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97)
의상페스티벌이 다가왔다. 그 말은 하네스 가택 방문이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음 같아선 두 곳 모두 가고 싶지만 페스티벌은 카스티바와 레이나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재앙의 산을 또 올라야 하다니, 끔찍하군.”
생각만 해도 힘이 빠진다.
“너무 무리하지 마.”
레이나가 말했다.
“그럴 생각이야. 잠깐 사우나 간다 치려고.”
재앙의 산을 사우나 취급하는 것도 나밖에 없을 거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웃긴 비유였다. 미호는 어젯밤부터 “이번엔 주인님 따라가도 돼?” 하고 뒷북을 쳤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갔다 올 생각이다.
이번엔 정말 헬리오스와 묠니르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따라 유독 광택을 빛내는 묠니르를 아련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넌 왜 그곳에 박혀있던 거냐?’
전설의 대장장이가 코지부락에 묻혀있던 이유, 묠니르가 그곳에 박혀있던 이유. 하네스는 오늘 모든 것을 말해주기로 했다.
‘묠니르 아저씨 정체가 되게 궁금했던 참이거든.’
나는 길을 떠나기 전에 유난히 표정이 좋지 못한 안토니오를 보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녀석은 하품하다 날아든 벌레를 씹어 삼킨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니까~ 그래도 우승하면 뭐든지 해줄 테니까. 응?”
안토니오의 모습이 우승을 위한 모습으로 변태되었다. 카스티바와 레이나는 연습 때와 다르게 더욱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엘이 미약한 실소를 작게 터뜨렸다.
“푸훕······. 귀여워 안토니오.”
바닐라 색 단발머리가 올올이 비웃는 듯했다.
“제발 웃지 말아줘.”
노엘은 안토니오의 곁에 바짝 붙어서 그의 손등위로 본인의 작은 손을 얹었다. 그리고 치명적인 한 마디를 덧붙였다. 초롱초롱하고 순진한 시선을 유지한 상태로 말이다.
“언니?”
노엘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카스티바와 레이나가 그 모습에 얼이 빠져나갔다. 안토니오도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네 언니야!”
결국 저질러 버린 거 제대로 해버리자고 결심한 모양이다.
한편 마그르스를 빠져나와 재앙의 산으로 들어선 바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산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주의]라는 푯말 하나가 덩그러니 박혀있을 뿐. 그 누구도 근처를 서성이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몇 개씩 심어져있던 참나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온몸으로 주변 공기가 더워지는 것을 체감했다. 이윽고 황폐한 오르막길에 접어들었고 화산활동으로 인한 가스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몬스터가 출현하는 장소. 다르게 말하면 마덤골렘 출몰지역이다.
“시간낭비는 됐고. 단숨에 돌파 해야겠군.”
안개속에 듬섬듬성 보이는 거대한 인영은 마덤골렘이 확실했다. 레벨200안팎의 화염속성 몬스터. 그렇다면 놈들에게도 레벨200이상 몬스터들만 사용할 수 있는 몹 스킬(Mob skill)이 존재하리라.
‘그런 잔기술 쓰게끔 가만 놔둘까 보냐?’
“우그워어어······.”
나와 눈이 마주친 마덤골렘은 곧장 전투자세를 잡았다. 나는 지체 않고 위해 무장 커맨드를 외웠다.
“COMMAND: EQUIPMENT SUMMONS SET.3”
불타는 아우라가 전신을 뒤덮었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뜨거운 아지랑이가 팔과 다리, 복부와 등짝에서 피어올랐다. 타는 듯한 붉은 실선이 얼굴 형태를 따라 갑옷모양을 그렸고, 열기는 주홍색 대겁화로 번져 나왔다. 허공에 완전한 구 형태의 작은 태양이 떠올랐고, 그 열기와 빛의 무더기 안에서 전신갑주로 무장한 붉은 기사가 거칠게 빠져나왔다.
“크오오오오오오오!!!!”
드래곤 슬레이어 세트는 화염 저항력 100%증가와 깡 공력력 30%증가. 화염계통 공격 데미지가 HP에 비례하여 추가적인 도트피해를 입히는 능력이 메인이다. 등급으로 따지면 해왕의 갑주와 동급의 장비. 해왕세트가 물 속성이고 생존력을 중시한 장비라고 치면 드래곤 슬레이어 세트는 불 속성에 공격을 중시하는 세트효과를 지닌 셈이다. 애초부터 화염저항력 97%인 신체능력에 화염 저항력 100%증가라는 추가옵션이 붙었으니. 이제 불꽃에 대한 면역력은 볼케이노 드래곤을 뛰어넘었으리라.
나는 마덤골렘의 머리 위까지 단숨에 도약했다. 경이로운 스피드와 점프력에 놀란 마덤골렘은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켜 가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두터운 바위 팔이라도 나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 불꽃이 카타나를 집어삼켰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카타나의 검날은 골렘의 팔을 비집고 들어가 안면마저 갈라버렸다.
