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14)
거센 용오름이 마족을 휩쓸었다. 그들의 몸은 일순간에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바닷물은 피의 향연으로 차올랐다. 더 이상 내 쪽으로 다가오는 마족은 없었다. 묠니르가 아래쪽에서 모든 마족을 때려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앞을 뚫고 나가려면 나부터 쓰러뜨려야 할 것이다!”
그녀가 정권을 장전했다. 단전으로부터 끌어올린 힘이 예리한 천둥번개가 되어 양손에 깃들었다.
“침입자······. 죽여야 한다.”
“닥쳐라!”
회피, 라이트 훅. 빠지고, 레프트 훅. 예리하게 뻗어나는 섬광이 마족의 두개골을 날계란마냥 시원하게 깨부쉈다. 마족들은 번개와도 같은 묠니르의 속도를 감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공격만 했다하면 백색섬광으로 변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머리통이 날아간 뒤였다.
묠니르는 지그재그로 초고속 질주를 일으키며 마족의 신체를 분쇄했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불러일으킨 처참한 살육의 광경이다.
이를 지켜보던 바드가 경외의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저렇게 못하지. 대단해 아주.”
아무튼 정상에 도착했다. 여왕의 상체. 여왕의 머리가 있는 곳. 나는 연분홍색의 얇은 껍질막을 비집고 들어갔다. 구체로 둘러싸인 안락한 방 같았다. 아래쪽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수온이 따듯했다. 나는 정면에서 거대한 기척을 느꼈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다.
“돌아가.”
“그건 안 되겠는데.”
나체의 여자다. 하반신은 전부 표주박 기둥에 파묻혀있고 상체만 나와 있다. 양팔은 방안의 껍질막에 붙잡혀 Y자로 들려있었다.
“돌아가 줘.”
아스모데우스가 고개를 올리고 눈꺼풀을 들었다. 갸름한 턱선, 베일듯이 날카로운 이목구비. 피부는 창백했으나 시체만큼 푸르죽죽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잡다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돌아가 줘요.”
순수한 분노와, 공포였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빨갛게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구역질나는 혐오감이 몰려왔다.
“······죽이지 마.”
“왜 그딴 표정으로······.”
거짓된 감정으로 호소하지 말란 말이다. 마족주제에, 마족주제에 그딴 표정으로 애걸하지 말란 말이다!
“니들은 인간과 달라. 그저 살육을 본능으로 삼는 추악한 존재지 않더냐. 내 앞에서 그런 반응 보이지 말란 말이다!!!!”
“너도······.”
아스모데우스가 미약한 미술을 열었다. 맥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와 바닥에 늘어졌다.
“너도 나랑 똑같잖아.
“······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아스모데우스를 단칼에 도륙내지 않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다. 내 스스로 붕괴될까봐 겁이 났다. 나는 눈앞의 현실을······.
“죽어.”
부정했다.
촤아아아악───!
새까만 핏물이 베어 나왔다. 파천도에 닦을 수 없는 얼룩이 묻어났다. 짙고, 어둡고, 끈적끈적했다. 나는 완전히 도륙 내버린 아스모데우스의 상체를 들어올렸다. 눈가에 물기가 번져있다. 바다 속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울고 있었다. 굳어버린 표정이 무표정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도대체 어째서······.’
나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족의 육체를 들고 껍질막에서 빠져나왔다. 아래쪽은 묠니르가 죄다 정리한 모습이다. 이 거대한 기둥도, 번식장도 곧 붕괴될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가면 사건은 마무리 된다.
“바드! 거긴 끝난 거야?”
“그래. 동굴을 무너뜨리고 철수한다.”
“들고 있는 건 뭐야?”
“아스모데우스다. 다신 부활 못하도록 네 번개로 태워버려.”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먼저 나가있겠다.”
“그러든가.”
잠시 후 묠니르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 아스모데우스는 완전히 불태웠다고 한다. 나는 마족의 번식장을 완전히 매장시키기 위해 동굴 입구를 함몰시켰다.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 전부 파묻히길 기대하며······.
***
물의나라로 복귀한 바드는 제일먼저 운디네를 찾아갔다. 운디네는 환영식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바드의 대답은 이랬다.
“미안하군. 피곤해서 그런 건 못해.”
“그렇군요. 하는 수 없죠. 그럼 우선 침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동안 푹 쉬시면 괜찮아 질 거예요. 세롤드? 용사님을 침소로······.”
“아니, 됐다. 지금 상황이 긴박해서 말이야. 피곤하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그나저나 상황은 어떻게 된 것 같나? 놈들의 부화장은 파괴했다. 여왕 또한 죽였고. 남은 마족이 있나?”
