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36)
“이, 이사벨라? 당신이 왜 여길?”
“나쁜 자식!”
그녀가 다짜고짜 달려와 바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의 공격이 지면을 강타하자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이 발현되어 대지를 붕괴시켰다.
“뭐하는 거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이사벨라의 공격이 끊이질 않았다. 게르덱을 안고 있는 처지라 그녀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미호가 나서서 그녀의 행동을 저지한 덕분에 한숨 돌릴 정도였다.
“당신 때문에 레이나가······ 레이나가!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당신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나 해?!”
“갑자기 사라진 건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마족들을 막기 위해 아군이 필요했다고.”
“그걸 왜 우리에게 숨긴 건데? 엠페러와 마족이 어떤 관계였고, 마계의 문이 열린다고 왜 우리들에게까지 숨긴 거냐고! 당신이 그 사실을 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맞는 말이다. 나는 단지 두려웠을 뿐이다. 이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을 뿐이다. 내 힘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게 내 과오다. 처음부터 털어놨다면, 애초에 말하지 않을 거였다면 마계의 문을 열고 마왕을 죽이겠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멍청했어. 하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여기서 대피해야 한다고.”
내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궤변이 일어났다. 하늘이 여러 색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노란색, 적색, 보라색, 정체모를 색. 세상이 역변하고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충격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핵폭탄이 떨어져서 몰려오는 후폭풍처럼 말이다.
“뛰어!”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대로라면 저 폭풍에 휩쓸려서 모두가 죽을 것이다.
‘1초라도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여기서 전부 죽는다.’
나 기절한 게르덱을 이사벨라에게 넘기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희들 먼저 가! 워프 게이트를 넘어가지 못하면 다 죽어!”
“주인님은 어쩌고!”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저 폭풍을 어떻게 해보는 수밖에.’
불타는 아우라가 전신을 뒤덮는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뜨거운 아지랑이가 팔과 다리, 복부와 등짝에서 피어올랐다. 타는 듯한 붉은 실선이 얼굴 형태를 따라 투구모양을 그리고 열기는 주홍색 대겁화로 번졌다.
현재 내가 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쏟아 부어야 한다. 1초라도 폭풍이 늦어지게끔 가장 강력한 한 발을 날려야 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무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늦장부릴 여유 없다.
“주인님!”
“어서 가 미호! 노엘과 이사벨라를 부탁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도 있어. 분명 무사할 거니까 시간되면 반드시 찾아라!”
나는 불꽃을 휘감은 화염의 카타나를 꺼내들었다. 파천도와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위력을 머금은 +24 초월강화 무기였다.
“타올라라. 지금의 내 절실함만큼.”
카타나는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더욱 거센 열기를 내뿜었다. 이윽고 빨갛게 달아오른 카타나가 내 신체보다 훨씬 거대한 참마도로 변형되었다. 투박하고, 조잡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열기와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했다.
《살마만더의 분노가 화염의 카타나 안에 깃들었습니다. 화염의 카타나가 분노한 살라만더의 대검으로 변형됩니다. 일정시간 동안 공격력이 100% 추가 상승하고 모든 불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바드!”
이사벨라가 나를 부르고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살아서 돌아오면 넌 내손에 죽었어.”
“이사벨라가 그런 말 하니까 적응 안 되는데?”
“어서가자 미호. 뒷일은 저 인간에게 맡기자고.”
“주인님.”
“빨리 가!”
몰아치는 칼바람과 숨막히는 마력이 안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꼈는지 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으윽!”
“걱정 마. 살아서 돌아갈 테니까. 업혀있는 노엘 죽겠다. 서둘러!”
“하지만, 하지마안······!”
미호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콰아아아아─────!!!
돌풍이 눈앞까지 몰아쳤다. 이젠 피할 시간도 없다. 이대로는 우리 두사람 모두 바람에 집어삼켜져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말 것이다.
“제기랄!”
