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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93화 (93/202)

Master Smith (93)

나는 지하실에서 빠져나와 곧장 2층 방을 둘러보았다. 1층과 다름없이 타다 남은 가구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아예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극히 주관적인 추리에 불가하지만 완전히 배제하기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

“방의 개수가 너무 적군.”

안토니오의 가족머릿수와 하인들의 방까지 고려하면 방은 최소 5개는 되어야한다. 하지만 이 저택은 1층과 2층을 통틀어 방 개수가 4개밖에 되지 않는다. 건물 크기에 비해서 방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이 큰 것도 아니다. 방보다 복도가 몇 배는 넓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나는 베를린 저택을 빠져나왔다. 이제 이곳도 인부들에 의해서 정리 될 것이다. 다음에 돌아오면 남아있는 것이 없으리라.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군.’

상황이 영 시원찮다. 필시 무언가 더 있다. 하지만 당장 고민해봐야 나오는 것도 없고. 결국 회색현자를 찾아야 모든 진실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같잖은 고민 집어치우고 방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정리하는 게 훨씬 유익할 것이다.

***

“기억나다니?”

금발 벽안의 안토니오가 푸른 사파이어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카스티바는 안토니오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확실하게 말해. 이거 장난치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이만 나가봐야 하는데. 손 좀 놔줘.”

“모를 리가 없잖아. 최근 네 행동이······.”

카스티바의 붉은 눈동자가 암울하게 내려앉았다. 떠올리기 싫은, 떠올려선 안 되는 기억의 저편을 넘나드는 모습이다. 안토니오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부정하는 게 최선이었다.

“네 행동이 많이 변했다고.”

“착각이야.”

안토니오가 흙빛 인상을 돌리며 부정했다.

“정말 그럴까?”

그녀가 안토니오의 어깻죽지로 손을 뻗었다. 안토니오는 미약하게 움츠러들며 뒷걸음질 쳤다.

“거봐. 너도 불안한 거잖아. 진실을 아는 것이.”

안토니오가 침묵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내게서 떨어졌다.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일침을 놓는 것이다. 나는 안토니오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동시에 안토니오가 한발 물러섰다.

“완전히 잊기로 한 거야?”

“······.”

“그 엄청난 일을 겪어놓고 아무렇지도 않는 거냐고?”

“그럴 리가 없잖아.”

안토니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와 모멸의 불꽃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옛일에 미련 가지지 않기로 했어.”

격렬하게 떨리던 안토니오의 몸이 평정을 되찾았다. 얼굴도 한결 차분해진 모습이다. 카스티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엠페러 길드가 무슨 짓을 벌였던, 무슨 짓을 벌이고 있던.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없으니까. 나는 나야. 혼자 고군분투하던 어린 시절은 없어. 나는 지금 이대로 바드 형과 그리고 길드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로 만족해.”

과거일은 다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그게 내 꿈이자 지금의 행복이니까.

“누나는 어떤데? 아직도 엠페러 길드에게 원한이 있는 거야?”

카스티바의 표정이 복잡한 감정으로 일그러졌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을 뒤적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그런 것 같다고? 누나의 본심은 어떤데? 결국 엠페러 길드를 말살하고 싶다는 거야? 고향땅의 복수? 아니면 부모님의 복수야?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서?”

“내 본심은······.”

카스티바가 대답하기 직전이었다.

“나왔다.”

연갈색 봉두난발에, 주황색 고글을 착용한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 목소리에 재깍 반응한 미호는 우당탕탕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

“주인님!”

“저리 가. 따라 붙지 마. 바로 나갈 거야.”

미호의 귀와 꼬리가 살랑쫑긋거리며 움직였다. 그녀는 심통난 어린애 마냥 볼을 부풀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침부터 치사해.”

나는 미호를 뒷전으로 미루고 때마침 모여 있는 안토니오와 카스티바에게 말했다.

“따로 할 말이 있다. 두 사람 다 시간 좀 내지?”

아침부터 이런 주제로 대화하기 뭣 하지만 결판내자고. 앞으로 서로 얼굴 많이 봐야 할 텐데 언제까지고 숨길 수만은 없잖아?

***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카스티바와 안토니오의 이야기는 대강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임시 대치상황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한동안 두 사람을 주시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각설하고 나는 마그르스 중앙 시계탑 앞으로 나왔다. 이곳은 흔히 말하는 약속의 광장 같은 곳인데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대표 장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직도 장사자리를 찾지 못했으니 이런 곳에서라도 돗자리 깔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풀무가 필요한 대장장이에게 ‘이런 곳’은 허용되지 않는다. 장비제작은커녕 간이 대장간이 있더라도 외부요소로 인한 악영향이 클 테니까. 허나 예외는 있다. 어느 정도 마법에 소질이 있는 메지션 스미스가 바로 나니까. 불이 없다면 마법으로 녹이면 되는 거고, 물이 없다면 마법으로 식히면 된다. 게다가 1000년의 추억을 이어온 낡은 모루도 있지 않은가? 나는 모루를 꺼내들고 장비를 배치했다. 꽤 그럴싸한 간이 대장간이 만들어졌다.

역할은 코지부락에서 장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안토니오가 매물과 회계를 담당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명성이 11올랐습니다.》

《명성이 20올랐습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알림창과,

“우와아아~”

옆에서 부담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미호 존재였다.

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깡!

