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78)
몬스터와 조우했다. 키가 크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못생긴 트롤이었다. 녀석은 수분기 없는 백색 털을 올올이 뻗히며 긴 팔로 나를 노렸다.
“부워어억!!!!!!!!!!!!”
“왜 그렇게 화가나있는 거냐.”
몬스터의 감정 따위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마는 난데없이 기습이라. 나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나는 트롤의 긴팔을 줄넘기하듯 가볍게 뛰어넘고는 그 팔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트롤은 곧바로 거친 포효를 터트리며 눈알을 부라렸고 그 즉시 보이지 않는 투기가 내 몸을 덮쳤다.
몬스터 레벨200이상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특수스킬. 몹 스킬(Mob skill). 트롤의 레벨이 230이기에 가능한 특수패턴이었다. 스킬명은 워 크라이(War cry). 말 그대로 기똥차게 함성을 내뱉는 스킬인 모양이다.
《워 크라이에 저항합니다.》
무식하게 높은 디버프 면역력 때문인가. 사력을 다한 몹 스킬을 가볍게 저항하고 말았다. 녀석도 의외로 멀쩡한 상태인 내 모습이 의외였는지 낮게 신음했다.
“가만히 있을 거냐?”
“부와아악!!!!!!”
트롤이 자신의 팔을 강하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나를 떼어낼 속셈이겠지만 소용없다.
“쓸데없는 저항이군.”
퍼억! 퍼억!
나는 손가락을 펼쳐 트롤의 머리통을 겨냥한 뒤에 마기를 쏘아 날렸다. 탄환처럼 튕겨 날아간 마기탄은 트롤의 이마와 눈을 빠르게 꿰뚫었고 이어서 머리통을 통째로 분쇄시켰다.
순식간에 HP를 전부 손실한 트롤은 피떡이 되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질펀하게 다져진 육고기에서 잡템과 실링이 떨어졌다. 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늘어진 하품을 연발했다.
‘이틀이 지났는데 라두스 녀석은 뭐하는 거야?’
몬스터를 상대로 몸을 푸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약한 놈들뿐이라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 뿐이다. 이래선 몸 풀기는커녕 있던 실력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몬스터 둥지라도 찾아봐야하나.’
몬스터가 몰려있는 몬스터 둥지라면 적게는 10마리. 많게 30마리가 몰려있다. 운 좋으면 전리품에서 대박을 낼 수 있을 테니 심심풀이 땅콩은 될 거였다.
《화염장착 스킬을 활성화 합니다.》
온몸에 주홍색으로 타오르는 화염을 두르자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내 입장에선 조금 따듯해진 정도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분신자살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살기를 감지했습니다.》
몬스터의 접근을 감지했다. 이번엔 어떤 녀석이 걸려들었을지 내심 궁금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부근의 몬스터들의 레벨은 300을 넘기지 못했으니까.
“또 트롤인가.”
서너 마리쯤이 동시에 등장했다. 나는 주먹을 아무렇게나 들어 올려 전투를 대비했다. 그 사이에 투지를 맹렬하게 끌어올렸더니 트롤들은 금방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 쳤다. 내가 트롤들에게 다가서자 그들은 화염장착 스킬에 데미지를 입어 중상쯤 되는 상처를 입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 도망쳐?”
생각해보니까 화염장착 스킬 때문에 주변에 10%의 고정피해를 입힌다. 추가적으로 화상 데미지가 적용되었을 테니 놈들도 따끔한 맛을 봤을 거였다.
“이젠 내 주변으로 오지도 않겠다는 건가.”
나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서 도망치는 트롤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눈앞까지 가까워진 트롤의 엉덩이 털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촤라라라락! 추르륵!
바닥에서 긴 촉수 비슷한 것이 튀어나와 내 몸을 휘감았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은 보라색 촉수였다. 초록색 반점이 그려진 것을 보니까 플라위 레이디라는 식물형 몬스터가 틀림없었다.
이동불가 몬스터. 평소에는 식물처럼 잠자코 있다가 그 위를 지나가는 생물을 붙잡아 먹는 괴팍한 몬스터다. 다른 이름으로 지옥트랩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플라위 레이디는 LV.280이라는 꽤 높은 레벨을 자랑하고 있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촉수 힘도 강하고 찐득찐득한 액체엔 환각물질이 발려있어서 평범한 모험가들에겐 치명적일수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평범한 모험가는 아니거든.”
트롤 녀석들. 머리 좀 썼다. 플라위 레이디를 이용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멀리서 내 꼴을 지켜보던 트롤 두세 마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단순 근력으로 플라위 레이디의 촉수를 끊어버렸다. 이런 전개는 생각도 못했는지 플라위는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잘려나간 촉수를 심하게 꿈틀 거렸다. 나는 플라위의 꽃봉오리 주먹을 때려 박았다.
“고약한 똥냄새군.”
라플레시아의 모양과 흡사한 꽃봉오리가 녀석의 머리통. 어쩌면 라플레시아가 몬스터로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플라위 레이디는 내 꿀밤에 HP를 전부 소진하고 몇 천 실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것은 나를 엿 먹인 트롤에게 응보를 내리는 것뿐이다.
“부워어어?”
“붜억! 붜어엉!”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챘는지 녀석들이 뒤뚱뒤뚱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 가!”
나는 팔을 뻗어서 마기를 발산했다. 데모닉 스킬 패시브인 《마기제어》로 상당한 힘을 억제한 공격이었지만 반경 30미터 일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하고 말았다.
