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61)
임시방편으로 지은 대장간이었지만 갖출 건 전부 갖췄다. 마족주제에 이만한 실력이라면 기대이상이다.
“꽤 잘 지었군. 보기완 다르게 튼튼하기도 하고.”
“저······. 악마님.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필요하면 또 부르도록 하지.”
바드는 손을 휘적이며 하급마족들을 물렸다. 마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보다 강한 마족에게 찍히면 이유 없이 목숨을 빼앗기는 게 일상. 오늘 하루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으리라.
그들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윽고 바드의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형체를 갖췄다.
“칫. 재미없어.”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라?”
라두스는 하급마족을 그냥 돌려보낸 바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잠자코 그의 선택에 따랐다.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지내면서 라두스도 조금씩 바드란 인물에 동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드는 인벤토리에서 황금색 모루와 망치를 꺼내들었다. 연달아 에픽재료도 주섬주섬 꺼냈다.
“상급마족을 잡았을 때 드랍한 아이템 중에 재료아이템이 몇 개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드가 꺼낸 물체는 완전히 타버린 탄소찌꺼기 같은 덩어리였다. 마기가 풀풀 풍기는 이것의 이름은 암흑 물질.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가 없는 재료였다.
“그걸로 뭐하려고?”
“재료의 특성과 성질을 밝히는 실험을 할 거다. 암흑물질은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재료거든. 제대로 된 장비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넌 어차피 도움 안 될 테니까 가만히 있어라.”
라두스는 바드의 신체와 생각과 감정이 동화된 탓에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라두스는 바드가 내쳐버리기 전에 냉큼 일침 했다.
“도와줄 수 있어. 네가 생각하는 거.”
라두스가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아담한 손바닥에서 약간의 마력과 마기가 응집되자 탁한 연기가 생성되었다. 라두스는 연기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두꺼운 책 한권을 빼내었다.
“마계가 현재로선 아무런 기술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무지한 문명은 아니거든.”
라두스가 책을 넘기고는 모퉁이 어딘가의 내용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마족은 지금처럼 단순한 살육을 갈망하는 존재가 아니었어. 문명을 이루고, 가족을 이루는 평범한 종족이었지. 다른 종족에 비해서 폭력성이 짙었지만 지금처럼 살인병기는 아니었다는 소리야. 그중에서 방어구와 무기를 만들던 마족 대장장이가 존재했는데. 그 마족은 온갖 실험과 제련을 통해 제작관련 기술을 익혔고, 마법을 인첸트하는 능력까지 깨우치게 되었지.”
“마족이 다른 종족처럼 살았다고? 그런데 왜 이 모양이 된 거야?”
“다 알려줄 테니까 토 달지 말고 끝까지 들어. 이 마족은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어. 끝으로 본인이 추구하는 장비를 만드는데 성공한 모양이야. 그 힘은 마계의 절반을 차지하고도 충분한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고 전해져 있어.”
“마계의 절반······.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는군. 그래서? 그 마족이 만든 장비라도 찾아보자는 거냐?”
“그건 불가능 하지. 그 장비가 아직까지 존재했으면 마족이나 악마 중에서 장비의 기운을 느끼고 힘을 손에 넣었을 거야. 하지만 근례 천년동안 마계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강한 마족은 등장하지 않았어. 마왕 아샨드를 빼면 말이야.”
라두스는 그렇게 주장하면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 내렸다.
“장비의 이름은 라그나로크. 자세한 능력은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마계 역사상 가장 위험한 물건이었고, 그 탓에 존재 자체를 허구로까지 만들려고 한 물건이기도 해.”
“만들려고 해? 그 말은 허구로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소리냐? 누가?”
라두스가 하찮은 질문을 한다는 눈초리로 차가운 한기를 내뿜었다.
“너 생각보다 바보구나? 마계를 위협하는 물건이 나왔는데 가장 긴장해야할 사람이 누구겠어? 마계의 최고 통치자 아닐까?”
바드는 라두스의 말을 듣고서야 깨우친 표정을 지었다.
“아샨드.”
“그래. 아샨드가 라그나로크의 위험성을 깨닫고 대장장이와 함께 장비를 완전히 소멸시켰어. 그리고 다신 그런 물건이 나오지 못하도록 마족들에게서 모든 감정과 지능을 빼앗아갔지. 그 결과 마족은 잔인한 본성만 남은 괴물이 된 거야.”
“아쉽게 됐군. 라그나로크가 실존한다면 실제로 내가 장비를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래서? 결국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 거냐?’
라두스가 엉덩이까지 흘린 장발을 목에 칭칭 감으며 책의 다음 장을 읽었다.
“제작서가 뭔지 너도 알지?”
“!!”
물론 알고 있다. 진의를 깨달은 대장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함께 개방된 스킬중에 그와 관련된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제작서 등록 및 추출』이란 스킬인데,
“설마 라그나로크 세트에 관한 제작서가 존재하는 거냐?”
