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79)
턱 끝까지 차오르는 압박, 현기증을 유발하는 소음, 온몸을 죄여오는 갑옷덕분에 몸에 멀쩡한 부분이 없다. 갈비뼈는 너덧 대가, 팔과 다리도 똑똑 부러졌고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마디마다 힘줄이 끊겨나갔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나리라 생각할 무렵. 이젠 환청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 이 버러지 같은 남정네!”
목소리 톤이 꽤 앳된 목소리다. 성질이 괴팍하고 공격적인 말투다. 여자애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지는 건 처음 알았다.
빠드득! 카칵! 카칵! 우드득!
아, 이번엔 골반이 틀어졌다. 온몸이 전부 부서진다. 감각마저 사라지는 것 같다. 몸이 상하는 것도 이내 멎어들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잠깐 쉬는 타임이라 생각하고 숨을 돌릴 무렵,
“야! 너 뭔데 여기에 들어왔냐?”
“······그러는 너는 누구지? 라그나로크에 잠든 정령이라던가 그런 유치짬뽕 전설 같은 존재는 아니겠지?”
“이, 이게! 매운맛을 더 봐야 정신 차리지!”
와드득! 하고 오른팔이 한 바퀴 휘익~ 꺾어지더니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렸다. 이젠 느낄 고통도 없어서 별 다른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 꼬맹이.”
“내가 꼬맹이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
“쓸데없는 저항 그만두고 내꺼 해라. 널 만든 것도 나다. 이게 부모 무서운 줄 모르고 말썽쟁이마냥 날뛰어? 혼나볼래? 또 파괴당하고 싶어?”
딱히 엄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혼낸 것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오들오들 떨리더니 이내 하늘이 무너져라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극, 우아앙! 자, 잘못했쪄여! 으아아앙~!!!!”
“으악! 입 다물어!”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귀를 틀어막고 싶어도 만신창이로 망가진 팔을 어찌 움직여볼 엄두가 안 났다.
“흐아아아앙~!!!!”
“그, 그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울음 뚝!”
나의 간절한 소망이 닿았는지 그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제야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모습부터 드러내. 얼굴보고 이야기 하자.”
“훌쩍! 네에.”
목소리의 주인이 코를 훌쩍이며 내 말을 수긍했다. 잠시 후 어둠속에서 검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 안에서 인간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붉은색계통의 차림새였다. 검은색 프릴이 달린 레드드레스와 새빨간 장미가 달려있는 머리띠를 하고 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진한 흑색 생머리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동자는 진한 흑진주 같았다. 미모라면 두말할 것 없는 미소녀.
‘랄까······. 예상대로 어리군.’
앳된 미모가 그런 느낌에 악센트를 주었다. 끽해야 17살~18살. 그마저도 평균보다 정신연령이 낮아 보인다.
“이름은?”
“라그나로크.”
그녀가 내 얼굴을 보더니 딸꾹질을 하고는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에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가 놀라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말했다.
“바드라고 한다. 대장장이야.”
“대장장이?”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흥!”
“왜, 왜 삐지는 건데?”
“대장장이 싫어! 만날 만들어놓고 파괴만 하고······. 완전 자기들 멋대로야. 바드도 날 파괴했잖아?”
왜냐하면 그때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주변의 마족들이 몇 배는 강력하게 변이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너잖아?
폐부를 찌르는 곳을 지적하자 라그나로크가 풀죽은 얼굴로 울먹였다.
“하지마안······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서 신난 것뿐이란 말이야. 그냥, 그냥 기분 좋아서 그런 것 뿐인데에······.”
그런데 또 파괴당해서, 억울하고 슬펐단 말이야······.
나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녀를 노심초사 하며 달래주었다. 또 울음보를 터뜨리면 고막이 찢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한폭탄 같은 녀석. 잘못다루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겠어.’
나는 라그나로크 머리위로 손을 얹었다. 마족이 된 이후로 회복속도가 크게 상승한 탓에 부러진 뼈와 살이 멀쩡히 붙어있었다.
“미안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소릴 해버렸군.”
“으흑······! 흐규흐규······ 우으으······. 흐끅!”
“네 힘이 필요해. 날 위해 함께 싸워줄 수 있겠어?”
“······내 힘?”
단순히 기분 좋다고 막무가내로 폭주시킨 마기가 방금 전 수준이라면 그녀가 진지하게 싸울 때 발현하는 마기는 어느 정도일까. 상상을 초월하는 구역이다. 내 회복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막심한 데미지까지 입힐 정도면 그녀의 힘은 불가결한 요소다.
