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10화 (110/202)

Master Smith (110)

국왕의 선포령은 전 대륙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벨스 전역에 퍼져있는 국왕군들이 통신 크리스털로 전쟁선포에 관한 내용을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큰 충격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뭐? 전쟁?”

“우리할아버지 때 전쟁은 전부 끝났다고! 남은 건 마족들의 잔당뿐이라면서?!”

“이럴게 아니야! 국왕님 말대로 도망쳐야해! 자네도 신문 봤잖아? 이젠 엠페러 길드까지 난리란 말이야!”

주민들은 발 빠르게 짐을 챙기고 남쪽대륙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남쪽대륙에 위치한 코지부락 주민들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군.”

“그란다! 자네는 도망치지 않을 건가?”

코지부락의 주점장인 그란다는 본인이 직접 빚어낸 흑맥주를 한입에 털어놓고는 입가에 흐르는 맥주를 팔로 닦아냈다.

“내 집과 고향은 여기야! 죽어도 이곳에서 죽고, 살아도 이곳에서 살아. 나는 떠나지 않겠네. 마족 놈들이 여기까지 밀고 내려올 정도면 바닷가 끝까지 도망쳐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 않은가?”

모험가들은 괴로운 표정으로 그란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일체 틀린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그동안 고마웠네. 살아서 다시 보게 된다면······.”

그란다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시원하게 한잔하자고! 크하하하핫! 아참, 카밀라 그 색시 알지? 부디 그 여인만큼은 꼭 지켜주게. 약속할 수 있겠나?”

“그렇게 하지. 그런데 자네가 신경 쓸 이유가 있나?”

“카밀라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살아왔네. 게다가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을 뼈 빠지게 기다리고 있지. 그 아이가 마족의 손에 죽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그란다는 비장하게 웃어보였다. 자신은 몬스터 필드에서 싸워본 경험이 없으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족을 대적하리라 결심했다.

***

마그르스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젖어들었다. 마족과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코앞까지 엠페러 길드가 쳐들어왔다는 소리에 당장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광장으로 나와 짐을 챙기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깥 상황을 지켜보던 이사벨라는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했다.

“다들 모인거지?”

레이나, 카스티바, 쿠샨, 미호, 안토니오, 노엘, 나까지. 아니, 한 사람 부족하잖아?

이사벨라가 다급하게 손가락을 가리켜며 노발대발했다.

“분명 다 모이라고 했잖아! 게르덱은 어디로 간 거야!”

“바드도 없는데?”

레이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눈썹을 모았다. 어느 틈에 2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안토니오가 소리쳤다.

“2층엔 아무도 없어요! 나간 거 아니에요?”

“시간이 없어. 곧 엠페러 길드가 마그르스로 쳐들어올 거란 말이야!”

이사벨라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짧게 설명 할 테니까 다들 한 번에 알아들어. 바드는 지원군이 필요하다면서 혼자 해왕의 신전으로 향했어. 당분간 못 볼 거 같다지만 걱정할 필요 없을 거야. 문제는 우리들이지! 게르덱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순 없어. 다들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지?”

이사벨라의 말에 레이나와 미호가 호도깝스럽게 놀라 자빠졌다.

“이 상황에 혼자 어딜 갔다고?”

“주인님이 우릴 버리고 간 거야?”

두 사람이 화를 내다가도 울먹였다. 이사벨라는 그 상황이 답답했는지 버럭 화를 냈다.

“장난 칠 기분 아니라고! 게르덱은 알아서 잘 돌아올 거야. 지금은 우리끼리 피난길을 따라가야 해. 왜냐하면······.”

이사벨라가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엠페러 길드가 노리고 있는 사람은 너희 두 사람이니까.”

카스티바와 안토니오의 표정이 딱딱한 바위처럼 굳어졌다. 그제야 엠페러 길드가 이 난리를 치는 이유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두 사람은 서로만 들릴 정도로 작게 대화했다.

“걱정 마. 언니만 믿어.”

“······내 신변을 내가 알아서 지켜. 누나 몸이나 잘 관수해.”

이사벨라는 곧바로 길드하우스를 나섰다.

“목적지는 코지부락이야. 그 근처까지 연결된 워프게이트를 타려면 20km이상은 걸어가야 해. 서두르면 엠페러 길드에게 발목 붙잡히지 않을 수 있어. 그리고 두 사람은,”

이사벨라가 숨을 한번 멈추고 두 사람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충분한 이유를 대야할거야. 엠페러 길드가 어째서 너희 두 사람을 노리는지. 너희도 이유정도는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발하자.”

나의 출발선언으로 갑작스런 피난길이 시작되었다. 세상이 미쳐서 돌아버린 기분이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육지와 바다가 붕괴하는 기분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다.

‘위험한 시기인걸.’

불길함을 감지한 이사벨라의 토끼귀가 빳빳하게 떠올랐다.

