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65)
마계에서 생활한지 반년이 지났다. 라그나로크 제작 재료를 얻기 위해 허비한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틈만 나면 악마사냥에 나서 마계의 정수를 수집했다. 악마들의 힘은 가히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극한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방면에, 진절머리 날 정도로 죽지 않는 녀석도 있었다. 특히 라두스가 경계하라고 했던 10의 악마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동안 눈곱만큼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라두스 본인의 말로는 자신 보다 훨씬 하수라고 했으니 말이다.
한번은 라두스에게 말했다.
“도대체 넌 뭔데 다른 악마들과 다르게 비상식 적으로 강한 거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태생부터 강한걸 어쩌라고.”
나는 그녀 본인조차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내 안에 깃들었다고 결단을 내렸다.
아무튼 악마의 숫자를 꽤 많이 줄여놨으니 뒷일이 많이 편해졌다. 더욱이 그동안 흡수한 마계의 정수덕분에 내 힘도 상상이상으로 상승했다. 데모닉 스킬을 사용할 때 필요한 마기의 양이 극소량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은 한없이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산봉우리 하나쯤은 가뿐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빌어먹을 재료도 다 구했겠다. 어디 한번 만들어 볼까?”
“······.”
라두스를 흘끔 바라보았지만 반응은커녕 내 말은 조금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저 상태. 이유라면 지난번 일이 원인이리라.
말을 걸어도 침묵. 뭘 해도 침묵. 라두스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뒤로 혼자 꽁해진 상태다.
몇 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거사임에도 불구하고 라그나로크의 제작만으론 그녀의 관심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재료를 꺼내놓고 장비제작을 준비했다. 제작법이 내게 있는 이상 재료만 있으면 제작버튼 하나만으로 장비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래서는 대장장이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며 정신이 깃들지 않는다.
하여, 직접 망치를 들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장비의 탄생만큼은 내 손을 거쳐야 될 것 같았다.
마계는 원래부터 강풍이 잘 부는 곳이기 때문에 풀무질에 최적화된 기후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화로는 그 어떤 광물이라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최상급 마력의 정수와 폐허의 광물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장비의 베이스가 되는 뼈대가 된다. 중요한 것은 폐허의 광물 깊숙한 곳까지 마력의 정수가 흡수되도록 마력촉매제를 아낌없이 들이붓는 것이다.
폐허의 광물이 짙은 흑색의 맑은 물로 녹아들었다. 최상급 마력의 정수는 흑색의 물속으로 녹아내리듯 빨려들었고 결과적으로 다량의 마력을 머금은 쇳물이 탄생했다.
출발은 무난했다. 실수하나 없었고 별 다른 위화감 없이 완벽했다. 제작서에 적혀있는 지식이 머릿속에 다 입력되었기 때문에 실패할리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허나 방심은 금물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전력을 다해야 한다.
나는 온몸의 감각을 일깨워 이 순간에 온 정신을 쏟아냈다. 쇳물을 거푸집에 넣고 다른 재료들도 마저 주조하기 시작했다. 제작법조차 까다롭다 보니까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뼈대는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불을 일으키는 파이어(Fire)와 극저온을 일으키는 아이스(Ice)마법으로 제작시간을 단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반나절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남은 작업은 매질과 담금질. 장비의 성능이 걸린 중요한 뒤처리라고 볼 수 있다.
“라두스.”
“······.”
“라그나로크를 제작하면 본격적으로 악마 사냥에 나설 거다.”
“······.”
“그리고 놈들을 다 죽이고 나서도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나는 이 장비를 착용할 거고.”
“······!!”
내 목적은 라그나로크 장비가 아니라 마왕을 죽이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힘이 부족하다면 나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라그나로크를 착용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 일 없다면 다행이지만 마계의 절반을 가져갈 만큼 강한 장비인 만큼 그럴 확률은 극히 낮을 거다. 만약 그때 일이 터지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건 가정이라 하더라도 기분 나쁘다.
“됐다.”
나는 매질을 시작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칠흑색 갑옷은 푸른 불꽃을 토해내며 차츰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망치와 철면에서 흘러나오는 농밀한 마기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도 있었다. 온몸의 피가 가속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대는 것이다.
전신이 타는 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뇌 속이 가열하고 생각회로가 정지했다. 이제부턴 모든 의식을 놓고 손이가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평생 동안 듣고 지내던 망치질 소리가 지금 따라 유독 크게 들렸다. 어쩌면 그동안 잊고 지낸 것일지도 모른다. 대장장이가 바보처럼 싸울 생각만 해왔으니까.
“······실로 오랜만이군.”
내가 쥐고 있는 망치도, 모루도, 다른 모든 도구들도. 그래서 유독 반갑고 흥분되었다.
치이익───────!
담금질은 장비의 경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또한 완성도 높은 모양을 만드는데 당연히 한몫한다. 이를 끊임없이 반복할수록 장비는 한계를 뛰어넘고 강해진다.
까앙! 까앙!
가볍고 단단해야한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을 가져야한다. 아샨드의 목을 따기 위해선 이제껏 만든 그 어떤 장비보다도 초월적인 능력치를 가져야 한다.