운디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마족은 전멸했습니다. 최소한 물의나라를 위협하던 세력은 없어졌죠. 그래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 바다 어딘가에 마족이 남아있다면 해왕님이 알려주실 겁니다. 더 이상 신경써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럼 물의나라가 나를 도와줄 차례야.”
운디네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손을 뻗어 물의언어로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커다란 손아귀에서 아름다운 물거품이 형성되었다. 그 안에서 연분홍색과 보석으로 치장된 나팔고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세상을 돕기로 약속했었죠. 물의나라를 구해주셨으니, 저희도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위급할 때 이 나팔고둥을 불어주세요. 10만에 달하는 물의나라 병사들이 즉시 출두할 겁니다.”
바드는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운디네의 나팔고둥을 받았다.
“고맙군. 언젠가 하벨스 대륙으로 올라오면 좋은 대접을 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건 내 선물이다.”
나는 마법가방(대형)에서 또 다른 마법가방(대형)을 꺼내들었다. 이 안에는 수천 개의 병기구가 담겨있다. 팔려고 만든 장비들인 만큼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능력치도 천지차이지만 당장은 물의나라 병사들의 전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베테랑 모험가 수준으로 만든 장비가 아니므로 어느 정도 레벨만 되면 다들 착용할 수 있으리라.
“도와줄 조력자가 조금이라도 강해져야 해. 모든 병사들이 쓸 수 있는 양은 아니지만 꽤 도움이 될 거다.”
“이렇게 귀한걸 선뜻 내어주시다니······.”
“귀하기야 하지만 희귀한 건 아니야. 장비야 얼마든지 만들면 돼.”
“만든다고요?”
운디네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바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이거 다 내가 만든 거다. 대장장이거든.”
순간 운디네와 그녀의 책사인 세롤드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 대장장이요?”
“대장장이가 마족을 휩쓸었단 말이야?!”
운디네는 다시 온화한 표정을 되찾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멋있네요. 대장장이 용사님이라. 그렇다면 재료아이템은 뭐든 만지시겠군요? 바쁘신 건 알지만 잠시 따라와 주세요. 5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운디네의 뒤를 따라 안쪽 방안으로 향했다. 달콤한 향기가 콧속을 찔렀다. 은은하고 가슴이 물렁해지는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제 침실이랍니다.”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은근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침상 밑에서 백색 보석함을 꺼내들었다. 운디네에겐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였지만 내겐 한 아름에 안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보물 상자였다.
“바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들과 광석이랍니다. 물의나라에선 수집용으로 모으지만 용사님이라면 더욱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꽤 무거우니까 조심 하세요.”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지는군.”
“저희들이야 말로 용사님의 신세를 많이 졌죠.”
운디네가 성큼 다가와 또 다시 나를 껴안았다. 그녀는 내 귓가에 속상이듯 말했다.
“인간만 아니었으면 일등 신랑감이었을 텐데요······.”
“뭐라고?”
그녀가 나를 풀어줬다. 그 사이 세롤드가 마법가방 안으로 보석함을 쑤셔 넣었다.
“떠날 채비가 끝난 모양이네요. 그럼 용사님. 몸조심이 돌아가세요.”
“그, 그러지.”
나는 허둥지둥 물의나라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묠니르를 꺼내들었다.
“나와 묠니르.”
내 호출에 묠니르는 백색 광채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
“토르의 가호가 끝나가고 있어. 서둘러야해! 5시간이나 기다릴 수 없단 말이야!”
“나 참, 토르의 가호 없이 널 불러낼 수 없다니. 뭐가 이러냐?”
“어쩔 수 없잖아! 호감도가 바닥을 치는 걸 어떡해? 너 완전 비호감이란 말이야! 헉! 10초 남았다. 내손 잡아! 바로 출발할거야!”
묠니르의 손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불덩이를 움켜쥐는 것처럼 뜨거웠다.
부우웅!
온몸으로 노란기운이 감싸 돌았다. 그리고 주변 배경이 순식간에 교체되었다. 바다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상쾌한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묠니르는······.
“다시 망치로 돌아갔군.”
이곳이 바로 묠니르가 태어난 장소. 할아버지가 검술을 익힌 곳이며 최초로 마족전쟁이 발발한 곳이다.
‘설마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대장장이의 고장 헬리오스에 방문했습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1단계 증가합니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이미 마스터 단계입니다.》
《‘Master Smith’칭호를 획득했습니다.》
Master Smith: 100% 확률로 제작된 장비에 특수공격력을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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