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69화 (169/202)

Master Smith (169)

도망칠 구멍이 없다. 상대가 누구든 맞서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다 목숨을 잃으면 받아들여야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상공에 떠오른 정체불명의 그림자에게 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당히 맞서 싸우다가 죽어나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눈앞에서 잃어나간 생명의 불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인간계.”

차원을 넘어온 아샨드가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깊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본래라면 수십 년 전에 이곳을 지배했어야 했을 텐데 그 계획이 이제야 이루어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계획이 변동되었다만 아무렴 어떤가? 결국 뜻을 이루었거늘.’

미미한 시간오차가 있었을 뿐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는 방해할 존재가 아무도 없다. 가장 걸림돌이었던 토르를 죽였고 자신은 신을 넘어선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마족을 위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럼 마왕 아샨드의 완전 부활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려 볼까? 우선 눈앞의 도시부터······.”

그의 붉은 피부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이윽고 그의 팔에서 검디검은 마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하나의 점을 형성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마그르스를 통째로 소멸시킬 생각인지 그는 힘을 끌어 모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간만에 날려보는 흑(黑)이군.”

아샨드는 공격준비를 마치고 처연한 눈으로 수많은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몇 초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들을 애도하며 거무죽죽한 미소를 흘렸다.

“죽어라.”

그 순간 아래쪽에서 푸른 불꽃 창이 튀어나와 그의 목을 꿰뚫었다.

“피할 가치도 없는 공격이로군.”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불꽃의 창을 맨손으로 바스러뜨렸다. 바람구멍이 난 목덜미는 순식간에 피부를 재생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모습을 갖췄다.

아샨드는 손에 모아둔 마기를 잠재우고 천천히 지면을 향해 활강했다.

“이, 이봐!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있어!”

“마법인가?”

마을주민들은 아샨드를 에워싼 채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봐도 그의 모습은 인간과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아니었고 엘프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수인족이라고 하기에는 꼬리와 뿔, 그리고 창백한 피부색이 알맞지 않았다.

‘정체가 뭐야?’

모두가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에 아샨드는 주위를 둘러보며 방금 전과 동일한 마력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마냥 아샨드 앞으로 다가가는 존재가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동물새끼로군.”

“······당신이 누군지 알아.”

미호가 싸늘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주변은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육중한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아샨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왕. 주인님을 휘말리게 한······. 너는 적이야. 그러니까 죽여 버리겠어.”

아샨드는 의외라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히죽거리는 얼굴로 질문했다.

아등바등 발버둥 쳐도 모자랄 판에 선제공격에다 도발까지 하셨다? 당돌해서 마음에 든다.

“넌 뭐하는 자식이야!”

“마족인거냐? 썩 꺼지지 못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을주민들이 하나둘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한 마디가 생에 마지막 외침이 되리라곤 그들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퍼억. 퍼억.

다수의 두부가 난데없이 터졌다. 머리를 소실한 빈 상체가 몸을 떨면서 핏줄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모두 도망쳐! 도망······”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광장 안은 삽시간에 핏빛 축제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뒹구는 머리통과 맥없이 주저앉는 상체들로 가득했다. 지면은 짙은 진홍색 물로 흥건해졌다.

아샨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의 살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신의 낫이 되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그 살기는 플로스티아 길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첨예한 낫이 카스티바에게 향했다.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녀는 멍하니 광장안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음이 그녀의 목을 지나가려는 순간······,

“카스티바!”

카앙! 까드드드드······.

푸른 벽안의 눈동자를 불태우며 발돋움한 미호가 황금빛의 월광창을 꺼내들고서 마왕의 공격에 대응했다. 최대출력의 마력을 두른 월광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호의 손아귀에서 붉은 피가 배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윽······!”

“미, 미호?! 갑자기 왜 그래?”

상황을 알 턱이 없는 카스티바였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튄 미호의 혈흔에 당황했다. 다행이라면 게르덱이나 이사벨라가 현재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사벨라는 사람들을 베어 넘기는 낫들을 회피하며 쿠샨과 카스티바에게 소리쳤다.

