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88)
“안토니오를 여장시켜서 내보내는 걸로 결정된 건가?”
긴 고역 끝에 회의가 끝났다. 당연히 안토니오는 극구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티바와 게르덱, 덤으로 레이나의 강력한 주장에 맞설 자가 없었다. 카스티바는 엄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안토니오의 양쪽 볼 따귀를 잡고 말했다.
“안토니오는 여성스러운 면이 있잖아? 성격도 얌전하지, 옷 수선도 잘 하지, 집안일도 척척 잘하고, 얼굴도 완전 미소년! 네 또래 남자애들이 완전히 반할 정도로 꾸며줄게!”
“같은 남자끼리 그러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우승한다는 확신도 없잖아요!”
이번에는 게르덱이 나섰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작전은 이미 완벽하게 세워놨죠. 저희는 역발상으로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100% 승리할 수 있을 거예요.”
“완전 억지라고!”
좌절하는 안토니오. 이를 지켜보던 레이나가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너무 그렇게 열내지마. 다들 너에게 기대하고 있는 거잖아? 기뻐해야 하는 일 아닐까? 안토니오가 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도전 안 했을 거야. 다들 맞지?”
“물론입니다. 이 대회는 안토니오를 위한 대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게르덱의 확신에 안토니오가 도끼눈으로 대답했다.
“영 신뢰가 가지 않거든요 형······.”
“안토니오는 나랑 레이나에게 맡겨둬.”
카스티바는 팔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바드는 그 결정에 수긍했다.
“그렇게 하도록 해. 나는 대장간을 세울만한 자리를 찾느라 바쁘거든. 장사준비는 게르덱이 도와주면 되겠고 대회는 레이나와 카스티바가 담당······”
말이 거기서 그치자 쿠샨은 사색을 감추지 못했다.
“바드! 또 나를 이곳에 남겨둘 생각이냐!”
“이사벨라처럼 귀엽고 깜직한 미소녀랑 같이 있어서 좋잖아? 그 잔망스런 근육을 이때 아니면 언제 사용하겠어?”
이사벨라가 간만에 내 칭찬에 몸을 베베 꼬았다.
“꺄아~! 웬일로 옳은 소리 하시네? 좋아 기분이다. 오늘 저녁밥은 기대하라고요. 쿠샨은 어시스트. 미호는 심부름 좀 갔다와줄래? 오늘 저녁 재료 목록이야. 돈은 여기!”
심부름 목록이 적혀있는 긴 종이와 묵직한 돈 주머니를 건네받은 미호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그녀는 바드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왜 이딴 일을 나한테 시키는 거냐는 투정을 부렸다.
“나 심부름 같은 거 잘 못하는데?”
“천년이나 살았으면서 왜 그러실까~ 내가 맛있는 저녁밥 해준다니까?”
“싫어. 나 안 갈래. 귀찮거든.”
이사벨라의 싹싹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기야 천년이나 나이 먹은 요괴가 인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것도 웃긴 일이다. 보다 못한 바드는 이사벨라가 민망하지 않도록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냥 좀 갔다 와. 너한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주인님까지? 히잉······ 알았다고.”
미호는 투덜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카스티바와 레이나는 안토니오를 데리고 2층 계단을 올랐다. 노엘도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저희는 위층에서 작업하고 있을게요.”
“바드형! 저 진짜로 여장해요? 진짜로요?”
나는 안토니오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미안하다 안토니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변화된 네 모습 비웃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스타일리쉬한 카스티바와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레이나가 만들어낸 합작품을 나는 믿는다.
다들 사라지고 나서야 이사벨라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미호가 바드 씨를 엄청 잘 따르네요.”
“애가 좀 까칠해서 그렇지 이사벨라 씨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기분 나빴으면 내가 대신 사과하지.”
“전 괜찮아요. 신경 써주니 고맙네요.”
“그럼 저희는 장사할 자리를 찾아보죠.”
게르덱이 길드하우스를 나서며 말했다.
코지부락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공짜 대장간을 얻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건물 계약도 하고 자릿세를 내면서 새롭게 시작해야하는 상황이다.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걸어야 할 것이리라.
“다녀와요. 여긴 저희에게 맡기고요.”
이사벨라의 행동이 등교하는 아들을 배웅해주는 엄마 같았다.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걱정이 앞섰다.
“길드 혜택으로 50%할인 가격으로 구입한 집이지만 비싼 하우스니까 살살 다뤄줘. 어디 망가뜨리거나 폭파시키지 말고.”
바드와 게르덱, 그리고 미호가 외출했다. 남은 여자들은 2층에서 당분간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사람은 나와 이사벨라뿐.
땡~!
쿠샨의 계산이 끝났다.
“응? 뭘 봐?”
“아, 아무것도 아니다. 유독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 같군. 내 꼴에 무슨 집안일이야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한다면 모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지난번에 일 시켰을 땐 열심히 잘 하던데 뭐. 가끔씩 다시 본다고?”