나는 미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변형된 대검을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산을 뒤집어엎고, 커다란 절벽을 통째로 깎아내는 거대한 폭풍은 일순간 잦아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몰아치는 또 다른 폭풍이 내가 만든 충격파를 허무하게 소멸시켰다.
“크아악!”
실핏줄이 비직비직 터지고 온몸의 근육이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여기서 검을 놓을 수 없는 노릇. 최소한 바람의 방향이라도 바꿔놓아야 한다.
“미호라도 살려야······.”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뼈 빠지게 휘두르면 어떻게든 될 거 아니야!’
아까보다 몇 배나 강력해진 기의 파동은 내가 막을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다.
‘휘말린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또 다른 기적은 일어나 주었다.
천상의 빛이 눈을 감싸고 아찔한 어지러움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혼란의 끝에는 황금빛 무구를 착용한 여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누구?”
“정신 차려! 나 묠니르야!”
그녀가 거칠게 소리쳤다. 양손을 모아 정면으로 뻗은 손끝에 희미한 방어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묠니르 너 모습이?”
“좀 무리하고 있을 뿐이야.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거야. 지금 당장 미호와 함께 대피해!”
무리하고 있다는 소리를 그렇게 대놓고 하면 내가 “네! 알겠습니다!”하고, 그냥 도망칠 줄 알았냐?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파괴현상까지는 아니지만 이번 일격을 막은 뒤로 내구도가 상당히 떨어지겠지. 어쩌면 수리도 불가능 할걸?”
그런 상태면서 나보고 도망치라고?
“절대로 그렇게는 못 놔두지.
“까불지 마! 나를 누구로 생각하는 거야······.”
“널 수리한답시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 내구도가 다시 줄어들게 놔둘 것 같아?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더라도 저 충격을 상쇄시켜 주겠어!”
“자, 잠깐만 바드! 지금 날 불러내면 다 죽는다고!”
“돌아와 묠니르.”
그 한마디로 묠니르는 황금색 망치가 되어 내 손아귀에 쥐어졌다. 동시에 막혀있던 돌풍이 안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다. 바람이 멈추는 순간 바로 워프 게이트로 달려.”
“······알았어.”
‘마나 번(MP Burn)’
겨우겨우 50%가량 회복시킨 마나가 순식간에 소진되었다. 거대한 마력의 잔상이 묠니르와 살라만더의 대검을 뒤덮었다. 공격력 500에 달하는 대검만으로 저 무식한 고밀도 에너지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믿을 건 오직 묠니르의 개방된 특수공격력. ‘마력담기’뿐이다.
“지금 몰려오는 기운이 토르가 내뿜는 신의 마력이라면 토르의 벼락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당장 눈앞에 커다란 공포가 있다. 믿어야한다. 묠니르의 힘을!
“바드. 이번 공격으로 나도 끝장날 수도 있어.”
“말 했지. 허락 못한다고.”
너도 지키고 미호도 지킨다. 눈앞의 무식한 돌풍도 없애버릴 거다
“너야말로 바보 같은 소리 마! 내가 파괴되지 않으면 넌 죽어!”
“내가 널 고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또 그따위 노가다 수리를 하라는 거냐!”
주변에 자잘한 전기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피부가 꿈틀거리고 온몸의 근육이 파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토르의 가호.”
토르의 가호: 전기속성에 대한 모든 면역력이 100%로 증가되며 모든 감전 데미지가 300% 증가합니다. 모든 능력치에 대해서 긍정적인 상승효과를 보이며, 이 효과는 묠니르의 호감도 증가에 따라서 변동될 수 있습니다.
“마력담기!”
한 동안은 평온했다. HP를 쭉쭉 깎아먹던 돌풍이 잠잠해지고 기괴한 바람들이 묠니르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의 마력 충전량 10%》
《신의 마력 충전량 40%》
《신의 마력 충전량 55%》
《신의 마력 충전량 89%》
《신의 마력 충전량 99%》
《신의 마력 충전량 100%》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신의 마력이 충전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마력을 담을 공간이 없습니다. 묠니르가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타이밍 늦을 새라 곧바로 토르의 벼락을 불러일으켰다. 신의 스킬 토르의 벼락. 정확하게 어떤 기술인지 몰라도 이 상황을 해결해줄 유일무이한 경우의 수는 확실했다.
