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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185화 (185/202)

Master Smith (185)

전투는 끝을 모르고 지속되었다. 양 세력의 병력은 각각 50%씩 줄어있었고 인간의 대항은 처음보다 수십 배 거칠어졌다.

“쿠샨님 마족들이 더 이상 진화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의 힘이 바닥을 드러낸 모양입니다!”

멀리서 모험가들을 지원하던 게르덱이 카스티바와 함께 달려와 쿠샨과 합류했다.

“방심하면 안 된다. 마족은 마족. 한 마리를 잡는데 여전히 5명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것은 변함없어. HP, MP관리에 충실하면서 싸워라.”

“맞는 말이야. 마족은 여전히 많아 게르덱.”

카스티바는 물밀 듯이 치고 들어오는 마족을 보면서 지긋지긋한 표정을 지었다. 왕실 마법사가 워프 게이트의 위치를 임의로 제어하는 덕분에 예기치 못한 위치에서 마족이 쳐들어오지 않았지만 물량만은 여전히 큰 위협이었다.

“다행히 고블린들이 큰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마족에게 따닥따닥 붙어서 놈들의 공격을 확실하게 유도하고 있단 말이······죠?”

고블린? 그러고 보니 고블린이 왜?

뜬금없는 고블린 무리에 당황한 게르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가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다.

“소문의 고블린이 등장했다. 케르드와 함께 말이지.”

“그 남자가 고블린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단 말입니까?”

“일단 아군이다. 너무 경계하지 마라. 게다가 고블린 중에 소수는 바드의 장비를 착용한 모양이다. 고블린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녀석들이다.”

게르덱은 놀라움을 한술 더 떠서 얼굴에 펴 발랐다. 바드가 제작한 장비를 고블린이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던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지금은 고블린들이 만든 기회를 잡아야한다. 그리고 잠시 후 케르드가 이끄는 허갤 무리들과 10인의 공작. 그리고 사천왕이 도착할 거다. 엠페러길드의 모든 전력이 집결할 테니 꽤 싸워볼만 하지.”

쿠샨의 반가운 소식에 카스티바와 게르덱의 얼굴이 폈다. 막강한 마족을 상대로 장기전은 불리하다. 이제껏 모험가들과 용병들이 잘 싸워주고 있지만 그들도 인간. 체력적으로 한계에 몰리면 반드시 실수가 일어나고 그것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수만에 달하는 엠페러길드의 전력이 더해진다면 승기가 거의 넘어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레이나님은 어디계시죠?”

레이나님이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사벨라님하고 같이 있었을 텐데? 어디서 다른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걸까?

“레이나라면 전장 한복판에서 뛰어다니는 걸 봤어. 부상을 입어서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 같던데······.”

카스티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쿠샨의 얼굴은 삽시간 만에 사색이 되어서 크게 소리쳤다.

“사제가 홀몸으로 전쟁터 한복판을 뛰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 없이 목숨이 위험한 싸움터로 뛰어나가다니? 아무리 바드가 제작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더라도 사제는 사제. 전투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확실히 뒤떨어진다.

“이사벨라도 같이 있다고 했나? 아무튼 둘 다 위험한 상황이군.”

당장 찾으러 나가봐야겠다는 쿠샨의 어깨를 붙잡아 불러 세운 사람은 게르덱이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전장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며 말했다.

“그,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기 레이나님이······.”

터덜터덜 들판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걸어오는 레이나.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그녀의 옷 군데군데가 핏자국들로 가득했다.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일단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의의를 둔 카스티바는 가슴을 쓸어내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레이나!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혼자서 너무 깊숙한 곳 까지 들어갔잖아! 위험한 상황이었다구!”

“미안. 그보다······.”

레이나는 복잡 미묘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족에게 살해당할 뻔한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오랜 가족이자 친구, 그리고 언니였던 이사벨라의 정체가 자꾸만 가슴을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카스티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사벨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을 확인했다.

“이사벨라는 어디 갔어?”

“이사벨라는······.”

뭐라고 말해야하지? 그녀의 정체부터 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가 사라진 것부터?

“이사벨라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사벨라가 돌아오지 않다니?”

옆에서 듣고 있던 쿠샨이 레이나의 아리송한 말에 대답을 재촉했다. 그의 불같은 성화에 못이긴 레이나가 이사벨라의 정체를 거짓 없이 실토했다.

“이사벨라님이 마족이었단 말입니까? 악마라고요?!”

“믿기 힘들어. 이사벨라가 지금까지 우릴 속여 왔다는 거야?”

레이나는 어떻게든 이사벨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었고, 마족이라도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드원을 속인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딱히 피해를 본 것은 없다.

레이나보다 한발 앞선 쿠샨이 레이나가 생각한 주장을 어긋남 없이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사벨라가 마족이든 아니든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사벨라가 레이나를 살려준 것은 사실이고 그녀가 우리를 위해서 노력해온 것도 맞다. 갑자기 떠난다니 실망감이 크겠지만 지금은 이해해 줘라.”

“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냥 조금 놀라서······.”

게르덱이 단안경을 고쳐 쓰고는 헛기침을 날렸다. 아무튼 전쟁이 터지니까 놀랄 일이 많아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쿠샨은 냉정한 목소리로 칼을 뽑아들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뭉쳐서 싸워 볼까? 멤버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다들 감각은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미호와 바드가 없다. 가장 든든했던 두 사람의 전력이 없다. 하지만 쿠샨은 자신의 투지를 꺼트리지 않고 정면의 마족들 사이로 돌진했다. 뒤따라 다른 멤버들까지 따라붙었다.