오로지 강함만을 위한 소망을 담았다. 그 누구라도 뛰어넘게끔 빌었다. 그리고 하늘이 울부짖었다. 불길하고 강렬한 천둥번개를 토해내며 마계전체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렸다.
푸쉭.
침묵 속에서 완성된 장비 표면에서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새어나왔다. 처음엔 단순히 장비특유의 암속성 이펙트인줄 알았다.
푸화아아아아악!!!!!!!
“크윽!”
곧바로 강력한 마기가 기괴한 속도로 뿜어져 나왔다. 제작과 동시에 검은 기운이 폭포수처럼 터져나와 온몸을 엄습했다. 털이 곤두설 정도로 소름끼치는 마기였다.
“라두스 물러나!”
“······바, 바드?”
나는 팔을 뻗어 라두스를 멀찍이 밀어내고 온몸으로 라그나로크 세트를 감싸 안았다. 이만한 마기가 퍼져 나오면 분명 주변의 마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형(異形)으로 변화된다거나.
“크으어억······!”
“궤르르륵. 캬악! 캬아아악!”
레벨150초반의 마족들이 라그나로크 세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선만 끌어들이는 정도였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변이되고 있어. 라그나로크의 마기에 반응하는 거야!”
땅딸막했던 하급마족들이 몸집을 우더니 몸 전체가 근육으로 뒤덮였다. 단순히 외형만 변한 거면 이렇게 오버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머리위로 떠오른 레벨이 무려 300을 상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급마족이 마족장군 급으로 강해지다니. 이건 도대체 뭐하는 물건이냐!”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현재 라두스는 라그나로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지만 장시간 마기에 노출되어있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단 이 장비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인벤토리에 넣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방법은 단 하나.
“어차피 언젠가 써야할 물건. 지금 바로 다뤄주마.”
착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장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상응하는 마력으로 힘을 상쇄시켜 주변 마족들의 변화를 막으려는 생각이다.
나는 양손을 모아서 온몸의 마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라두스가 남긴 마계의 정수와 몇몇 악마들을 해치워 얻은 마계의 정수로 MP가 거의 무한정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전부 쥐어짜내도 부족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힘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라그나로크에서 발생되는 마기는 언젠가 한번 느껴본 적 있는 위압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토르와 아샨드가 충돌하기 직전에 느꼈던 고차원적인 힘이다.
이대로라면 잡아먹힌다.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바드, 바드!”
“오지 마! 주변의 마족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라두스가 마족의 무리를 헤치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환영에 불가한 그녀였지만 악마들을 도륙할 만큼의 기본적인 물리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기형마족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놈들의 레벨이 하벨스 대륙 전역을 뒤져도 나오지 않을 수준의 레벨까지 올라간 것이다.
“레벨 500? 밸런스 붕괴군.”
“위험해! 장비에서 떨어져!”
“라두스 네가 더 위험하다는 처지라는 걸 모르겠나? 당장 도망쳐!”
마력으로 마기를 억누르는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기형마족들은 미쳐서 폭주하기 시작했고, 놈들은 어느새 마족 군단장 급의 옐로우 네임드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딱 하나였다.
‘장비파괴.’
이 장비가 없으면 마왕을 무찌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어쩐지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파괴하지 않고 라그나로크를 잠재울 방법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우욱!”
갑자기 뭉클한 핏덩이가 몸 안쪽에서 치고 올라왔다. 나는 입안에 차고 넘치는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거침없이 외부로 토해냈다.
“커허억!”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라그나로크의 마기에 완전히 노출되어 몸에 이상 현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라두스도?
“으으으······으윽!”
근거리까지 다가온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신체가 기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눈은 붉게 충혈 되고 입가 질펀한 타액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망칠 순 없다. 처음부터 시작하더라도······.
“으아아아아악! 빌어먹을! 하면 될 것 아니냐!”
나는 절규를 토해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장비파괴라니? 내손으로 단 한 번도 사용해 본적 없는 장비파괴라니!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인다는 게 말이나 되느냔 말인가!
“파괴 한다고, 씨X!!!!!!!!!!!!!!!!!!!!!!!”
그 순간이었다. 라그나로크가 순백의 광휘를 머금더니 수많은 파편으로 쪼개져 소멸되었다. 그제야 주변의 공기밀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고 미친 듯이 날뛰던 마기가 잔잔한 파도처럼 가라앉았다.
호흡이 편해졌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기형마족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닥쳐!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은데 짜증나게 하지 말란 말이다!”
옐로우 네임드가 수백 마리에 육박했다. 다르게 말하면 크라켄이나 레비아탄 같은 놈들이 수백 마리나 몰린 셈이다. 예전 같았으면 전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높은 마족을 상대로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바드에겐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마계의 정수를 100개가량 흡수한 바드에겐 장난감도 되지 못할 정도였다.
‘그 고생을 해놓고 건진 게 아무것도 없다니. 라그나로크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았는지 알만하군.’
최소한 능력치라도 볼걸 그랬다. 전설등급이 분명했을 텐데.
나는 폭주한 마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뒤에 뜨겁게 지글거리는 가슴을 비우기 위해서 장시간 명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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