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16)
[하벨스 대륙 남쪽도시 림프셀. 국왕 임시거처]
마족 패잔병 소탕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둠의 땅은 전부 마족의 영역이 되었고 하벨스 대륙의 서쪽과 동쪽은 엠페러 길드가 독차지 했다. 남쪽은 피난민들과 수많은 모험가 길드. 그리고 용병들이 몰렸다. 영토의 비중만 보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마족의 진격으로 언제 주춤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1번 친위대는 어떻게 되었지?”
“연락이 완전히 두절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가······.”
클리포드는 며칠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싸웠다. 마족이 북쪽산맥 부근에서 발견되지 않 은것도 그 남자가 여태 싸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다. 마족은 언젠가 남쪽까지 진격해올 것이다.
“친위대들은 잘 배치되었는가?”
“남쪽으로 연결된 워프 게이트는 전부 사수했습니다. 또한 보급물자와 지원부대를 빠르게 보충할 수 있게끔 이동 수단까지 마련해 놨습니다.”
“주민들의 대피는?”
“워프 게이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모든 주민들을 남쪽대륙 해변 인근으로 보냈습니다. 그 방향엔 13, 14친위대를 파견해 두었습니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전력으로 놈들을 대적하는 것 뿐.
‘반드시. 이 대륙을 지키고야 말겠노라.’
국왕의 입술에서 장밋빛 선혈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
“클리포드님! 이 이상 마족 놈들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병사들을 물려야 합니다!”
병사의 얼굴에는 며칠 밤낮으로 싸운 피로가 먹구름처럼 몰려있었다. 이젠 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족을 뿌리쳤다. 클리포드 단장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싸워야 한다. 절대로 물러나지 마라! 국왕군이 만반의 준비를 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1번 친위대는 어둠의 땅에서 궤멸한다. 반론은 받지 않겠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족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강한 건 둘째 치고 지긋지긋한 생존력이 절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팔을 베어도 몇 분 안으로 죽이지 못하면 재생하고, 더욱 강해진다. 즉, 조질 때는 확실하게 조져놔야 한다는 뜻이다.
“단장님.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어서 피하십쇼!”
클리포드를 둘러싼 마족의 레벨은 130. 병사들과 1대1 혹은 1대2로 싸울만한 하급 마족이다. 크기도 사람크기에 3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마족이지만 스피드와 물량은 무시할게 못되었다.
“캬르르륵!”
“하아압!”
병사는 창에 마력을 불어넣어서 정면으로 돌진했다. 공격은 마족의 안면을 시원하게 꿰뚫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단장님! 더는 못 버팁니다. 제발······!”
“시끄럽다! 나 혼자 도망쳐서 뭘 하라는 것이냐! 설령 온몸이 찢겨나간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절대로 도망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지 몰라도 검을 들고 있는 그 순간까지는 계속 싸울 것이다.
클리포드의 눈에서 광기가 내려앉았다. 그의 순수한 분노가 정면의 마족에게 향했다. 그는 장창의 손잡이를 억세게 움켜쥐고는 타고 있던 말에 박차를 가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마족은 단 한 마리도 이곳을 지나갈 수 없을 것이야!”
그의 창끝에서 작렬하는 화염이 일어섰다. 바위도 녹여버릴 만한 지옥의 겁화였다. 불꽃은 마족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크에엑!”
그의 창에 목숨을 잃은 마족만 족히 수백은 되었다. 클리포드는 피칠갑이 되도록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MP가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는 모든 회복포션을 사용해서라도 끈질기게 일어섰다.
“이야아아아압!”
병사가 목숨을 각오하고 마족의 무더기로 뛰어들었다. 그의 용맹함은 마족의 눈알을 꿰뚫었다.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와 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헉······. 헉······.”
지친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 허나 싸워야 한다. 단장께서 목숨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라고 했으니까. 설령 몸이 갈가리 찢어져서 분해될지라도 내 고향을 지켜야 하니까.
모든 병사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싸움에 임했다. 그들은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일초라도 한 마리라도 더 죽이고 버티는 것이 나라를 위한일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클리포드도 도망칠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싸우는 거? 그까짓 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패배가 두려울 뿐이다!’
클리포드의 창이 연달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타고 있던 백마가 최대한의 속도로 질주했다. 그 진로에 서있던 마족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이곳은 네놈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콰악! 마족이 사각지대에서 공격해왔다. 백마의 HP가 소멸했고 클리포드는 바닥으로 낙하했다. 쿵! 소리가 일어나기 무섭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많이도 몰려들었군.”
완전 포위되었다. 이번 접전이 마지막 싸움이 될 것 같다. 한계는 진작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창이 떨어지지 않는다.
“죄다 쓸어주마.”
절망가운데 떨어졌을 지라도,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지라도, 나는 내 영혼 한 조각 까지 태워서 너희를 길동무 삼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네놈들을 대적한 이유다!
“캬아아아악!!!! 캬르륵!”
“개 같은 자식들. 한꺼번에 와라! 전부 씹어버려서 묵사발을 내주마!”
나는 목이 터져라 포효하며 마지막 불꽃을 피워냈다. 피가 끓어오르는 격통과 며칠 동안 누적된 신체적, 정신적 피로.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싸움의 투지만을 내뿜었다.
콰직!
클리포드는 창을 좌에서 우로 크게 휩쓸었다. 그와 동시에 마족 다섯 마리가 하얀 연기와 함께 승화되었다.
“화성참철격(火煋斬剟挌)!”
높이 뛰어올라 창으로 지면을 강타. 그 순간 대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화염이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크우오옷!!!!”
내 모든 전력을 쥐어짜내서, 내 창에 모든 힘을 쏟아내서······.
“네놈들을 박멸하리라!”
