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32화 (132/202)

Master Smith (132)

인간군들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저 속도를 유지하면 앞으로 몇 초 뒤에 크라켄과 격돌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크라켄이라도 모험가 1만 명과 친위대를 상대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물론 인간군의 피해도 가벼이 넘길 수준도 아닐 것이다.

결론은 내가 나서야 한다. 앞으로 몇 십분은 더 버틸 크라켄이 지금 죽으면 아깝다. 최소한 마왕의 공격으로부터 고기방패 정도는 되어줘야 한다.

‘크라켄이 내 말을 들어줄 리 없고. 인간을 설득할 수밖에.’

생각해보니까 웃긴 일이다. 마왕의 부활을 극구 반대했던 내가 지금은 마족과 함께 마왕의 완전 부활을 돕는 처지라니.

“크웨에엑!”

“디포네님! 마족 놈들입니다!”

“크라켄에 이어서 마족인가? 힘겨운 싸움이 되겠어.”

디포네 긴장의 날을 세웠다. 그러나 연달아 싸움에서 승리해온 인간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는 중. 그들의 진격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돌격하라! 탱커는 전방에서 잇따를 충격에 대비하라! 크라켄의 행동도 놓치지 마! 공격 모션이 나타나면 즉시 회피로 전환한다!”

빠르고 정확한 지휘야말로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비록 부단장에 해당하는 그녀였지만 디포네의 통솔력은 뛰어난 듯했다.

‘마족을 처리하는 건 도울 수 있는데 크라켄을 때리는 것은 관둬.’

나는 외마디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피어를 꺼내 들었다. 어둠 속성에 추가 피해를 입히는 이 검이야말로 성검 그 자체에 속하는 무기다.

《패시브 일기당천이 발동되었습니다. 물리, 마법방어력을 30% 무시하고 주변 적들의 상태정보가 제공 됩니다.》

나는 마족들 틈에서 중구난방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굳이 급소를 공격하지 않아도 레이피어의 높은 방어력 무시 효과 덕분에 순수한 데미지가 곧이곧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베어라.’

스겅.

‘베어서 피로 물들여.’

콰가각! 콰악!

‘피를 볼 때마다 흥분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건지, 마족을 베고 있는 건지. 그저 머릿속이 달아오르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귓가에 감미롭고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이듯 울려 퍼져왔다.

‘피를 맛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 할걸?’

나는 레이피어를 쥔 손목의 각도를 비틀어서 마족의 공격을 흘려냈다. 뒤따르는 카운터 어택. 마족의 머리 위로 몇 십만의 데미지 수치가 화려하게 터져 나왔다.

피가 튀고 검은 살점이 검신에 묻어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싸운다는 개념이 떠나가고 있었다.

“저 사람 혼자서 마족들을 죄다 죽이고 있잖아?”

“누구야? 기사단장인가? 몸놀림이 보이지 않아!”

회피와 공격, 방어마저 자연스럽고 또, 감각적이다. 굳이 눈으로 보고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듯 눈까지 감고 있다.

“세상에!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

“저 사람 맨 처음에 대열에서 이탈한 그 남자 아니야?!”

“그러고 보니! 저 뒤에 로브 입은 남자도 동일인물이다! 먼저 와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모험가들이 그런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이에 디포네는 마족의 체력을 착실하게 깎아내리며 소리쳤다.

“놀랄 틈 있으면 눈앞의 마족 한 마리나 더 해치워!”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스킬은 대부분 방어력 감소 및 크리티컬 데미지 증가효과가 붙어있다. 때문에 디포네가 마족을 완전히 쓰러트리기란 힘들다는 것. 즉, 누군가가 마무리를 지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검사들은 슬래쉬나 파이널 어택 따위로 마족의 남은 HP를 없애는데 착실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다. 단신으로 저 많은 마족을 일격에 없애고 있어.’

마족은 레벨이 낮더라도 몬스터보다 차원이 다른 능력치를 갖는다. 일격으로 몬스터를 없애는 것은 요원한 일. 최소한 공격을 주고받는 합이 2~3합은 필요한데.

‘그런 것 없이 단 일격. 마족 한 마리를 쓰러트리는 데에 1초도 낭비하지 않아.’

그야말로 전쟁의 화신쯤 되려나?

한편 바드의 표정은 완전한 무표정으로 정착되었다. 여유도, 희열도, 그 어떤 긴박함도 묻어나지 않은 표정이다.

‘지푸라기 베는 기분.’

일말의 흥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목숨을 앗아간다는 개념이 이렇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 원인일까?

‘의문할 필요 없어. 마족을 죽이려고 한 것은 내가 아닌 네 의지니까.’

또 들린다.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레이피어에 농밀한 마나를 불어넣어 정면을 향해 휘둘렀다.

발검의 자세는 반쯤 생략. 뒤따르는 거대한 검기가 수십의 마족들을 두 쪽 냈다.

푸슉 푸슉 푸슈슉!

마족들은 상체와 하체의 완전 분리되어 비직비직 피의 분수가 되었다. 그 틈에선 찔꺽거리는 내장이 와르륵 쏟아져 나오고······.

‘아······!’

피의향연이다. 허공을 부유하는 적색의 입자들이 뭘 의미하는지, 비릿한 철내음이 뭘 의미하는지, 알 필요 없다. 그저 이를 만끽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질 뿐.

‘더 베어볼까?’

‘그래. 베어버려. 그 감각에 흥분해봐. 더 자극적인 기분을 맛보는 거야.’

피가 한 걸음 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검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검기는 강철 같은 마족의 몸체를 꿰뚫고 지나갔다.