***

바닷가의 진한 짠내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동쪽 땅 끝 마을 포르갈을 지나서 30미터에 육박하는 드높은 절벽 끝자락에 이르렀다. 아래에는 사나운 파도가 살벌하게 절벽을 때리고 있었다. 들쭉날쭉한 바윗덩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실수라도 미끄러지는 순간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뚫려버릴 것이다.

‘바람이 소란스럽군.’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치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가 귓전을 강하게 때렸다. 나는 무장 커맨드를 작게 영창했다.

“COMMAND: EQUIPMENT SUMMONS SET.2”

《해왕의 갑주를 장비하였습니다. 세트효과를 보정 받습니다.》

다음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전신을 두른 미지근한 기운은 푸른빛과 붉은빛을 머금었다. 비취색 도깨비불이 몸 근처를 부유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암청색 갑주가 전신에 둘러졌고, 암적색 오토메일이 푸른 불꽃을 피워내며 왼쪽 팔에 착용되었다. 가슴에는 푸른 도깨비를 연상 시키는 기괴한 문양이 각인 되었고 그곳으로부터 해왕의 힘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이곳이 확실하군.”

해왕의 갑주가 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이제껏 잘 따라왔는데, 이젠 절벽 아래로 떨어지란다. 잘못 착지하는 순간 뼈도 못 추릴 텐데 말이다. 나는 한번 숨을 들이켜고 소용돌이치는 바다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강풍이 귓전을 때리고 거친 파도가 안면을 집어삼켰다.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엄습해왔다.

거센 파도가 구속복처럼 온몸을 죄여왔다. 나는 한동안 물살에 휩쓸려 깊은 심해로 끌려갔다.

‘숨이······.’

《해왕의 숨결이 발동합니다. 물속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호흡이 가능해집니다.》

“그래. 이래야지.”

온몸에 반투명한 막이 싸여졌다. 물의 저항이 거의 사라지고 호흡도 가능해졌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는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칠흑 같은 암흑을 헤쳐 나갔다.

“깊군.”

더 이상 이곳은 거칠고 소란스런 바다가 아니었다. 어둡고 고요하며 공포 그 자체의 세계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미지의 생물이 덮칠지 모른다. 문득 떠오른 상상에 등줄기가 가려워 졌다.

땅에 발이 닿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나는 해왕의 갑주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바다 속이라 그런지 주변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체념하고 정면으로 향했다. 불길한 기운이 다가왔다. 어둠의 그림자가 끈적끈적하게 밝히는 기분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장창을 꺼내들었다. 녹취색으로 빛나는 묵직하고 기다란 창이다. 손잡이에는 ‘Vellnaris’라는 글자가 물결치며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그그그······.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바다 전체가 울부짖는 느낌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발광석으로 제작한 신호탄을 꺼내들었다. 물속이라지만 한순간 주변을 밝힐 광원은 내뿜을 수 있으리라. 나는 신호탄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빨간색 광원이 20미터가량 날아오르고,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그 순간,

“······이건 위험 한데.”

칠흑의 세계가 삽시간만에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반경 100m안의 모든 것들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끈적끈적한 바닥과 기괴한 암석,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눈알까지. 사방 천지에 널렸다. 수십 마리의 기괴한 생명체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이 공허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5초도 안 되어서 세상은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내뱉는 호흡과 심장고동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녀석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의식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까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이 공포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르륵. 미묘한 감촉이 팔을 스쳤다. 신호탄을 사용하면 이 정체불명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내게 그럴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둠속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나는 창을 뻗어 어둠속의 살기를 뿌리쳤다. 이번엔 수십 개의 기척이 덤벼오고 있다. 물의 흐름이 난잡해졌고, 육중한 압력이 몸을 가격했다.

“크헉!”

팔과 다리를 붙잡히고 복부를 가격 당했다. 느낌상 거대한 촉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래. 마치 크라켄을 대적하는 느낌이었다. 녀석들의 정체는 바로······.

“해수인가!”

해왕의 갑주 덕분에 소실된 HP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스테미너가 소진되어 놈들의 지속적인 공격에 시달리게 되면 죽을게 분명하다. 어떻게든 놈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창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몸을 반 바퀴 크게 회전시켰다. 난잡했던 물살이 내 힘에 이끌려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일제히 뻗어오던 놈들의 공격이 물살과 함께 튕겨져 날아갔다. 나는 곧바로 두 번째 신호탄을 꺼내들어 공중을 향해 쏘아 올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큰 용기로 제작한 신호탄이었다. 최소 1분정도는 어둠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리라.

붉은 광원에 어둠이 물러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해수란 해수들은 죄다 여기로 몰려있는 거냐?”

기본 30미터가 넘는 해수들이 나를 둘러싸고는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무거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싸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너무 차갑고 거무죽죽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강하다. 마족장군과 견줄 정도로 엄청나게.

하지만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다. 절대로.

“전부 한꺼번에 덤벼라! 빌어먹을 괴물 자식들아!”

“그로루루루루루루······.”

낮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지면을 때렸다. 놈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과 거대한 꼬리, 육중한 지느러미와 촉수를 휘두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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