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43화 (143/202)

Master Smith (143)

“성스러운 빛이여 그들의 다친 영혼을 돌보라. 큐어!(Cure)”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힐 해드릴게요.”

하벨스 대륙 남쪽 끝. 림프셀 인근 해변에서는 아직까지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바닷가 상공에 떠오른 워프 게이트를 통해서 마족은 꾸준히 튀어나오고 있었고 그 탓에 12번 친위대만으로 마족을 막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알렉스님! 놈들이 또 다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피난민들은 어떻게 됐지? 전초기지의 상황은?”

“현재 피난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간 듯합니다. 전초기지는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막대한 물량으로 12부대의 병력을 뚫고 대륙 한 가운데로 향했으니 전초기지가 함락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다프네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우선 눈앞의 상황부터 어찌 해야 한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 12부대는 대륙의 방패! 전력으로 놈들을 막지 않으면 그 누가 막을쏘냐?!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방패를 들어라!”

12부대가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병력의 60%가 탱커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중에서 치유마법을 쓸 수 있는 힐러. 즉, 사제가 2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족을 소탕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몸을 돌려가면서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 그들의 목적.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적들의 물량에 이제는 시간을 버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었다.

“단장님! 사제들의 MP도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가.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전군 후퇴! 일정한 거리를 벌이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라!”

알렉스는 흉악한 날개를 펄럭이며 자신을 공격하는 마족을 방패로 페리하고 그 즉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모두 떨어지지 마라! 뭉치면 뭉칠수록 큰 방패가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부대 아니더냐! 진열을 유지하고 침착하게 후퇴한다! 부상자를 챙겨!”

이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니까. 최소한 내가 그들을 지키지 않으면······.

“빛이여.”

알렉스가 심장부근에 손을 갖다 대고 타오르는 듯한 기운을 체내로부터 끌어올렸다. 적색 아우라가 그의 몸 주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이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어째선지 마족들이었다.

“······아, 알렉스 단장님! 그 스킬은!!”

“놈들의 시선을 최대한 끌어보겠다. 네놈은 병사들을 이끌고 서둘러 도망쳐!”

알렉스가 사용한 기술은 주위 몬스터의 어그로 수치를 극대화시켜 자신을 공격하게 만드는 스킬인 《도발》이었다. 본래 일반 몬스터 한두 마리를 끌어들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스킬이지만 알렉스가 사용한 도발의 효과는 표준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끼에엑?!”

“푸르르륵······. 퀘라라라라······.”

“단장님!!!!!!!!”

“도망쳐라! 그리고 다프네를 만나면 반드시 이 말을 전해다오.”

그는 양손에 용의 음각을 새긴 거대한 방패 두 개를 붙잡고 두 다리에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말이야······.”

병사는 단장을 두고 갈 수 없었는지 오열을 토해내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곁에 있던 동료는 그의 팔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서 가자! 단장님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신거야!”

“이거 놔! 단장님! 단장니임!!!!”

알렉스는 수십 마리의 마족을 홀몸으로 받아냈다. 해일처럼 몰려온 검은색의 물체들이 곧장 알렉스를 집어삼켰고 그가 사용하던 거대한 방패는 처참히 부서지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단장님!!!!!!!!!!!!!!!!!!!!!!!!!!!!!!!!!!!!!!!”

그의 몸은 몇 미터를 날아가 모래사장 위로 추락했다. 철커덩 철커덩 쇳덩이가 요란하게 부딪치며 해변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이 의외로 잠잠하다. 오히려 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정도다.

“하아······.”

긴 한숨. 앞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온몸이 타는 듯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섰다. 내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일어서야 한다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커헉!”

어둠속에서 날아오는 충격. 날카로운 무언가가 가슴을 강하게 찔렀다. 날이 서지 않은 기다란 창에 찔린 기분이다.

‘일어서. 일어서서 놈들을 상대해.’

알렉스는 뜨거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새로운 방패를 꺼내들었다. 그의 입가에서 간헐적으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감긴 두 눈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선혈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서 떨어졌다.

“크크크······. 그 정도 공격으로 내가 쓰러질 것 같냐?”

나는 12번 기사단장. 왕국의 수호기사 단장 알렉스다. 그런 어설픈 공격 따위로 나를 죽일 생각일랑 하덜덜 마라.

콰악!

거대한 손이 내 몸을 움켜쥐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피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나는 점점 죄여오는 고통을 이 악물고 참아내었다.