“그럼 나 파괴 안 시키는 거에요?”
“물론. 나도 네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와아~ 정말요?”
잠깐, 기쁘다고 또 폭주하면 곤란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란 뜻이다.
“이제부터 나랑 친구할까?”
“친구요? 제가요? 그래도 되요? 진짜요? 무슨 친구요?”
아아, 성가신 녀석. 생각보다 난해하고 불편한 녀석이다. 그래도 성격 자체는 삐뚤어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말 좀 해봐요~ 네? 무슨 친구요?”
“에······. 아저씨랑 비밀친구 할까?”
아직 꽃다운 20대에 나를 아저씨라고 소개하다니, 정정하자.
“아저씨 말고 오빠로 하자. 오빠라고 불러.”
“아저씨?”
“오빠.”
“아저씨!”
관두자 관둬. 소귀에 경 읽기다. 우선 정체모를 이곳에서 빠져나가는게 우선이다.
“여기서 내보내줘.”
“진짜 나 파괴하는 거 아니죠?”
“널 파괴할 이유가 없어. 네 힘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너 정말 강한 거 맞냐? 영 못 미더운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힘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샨드를 대적할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외견과 행동거지에서 그런 대단한 힘이 있으리란 생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하죠! 잘 보라구요!”
일렁이는 어둠의 공간이 스멀스멀 물러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물러간 시야 속에 들어온 것은 쑥대밭이 된 지형지물이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구덩이가 움푹 파였고 곳곳에 잡템들과 실링이 떨어져있었다.
8서클에 달하는 대마법을 집중포화한 것이 아니라면 이만한 파괴는 가능치 못할 터였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는다.
“드디어 정신이 들었어?”
“라두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내 목덜미를 끌어 안았다.
“이거 전부 네가 한 거야 바보.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몬스터들을 작살내더라? 금방 돌아오겠다면서 이렇게 걱정 시키면 어떻게!”
“이틀 동안? 곧바로 정신 차린 것 같았는데.”
《라그나로크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총 6개의 속성으로 클래스를 변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능력은 장비를 확인해 주십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늦게나마 이런 알림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그동안 개고생한 보람을 톡톡히 치르는 것이다.
“아저씨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소리 없이 등장한 소녀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질문했다. 나는 낯이 익은 그녀의 모습에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너?!”
“뭐, 뭐야 얘는? 설마 라그나로크에 깃들어있는 정령이야?!”
라두스가 눈을 반짝이며 라그나로크를 껴안아 올렸다. 라그나로크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부웅~ 올라가는 것이 신이 났는지 입을 작게 벌리고 해맑게 웃었다.
“와아~ 높다 높아아~”
“몇 살이야? 진짜 이쁘다 너~”
“천오백 살인데? 언니도 무지 예뻐!”
라그나로크가 라두스의 이마를 가볍게 토닥였다.
“아하하! 이애 너무 귀엽다. 좀 더 해봐.”
“이렇게요오?”
토닥토닥토닥토닥토닥토닥토닥토닥.
라그나로크의 리드미컬한 이마 두드리기.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공감대를 만들어 친자매라도 된 마냥 서로를 껴안았다.
나는 라그나로크를 바라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왜긴요~ 아저씨가 내 힘을 완전히 해방시켰으니까 당연하죠. 모처럼 바깥 공기니까 실컷 마셔둬야지. 고마워요 아저씨!”
라그나로크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는 금방 빠져나갔다. 라두스는 그런 라그나로크와 함께 힘껏 심호흡하기를 반복했다.
묠니르와 비슷한 상황인가? 대단한 골칫거리를 하나 더 붙이고 만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묠니르는······.’
토르가 죽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거지? 묠니르는 미호가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저씨 몸은요?”
“멀쩡하다.”
마족의 힘을 흡수했길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단순한 중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나를 그 꼴로 만든 것에 대해서 찔리는 것이 있는지 걱정이 태산 같다.
“가끔씩 나와도 되요?”
그걸 왜 나에게 허락을 맡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싱겁게 끄덕였다.
“라두스. 라그나로크 데리고 잠깐 들어가 있어.”
“혼자 있고 싶구나? 너는 저런 거 닮아 가면 안 돼! 저러면 왕따 되기 십상이거든.”
두 사람은 냉큼 그림자 안으로 꽁무니를 뺐다. 나는 착용한 라그나로크의 능력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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