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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95화 (95/202)

Master Smith (95)

“이사벨라? 다들 어디 갔어?”

레이나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계단을 내려왔다. 이사벨라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을 재며 말했다.

“늦잠 잤네? 이제야 방안에서 나오다니. 어디 아파?”

“그, 그건 아니고.”

어제 바드 방에서 내가 못할 말을 한 것 같은데 기억도 안 나고, 방도 어두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고, 거기서 그냥 잠들어 버렸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안나.

‘라고 절대로 말 못하지.’

레이나가 얼버무렸다.

“전날 밤 너무 많이 마셨나봐. 머리가 띵하네. 지금은 괜찮아. 그나저나 쿠샨은 어디 갔어? 항상 붙어있으면서.”

나는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사벨라가 팔딱 뒤며 반박했다.

“부, 붙어있기는 무슨! 그냥 이용해 먹기 좋아서 곁에 둔 것뿐이야. 지금쯤 카스티바랑 몬스터 필드에서 열심히 사냥 중이겠지. 뇌 속까지 근육으로 만들어진 그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한동안 수련을 게을리 했다. 가끔은 몸을 풀어두는 게 긴박한 상황에 도움이 될 거다. 이런다니까 정말~! 무식한 근육돼지!”

레이나가 그럴 수도 있다며 팔짱을 낀 채로 수긍했지만 이사벨라는 이해 못한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사냥 나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그런데 왜 하필 카스티바랑 단 둘이 나가는 거냐고!”

“응? 대놓고 질투를 하네. 이사벨라 많이 흥분했구나?”

“자, 잠깐. 방금 발언은 취소! 쿠샨이 뭐라고 카스티바를 질투해? 전~혀 신경 안써. 게다가 쿠샨이랑 나이차이도 10살은 넘을 거라구.”

“사랑하는데 나이가 뭐가 중요해! 라고, 내게 말해준건 이사벨라였잖아?”

예전 이야기를 들먹이며 레이나가 반박했다. 이사벨라가 짧은 팔을 푸닥거리며 애처럼 떼쓰기 시작했다.

“이번 건 별개야!”

“별개라고? 쿠샨이랑 이어지는 생각을 하긴 했다는 소리네?”

“유도심문까지······ 나 오늘 레이나랑 말 안 할 거야!”

부들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이사벨라. 레이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용서를 구했다.

“저기 이사벨라? 미안해~ 배고프단 말이야! 밥 줘!”

***

파릇파릇한 초목이 돋아난 드넓은 벌판. 오후의 나른한 태양이 거대한 필드를 따듯하게 데우고 있었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과 산뜻한 공기는 산책하기 정말 좋은 장소였다. 물론 뿔이 32개나 솟아오른 5미터의 괴물 멧돼지가 없었다면 말이다.

우람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멧돼지 몬스터의 이름은 《와일드픽크》 레벨240에 달하는 돌격형 몬스터이다. 저돌적인 연속 박치기와 날카롭게 돋아난 엄니에 찔리면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을 수도 있으리라.

“꾸워어!”

“왼쪽으로 피해서 측면 상단 베기.”

“말 안 해도 내 앞가림은 잘하거든? 이 아저씨야!”

와일드픽크의 돌진은 직선적인 선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데미지는 높아도 회피하기 수월한 공격이다. 더군다나 변수에 능하고 변화무쌍한 전투능력을 보여주는 파이터라면 당연히 다채로운 반격도 가능하리라.

카스티바는 거대한 멧돼지의 돌진을 간단하게 회피했다. 측면으로 반보 돌아선 그녀는 훤히 드러난 와일드픽크의 옆구리에 십자가 모양의 2연격을 날려주었다.

“꿰에엑!”

몬스터의 HP가 절반가량 소멸했다. 다음은 와일드픽크의 반격이었다. 자신의 체력이 줄어든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저돌맹진의 기세다. 놈은 발을 구르며 선로를 변경하고 카스티바의 정면으로 돌격을 가했다.

카스티바는 방금 전 공격으로 순간의 딜레이가 생겼다. 이대로라면 와일드픽크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터였다. 이번엔 약속이라도 한 듯 쿠샨이 나섰다.