“아까부터 저 사람 상태가 이상한데?”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무명의 마법사가 마력을 소모해 바드의 상태를 확인했다. 불규칙한 마력의 흐름. 불균형한 이성상태.

‘뭐지?’

상태이상에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점점 과격해지는 행동이 마치,

“이상한 점은 없는데, 마치 광포화 상태 같군.”

“몬스터에게 나타나는 그 현상 말이야? 그런 게 사람에게 나타날 리 없잖아?”

“그래. 무엇보다 체력이 줄어든 것도 아니야. 광포화랑 근본부터가 다르지.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저 남자. 의식이 거의 날아갔어.

스겅 스겅, 우드득!

가느다란 레이피어가 기하학적인 무게로 마족들의 뼈를 분쇄했다. 그 모습에 살기를 느낀 쪽은 인간군 쪽이었다.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를 보고 있는데?”

“농담 말라고. 갑자기 우리를 적으로 돌릴 이유가······.”

진득한 살기를 느낀 모험가는 몇 걸음 주춤거리며 뒤로 빠졌다. 디포네 바드의 살기에 등꼴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 탈주한 남자다. 마계의 문과 연관된 사람이 혹시?’

디포네는 말의 안장에서 내려와 바드를 향해 소리쳤다.

“그대의 정체와 목적을 밝혀라!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

‘저 여자 뭐야? 기분 나빠. 죽여 버리자 바드.’

‘여자? 사람? 인간은 죽이지 않아.’

‘인간을 죽이면 더 강렬한 쾌락을 맛볼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싫어?’

‘너 뭔데 아까부터 거슬리게 하냐.’

《패시브 강인한 정신력이 발동됩니다. 라두스의 목소리에 대해 대항합니다.》

‘아아~ 아직은 때가 아닌가? 뭐, 조만간이겠지. 다음에 또 봐~’

감미롭고 달콤한 목소리는 그 뒤로 들려오지 않았다. 단지 처참하게 찢어발겨진 검은 육체의 잔해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세 번 말하지 않겠다! 네놈의 목적이 뭐냐! 네 정체는 뭐지? 마족의 편이냐 아니면 인간의 편이냐!”

“당신들. 마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막으러 온 거지?”

“당연하다. 앞으로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대도 함께 싸운다면 충분히······.”

나는 침을 탁! 내뱉은 뒤, 고개를 흔들었다.

“늦었어. 마계의 문이 열리고 마왕이 완전 부활할 거야. 이 장소는 마족으로 가득 찬다. 목숨이 아까운 놈들은 어서 도망쳐.”

“뭐, 뭐라고? 마왕이 완전 부활해?! 설마 네놈도 그 일에 가담한 거냐!”

아니라고는 할 순 없지만 나야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다.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해봤자 입만 아플 뿐.

“마왕은 내가 막는다. 당신은 군사를 이끌고 내륙으로 돌아가. 다른 단장들에게 지금 상황을 보고하란 소리다. 재차 말하지만 이제부턴 차원이 다른 마족들이 쏟아져 나와. 목숨이 아깝다면 도망쳐.”

인간군이 마왕의 부활보다 앞서 걱정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싸워온 마족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 대다수 등장할 거란 사실이다. 현재 인간의 전력으론 그들을 대적할 수 없다. 의미 없는 희생만 늘릴 뿐.

“비켜라! 네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 후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일 마왕이 부활한다면 우리는 목숨 걸고 싸울 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어서······.”

“어리숙한 생각하지 마! 인간이 신을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설 일이 따로 있지, 어리석은 녀석들!

“마계의 문이 열린다!”

현자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기운이 태초의 돌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량의 마력은 공간을 통째로 일그러트렸고 공간의 균열은 시간의 흐름마저 완전히 깨부쉈다.

“안 돼!!!!”

《마계의 문이 열렸습니다.》

《돌발 퀘스트 실패.》

“제, 제기랄. 늦은 건가!”

디포네의 절규로부터 수많은 모험가들이 좌절했다.

“엄청난 마기다. 안쪽에서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어!”

“마기는 몬스터를 끌어들여! 몬스터까지 떼로 몰려올 거야! 저 남자의 말 대로 대피해야해!”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마법사들이 단단히 충고했다. 검은 균열의 틈에는 땅거미처럼 새까만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족의 수는 인간이 대적한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마족 레벨이 300을 넘어갔어! 평범한 병사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고!”

“전군 후퇴! 이 사실을 국왕님께 알려야 한다!”

디포네는 바드 앞으로 달려가서 멱살을 움켜쥐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던 게냐! 넌 누구의 편이지? 인간? 아니면 마족이냐?”

바드는 디포네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그녀의 뺨을 가볍게 후려쳤다.

짝!

“······.”

“생떼 부리지 마. 부단장이면 부단장답게 할 수 있는 일만 하라고.”

그녀가 아랫입술을 가볍게 베어 물었다. 할 말이 많은 눈이었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두고 봐.”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그녀가 돌아선 순간,

콰앙!

“붸에에엑!!!!”

거대한 촉수가 허공을 가르며 지면을 휩쓸었다. 지면이 터져나가고 흙먼지가 하늘높이 비상하자 디포네가 어금니를 물었다.

“크라켄!”

“저놈은 내가 맡는다. 당신은 사람들이나 대피시켜.”

바드는 디포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지면을 박찼다.

“기다려! 너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

그 순간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이더니 백색갑주가 착용되고 오른손에는 거대한 만도가 뽑혀 나온 것이다. 그의 만도는 공중을 가르며 한줄기 예광을 그려냈다.

퍼어어엉──────!

디포네는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며 정면을 주시했다. 그렇게나 단단하던 크라켄의 촉수가 풍선처럼 터져서 찢어발겨진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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