***

“크윽! 마족에게 포위됐어.”

“포기하지 마! 고블린들이 어그로 수치를 상당히 끌어올리고 있어! 놈들이 방심할 때 달려 나가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 다리가······!”

방패기사의 리더가 다리를 잃고 쓰러진 동료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혼자 전력으로 뛰면 도망칠 수 있겠지만 한명을 업고 뛰는 것은 무리였다. 다리를 잃은 방패기사 일원은 리더에게 외쳤다.

“어서 가! 나는 가망이 없어 HP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죽어버린 다른 동료······ 그 친구들한테 가는 것뿐이니까······.”

리더는 도저히 도망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건 자신의 신념에선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살자고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잖아.

“으아아아! 누구 없어!? 제발 도와줘 젠자아아앙!!!!!!!!!!!!!”

방패기사단의 리더가 괴롭게 울부짖었다. 그가 착용한 방패의 내구도는 파괴 직전까지 이른 상황. 더 이상 리더 혼자서 마족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엎드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모종의 외침이 방패기사의 귀에 꽂혔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리더는 기적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일순간 그의 머리위에서 강력한 전격마법이 곧게 뻗어나가 마족의 안면을 강타했다.

리더는 전신의 털이 빠릿빠릿 곤두서는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살았다는 안도감이 교차되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레이나 부상자에게 회복주문을 부탁한다. 정 필요하면 HP포션이라도 먹여! 방패기사는 큰 전력이다. 이런데서 잃을 수 없어!”

쿠샨의 사무적인 오더. 레이나는 인벤토리에서 회복포션을 꺼내들고 다리를 잃은 부상자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HP가 회복됩니다.》

“······당신들은?”

힘겹게 포션을 들이킨 부상자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말했다.

“지원 왔어. 방패기사단 길드맞지?”

“저희는 이제 됐습니다. 동료들도 잃었고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요. 저희의 방어술 때문에 특별히 구하러 오신 거라면 사양이란 말입니다······.”

“방금까지 도와달란 사람이 자존심 세우기는.”

레이나는 초치유 마법을 영창하고 쓰러진 기사의 상처를 치유하며 단답했다.

“단지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발견한 것을 도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자존심 있으면 꼴사납게 죽지 말고 온몸이 부서질 때까지 싸우다가 죽으란 말이야. 내가 치유해도 가망이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라 싸우라고.”

특별하고 자시고 간에 위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일단 위기해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돕고 보는 것뿐이다.

“HP는 거의 회복 됐어. 출혈도 멎었고. 당신이 리더지? 이 남자 부축해서 안전 에어리어까지 도망쳐. 체력을 회복하는 대로 전장에 복귀하고.”

레이나가 가리킨 방향에는 마족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어있었다. 방금 전 소리친 남자. 그리고 전격마법을 날린 마법사. 그리고 또 한사람의 여검사가 그 많은 마족의 포위망을 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세 사람이 10마리에 가까운 마족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가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족의 공격을 한 몸으로 받아내면서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그 틈에 붉은 머리의 여검사가 화염을 휘감은 롱소드를 거침없이 휘두르더니 마족의 몸을 사정 봐주지 않고 갈라버렸다.

“저들은 진정 사람이란 말인가?”

국왕군 친위기사가 다섯 명이 붙어도 겨우 물리칠까 말까한 마족을 어떻게 하면 저런 식으로 소탕한단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가디언 스트라이크!”

쿠샨의 등 뒤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드러난다. 황금의 투구와 갑옷을 착용한 근육질 거인은 4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고 각각의 팔들로 마족의 몸을 단단히 붙들었다.

마족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자, 게르덱의 폭렬마법이 정통으로 작렬했다.

“파이어 에로우!”

그의 정면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뜨거운 불화살들이 수십 개씩 날아갔다. 평범한 파이어 에로우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와 크기였다. 공중을 불태우는 화염의 일격이 마족의 가슴에 거침없이 박혀 들어갔고, 놀랍게도 마족은 빈사상태가 되었다.

“끄워어어억!”

“라스트!”

게르덱의 신호에 맞추어 카스티바의 연계공격 시작. 마족의 가슴에 남아있던 불꽃이 카스티바의 검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서 MP를 불태웠다.

“저지먼트 블로우(Judgment blow)!”

뜨거운 화염기둥이 그 자리에 하늘높이 치솟아 올랐고 마족의 정수리부터 가랑이 사이까지 새까맣게 그을려버렸다. 그 결과 마족의 전신이 한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마족의 체력은 단번에 제로(DEATH)지점으로 추락했고 그제야 빽빽하던 포위망이 시원하게 뚫렸다.

레이나는 방패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달려!”

끝으로 레이나는 속박(shackle)마법으로 뒤따라오는 마족의 발을 묶었다. 그 역시 한 두 마리 속박하는 마법이 아니라 반경 20미터에 위치한 모든 마족이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이 은혜는······.”

“다시 전장에서 만나자.”

레이나는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다. 그녀는 마족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고 그녀의 동료들도 어느 틈에 그녀의 곁으로 돌아가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봐 친구.”

“왜 그래? 리더······.”

“죽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전쟁을 반드시 승리하게 만들 거야.”

다리를 잃은 방패기사는 씨익 웃으며 나지막하게 한 소리했다.

“당연한 거잖냐.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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