“차지 버스트(Charge Burst)!”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빠른 속도로 적에게 돌격하는 기술. 전체적인 DPS는 낮은 편이지만 적의 공격을 페리하거나 중단시키는데 목적을 둔다. 뿐만 아니라 적진을 파훼시키고 빠른 진입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쓰이는데, 레벨350을 막 넘긴 쿠샨의 빈틈공략은 제대로 한몫했다.

콰앙~! 교통사고를 연상케 하는 충돌이 쿠샨과 와일드픽크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멀찍이 밀려나간 와일드픽크의 HP는 20%남짓이다.

“푸르릉!”

“광포화 상태군. 다음 러쉬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할 수 있겠지?”

“두말하면 입 아파.”

“녀석은 내 쪽으로 돌진해 올 거다. 정면에서 놈의 움직임을 봉쇄할 테니 그때 라스트 어택을 넣어.”

카스티바는 말없이 쿠샨과 거리를 두었다. 곧바로 와일드픽크의 돌진이 시작되었다. 땅이 진동하는 매서운 돌진이었다. 쿠샨은 어느 정도 HP손실을 부담하기로 했다.

“엔듀어(Endure).”

방어력과 속성저항력을 50%나 증가시키는 스킬. 하지만 유지시간이 1~2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데미지가 들어올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타이밍 맞게 사용하기 위해선 많은 연습을 요하는 스킬이다. 쿠샨은 숙련자답게 와일드픽크의 공격이 맞닿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꾸웅!

체력 30% 미만의 몬스터는 광폭상태로 돌입하게 되어 방어력이 10% 줄어들지만 힘과 속도가 2배가량 증가한다. 때문에 일반 몬스터의 체력을 30% 미만으로 깎아내리는 경우는 피하기 마련이다. 그 대신 마지막에 30%남짓의 체력을 한 번에 깎아내릴 만큼의 공격을 쏟아 붓는다. 그래서 대부분 몬스터 사냥은 최소 2인1조로 구성되지만······.

광폭 상태의 돌진은 처음보다 2배가량 강해졌지만 쿠샨은 그 공격을 무리 없이 받아냈다.

“잡았다 요놈!”

놈의 옆구리 가죽을 꽈악 부여잡고 뒷다리가 땅에 닿지 않도록 번쩍 들어올린다. 와일드픽크는 아동바동 발을 구르며 몸부림쳤지만 쿠샨의 무식한 근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꿰에엑! 뺴애애액!!”

“지금이다 카스티바.”

“알고 있어!”

하늘 높이 뛰어오른 붉은 머리 여검사. 머리높이 들어 올린 검은 곧 홍염으로 휘감겨 회오리쳤다. 와일드픽크는 죽음을 예감했는지 구슬픈 절규가를 내질렀다.

“꽤액! 꽤애애액!”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짧은 앞다리와 뒷다리를 움직여 보았으나 결국 헛된 발버둥. 그녀의 검날이 대형 멧돼지의 목을 지나가자 대형 멧돼지는 어떠한 비명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48000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EXP: 98.9%》

《길드혜택으로 7200추가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현재EXP: 99.0%》

“경험치 한번 쭉쭉 차오르네.”

카스티바가 알림창을 슬라이드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쿠샨은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사냥 경험치 증가 레벨2덕분에 15%의 추가경험치가 들어오고 있다. 공격력과 마력이 5씩 증가했고 모든 스킬 숙련도도 1씩 증가해서 사냥이 훨씬 수월하고 효율적이야.”

카스티바는 대뜸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엠페러 길드에 있을 때도 이랬어?”

“그땐 모든 혜택 레벨을 마스터해서 이보다 더 했지.”

카스티바는 허심탄회한 얼굴로 말도 안 된다며 불평했다.

“나 참. 길드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혼자 벌어먹고 살기 힘드네.”

“불평할 시간에 레벨이나 더 올려라.”

“쳇! 그나저나 레벨380이라니. 엠페러 길드에서 물 좀 많이 먹었었나봐?”

“다 지난 일이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을 텐데?”

쿠샨이 짙은 눈썹을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 노려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고 있어. 나쁜 의미로 말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리고 사냥 도와줘서 고마워.”

