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08화 (108/202)

Master Smith (108)

쾅쾅쾅!

“네~ 나가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있던 안토니오가 포크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냅다 안토니오를 덮쳤다.

“안토니오님!”

“커헉!”

개나리처럼 노란 머릿결과 세공된 사파이어의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어젯밤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더니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여긴 왜 온 거야!”

“또 놀러온다고 말 했잖아요?”

안토니오는 급히 몸을 빼내며 리나와 거리를 두었다. 자신은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토니오는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드형. 빠, 빨리 장사하러 가야죠. 오늘도 돈 많이 벌어야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냥 오늘은 쉬지 그래? 모처럼 찾아온 손님이기도 하고.”

그녀는 내 발언에 화색을 감추지 않았다.

“와아~ 오빠 최고에요. 그럼 오늘 하루는 안토니오님이랑 같이 있어도 되는 거죠?”

“알아서 해. 나만 귀찮지 않으면 되니까.”

안토니오가 매출을 올리는데 한 몫 하는 건 알고 있지만 미호가 있어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슬슬 디디스가 찾아올 때여서 한동안 장사는 쉬엄쉬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은 쉬어. 나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움직일 생각이었으니가.”

“가,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얘는 어쩌고요?”

안토니오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리나도 시들한 잡초마냥 어깨가 늘어졌다.

“안토니오님은 제가 싫은 건가요······?”

그녀의 아담한 손이 갈피를 잃고 꼼지락 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켜보던 이사벨라가 안토니오를 다그쳤다.

“숙녀를 실망시키면 남자가 아니야 안토니오. 둘이 당장 데이트 하고 와!”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데이트라뇨?”

그 이상의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이사벨라의 막무가내로 안토니오와 리나 하루 종일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고야 말았다.

안토니오는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휴, 이런 골칫덩어리를 봤나.’

“안토님오님. 제가 부족한 여자일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리나가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안토니오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러시던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후딱 둘러보고 돌아가는 게 나리라 판단한 안토니오는 리나의 텐션에 맞춰주기로 했다.

“난 이곳 출신이 아니라서 지리를 잘 몰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리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안토니오의 팔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너무 기뻐요! 자아~ 출발!”

둘은 높고 화려한 건물이 많은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앞으로 좋은 시간보내길 바라며 둘을 지켜보던 이사벨라가 기도했다.

‘둘이 좋은 시간 보내~’

이사벨라는 당근 앞치마를 풀어헤치며 게르덱에게 말했다.

“게르덱 씨는 잠시 저와 가주시죠? 장을 보러 가야돼서요.”

“그러도록 하죠. 쿠샨 씨는 안 가도 되나요?”

게르덱이 쿠샨을 바라보자 그가 낮은 헛기침을 발산했다.

“크흠. 여태까지 짐도 전부 내가 들기도 했고. 상관없다면 내가 따라가겠다.”

이사벨라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쿠샨을 노려보았다.

“요새 고생 좀 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쉬게 놔두려고 했는데 굳이 일을 자초하네? 따라오겠다면 상관은 없지만······.”

게르덱은 쿠샨을 보면서 슬쩍 윙크를 날렸다.

‘쿠샨님 힘내세요!’

쿠샨은 답하듯 엄지를 슬쩍 지켜 세웠다.

“그럼 저는 주변 몬스터 필드에서 몸 좀 풀고 오겠습니다.”

“나도! 게르덱하고 콤비 좀 맞추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

카스티바가 밥 먹다 말고 허둥지둥 검을 챙기면서 게르덱의 뒤를 따라붙었다. 다들 각자 할 일 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나는 바깥에서 미호를 기다렸다. 안토니오가 없으니 오늘은 손 바쁘게 움직여야할 것 같다.

“장사 도와줄까?”

내 등을 찌른 사람은 레이나였다. 그녀 역시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레이나라면 안토니오를 대신해서 충분히 움직여줄 것이다. 장사경험도 있으니까 도와준다면 나야 고맙다.

“부탁하지.”

뒤늦게 뛰쳐나온 미호가 실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엥? 주인님이랑 단 둘이 데이트인줄 알았는데!”

“늦잠 잔 녀석이 잘못이지.”

나는 그녀의 불만에 딴죽을 걸며 이마를 때렸다.

“하핫! 바드님! 오랜만입니다요!”

대뜸 반가운 목소리가 귓바퀴에 맴돌았다. 드디어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디디스! 드디어 나타나셨군.”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에 머리털 하나 자라지 않은 번쩍번쩍한 민머리. 든든한 눈매와 얼굴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장사꾼으로서 특유의 재치는 충분히 보여주는 인상이었다.

디디스가 손에 들고 온 것은 고급스런 휘장으로 밀봉된 종이 한 장. 그는 그것을 내게 넘겨주며 빙그레 웃었다.

“새로 잡은 장사자리입니다. 바드님 이름으로 대장간도 있고,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길목이라서 장사하기 딱 좋은 명당자리죠. 가끔씩 높으신 분들이 지나가기도 하는 곳인데 바드님의 장비라면 분명 큰 값에 사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높으신 분들이 왕래하는 것 까지 계산했다 이거지?”

나는 디디스와 악수를 나눴다.

“고맙군. 이 은혜를 나중에라도 값도록 하지.”

