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11)
가시 돋친 빨판이 정면으로 날아들어 왔다. 나는 창을 직선으로 내리그어 촉수를 2가닥으로 갈라버렸다. 새빨간 핏물이 한 움큼 터져 나왔다. 이어서 등 뒤로 거대한 지느러미가 바닥을 헤집으며 다가왔다. 나는 각력을 쥐어짜내 높이 도약했다. 부력덕분에 족히 40미터는 뛰어오른 기분이다.
“크라켄급 해수 열 마리.”
하나같이 무식한 덩치였고 혐오스런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크라켄과 거의 동일하게 생긴 새카만 해수를 공략했다. 녀석의 빨간 눈동자가 꾸물거렸다. 나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늦었어.”
나는 물의 저항을 반쯤 무시하며 어뢰처럼 쏘아 날아갔다. 정면으로 가시 돋친 6개의 다리가 행로를 막았지만 그것만으로 내 창을 막을 수 없다. 정면으로 내세운 창은 다리를 전부 관통하고도 놈의 눈알 사이를 파고들었다. 온갖 살점이 찢겨나가고 뭉클한 핏물이 바닷속에 녹아들었다.
“그루루루루루루······.”
“아직 멀었어.”
해수가 고작 이 정도일리 없다. 놈의 HP를 완전히 바닥내지 않는 이상 안심할 수 없다.
나는 무차별 난무를 퍼부어댔다. 창끝에서 녹색 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그렇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그버어억!”
세상에, 인간처럼 2족 보행을 하는 해수가 손가락에 달린 구멍을 통해 다량의 먹물을 뿜어냈다. 놈의 피부는 창백하고 보라색 반점이 찍혀있었다. 얼굴까지 인간을 닮지 않아서 내심 안도했다.
“빌어먹을 녀석. 방해를······!”
《레벨10 중독 상태이상에 빠졌습니다. HP가 일정시간에 걸쳐 줄어듭니다.》
나는 알림창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창을 가로로 휘둘렀다. 독 먹물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방해꾼 자연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보호색까지?”
잠깐 주춤 거리는 사이에 빈사상태에 이르렀던 해수는 HP를 반쯤 회복한 상태였다. 황급히 마무리를 지으려 했으나, 계속되는 해수의 방해공작에 나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었다. 그저 내 HP만 야금야금 깎여나갈 뿐.
“헉헉······.”
이젠 싸움이 지연되어선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상 그 녀석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창을 집어넣고 허리춤에서 황금빛으로 번뜩이는 망치를 꺼내들었다.
“토르의 가호”
《토르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청백색 푸른 불꽃이 내 몸 위로 떨어졌다. 주위로 빛나는 아우라가 흘러넘쳤다. 이번엔 해수들도 적잖이 당황한 듯 거리를 두었다. 1분이 지났다.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둠이 다가오자 놈들은 한껏 여유를 되찾은 듯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가자 묠니르.”
나는 묠니르를 들어 올리고 온힘 다해 지면을 내리쳤다. 그 순간 백색 그물이 그어지면서 어둠이 밝혀졌다. 바닷물을 타고 수천만 볼트의 전류가 넓게 퍼져나갔다. 전기에 대한 면역력이 증가한 이 순간, 나는 묠니르의 모든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수는 압도적인 과전압에 짓눌렸다. 놈들은 살벌하게 울부짖으며 주위를 닥치는 대로 때려 부쉈다. 데미지라곤 대부분 감전데미지뿐이라 HP가 급속도로 깎여나가지 않았지만 하여튼 열댓 마리 되는 해수들을 동시에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방해꾼이 없었다면 말이다.
“멈춰라······.”
바다를 통해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나는 엉겁결에 공격을 중단했다. 그러자 모든 해수들이 꽁무니를 빼며 다급히 도망쳤다. 분명 놈들이 도망친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방향에선,
“정체를 밝혀라. 네놈은 마족이더냐?”
목소리의 주인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어둠으로 인해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소리높이여 말했다.
“나는 해왕의 신전을 찾고 있다.”
“해왕의 신전을 무슨 일로 찾는 거지?”
“해왕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
귀청을 터뜨릴 것 같던 목소리가 한층 고요해졌다. 그는 뒤늦게 운을 떼며 말했다.
“불을 밝혀라.”
그의 신호에 심연의 어둠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 순간 나는 두 번이나 놀라고 말았다. 처음엔 수백 미터 깊이의 심해가 한 순간 푸른빛으로 감도는 보석 같은 세상으로 변했다는 점. 다음으로 해수와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남자가 황금의 삼지창을 들고 눈앞에 서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오로지 나체의 몸으로 바다 속을 걸어 다녔다.
그가 말했다.
“질문이라. 고작 그것 때문에 이런 위험한 곳까지 찾아오다니, 인간 놈들은 하나같이 무리한 녀석들뿐이군. 그리고······.”