“날 따라와! 이곳은 위험해!”

“카스티바님! 어서 가죠!”

두 사람은 플로스티아 길드원을 이끌고 서둘러 마그르스를 서쪽문으로 향했다. 이사벨라의 손에 끌려가는 카스티바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미호는? 미호를 두고 갈 셈이야? 걔 다쳤단 말이야!”

미호는 뒤돌지 않고 대꾸했다.

“저 녀석 내가 죽일 거야. 어서 마그르스를 빠져나가.”

“녀석과 대적하겠다는 거야?! 정체도 모르는 녀석한테 목숨을 걸 필요 없잖아!”

카스티바가 칼을 뽑아들으려 했으나 미호의 묘한 위압감에 쉽사리 그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제야 그녀가 상황을 이해했다. 미호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차원이 다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험하면 알아서 빠져나갈 거야. 그러니까 어서가.”

녀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내게는 있어.

“쓰레기가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군.”

“남이사.”

미호가 광장 안을 쓱 둘러보고는 한 마디 했다.

“자리를 옮겨달란 부탁은 무리려나?”

“바란다면.”

아샨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의적으로 나왔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미호와 아샨드는 순식간에 외딴섬 어딘가로 공간을 이동했다. 미호가 깜짝 놀라 당황하는 사이에 아샨드가 입을 열었다.

“나는 마왕 아샨드. 마계의 왕이다.”

“바드는 어딨어?”

“바드? 무슨말인지 모르겠군.”

“토르를 소환한 장본인 말이야!”

“묠니르가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그녀는 한낱 도구 따위였군. 그녀를 사용한 멍청한 인간이 있었다는 소린가. 유감이군 나는 토르와 싸우느라 다른 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네가 말하는 쓰레기가 어떤 쓰레기인지는 몰라도······.”

미호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바드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깊게 생각하지 말자. 주인님은 살아있어. 분명 언젠가 나타나줄 거야.’

“쓰레기. 네 이름이 뭐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잠시 후 인간계를, 온 세상을 손안에 넣게 된다. 내손에 죽는 쓰레기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미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연의 어둠보다 훨씬 어둡고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설화. 그게 내 이름이다.”

“괜찮은 이름이군. 그럼 이만 죽어라 쓰레기.”

미호와 아샨드의 힘은 1초도 되지 않아서 폭주하듯 넘치기 시작했고 두 기운은 거친 충돌을 일으키며 돌풍을 만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모습은 시야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진 밀림지대가 강력한 폭발에 휘말리고 그 일대가 초토화 되었다. 허리가 부러진 나무가 바닥을 나뒹굴고 지형이 변형될 정도의 광범위의 기술이 허공을 갈랐다.

《흡수마공으로 상대방의 MP를 훔쳐옵니다. MP가 3% 회복됩니다.》

“하찮은 버러지가 쓸데없는 잔기술을 가지고 있군.”

MP를 빼앗긴 아샨드가 돌석상 같은 무표정으로 미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마기로 이루어진 어둠의 칼날이 총알처럼 날아가 그녀에게 빗발쳤고 미호는 황급히 여우불을 만들어 정면을 휘감았다.

‘치잇! 성가신 녀석!’

MP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여우불의 소환과 변형뿐이다. 최악인 것은 녀석에게 공격을 가할 틈이 전혀 없다는 것.

‘공격과 공격 사이에 틈이 전혀 없어. 이래가지곤 내 쪽이 먼저 체력이 떨어질 텐데······.’

1대1 상황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둘 중 누가 먼저 지치느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황은 이미 불리해졌다. 반면에 아샨드는 전혀 지쳐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여우불로 공격을 막아내길 수십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샨드의 공격은 점점 강해지고 빨라졌다.

‘이렇게 까지 상대가 안 될 줄이야!’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지만 힘의 차이가 상상이상으로 벌어져있다.

“왜 그러지? 이제 끝인가?”