“감사는 제가 해야죠! 바드님이 만들어주신 이 대거 덕분에 얼마나 손쉽게 마그르스로 넘어왔는지 모릅니다.”

디디스는 대거를 보여주며 미소 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종이 한 장을 추가로 건네주며 말했다.

“이곳이 제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나중에 볼일이 있다면 그쪽으로 찾아와 주세요.”

《마그르스 직커거리 퍼스트 라인 3번째 건물》

“직커거리라면?”

“마그르스의 유명한 빵집이 밀집된 곳이지요! 아침 일찍 활동해야하는 사람들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기 위해서 직커거리를 자주 찾아온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화물 운송하느라 바빠 죽겠다고요. 아무튼 이만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디디스는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일단 그가 마련해준 장소로 가보는 것이 좋으리라

“이사벨라~ 아직 준비 안 됐어? 쿠샨도 빨리 안 오면 우리 먼저 갈 거야?”

레이나가 아직 하우스 밖으로 나오지 않은 두 사람을 불렀다.

“세 사람 먼저 가. 곧 노엘도 내려올 거야. 노엘혼자 두고 갈 수 없잖아.”

이사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우리는 곧장 디디스가 말한 장소로 이동했다.

“이거 진짜 미쳤군.”

이제껏 본적 없는 엄청난 규모다. 코지부락의 상점도 만만찮게 컸지만 이 가게는 무려 6층에 달하는 크기다. 1층은 대장간이고, 나머지 층은 물건을 진열하는 층이다. 게다가 층을 오르내리는데 사용하는 것은 계단이 아닌, 단거리 워프 스톤이었다. 이로서 손님들의 교통이 한결 편해졌다.

‘근처에 손님도 많고, 건물도 깨끗해. 건물이 이만하니, 가방에 있는 물건도 10%는 진열할 수 있겠군.’

나는 1층에 대장간 도구들을 배치하고 판매할 물건들을 진열했다. 미호와 레이나도 손 바쁘게 움직였다.

“오오! 이 장비 괜찮아 보이는 군.”

개장하지도 않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딱 봐도 귀족의 느낌이 물씬 베어 나오고 있다. 금박이 붙어있는 눈부신 아머를 착용한 젊은 남성이었다. 언뜻 보기에 잘 다져진 근육과 균형 잡힌 신체가 고레벨 기사가 틀림없다.

‘검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군.’

나는 몇 초안으로 남자에 대한 분석을 끝냈다. 그가 관심을 보였던 검의 종류는 한손에 딱 들어오는 버티컬 소드. 수직 베기의 데미지가 공격력에 비례해서 자그마치 10%나 들어가는 거물이다. 검을 잡는 폼을 보아하니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은 있어 보인다.

“공격력이 레벨제한에 비해서 상당하군! 무게감도 있고 내구성도 뛰어나.”

“공들인 검이긴 하지. 검을 보는 안목이 높군.”

“이 검으로 주게. 얼마지?”

버티컬 소드의 가격은 +3강에 공격력 160. 암속성이 부가된 고급 무기다. 등급이 레어에 지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에픽과 견줄만한 무기이다. 가격으로 치환하면 최소 500만 실링이다만,

‘팔 거면 두세 개는 더 팔아 야지.’

“500만 실링이지만 450만 실링만 받지. 하지만 당신에게 맞춰야할 장비가 몇 가지 더 있어 보이는 군.”

내가 무례한 말투로 밀고 나가자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이 살기를 반쯤 뽑아들고 소리쳤다.

“무례하다! 이분이 어느 분이신줄 알고······!”

“진정하게. 내가 누구든 상관없지 않은가? 나는 손님일세. 듣고 보면 딱히 무례한 것도 아니야.”

그는 정중한 자세로 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미안하군. 하던 이야기마저 해주게.”

“당신은 한손 검과 방패를 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맞나?”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뭔지 말해줄 수 있겠나?”

그는 흥미로운 눈초리로 이유를 물었다. 나는 어려울 것 없다며 의견을 내놓았다.

“처음에 버티컬 소드를 집어들 때 오른손으로 들었다가 왼손으로 바꿔 쥐더군. 대부분 방패를 사용하는 오른손잡이 검사들은 오른손엔 방패, 왼손엔 검을 드는 것이 정석이다. 거기서 어느 정도 눈치 챘지.”

“하하하! 자네 말이 맞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군? 그래서 내게 추천할 장비는 뭔가?”

나는 아직 진열도 안 된 물건을 꺼내들면서 속사포로 설명했다.

“무게경감 마법부여, 내구도 300이상, 전면면적 넓음. 페리성공확률 10%증가 방와. 착용한 도구의 무게를 감소시켜주는 매직 글로브. 두 개 합쳐서 1천만 실링이다. 여기에 버티컬 소드까지 구입하면 전부 합쳐서 1350만 실링에 넘겨주지.”

방패와 검을 동시에 들면 스테미너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때문에 맞춤형 추천은 장사의 기본. 날카로운 인상의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좋군! 그렇게 함세!”

그날 장사는 대 히트를 쳤다. 하루만에 2층에서 6층까지 모든 물건이 매진되었다. 매일 장사가 이런 식이면 오히려 내 쪽 제고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기쁜 마음도 잠시. 평화로운 장사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따라 잠이 안 오는군.’

나는 새벽까지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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