거인은 내 갑주를 삼지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갑주는 낯이 익군.”
“그래. 해왕의 비늘로 만든 갑주.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가 언젠가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7개의 보구다. 하지만 너는 이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기억이 전부 말소되었을 테니 말이야. 아무튼 운디네가 물의나라를 구하기 위해 해왕의 힘을 빌렸다더군. 우선 해왕을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
그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내가 해왕이다. 바다를 다스리는 바다의 왕. 할 말이 있다면 내게 해라.”
“대화가 빨라서 좋군. 당신은 알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상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 엠페러 길드가 전 대륙에서 반란을 일으켰지.”
“인간들 세계는 듣고 싶지 않다.”
그가 내 말을 끊자, 나도 해왕의 말을 잘라먹었다.
“끝까지 들어. 하나 더 수상쩍은 부분이 있다. 마족 놈들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이 상황을 해왕인 너는 어떻게 바라보지?”
마족의 세력이 강해졌다는 것은 마왕의 힘이 복구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만약 마족이 재차 전쟁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날엔······.
“마족은 하벨스 대륙 전체뿐 아니라 이 세계를 전부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어. 그렇게 되면 해왕인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물론 여기 있는 모든 해수까지도 몰살이야. 나는 그 사단을 막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다. 이만 본론으로 넘어가지 물의나라는 어디지?”
“물의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건가?”
“우선 그들의 나라를 구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 장비는 한동안 더 대여해야 할 거 같은데 괜찮나?”
“배짱한번 좋군. 해왕 앞에서 이리도 당당하다니.”
해왕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상황이 긴박한 것 같으니 알려주도록 하지.”
해왕은 삼지창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거센 물거품이 일어나고 눈앞으로 오색빛깔의 오로라가 이어졌다. 해왕이 말했다.
오로라를 따라가라. 그러면 물의나라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라. 가는 길에 마족이 수두룩하게 널려있다. 나와 해수들이 매일같이 놈들을 제압하지만 네놈 말대로 매일같이 강해지고 있더군. 물의나라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여기도 만만찮게 다급한 모양이군.”
“서둘러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간까지는 나의 해수들이 함께해 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긴박한건 나도 마찬가지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하지.”
바드는 해왕과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해왕은 고뇌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드는 곧바로 오로라를 따라 달려갔다.
***
지상만 난장판인 줄 알았더니, 바다 속도 만만치 않다. 이건 뭐, 거의 전쟁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나는 자욱하게 깔려있는 마족들은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족들의 패잔병이라 봐야 얼마나 남아있겠냐 싶었지만 그 규모는 자그마치 수천에 달했다. 평범한 몬스터도 아니고 마족이 이만큼이나 모여 있으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싸움이 벌어질 것이 분명 했다. 단언컨대, 지상에 남아있는 마족 놈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숫자가 끊임없이 늘어난다더니 수중에서 교미하고 숫자를 늘려온 건가.’
나는 바다 절벽을 가로지르고 높은 곳에서 접전지역을 내려다보았다. 마족들 반대편에는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어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수많은 사체가 쌓여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숫자의 시체들이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창을 뽑아들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토르의 가호가 끝났다.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는 창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
안내를 마친 해수들은 다시 해왕에게로 돌아간 모양이다. 잠시 후 거대한 함성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적으로 마족이 열세였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 물의나라 병사들도 피해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나는 전장 한 가운데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운디네님! 더 이상 놈들의 진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두 눈을 감은 푸른 장발의 여인이 손을 감싸 쥐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였다. 운디네는 반 나체상태의 몸을 일으키고 전장을 내다보았다. 짙은 핏물이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갔다. 전부 물의나라 병사들의 생명뿐이었다.
“운디네님······.”
“그가 왔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운디네 곁에 있던 늙은 난쟁이 어인이 질문했다. 그는 백색의 도포를 두르고 있었으며 자글자글한 주름 속에 날카로운 눈초리를 숨기고 있었다. 운디네가 영감의 말에 대답했다.
“세롤드. 전장을 봐주세요. 수십 년에 걸쳐 찾아왔습니다. 저희 물의나라를 구해줄······.”
용사님이 말이죠.
세롤드의 시야에는 마족의 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단신으로 격전을 치루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눈 안에는 광기가 물들어 있었다. 마족을 짓이겨버리겠다는 일념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시무시한 용사님이로군요.”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운디네는 기도하는 자세로 두 눈을 감았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물을 타고 넘실대기 시작했다.
멀리서 노랫소리를 듣고 있던 바드는 당황했다.
《운디네의 환영이 적용 되었습니다》
《운디네의 축복이 적용 되었습니다》
《운디네의 응원이 적용 되었습니다》
《운디네의 사랑이 적용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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