‘라두스의 심정이 이해가 가네.’
이렇게 장대한 힘을 가졌으니 뭐든 파괴해버리고 싶었겠지. 힘을 주체하는 것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각설하고 몬스터를 양껏 두들겨 패는 시간도 여기까지. 라두스에게서 드디어 소식이 왔다.
“끝!”
“그림자 안에서 잘도 그런 실험을 하는군. 네 집 안방이 아니라는 것만 잊지 마라.”
“헹~! 나 말고 이곳에 거주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너무 쩨쩨하게 굴지 말란 말이야! 만에 하나 침입자가 있다면 이 몸이 몸소 쫓아내 주겠어!”
“내 그림자를 노리고 들어오는 녀석은 너밖에 없지만.”
나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유리병을 가로챘다. 이 유리병 안에 담겨있는 액체가 이번에 개조된 생명수이리라.
“사용 방법은 간단해. 파괴된 오브젝트에 생명수를 떨어트리면 끝. 한 방울씩 사용하는 점 잊지 말고! 복구 확률도 5%정도 증가시켰어.”
“5% 증가라니? 처음부터 성공확률은 몇 이였지?”
“50% 정도? 운이 안 좋으면 두어 방울 떨어트려야 했어.”
그렇다면 지금은 55%라는 소리가 된다. 절반보다 높은 확률이니 나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거다.
“고맙다.”
“후훗~ 그거 알아? 너 요즘 나한테 고맙다는 소리 자주하는 거?”
라두스가 의기양양해도 될까나~ 하고, 중얼거리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이 아니꼬워서라도 때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군.”
“아싸! 칭찬받았다!”
그녀가 어린애처럼 신나서 방방 뛰더니 검은 연기로 변해서는 내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얌전히 굴라고 말해버리면 또 의기소침 할 것 같아서 차마 돌직구를 날리지 못했다.
‘라그나로크나 복구해야겠군.’
이제부터 한껏 긴장했다. 여차하면 지난번처럼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족을 끌어들이는 것은 둘째 치고 라두스가 라그나로크의 방대한 마기에 반응해서 이상하게 변해버리면 상황이 매우 난감하니까 말이다.
“너 나한테서 떨어질 수 없는 거냐?”
“왜? 걱정돼?”
그녀가 꺄르륵 거리며 내 뺨을 쿡쿡 찔러왔다.
“미안하지만 불가능해. 나는 항시 너에게 붙어있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니까. 하지만 걱정 마. 네 그림자에 숨어있으면 그때처럼 라그나로크의 마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까. 너는 라그나로크를 제어하는데 집중이나 하라고. 그리고 말이야~ 지금 걱정해야할 사람은 나거든? 너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지?”
“그림자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이깟 장비 금방 굴복시킬 테니까.”
라두스는 “아자아자!”를 연거푸 외친 다음에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검붉은 색으로 광체를 뽐내고 있는 라그나로크 파편위로 생명수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생명수가 흡수된 파편은 채도가 밝아졌다가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새카만 연기 한줌을 피워냈다.
“뭐야. 실패한 건가?”
“응. 그런갑네.”
라두스가 쿡쿡 거리며 비웃었다. 하여간 이놈의 확률싸움. LUK스텟이 높았다면 결과가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라두스의 머리를 꾹꾹 눌러서 그림자 속으로 억지로 우겨넣었다.
“잠자코 들어가 있으래도!”
“네네네~”
나는 파괴된 장비파편에 재차 생명수를 떨어트렸다.
푸쉬식~
보기 좋게 실패했다.
“······.”
“풋!”
“너 확률 조성 실패했냐? 솔직히 말해.”
“메롱이거든? 자기가 운이 나쁜 걸 누굴 탓해?”
라두스는 된통 혼이 날까 두려워 그림자 속으로 냅다 숨어들었다.
“야! 이리 안 나와!”
묵묵부답이다. 나는 끓는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한 번 생명수를 사용했다. 이번이 세 번째 시도다.
‘설마 또 실패하겠나. 55%면 두 번에 한 번은 성공할 거 아니야.’
이번엔 장비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푸쉬식~
“으아악! 씨X!”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포효했다. 55%확률의 싸움에서 3연패? 인정하기 싫지만 운도 지지리도 없다.
정신이 탈탈 털린 바드는 그 뒤로 4번의 실패를 이어서 맛봐야했고 보다 못한 라두스가 생명수를 사용하자 거짓말처럼 성공했다.
“난 숨어있을게~”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야!”
내 절규와 함께 파편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형체를 잃은 라그나로크의 형상을 복구하고 있었다. 온전한 모습으로 복구된 라그나로크 세트가 지엄한 자태를 풍겼으나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상황이 급변했다.
푸화아아아악─────!!!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마기군.”
나는 라그나로크 세트를 터치 한 뒤에 장비를 착용했다. 그 즉시 상상 못할 고통이 심장과 뇌를 관통했다. 거대한 말뚝이 심장에 박히고, 거대한 망치가 뇌를 깨부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오로지 깡으로 버텨냈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끈적한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도전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족의 뿔이 시큰시큰하게 아려왔다. 라그나로크가 온힘을 다해 내 존재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빠지직!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피를 토했고, 한 순간 초점이 흔들렸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라그나로크의 마기를 억눌렀다. 라그나로크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당장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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