뿌드드드······.

“크악······!”

알렉스는 피를 토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갈비뼈 몇 대는 분질러진 느낌이다. 오른팔은 이미 감각이 없었고, 하반신 전체는 오래 전부터 말을 듣지 않았다.

남은 것은 나의 HP가 전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동안 몇 초라도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면 나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죽여봐······ 이 새끼들아······!”

죽는 건 진작부터 각오한 일. 그는 목으로 칼날이 향해오는 서늘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윽고 목을 꿰뚫는 뜨거운 통증이 뇌신경을 불태웠다.

찌지직. 쯔어어억!

알렉스를 쥐고 있던 마족은 염산으로 이루어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입을 벌렸다.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사이에 알렉스의 목을 걸치고 그대로 이빨을 마주쳤다.

촤악! 붉은 핏방울이 분수처럼 솟구치고 그의 목은 상체와 분리되어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척추가 분리되었다. 마족의 입에 들어간 것이 정말 사람인지 아닌지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다.

“므으으어······.”

차가운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진 알렉스의 상체는 곧바로 다른 마족들의 먹이가 되었다. 팔과 다리가 찢겨나가고 주변은 빠르게 굳어가는 검붉은 핏물로 물들어 갔다.

12번 기사단장 알렉스. 그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버는 동안 부하병사들은 전부 도망친 상황이었다.

***

어둑한 동굴 안. 화톳불로 어둠을 밝히며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인간도 마족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닌 여우요괴였다.

바닥에 누워서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미호는 눈꽃 같은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채 어둠속을 주시하고 있었다. 넋을 잃어버린 듯한 그녀의 표정은 마치 눈뜨고 죽어버린 송장을 닮아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던 노엘이 오도도 달려와 웬 버섯을 한 아름 가득 들고 왔다.

“언니. 괜찮아?”

“응. 그건 뭐야?”

“버섯.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거야. 예전에 책에서 본적 있어.”

한동안 굶주려 있던 탓에 노엘이 먹을 것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정기만을 흡수하는 미호에겐 음식은 단순히 맛을 보는 용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게르덱은?”

노엘의 질문에 미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흐른 상태.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게르덱 뿐인데도 그는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노엘은 말없이 돌판을 가져와 화톳불위에 올렸다. 거기다 먹기 좋게 찢은 버섯을 올려 하나 둘 굽기 시작했다. 노엘이 미호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배고프면 언제든 먹어도 돼 언니.”

동굴 안에는 순식간에 향기로운 냄새가 퍼져갔다. 자연산 버섯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군침 도는 냄새였다. 새송이, 양송이, 그 외에도 엄청 희귀하다는 밤꽃버섯, 실몽당이 버섯, 돼지 버섯 등.

조리법은 단순한 구이였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돌판 위에 노릇노릇 굽는 게 전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것은 둘째 치고 코끝을 찌르는 향긋한 향기야말로 버섯구이를 즐기는 가장 큰 묘미라고 볼 수 있었다. 노엘은 군침을 삼키며 허겁지겁 익힌 버섯을 주워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어린나이에 며칠 때 고생이다. 미호는 노엘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욱신 거려왔다. 노엘이 눈을 굴리더니 내 쪽을 바라본다. 노엘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선 작은 손으로 버섯을 집어 들어 내 쪽으로 가져왔다.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해.”

고소한 향기가 미호의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지금은 식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노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옅은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난 괜찮아. 배고프지 않은걸?”

“그래도······.”

미호는 노엘이 가져온 버섯을 받아내고 노엘의 입으로 가져다 주었다.

“아아~ 해봐.”

“우웅.”

노엘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먹지 않으면 본인도 안 먹을 거란 의사였다.

“알았어. 그럼 조금만 먹을 게.”

나는 버섯을 조금 뜯어내 입에 털어 넣었다.

“맛있네. 자, 노엘도 먹어.”

그제야 입을 벌리고 버섯을 받아먹는다.

노엘은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달콤하고 풍미 가득한 맛에 취한 듯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규우~ 너무 맛있어.”

감동으로 충만해진 노엘이 토실토실한 뺨을 양손으로 문대며 중얼거렸다.

“언니 아직도 바드오빠 걱정하고 있어?”

바드의 소식이 끊긴 이후로 미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노엘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의 뾰족 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괜찮을 거야. 오빠니까.”

노엘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믿고 싶었다.

믿으려 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언제까지 갈지. 노엘 본인도 확신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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