“다시 봐?”
쿠샨이 예상치 못한 발언에 당황했다. 그가 손사래 치며 부인했다.
“시간이 남아서 도와준 것뿐이다.”
“한때 범죄자였다 한들, 지금은 바드가 믿고 동행하는 동료니까······. 나도 어느 정도 경계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하거든.”
“어련하시겠어.”
이사벨라가 어른스럽게 이야기 하자, 쿠샨이 가소롭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쿠샨의 반응이 거슬렸는지 이사벨라의 오른쪽 귀가 움찔한다.
“오호라~ 갑자기 자존심 상하는데? 큰맘 먹고 칭찬해 줬더니 날 무시해?”
“흠흠! 미호가 심부름을 갔다 오는 동안에는 시간남지? 그동안 나는 뭘 하면 되는 거냐?”
가쁘게 화제를 전환하는 쿠샨. 이사벨라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뭐하긴 뭐해? 단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갖는 거지~♪”
우두득. 우둑.
그녀의 손가락 마디에서 흘러나오는 살벌한 소리에 쿠샨은 어떤 일이 닥쳐올지 대충 예상했다.
“폭력은 나쁘다! 게다가 아까도 맞았······.”
빠악─────!
한편 심부름 나간 미호는 긴 메모지를 질질 끌면서 자유 시장으로 들어섰다. 엄청 큰 마차가 화물을 실고 왕래하는 모습에 여기저기 자리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코지부락과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인파들이다.
“헤에~ 곳곳에 먹이가 널렸네. 이래서 다들 마그르스로 오려고 했던 걸까?”
두근거리는 벅참.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 것 같다. 만약 주인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여우 숲에서 사람들의 정기나 모으고 앉아있었겠지?’
고독했던 긴 세월과 쓸쓸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확신할 수 있다. 내 과거가 얼마나 고독하고 비참했는지.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게는 이렇게.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한 미호가 희미한 웃음꽃을 머금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는걸.’
시장을 거니는 미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바드가 제작해준 옷차림도 한몫 했다. 북적북적한 인파가운데 유독 빛나는 미친 존재감! 마치 모레사장 안의 진주였다. 사람들의 이목은 온통 미호에게 집중되었다.
“저 여자 엄청 예쁘지 않아?”
“대, 대단한 미모야. 수인족인가? 귀여워!”
반투명한 비단옷. 남성을 홀릴 매혹적인 향기. 옷에서 흘러나오는 금빛 휘광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미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어둠속에 빛 한줌은 눈에 띄기 쉬운 법. 미호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경과 경외와 놀라움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았다.
“와아······. 여자인 내가 봐도 예쁘다.”
“조, 좀 하는데?”
미호는 이들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단지 본인에게 하는 말인지를 몰랐을 뿐.
‘어디 예쁜 여자라도 있나보네.’
그녀가 종이 목록을 확인했다.
“말리야 닭 10마리? 어디서 찾아야 되지?”
때마침 옆에서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왼팔을 양손으로 감싸 안고 도움을 요청했다.
“영감~ 내가 이 물건을 사야하는데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어. 혹시 알아?”
엥? 영감님 갑자기 코피는 왜? 영감님······? 영감님 괜찮아?!
이제 여든을 넘어간 할아버지에겐 여성이 가까이 붙는 것도 큰 자극이라는 사실을 미호는 자각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코를 닦아냈다.
“허허허······. 주책없게 흉한 모습을 보였군요. 에······ 그러니까 말리야 닭을 찾으신다면 저쪽 큰길로 나가서 교차로 왼쪽으로 꺾으시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하~! 고마워 영감! 몸 조심하구~ 이제 보니까 아랫도리가 아직 팔팔하네. 부인이 좋아하겠어!”
쌩~ 사라져버린 미호. 덜렁 남겨진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푸줏간을 찾은 미호는 주변에 널린 고기들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아저씨. 말리야 닭 10마리 줘.”
“······.”
“저기요? 내말 안 들려?”
“아! 죄, 죄송합니다. 손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6만5천 실링입니다.”
“흐음~ 조금 비싸구나. 할 수 없지 그래도 제 값은 내야겠지?”
“5만 실링만 내고 가져가시죠!”
“엥? 그래도 되나?”
당황한 미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유 없이 친절한 인간도 있구나. 라는 이유에서였다.
“나,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 아,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여기 적혀있는 물건들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려줄래?”
푸줏간 주인장은 온 힘을 다해서 차근차근 길을 알려주었다.
“응! 이제 이해했어. 고마워 아저씨~★”
미호의 특제 윙크가 푸줏간 주인장의 심장에 깊이 박혔다. 미호는 종종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세상에 저런 여자가 있다니 말이야······. 살아있기를 정말 잘한 거 같다.’
주인장은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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