“수련을 게을리 해선 안 되니까. 겸사겸사 도와준 것뿐이다.”

“아무렴 그러시겠지.”

사냥에 나선지 벌써 4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쿠샨은 카스티바의 공격스킬과 자신이 소유한 공격스킬의 조합, 연계력, 그리고 DPS효율에 대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

“네 공격스킬은 다채로운 변화공격이 가능하고 정면으로 싸우는 깡패전법에도 능해 보이더군. 각종 CC기가 있는 내 스킬하고는 좋은 상성이다.”

“CC기?”

“스턴, 암흑, 에어본, 속박, 침묵 등. 각종 상태이상을 말하는 거다. 나는 딜러가 아니라 탱커라서 방어력을 올리거나 CC기를 사용하여 몬스터들의 주의를 끄는 역할을 하지.

“그 정돈 나도 알고 있어. 한마디로 미끼역할이란 거잖아.”

“그렇다. 그 기회를 살려서 몬스터를 제압하는 것은 네 손에 달려있으니 이 점을 유의해서 싸워라. 다시 한 번 연습해볼까?”

“좋았어! 이번엔 1분 안으로 해치워보자고!”

카스티바가 주먹을 맞부딪치며 거친 투기를 끌어올렸다. 마치 좋지 않은 기억을 애써 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

장사한번 거하게 끝마쳤다. 안토니오와 미호 덕분에 만족스런 수익을 벌었다. 이 돈이면 생활비는 물론, 길드하우스 리모델링도 할 수 있으리라. 그 전에 필수 소모품도 많이 구해놔야겠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HP, MP회복포션 같은 것들 말이다.

“어? 게르덱이다.”

미호가 길드하우스 앞에 서 있는 게르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안토니오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으로 안 들어가고 저러고 계신 걸까요?”

“글쎄다. 아무튼 어서 들어가자. 오늘 수익 보여주면 다들 난리 날거다. 어이, 게르덱! 문 앞에서 뭘 멍하니 있어? 들어가서 시원하게 한잔 하자!”

게르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바, 바드님이군요.”

“뭘 그렇게 놀라? 빨리 들어가. 오늘 하루종일 안 보이던데 어디 나갔었어?”

“아예. 잠깐 외출 나갔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가 평소의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내 의심의 촉은 이미 발딱 서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는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깜짝 파티라도 열린 모양이다. 이사벨라와 레이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수고하셨어요. 오늘 어땠어요?”

이사벨라가 접시에 음식을 옮기며 말했다.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게 끝났다고 생각하려고. 그나저나 레이나 옷차림이 왜 저래?”

이사벨라와 똑같은 디자인의 에이프런을 입었다.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 있다. 이사벨라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대신 입을 열었다.

“오늘 쿠샨이랑 게르덱이 하루 종일 외출했잖아요. 레이나가 대신 도와줬어요. 잘 어울리죠?”

나는 그녀를 위아래로 가볍게 훑어보고 대답 없이 엄지만 내밀었다. 뒤늦게 이사벨라가 오종종 다가와서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어떤 데요?”

“항상 그 차림이라서 별 감흥 없는데.”

“너무해!”

우리는 이사벨라와 레이나가 만든 수제 팬케이크를 몇 접시나 해치웠다. 안토니오는 잠을 청하러 방으로 돌아갔고, 이사벨라와 레이나는 뒷정리를 위해서 주방으로 향했다.

“주인님. 나는 노엘이랑 같이 있을게.”

“그래라.”

최근 들어 미호가 내 곁에 붙어있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전부 노엘 덕분이다. 미호가 노엘의 수련을 돕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돕고 있으니, 나로선 감사하다 못해 큰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게르덱과 나는 메인홀에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에 놓였다.

“둘 밖에 안 남았군. 그나저나 게르덱. 지난번에 부탁했던 회색현자에 대해서 말인데······.”

“할 말이 있습니다. 바드님.”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까부터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더니 역시 뭔가 있는 모양이다.

“무슨 말?”

“다른 분들에겐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만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카스티바와 안토니오 일도 마무리 되었다 싶었는데 이번엔 다른 사건이냐? 나는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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