“그어어어······!”
절단면이 불타는 소리와 함께 마덤골렘의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압도적인 공격에 위기를 느낀 다른 마덤골렘들은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내 공포에 잠식된 비명과 함께 그 둔한 몸으로 도주를 감행한다. 놈들도 알았을 거다. 살기위해 도망 쳐야했지만 도주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덤볐으면 목숨을 걸고 싸우란 말이다!”
바드의 무자비한 칼질이 시작 되었다. 그 육중한 상체가 가로로 파열되고, 팔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허공을 수놓은 아름다운 불꽃의 선율이 몬스터에겐 죽음의 연주처럼 다가왔으리라.
나는 질주속도를 늦추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실링과 아이템을 주워담았다.
다리의 각력을 있는 힘껏 개방. 고밀도 충격파가 그 일대를 강하게 내리쳤다.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마덤골렘들은 미쳐 반응할 새도 없이 돌조각이 분해되어 하늘로 비산했다. 몇몇 골렘들은 곧장 몹 스킬을 준비했지만 단지 죽음을 자초한 일이 되었다.
‘몹 스킬은 까다롭단 말이지.’
순식간에 접근해서 머리를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꾸역꾸역 기어오르던 보라색 게이지가 강제로 취소되었다. 주변에 있던 마덤골렘들은 곧장 바드에게 덤벼들었다. 바드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돌주먹과 바드의 맨주먹이 격돌하자 쩌렁쩌렁한 충격파와 함께 강렬한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밀려난 쪽은 마덤골렘이다. 격돌한 주먹이 부서지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머리위의 HP게이지는 단숨에 제로지점을 내달렸다.
콰직! 콰가가각! 콰앙!
무자비한 일망타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레벨200이상인 모험가가 최소 3명은 모여야 대적할 수 있는 몬스터를 바드 혼자 10마리나 상대했다. 상식을 뛰어넘은 강함의 결과였다.
‘성가신 녀석들. 지들 집이라고 끝도 없이 몰려드는군.’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전신 갑주를 껴입으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해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집 한 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안에 있나?”
곧장 집 안쪽에서 “우당탕탕 콰당!”이라든가 “쨍그랑! 콰당!”같은 소란이 뒤따랐다. 이내, 쓰러져가는 낡은 문이 열리더니 해맑은 미소와 반가움 가득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내게 안겨들었다.
“고추장이냐? 하네스는?”
“바드! 불꽃!”
“저리 안 떨어져?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불꽃!”
내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다. 나는 화염장착 스킬을 활성화 했다. 팔에서 반투명한 맑은 화염이 피어오르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팔을 깨물었다.
“살살 물어 이 괴물아.”
“앙~”
《스킬 ‘화염장착’이 해제되었습니다.》
《볼케이노 드래곤이 화염을 먹는 중입니다.》
《볼케이노 드래곤의 화염저항력으로 공격이 강제 켄슬 됩니다.》
그 후로 고추장이 배가 불러서 먼저 떨어져 나갈 때까지 MP를 쪼옥 빨리고 말았다.
“끄윽! 배부르다~”
그녀가 불꽃이 뒤섞인 용트림을 하더니 졸린 눈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젠 졸음이 오신다?
“바드으······ 흠냐.”
고추장이 내 등으로 풀썩 기대었다. 이미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업은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일으켜 세우려 했다.
‘크윽! 요망한 것. 더럽게 무겁네.’
모습은 인간이지만 실체는 드래곤. 높이 3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살덩이를 등에 짊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나는 온몸의 근력과 근육을 있는 힘껏 쥐어짜냈다. 조금 들썩거리고 말았다.
코끝에 달린 수면방울을 터트리면 일어나려나?
‘공연히 건드려서 시끄러워지면 나만 손해다.’
나는 그녀를 문밖에 내버려두고 하네스의 가택 안으로 들어갔다.
“하네스 영감. 나 왔다.”
“자네 왔구만! 미안하네. 새로운 녀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지 뭐야.”
나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하네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몇 초안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그건 뭐야?”
하네스가 들고 있는 거대한 대검. 크기는 내 키보다 조금 더 컸다. 대검인건 알겠는데 역시나 무기로 쓰기엔 비효율적인 크기이다.
“심심해서 만들어 본 건데 한번 휘둘러보겠나? 휘두를 수 있다면 말이지.”
“하! 그것도 도발인가? 날 너무 무시하는데, 내 근력 파라미터면 그 정도는······.”
꾸드득.
“?!”
무겁다. 그것도 엄청나게.
‘묠니르보다 무겁다고?’
내가 덜 떨어진 표정으로 하네스를 바라보자 노인은 새끼줄처럼 꼬아낸 흰 수염을 가다듬으며 홀홀홀 웃었다.
“뭐, 천천히 이야기해볼까? 애송이.”
애송이. 내 할아버지한테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아니, 심지어 억양도 비슷하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의미모를 여유의 의미를 읽어낼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