아샨드는 미호의 얼굴을 철저히 짓밟아주겠다는 살기를 풍기며 등 뒤로 수십 개에 달하는 어둠의 창을 소환했다. 쉬지 않고 지면을 박차던 미호의 다리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쯤 되면 포기하고 죽는 게 어떤가?”

“지랄 짬뽕이거든. 누구 맘대로 죽으라. 마라야?”

미호가 숨을 헐떡이며 조소를 그렸다.

죽을 만큼 숨이 차다. 그리고 아프고 힘들다. 그런데 나는 왜······.

“이해할 수 없군.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의미한 싸움을 이어가려는 거지? 상대가 안 된다는 건 눈치 챘을 텐데? 아니면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죽음이 두렵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강한 상대를 앞두고 있어도······.

“그 사람을 영원히 보지 못하는 거. 그것만큼 아프고 무서운 건 없으니까.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거야.”

“인간도 아닌 주제에 약해빠진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를 이긴다고 그 사람이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더냐?”

모른다. 솔직히 말해 놈을 쓰러트려봐야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뜻이 곧 나의 뜻. 주인님이라면 반드시 당신을 깨부수려 할 거야.

“바드가 당신을 쓰러트리려 했던 것처럼. 나도 당신을 쓰러트릴 거야. 그게 다야.”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MP는 제로. 흡수마공으로 MP를 훔쳐온다 한들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승부수는 하나뿐.

“정공법으로 가주지.”

“어리석은 판단이다.”

미호는 주먹이 바스러져라 월광창을 움켜쥐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온 힘을 담았다.  설령 온몸이 찢겨나간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맞부딪칠 생각인 거였다.

“죽여주마.”

“그런걸 만용이라 부르지. 허나 그 만용. 비싸게 받아주마.”

아샨드가 양손을 활짝 벌린 채 미호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렇게 나와 주신다면 나야 고맙지.”

꽈드득─────!

온몸의 근육이 조여지면서 크게 압축했다.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자 지면이 크게 함몰되었다. 손아귀에 모여든 순수한 악력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온몸의 감각은 오로지 한 목표만을 겨냥하고 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급속도로 빨라진 혈액이 신체를 가속시키고 머릿속은 타오르듯 가열했다. 뜨거운 통증과 멈추지 않는 흥분.

“들어와라. 네놈의 전력을 보여라.”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앙!

초고속으로 도약. 고밀도의 공기압이 미호의 몸을 밀어냈다. 가히 파괴적인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나갔고 피떡이 된 몸이 강풍을 맞으며 날아갔다. 순수한 근력이 담긴 월광창의 창날은 아샨드의 심장을 향해갔다.

찰나의 순간 거리가 좁혀졌다. 창끝이 아샨드의 심장에 닿기 직전에 미호는 숨을 멈추었다.

“으아아아아아!!!!!!!!!!!!!!!!!!!!!!!!!!!!!!!!!!!!!”

퍼억.

끝을 알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툭 하고 흘러나왔다. 세상이 잿빛으로 죽어 내렸다. 나 이외에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상대라고 생각은 했지만 돌이켜보니까 너무 허무하잖아.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건 너무 무의미하잖아.

내 공격이 그의 심장에 닿는 순간 직감했다.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죽일 수 없다고,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전과 동일했다.

‘보고 싶어······. 바드.’

두 눈을 감은 그녀의 두 눈에서 조금씩 반짝이는 빛의 입자가 스르륵 새어나왔다. 그 순간 멈춰버린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고 미호의 창날은 아샨드의 심장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에 보이지 않은 충격파가 아샨드의 등을 관통해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충격은 하늘 끝까지 뻗어나가 어두운 천공에 작게나마 구멍을 내었다.

“······제기랄.”

“쓰레기 주제 나쁘지 않은 공격이었다.”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샨드의 상식에는 너무도 커다란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아샨드의 몸에서 월광창을 빼내려고 했지만 먼저 움직인 쪽은 내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마기가 내 팔을 단단히 붙잡은 것이다.

