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94)
손이 바빠졌다. 손님들은 장비의 성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럴 때마다 주변 시선은 더욱 번뜩였다. 하지만 한창을 실링을 긁어모으는 기막힌 타이밍에 카랑카랑하고 얄미운 목소리가 찾아왔다.
“이 자식들아 비켜! 고작 길거리 대장장이의 무기가 뭐가 그리 좋다고 이 난리야? 이해 안가는 것들.”
딱 봐도 나와 같은 대장장이다. 이마에는 붉은색 천을 단단히 동여맨 사람이었다. 어께에는 손잡이가 긴 거대한 망치를 짊어지고 있었고 눈은 쫙 찢어진 싸가지 없는 상이었다.
“어서 와라.”
“뭐어? 어서 와라? 손님대하는 본세가 가관이군. 쓸데없는 잔재주로 사람들 눈이나 현혹시키는 주제에 대장장이라고 떠벌리다니,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몸소 나섰다.”
“잔재주?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 같은 놈인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관심종결자는 어딜 가나 한명씩 있는 모양이다.
“오해는 무슨 오해? 진정한 대장장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망치로 승부를 보란 말이야. 마법 좀 쓸 줄 안다고 사람들을 꾀어? 같은 대장장이로서 꼴 볼견이다!”
녀석 말도 일리가 있다. 진정 대장장이라는 자긍심이 있다면 마법을 다뤄서 무기를 만든다는 내 전술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직선적인 노후 마인드로는 아무런 발전도 없다. 나도 한땐 그랬으니까.
“진정한 대장장이는 망치를 다뤄야 한다?”
“너 같은 가짜와는 급이 다르다 이거야. 알았으면 냉큼 이 자리에서 물러나 주실까? 구역질나니까 말이야.”
“심정은 이해하지만 마법을 사용해서 장비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대장장이를 욕보이는 행동이 아니거든 우물 안의 개구리 녀석아. 정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까앙──! 마지막 망치질이 멎었다. 빛의 무더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새 생명은 +3강화의 도루코대거다. 빛의 색상을 보아하니 이번엔 화염 속성이 깃든 모양이다.
“승부를 내던가. 애송아.”
나는 망치를 들어올려 그를 겨누었다. 불청객은 당황한 듯 반걸음 물러섰지만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내 그의 만면에 진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 좋군! 철저하게 짓밟아주마. 가짜 대장장이!”
대결의 룰은 간단하다. 서로 같은 무기를 만들고 좋은 옵션을 띄우는 쪽이 이기는 규칙이다. 덕분에 주변 분위기가 한 여름처럼 순식간에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의 자존심을 건 대결인가? 이런 건 처음 보네.”
“나는 저쪽 마른대장장이에게 건다!”
“나는 덥수룩한 장발의 대장장이. 꽤 패기 넘치잖아?”
그 자리에서 도박판을 열어버리는 발 빠른 사람도 있었다. 이득을 볼지 손해를 볼지 그 자체만으로 도박이겠지만 말이다.
승부는 곧장 시작되었다. 빼빼마른 대장장이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숫돌과 간이풀무, 거푸집과 각종도구들을 꺼내들고는 비장하게 표정을 굳혔다. 바드가 준비한 것은 오로지 망치와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루뿐이다.
바드는 상대의 얼굴을 흘겨보았다. 절대로지지 않겠다는 신념이 담긴 표정이다.
‘의외로 진지하군.’
“제작할 무기는 롱소드. 승부시작!”
심판의 신호를 스타트 삼아 두 대장장이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정된 재료는 철, 가죽 조각, 가죽 끈이다. 정말 노말한 재료뿐이다. 이 외에 다른 첨가물 없이 장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순수 제작자의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한 마디로 진검승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상대는 노련한 손놀림으로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철을 녹이고 거푸집에 담고 망치질부터 담금질 하나하나가 모범적이었다.
같은 대장장이로서 감히 평가하데 그는 상당한 노력과 끈기를 가진 오리지널 대장장이가 분명하다. 숙련도는 마스터 등급에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이대로 5~6년 정도 망치에 손을 놓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기껏해야 나보다 3~4살 위인 것 같은데 벌써······.’
존경할만한 노력의 대가지만 봐줄 생각은 1도 없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다. 대장장이의 자존심을 거들먹거린 상대에게 살살할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손잡이에서 억센 소리가 날 정도로 망치를 강하게 부여 쥐었다. 마법으로 가열된 강철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망치질 한 번에 맑고 경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불똥이 환상의 불꽃쇼를 탄생시켰다. 영혼까지 빨려가는 열기 속에서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무기에 영혼이 깃들어가는 것이 말이다.
‘탄생해라. 최고로 강하게.’
두 번째 망치질은 더욱 화끈한 연출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구경꾼들은 경악의 탄성을 터뜨렸다.
“저, 저게 뭐야? 불꽃이 방금······.”
“방금 용! 용이었지?!”
