방 갔다 올 테니.”
레이나는 쿠샨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수가 많군. 잠깐 방심해도 몇 마리씩이나 들러붙는다.”
쿠샨은 자비 없는 참격을 날리면서 고블린들의 팔과 목을 툭툭 베어 넘겼다. 레이나는 그들이 자신이 알고있는 고블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미안해 얘들아. 미안······.’
“도착이다!”
쿠샨이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엔 키가 아주작고 조잡한 곡괭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무리들이 뭉쳐있었다.
“고블린 치건 무서운 살기로군.”
“크르르르르릉······!!!! 캬륵! 캬아아앙!!!!”
고블린들이 꽤 그럴듯한 자세를 잡으며 괴성을 질렀다. 그들 손에 들려있는 곡괭이가 당장이라도 날아올 것만 같았다.
“저 놈들이 맞나? 네가 알고 있는 고블린.”
“맞아. 하지만 역시······.”
나를 못 알아보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기억은 고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눈치다.
“네가 막기에는 무리인 것 같군.”
쿠샨은 저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레이나는 양팔을 펼쳐 쿠샨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애들은 죄가 없어.”
“케르르륵? 캬아아악!!!!”
고블린들이 자신의 레이나의 뒷모습을 보고 곡괭이를 무작정 휘두르기 시작했다.
“조심해!”
쿠샨이 레이나의 팔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강하게 끌어왔다. 고블린의 참격은 아슬아슬하게 레이나를 피해갔다.
레이나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경황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깊숙이 박힌 곡괭이가 지면을 완전히 분쇄시키고 거대한 참격의 흔적이 새겨져있었다. 쿠샨이 레이나를 구출하는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절명했으리라.
“이 놈들은 적이다. 마왕의 마기에 완전히 홀려버려서 괴물이 된 거야. 이래도 막을 셈이냐 레이나?”
쿠샨이 단호한 말을 내뱉으며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었다. 레이나는 눈앞의 고블린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거야? 어쩌다가······.’
쿠샨의 입장은 잘 알고 있다. 그의 손에 수만 명의 목숨이 걸려있고 그의 한 마디에 인류를 지키느냐 마느냐가 달려있으니까. 내 억지만으로 꼬마들을 살려두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다.
어떻게 이렇게 재회했는데, 이렇게 끝나야 한다고?
“레이나. 괴로운 건 알지만 저 고블린은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들의 억울함은 어쩔 거지? 네가 뒷감당 할 거냐?”
“그건······.”
“이 고블린도 네가 그런 부담을 갖는 것은 싫어할 것 아니냐? 녀석도 자신을 죽여주길 바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너 까지 죽일지도 모르니까.”
쿠샨은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했다. 본인의 판단으로 레이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끄르륵! 크륵크륵!!”
그 사이에 고블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쿠샨은 온 정신을 회피하는데 쏟아 부었다.
‘엄청난 힘이군. 자칫 잘못하면 한방에 골로 가겠어.’
하지만 공격패턴과 공격루트는 단순하다. 지체 않고 공격한다면 큰 피해 없이 놈들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레이나! 어서 결정해라! 놈을 죽일지 말지!”
고블린의 공격을 분명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풍압만으로 살갗이 떨려오자 쿠샨은 오싹한 위기를 느꼈다. 그가 내딛어야할 지면이 완전히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발붙일 곳이······!’
콰직!
쿠샨이 그대로 중심을 잃자 고블린의 곡괭이가 그의 어깨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이 자식이!”
급소는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HP의 20%가 깎여나갔다. 다음 일격을 또 다시 허용하면 이번에야말로 끝장이다.
쿠샨은 맨주먹으로 고블리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가격했다.
《즉사면역 발동. 대상이 50%의 체력으로 부활합니다》
심히 당황하고도 남을만한 알림창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즉사면역? 그딴 특성까지 붙어있는 거냐! 바드는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장비를 고블린에게 준 거냐!
쿠샨이 놀랄만한 상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사 발동. 가격한 데미지의 1000%가 돌아옵니다.》
《3200의 피해가 돌아옵니다.》
자신의 관자놀이로 전해지는 얼얼한 충격에 쿠샨은 깜짝 놀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즉사면역에 이어서 이번엔 반사특성까지! 고블린 주제에 마족들과 싸워서 죽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드자식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크르르르르······.”