수백 수천 번이나 반복되는 망치질이었다. 처음엔 무신경하더니 주변은 수많은 인파로 몰려있었다.

“저거 대장장이야? 풀무 없이 철을 녹이고 있잖아?”

“신기하군. 게다가 숫돌 없이 날을 세우고 있어.”

《명성이 9올랐습니다.》

《명성이 13올랐습니다.》

안 보인다. 앞이 안 보인다. 짜증이 밀려온다.

명성은 상당히 중요한 수치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나를 알아보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레이나가 말하길 왕국의 수호기사가 되기 위해선 명성수치가 2에서 3만은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다지 높은 수치는 아닌 것 같군.’

사람들의 명성수치는 2, 3천 안팎이라고 한다. 명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각종 노가다나 잡일을 주구장창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역시 올라가는 수치가 미미해서 1만이라는 명성 수치는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저 사람이 만든 장비들, 방금 제작했는데 희미하게 빛나지 않아?”

“그냥 햇빛에 반사돼서 빛나는 거 아닐까?”

“그게 아니야! 잘 보라고. 저건 펠리토늄으로 강화했을 때 생기는 빛이야!”

모루효과를 잘도 알아차렸군. 몇 번 말했다시피 내 모루에서 제작된 장비는 강화등급이 +3이 되어 완성된다. 따로 강화하지 않아도 업그레이드 된 수치로 시작하니 이 얼마나 편하단 말인가? 일부 눈썰미 좋은 모험가들은 바드의 장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매물이 얼마 없을 것 같군. 저 사람의 장비를 구매하려면 지금 뿐이야.”

몇몇 모험가와 용병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바드의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뭐야? 저 사람들 왜 뛰는 거야?”

“몰라! 우리도 뛰어!”

사람들은 순식간에 안토니오와 미호를 애워쌌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가격부터 흥정했다.

“능력치고 자시고간에 일단 거래부터! 이 롱소드 얼마야?”

“꼬마야! 내가 먼저 왔는데 계산 좀 해줄래?”

“새치기 하지 말라고! 그 물건은 내가 먼저 찜해뒀단 말이야!”

주변은 삽시간만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드는 애써 그들의 목소리를 튕겨냈다.  수만 수백만 반복한 자세를 유지하기위해 흐트러짐 없이 정신을 집중했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시끄러우니까 다들 입 다물어! 주인님 일하는데 방해된단 말이야!”

“······핫?”

눈부실 정도로 하얀 피부와 풍만한 마음이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호의 뽀송뽀송한 귀와 꼬리가 살벌하게 쫑긋거렸다. 미약한 바람에도 너울이 흘러가는 그녀의 차림새가 사람들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으리라.

“귀, 귀여운 수인족이다.”

“고양이? 아니야, 꼬리가 여우잖아?”

“그럼 호족이란 소리? 엄청 레어한 수인족인데!”

미호의 눈살이 뜨거운 열기를 품었다. 그녀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그렸다.

“내가 시끄럽다고 했지? 개처럼 짖지 말고 떨어지란 말이야!”

“오! 화내는 것도 귀엽잖아? 이봐 대장장이! 이렇게 귀여운 수인을 데리고 다니다니 부러워 죽겠군. 나에게 양도할 생각은 없나?”

“이 쭉정이가 양도는 무슨 양도야! 죽고 싶어?”

미호가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에 안토니오는 손님들과 흥정하는데 전력을 다 하고 있었다.

“20만 실링입니다.”

모험가의 표정이 격변했다.

“뭐? 롱소드 한 자루가 20만?! 너무 비싸잖아. 대부분 롱소드는 비싸봐야 15만 실링 내외라고. 완전 바가지네 이거~!”

이런 부류의 손님은 몇 백 명이고 대면했다. 안토니오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장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기 능력치도 잘 안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소비자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이 롱소드로 말할 것 같으면 공격력 102+34에 강화레벨+3강으로, 다른 롱소드와 다르게 높은 내구성을 가진 무기입니다. 무기는 제작자에 능력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난다는 거 아시죠? 20만 실링이면 완전 거저라고요? 레벨50제한 한손직검 공격력이 감히 136이라니! 깡패도 이런 깡패는 없을 걸요?”

그동안 장사하면서 바드에게 배운 애드리브. 안토니오는 다양한 부류의 손님을 상대하는 방법을 은연중에 깨우친 것이다. 설득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새,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비싼 것 같지는 않네. 그럼 한 자루만 사둘까······.”

다 넘어온 상황에 이번엔 미호의 연속 콤보가 들어갔다.

“동작 그만! 20만 실링 받고 5만 실링 추가해! 좋은 무기는 거저 나오는 줄 아니?”

“5, 5만이나 더? 그건 너무하잖아!”

“내가 이렇게 부탁해도오······?”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찌르며 기습 애교작전을 펼쳤다. 그 모습을 발견한 바드는 이마를 부여 쥐었다.

‘또 시작이군.’

미호의 작전 또한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다.

“사겠습니다!”

바드의 우월한 장비? 안토니오의 뛰어난 세치 혀? 다 필요 없다. 미호의 미인계야말로 비장의 카드. 다른 장사치에겐 깡패 같은 카드가 분명하리라.

‘개업 한 시간 만에 손님을 다 뺏겨버렸어······.’

‘미인계라니 반칙이잖아!’

‘우리는 저만한 여자 없나?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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