많은 사람들이 똑똑히 보았다. 길고 거대한 이무기가 나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허공 속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지는 장면을 말이다. 승부를 벌이는 대장장이만이 유일하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눈속임이야. 마법으로 만들어낸 눈속임 따위에 불과해. 나는 현혹되지 않아!’
오로지 내 무기에만 집중해. 저런 가짜에게 지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까앙! 까앙!
그의 턱선을 따라서 미끄럼 타는 땀방울이 모든 열정과 노력의 결정체였다. 전력을 담은 망치질로 본인의 영혼을 담았고 그것이 무기로 옮겨갈 것이라 확신했다. 영롱한 불꽃. 강렬한 아지랑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고찰했다.
떠엉───!
마침내 황홀한 빛 무더기가 터져 나왔다. 대장장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남다른 예리함을 머금은 롱소드. 보나마나 무기상태는 최상위 등급이 확실했다. 이 이상 완벽한 무기는 있을 수 없어. 승리는 당연히 나의······것?
순간 그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실체를 보고도 그는 부정할 수 없는 부정을 거듭했다. 그는 순식간에 영혼을 빼앗겨버린 육체마냥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저 완벽한······.’
바드의 망치질을 본 대장장이는 망연자실했다. 거장의 기운이, 그의 등 뒤로 풍기는 장인의 노련함이 너무도 거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용이다!”
바드의 망치질이 끝날 무렵. 마지막 화염은 거대한 용이 되어서 하늘높이 솟구쳤다. 구름 너머로 사라진 화염용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것이 마법으로 인한 눈속임이 아니란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럴······리가······.’
“내가 조금 늦었군. 이제 서로의 것을 비교해 볼까?”
누구의 간절함이 정답인지 승부하자. 눈앞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승패의 결과를 예견했다. 그 자리에 남아있던 모든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승부의 결과는 뻔하다고.
두 사람의 롱소드는 분명한 차이가 나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질 좋은 롱소드. 다른 한쪽은 은은한 +3강화의 기운을 풍기는 롱소드. 심지어 예리함마저도 비교가 안 된다.
“내가 질 리가 없는데 어째서.”
“마법을 이용해서 무기를 만드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냐?”
“당연하잖아! 우리 대장장이들은 신념을 가지고 망치에 모든 것을 담는다! 내 말 틀렸나?”
절대로 내 말이 틀릴 리 없다. 망치는 우리 대장장이들의 자존심이자 모든 거니까. 하지만 네놈은 그렇지 않았어. 광석을 녹이고 거푸집에 녹물을 담는 세심함을 포기하고 마법을 선택했다. 내가 인정할까보냐?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착각?”
바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당당하게 선호했다.
“우리는 연장과 기구를 만드는 사람들이야. 뭐로 어떻게 만들던 정해진 길이 없다. 너는 망치에 집착해서 본인의 한계선을 그어버렸어. 그게 네 패인이다. 그리고 대장장이에게 망치란 본인의 신념을 담기 위한 도구이상의 의미가 있다. 망치는 영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 영혼을 창조하는데 사용해야해.”
나는 최강, 최고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 작은 무인도에 갇힌 채로 피나는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는 나와 닮았다. 한계를 마주했던 예전의 내 모습과 말이다.
“너는 강해.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나름의 신념과 함께 살아왔을 테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없더군.”
“그게 뭐지?”
나는 방금 막 만들어낸 롱소드를 가지고 광장의 한 가운데, 높은 시계탑 바로 정면으로 다가갔다.
“그런 건······.”
나는 롱소드를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지면을 향해 빠르게 내리꽂았다.
쉬익! 콰자작!!
화려한 불꽃이 일렁이며 공기를 불태웠다. 롱소드의 손잡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고, 주변의 소란은 정적으로 감싸였다. 바드가 몇 초의 침묵을 깨트리며 소리쳤다.
“알아서 생각해!!!!”
나는 짐을 주섬주섬 싸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더 노력해라 애송아.”
승부가 났다. 구경꾼들을 열렬하게 환호했다.
“어, 엄청난 승부였다!”
“멋있어요. 대장장이님! 내일도 일찍 출근하세요~!”
모든 이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지만 바드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간이 대장간을 회수했다. 괜한 승부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주인님 괜찮아?”
“멀쩡해. 그나저나 오늘 제법인데? 장사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 안토니오도 말솜씨 많이 늘었더라?”
“주인님이 좋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어!”
“형한테 다 배운 거죠 뭐.”
두 사람은 머리를 긁적이며 오늘 하루에 만족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드는 불청객에게 한방 먹였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내일 광장이 꽤 시끄러워지겠는데요? 시계탑 앞에 박힌 롱소드에 괜한 소문 도는 거 아니에요? 내일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알아서 하라지.”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보다 피곤이 몰려온다.
“후우~ 나도 휴먼이야 휴먼.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바드가 간만에 약한 소릴 내뱉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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