“빌어먹을!”
녀석이 내 어깻죽지에서 곡괭이를 뽑아들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휘감을 첨예한 날이 내 머리를 겨누었다.
“꼬마야 안 돼!”
일촉즉발의 순간. 레이나가 꼬마 고블린의 뒤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한 순간 고블린의 곡괭이가 멈추는 가 싶었지만 곡괭이는 이미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돼에에에에!!!!!!!!!!!!!!!”
단단한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날아갔다. 회색 먼지연기가 공중으로 휘날렸다. 곡괭이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쿠샨을 비껴나가 바닥에 찍혀 들어갔다.
“끼르르르르.”
고블린은 온몸을 떨면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흘려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쿠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쿠샨은 고블린이 마지막에 곡괭이의 궤도를 바꾼 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나의 외침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몬스터가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끼에에엑!”
고블린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롭게 울부짖었다. 내면의 뭔가를 전력으로 내치듯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꼬마야 정신 좀 차려봐! 왜 그러는 거야!”
고블린의 붉은 눈동자가 호박색으로 교차되어 변해갔다. 차츰 정신을 되찾는 듯 했지만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진득한 살기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쿠샨은 고블린의 허점을 틈타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무기로 공격해봤자 그 데미지가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라 판단하고 무기를 검집으로 도로 넣고 소리쳤다.
“레이나. 더 이상 기다리는 건 무리다. 이놈을 죽여야 한다.”
반사와 즉사면역이라는 무적의 특성을 깨트리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에서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것이었다. 꼬마를 상대로는 맨 주먹이 특효약이라는 뜻이다.
“하, 하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꼬마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꼬마는 내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인사정도는 하게 해줘.”
레이나가 어수선한 마음을 추스르고 마음을 굳게 붙잡았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꼬마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감수해야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쿠샨의 생각은 달랐다. 고작 몬스터 따위에게, 하물며 고블린이라는 하층 몬스터를 위해서 목숨을 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짧게 해라.”
“응.”
레이나는 꼬마에게로 다가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자 꼬마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자꾸만 왜 피하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잖아 우리······ 오랜만이잖아.”
레이나가 손을 뻗어 고블린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살짝 돌렸다. 서슴없이 다가온 레이나의 행동에 깜짝 놀란 꼬마가 몸을 움츠렸다.
“푸흐으······ 레······이나?”
“그래 나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몬스터가 말을 하다니? 쿠샨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와 인간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저 둘은······.’
서로 괴로워하고 있다. 레이나도. 고블린도 괴로움에 울고 있다. 꼬마가 제정신을 차린 것은 극히 일순간. 언제 또 광포화 할지 모르고 고블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 거다. 또한 그 사실을 레이나가 모를 리 없다.
레이나는 꼬마를 한번 포옹해주고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 그동안 열심히 살았구나.”
“레이나······. 레이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어쩌다가!”
“레이나. 나. 죽여. 줘.”
고블린은 한계에 임박한 듯 힘겨워 하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의식이 날아가고 분노로 미치광이가 되려고 했다. 이성을 잃는 순간 레이나를 죽여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꼬마는 노심초사하면서 전력으로 정신을 붙들어 맸다.
“죽여. 줘!”
“꼬마야······.”
레이나도 꼬마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전력으로 참아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안다.
‘미안해.’
레이나는 고블린으로부터 떨어졌다. 멀어지는 손끝에서 애절함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걱정해주던 내 친구. 정말로 이렇게 강해져서 내 앞에 나타나준 내 친구.
“크아악!”
꼬마의 눈이 한 순간에 돌변하더니 본래의 포악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납게 일어난 이빨과 새빨간 눈동자. 부풀어 오른 팔 근육은 도저히 고블린의 것이라고 보기어려웠다. 고블린이 곡괭이를 높이 치켜들고 레이나에게 달려드는 순간,
“미안해. 꼬마야.”
레이나가 눈물을 흘리며 인사하고 그녀의 뒤에서 주먹을 움켜쥔 쿠샨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은 대화할 시간도, 기회도 없었기에 그녀는 그저 두 눈을 감고 기도할 뿐이었다.
퍽! 콰악! 콱!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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