“여기엔 그렇게 쓰여 있어. 마계 337구역 어둠의 협곡 가장 깊숙한 곳에 라그나로크 세트 제작서를 봉인한다. 라고.”
바드는 스킬창을 열었다.
『제작서 등록 및 추출』
사용자가 제작한 장비물품을 등록목록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장비를 등록하면 장비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종류와 자원개수가 표시되며 제작서 추출 버튼을 통해서 해당 장비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을 별도로 습득하는 제작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 높은 등급의 장비 제작서를 익히기 위해서 제시된 조건을 만족해야한다.)
-현시점 등록한 장비개수는 0개. 남은 공간은 1024칸입니다.
누구나 쉽게 장비를 만드는 것은 반대다. 대장장이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 온갖 노력과 고생을 해온 대장장이들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때가 아니다. 똥으로 된장국이라도 끓여야 할 판에 언제 새로운 장비를 구상하고 만들겠는가? 내겐 마족이 남긴 제작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금당장 마계 337구역 어둠의 협곡으로 가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그나로크 세트 제작서가 탐나는 거지?”
“악마들 전부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지. 괜히 비꼬지 말고 앞장서라.”
“맡겨만 두시라!”
라두스가 토끼마냥 신난 발걸음으로 앞장섰다. 저런 놈이 수십 년 전에는 하벨스 대륙의 절반을 날려먹었다니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드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
똥 된장 구분 안 한다고 말했지만 라두스가 향한 장소는 상당히 귀찮은 구역임이 틀림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협곡 안에는 마족도 뭣도 아닌 기괴한 생명체로 가득했고 그것들은 다짜고짜 기습하는 것에 도가 텃기 때문이다.
라두스의 힘을 흡수한 마당에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숫자가 하도 많아서 이동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쓸데없는 것들이 귀찮게 구는 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링과 아이템은 주섬주섬 잘도 챙기는구나?”
“그거야 당연하지. 정체불명의 이것들이 장비의 재료가 될지 누가 아나?”
반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고 반은 단순한 욕심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린고비 정신으로 살아온 탓에 이젠 아이템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어색할 지경이다.
‘마족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돈은 의미가 없지만.’
바드는 주먹을 휘두르며 검댕검댕한 액체를 쥐어 팼다. 액체 따위에 물리적 데미지가 들어갈 리 없었지만 마기와 마력을 두른 덕분에 큰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다.
“라두스 너는 안 싸우나?”
“잔챙이들 상대로 힘 빼기 싫어~”
그녀가 비아냥거리며 어께를 으쓱였다. 그러던 차에 바드는 등 뒤에서 거대한 물체가 다가오는 느낌을 마주했다. 주변에 있는 잔챙이보다 조금 더 강력한······.
“더 강력한 검댕이가 등장했나?”
액체 슬라임 같은 검댕이는 소리 없이 바드의 뒤를 덮쳤다. 충분히 회피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바드는 라두스의 버릇을 고칠 겸 움직임을 행동을 달리했다.
“라두스 가라!”
바드가 라두스의 엉덩이를 뻥 차버리자 방심한 그녀는 맥없이 검댕이의 품안으로 날아갔다.
“우왓! 자, 잠깐만 바드 너 치사하게!”
물컹! 울컥울컥!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검댕이 액체는 라두스를 집어삼키자마자 온몸의 액체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켰다. 바드는 라두스가 눈물을 삼키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생각보다 통쾌하다고 느껴졌다.
“우으으읍······!!”
“자꾸 건방지게 구니까 그 모양이지.”
바드는 마나를 두른 정권을 검댕이 몸 안으로 찔러 넣었다. 검댕이는 조금씩 크기를 키우다가도 바드의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큰 충격파와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쿨럭쿨럭! 으으~ 무, 무슨 짓이야아······.”
축축하게 젖어버린 그녀의 백발에서 끈적끈적한 검댕이의 흔적이 흘러내렸다.
“······.”
“왜 그렇게 보고 있어?”
“여러 가지 의미로 민망해서. 일단 그 옷부터, 아니 환영부터 제대로 고쳐라.”
“자기가 저질러 놓고선 나보고 뭐라 그러긴? 아니면 이대로 돌아다닐까? 너 보기 좋으라고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라두스의 유혹에 저항했습니다.》
“이게 어디서 끼를 부려?”
바드가 그녀의 머리를 거침없이 쥐어박았다. 라두스가 양손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감싸 쥐며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흐아앙~ 내가 뭘 잘못했는데에~!”
“유혹을 시도한 거?”
“딱히 쓰려고 한 거 아니거든! 태어날 때부터 패시브로 달고 다닌 거라서 내가 무슨 행동만하면 다 유혹으로 처리된단 말이야! 타인에게 감정이라도 표현하려고 하면 그게 다 유혹으로 변해버려서······.”
그녀가 코를 마시고 끊었던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상대를 진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이젠 구분조차 못하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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