“이거 안 놔?”

“죽이기 아까운 쓰레기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주변을 가득 매운 살기는 어떻게 설명할건데? 나는 저항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목숨. 발버둥 칠 수 있을 때까지 발버둥 쳐보리라. 잠시 후 온몸을 꿰뚫는 격통이 내 의식을 강제로 정지시켰다.

푸욱! 푸욱! 퍼퍼퍽!!

“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날카롭게 융기하여 내 팔을 꿰뚫었다. 온몸이 고통으로 굳어지고 입안에서는 외마디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샨드는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로 눈을 빛냈다.

“놀아줄 만큼 놀아줬다.”

“켈륵!”

전력을 다해도 놈에겐 발톱 때만큼도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약했던 걸까? 아니면 내 전력이 닿지 않을 정도로 녀석이 강한 걸까?

‘미안해 주인님. 이렇게 헤어지기 싫었는데,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그날 주인님만 버리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푸욱! 푸욱! 푸욱! 푸욱!

마기의 창이 팔과 다리에 이어서 허벅지와 옆구리, 복부와 목을 순차적으로 꿰뚫었다.

《출혈상태가 되었습니다.》

《HP가 60% 남았습니다.》

《HP가 50% 남았습니다.》

《HP가 45% 남았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정녕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건가? 이젠 정말로 바드를 볼 수 없는 거야? 그런 거······. 진짜 싫어. 살고 싶어. 살아서 만나고 싶어.

《HP가 30% 남았습니다.》

“켈륵······! 쿨럭쿨럭!”

미호는 입안에서 한줄기 선혈을 토해내며 괴로워했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엄습해오는 고통 때문에 괴로웠다. 거대한 낫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아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뭐냐구······. 이렇게까지 아픈 거였어?’

진짜 좋아한다는 거.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거였어? 내가 이렇게 좋아하면서 그 사람의 넋을 먹어야했다면······.

만약 그래야했다면 나는 십미호를 포기했을 거야.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HP가 23% 남았습니다.》

“왜 울고 있지?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그렇게 삶에 대한 집착이 큰 거냐? 이해할 수 없군. 그렇게 살고 싶었다면 네 동료들처럼 도망쳤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저 곁에 있고 싶었어. 영원히 그의 곁에 남아서 웃고. 행복해지고 싶었어. 그게 내 꿈이고 내 삶의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죽으려니까······.

《HP가 10% 남았습니다.》

미련이 크잖아······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눈가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내 입술을 적셨다. 지난날의 짧은 추억이 플래시백 되는 것 같았다. 울고 웃고 떠들며 만들어온 추억이 가슴에 너무나도 가까이 와 닿았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렇게나 행복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HP가 7% 남았습니다.》

“······으아아······ 흐아아앙~!! 으아아아앙!!!!!”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보고 싶어.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지만 미안. 그건 안 될 것 같아.

‘미안 주인님.’

《HP가 5% 남았습니다.》

나는 그저 오열했다. 더, 더, 더욱 오열했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찢어질 듯한 감정을 격렬하게 호소하며 슬픔에 젖어들었다.

“으아아아!!! ······아아아아!!!! 싫어. 이런 결말은 싫어!”

“네가 자초한 일이다. 받아들여라.”

《HP가 3% 남았습니다.》

‘바드. 내가 이렇게까지 미련을 갖고 이렇게까지 애절해하고 있어.’

《HP가 2% 남았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을───────’

《HP가 1% 남았습니다.》

‘─────깊게 사랑했나봐.’

.

.

.

.

.

띠딕.

《YOU DIE》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당신을 만난 인연. 신께 감사하고. 죽어서도 기억할게. 그리고 사랑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당신을 사랑해.

미호의 전신이 빛의 입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주위로 아름다운 광휘가 퍼져나가고 따듯한 온기 또한 솜털처럼 흩날렸다.

그녀의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

착각?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의 존재는 무(無)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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