꽈르르릉! 꽈광! 콰아아앙!
귓속에서 난청이 울려 퍼졌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청백색 빛이 내리친 순간, 난잡했던 기류가 한 순간 멎어들고 사방이 뿌연 흙먼지로 뒤덮였다. 정면에는 반경 수백 미터는 될 법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내 HP도 5%남짓. 빈사상태였다.
“바드? 바드!”
묠니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워프게이트 쪽으로 묠니르를 집어 던졌다.
“바람이 멈췄다 미호. 묠니르를 들고 도망쳐. 지금 묠니르를 쥘 수 있는 사람은 내 장비를 입고 있는 너 뿐이야.”
“주, 주인님은?”
“나는······.”
몰라 그딴 거. 다음 전개는 생각도 안 했는걸.
이미 몸을 날린 뒤다. MP는 묠니르에게 다 소모한 뒤였고 내게 남은 힘은 정말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
‘질리지도 않게 계속 몰려오는 군. 다음 폭풍으로 난 끝이다.’
“으오오오오오오오!!!!!!”
미호는 바드의 오열을 뒤로하고 워프 게이트로 달렸다.
“이거 놔! 하찮은 요물이 감히!”
묠니르의 목소리는 미호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콰아아앙!!!!!
미호의 등 뒤에서 후폭풍이 터졌고, 그 기세로 미호의 몸이 부웅~ 날아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후 미호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주인님?”
게이트가 완전히 닫혔다. 남은 것은 마그르스 주변에 위치한 황무지 뿐. 그리고 팔에 안고 있는 묠니르 뿐이었다.
“주인님······?”
뭐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일까? 주인님은? 못 넘어 온 거야? 그 폭풍은 막아냈어? 아니 그보다······.
‘살아있긴 한 거야?’
“묠니르님. 주인님은 어떻게 된 거야?”
망치를 내려다보면서 질문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방금까지 징~ 징~ 떨리던 망치가 지금은 요지부동이었다.
미호는 그동안 맛보지 못한 또 다른 공포에 몸을 떨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으니까.
“흐아아아앙······.”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 것 같다. 아무래도 주인님은······. 아니, 바드는.
‘왜, 왜, 왜······ 왜 내 느껴지지 않아?’
미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모하게 몸을 던졌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포한 돌풍에 집어삼켜졌다. 살점이 무참히 뜯겨나가고 온몸의 피가 터져 나가는 통증에 뇌세포를 가열되었다.
정말 한 순간 후회를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하여간 신이란 것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이다. 격돌한 것만으로 천제지변을 일으키는 폭풍이 휘몰아치다니.
‘아······.’
한계를 느꼈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조차 못하는 몸이라니? 어찌 이렇게 나약하단 말인가?
‘나 죽은 건가?’
아마도 그럴 거다.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으니까. 소리도 빛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죽긴 왜 죽어?”
또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그리고 더욱 달콤하게.
“이번엔 그 여우 년이며, 망치 년이며 아무도 없네? 정말 단 둘이 남았어.”
‘제발 그만 좀 하시지?’
“네 육체는 완전히 붕괴되었어. 남은 것은 먼지만한 네 정신과 내면에 남아있는 내 인격뿐이야.”
‘그래서?’
“마계 정수를 받아들여. 그러면 새로운 육체를 얻을 거고 상상도 못 할 힘을 가질 수 있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럼 여기서 우리 둘 다 곱게 죽는 거지. 하지만 그럴 리 없겠지?”
거부 할 수 없는 선택지를 주다니. 네 년은 정말······.
“악마야.”
라두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보이진 않지만 뻗었다는 식의 느낌이 들었다.
구슬 같은 무언가가 의식 속에 그려졌다.
“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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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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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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