거대한 굉음이 전장 한 가운데 울려 퍼졌다. 화염의 불길이 높은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불꽃 파도는 정면의 마족을 집어삼켰고 한 번의 스킬발동으로 100마리가 넘는 마족이 불타 없어졌다.
“단장님!! 괜찮습니까?”
“커헉, 크어어······.”
입가에서 간헐적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없던 생명력까지 쥐어짜낸 기술이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병사를 밀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건재하다. 멀었어. 놈들을 쓸어버려!”
클리포드의 장렬한 투기덕분에 1번 친위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고, 물러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돌격! 한 놈도······, 한 놈도 대륙 안쪽으로 들이지 마라!”
“마족 한 마리에 2명은 사치다! 능력껏 1대1로 알아서 처리해라!”
전략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시궁창싸움 뿐이다. 진흙탕을 뒹굴며 더럽게 싸워야 한다. 이겼으면 또 다른 진흙탕에서 구를 뿐이다. 죽이는 것.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뿐이다.
쿠르르릉······.
하늘이 어두워지며 불길한 눈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뜨겁게 가열된 전장을 억지로 식히려는 것 같았다. 바닥이 젖었다. 비가 아닌, 핏물로. 칼과 방패가 무뎌졌다. 용기가 아닌, 무력함으로. 전투는 아무도 모르게 마족의 승리고 기울고 있었다.
콰악! 푸욱!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얼굴이 뜯겨나가고 팔이 뜯겨나가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검과 창을 놓치지 않았다. 마족들은 심하게 흔들린 대열을 파고들어 1번 친위대를 궤멸까지 몰고 갔다.
클리포드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전장을 올려다보았다.
‘크크큭! 누가 좀 도와주면 안 되냐?’
내 뒤로 마족이 다가왔다.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막거나 회피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는 죽어가는 눈으로 마족에게 물었다.
“같이 죽는 건 어때?”
나는 목으로 날아오는 쐐기모양의 발톱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피할 힘으로 놈의 복부에 창을 꽂아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키르륵!”
낯선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콰가가가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가, 갑자기 무슨 일이······.’
육참골단을 각오하고 덤벼들었으나 놈의 형체는 일순간에 뭉그러졌다. 그 뿐만이 아니라 뒤늦게 찾아온 후폭풍이 지면을 갈아엎었다. 그 순간 대담했던 마족들의 움직임이 주춤했다.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뒤로 물러섰다. 허공을 메운 흙먼지가 가라앉아서야, 궤변의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녹색피부와 누렇게 떠오른 이빨. 눈동자는 간헐적으로 요동치는 황색이다. 기괴하게 뒤틀린 이목구비는 어딜 봐도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놈은 마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다.
“고블린?”
아니, 느낌이 다르다. 갑옷과 곡괭이로 무장한 고블린은 전대미문이다. 무엇보다 레벨3에 달하는 최약체 몬스터가 마족을 한방에 묵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블린이 북쪽 산맥을 넘어서 여기까지 넘어올 이유가 없다.
고블린은 곡괭이를 바닥에 끌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상황이 어찌되었건 내게는 저항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 놈이 공격해오면 저항한번 못해보고 무력하게 죽어야 했다.
“넌······ 뭐냐.”
“크르륵······.”
녀석은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히려 마족을 대적하려는 마냥 반대편으로 곡괭이를 겨누었다. 나는 녀석 등 뒤로 몰려온 그림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호흡이 멈춰버리는 듯 했다.
“저게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그런데 저것들은 도대체······.”
모든 암영들이 일제히 곡괭이를 들고 서있다. 그들은 마족이 몰려오는 방향에서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었다. 마족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놈들. 단순한 고블린이 아니다.’
마족을 원킬 낸 것도 그렇고, 겉으로 풍기는 패기 또한 비상식적이다. 나는 그 사실을 관찰스킬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퍼플네임드. 레이드 급······보스?’
그것도 모자라서 이름 옆에 떠오른 레벨은,
《의지의 고블린 LV.400》
‘일반 몬스터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레벨범위. 허나 레이드 보스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녀석은 지금 내 능력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마족장군 급 고블린이라니? 허나, 그는 본인의 힘을 입증하려는 듯 거친 포효와 함께 곡괭이를 들어올렸다.
“캬라라라라!!!!!!!!!!!”
쩌렁쩌렁 귀를 울리는 고블린의 목소리가 모든 마족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놈들에게서 가장 위협되는 적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들은 고블린을 둘러싸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가 너무 많아. 이길 수 없어.’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 지금의 나처럼. 하지만 몬스터가 뭘 위해, 어떤 의지가 있고 놈들과 전력으로 싸우려 하겠는가?
‘그래도 시간을 끄는 동안은 기회다.’
클리포드는 창을 지지대 삼아서 몸을 일으키고 소리쳤다.
“전 병사들에게 알린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진열을 정비해! 부상자의 휴식은 최소한으로, 곧바로 전장으로 복귀하라!”
고블린이 레이드 보스라고 한다면 그 체력은 상당할 터. 오래 버틴다면 30분정도 여유는 있다. 그동안 스테미너를 회복하고 돌아오면······.
콰아아아앙─────!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강렬한 울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또 다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허공에 휘날리는 수백 마리의 마족들. 그 모습은 가히 화살이 빗발치는 것만 같았다.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은 의지로 가득했다. 나보다 더한 의지로 말이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어떤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인간을 도왔는지, 하지만 수많은 질문을 생각하기도 전에 수많은 고블린들은 일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내가 헛것을 본 건가?’
그럴 리 없다. 그 많던 마족들이 한순간 소멸하지 않았는가? 내가 본 것은 꿈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다.
‘일단 돌아가자. 다시 마법 통신망을 연결하고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고가 우선이야.’
나는 몸을 일으켜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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