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86)
레이나는 재앙의 산을 하산하는 동안에 주변을 철저하게 살폈다. 또 다시 마덤골렘과 조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지만 만약이라도 그들과 접촉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가차 없이 그들을 깨부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바드도 있으니까 가능해.’
아까까지 된통 당한 일만 생각하면 얼울해 죽겠다. 아무것도 못하고 열세에 밀려야 했던 게 화가 났다.
“그런데 너 지팡이는 어디 갔어?”
바드가 텅 빈 레이나의 손을 지목하며 말했다.
“······아! 그, 그게 말이야.”
레이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바드가 열심히 만들어준 무기였는데 용암 속으로 떨어뜨렸다고 말하기 미안했던 것이리라.
“싸우다가 망가졌어. 흔적도 없이 완전히.”
레이나는 바드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꾸중이라도 들을까 몸을 움츠렸지만 바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전투 중에 장비가 파괴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화 안내?”
그녀가 땅굴에서 고개를 빼내는 아기토끼마냥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화 낼 필요 없잖아? 네가 살아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전투에나 집중하자.”
바드는 맨 주먹을 들어 올려 전방의 몬스터를 겨누었다. 타오르는 눈동자와 거구의 인간몸체.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마그마와 간헐적으로 뿜어지는 뜨거운 증기.
“프크워어어······.”
“추레한 것들이 감히 누구 앞을 가로막아? 넌 떨어져 있어.”
무기가 없는 레이나의 레벨은 한순간에 폭락해버렸다. 맨손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도 보나마나다. 지금은 그녀가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백배 만배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블레싱.”
레이나의 손아귀에서 마력의 실오라기가 흘러나왔다.
‘뭐지? 방금 레이나의 눈이······.’
《레이나님에게 블레싱 버프를 받았습니다. 올스텟+120》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올스텟이 120이나 증가한다고? 1개의 레벨이 증가하면 스텟포인트가 5개 주어진다. 한 종류의 스텟을 120이나 올리려면 레벨을 24개나 올려야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올스텟 120이라니? 더군다나 지팡이 없이 맨손이 전개된 마법이 아니던가?
“레이나 너 눈동자가······.”
하늘색 안광으로 번뜩인다. 나를 노려보는 레이나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뭐하는 거야? 빨리 안 싸워?”
“그, 그래야지.”
나는 정면으로 뻗어오는 마덤골렘의 펀치를 주먹으로 맞받아쳤다. 쩌적. 우직한 소리가 골렘의 팔등으로 뻗어나갔고, 이내 한쪽 팔이 와르르 무너졌다.
저딴 바윗덩이 하나 못 부수면 내 체면이 우습다. 몇 마리고 수십 마리고 한 번에 골로 보낼 자신 있단 말씀이다.
“그르웍?”
마덤골렘의 무리가 몰려와 바드를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한바탕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으나 골렘들의 시야에 보여야할 타깃은 그들 머리위에 올라가 있었다.
콰쾅!
뜨거운 암석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와중에 레이나는 본인에게 씰을 걸어 후폭풍을 견뎌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빈틈도 없고, 두려워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마법의 위력 또한 평소보다 몇 배나 증가했으며, 상황판단과 집중력도 전부 베테랑급이다.
“뒤!”
“연환봉춘권!”
바드의 등 뒤로 주작의 날개가 펼쳐졌다. 팔을 휘감은 화염의 불꽃은 영롱하게 불타올라 마덤골렘의 팔을 꿰뚫었다. 놈이 고통으로 울부짖을 틈도 없이 바드의 주작이 날갯짓 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화염 폭풍이 골렘의 몸뚱이를 새까맣게 그을렸다. 전투가 끝나서야 레이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긴장을 풀었다. 그제야 그녀의 하늘색 안광도 잦아들어 까만 눈동자로 돌아온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근거리까지 얼굴을 밀착했다.
“너 무슨 일이야?”
“자, 잠깐!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가만있어. 너 어디 아파? 정신상태 멀쩡해? 열은 없고? 몸 상태 안 좋은 곳 있으면 당장 말해. 세상 곳곳을 뒤져서라도 약을 구해올 테니까.”
바드가 심히 근심하는 눈으로 레이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레이나는 그런 바드를 바보 같다는 식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이상하잖아. 몬스터만 보면 잔뜩 긴장하던 사람이 난데없이 특급 전투센스를 발휘한다는 게. 게다가 눈동자 색깔도 변하고 말이야. 네 블레싱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올스텟 10~20올려주던 스킬이 난데없이 120을 올렸어. 블레싱 숙련도를 마스터까지 올렸다 한들 불가능한 수치란 말이야. 정말 몸에 이상이 없고서야······.”
그녀가 내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내가 아팠으면 해?”
“그건 아니지.”
“보시다시피 나 멀쩡해.”
“그, 그래 보여.”
바드가 얼떨결에 수긍했다. 레이나는 한결 가벼운 미소로 답했다.
“그래. 나 괜찮으니까 걱정 하지 마.”
그녀가 내 품으로 쏘옥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한손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마치 작은 인형을 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렇게 걱정했어?”
“완전 딴 사람이 된 줄 알았거든.”
이제야 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네. 아니, 평소보다 좀 더 곰살궂은 것이 레이나 답지 않다. 당차고 씩씩하던 성격은 어디가고 이렇게 귀엽고 곰상스럽단 말인가?
“애 보는데 쪽팔리게.”
“노엘 아직도 자고 있거든?”
그 순간 바드의 등에 업혀있던 노엘이 크게 움찔 거렸다. 여전히 눈을 감은채지만 입가가 씰룩씰룩 움직이고 있었고 이마에는 진땀이 줄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노엘?”
바드 등에 업혀있던 노엘이 눈썹을 부스스 떨며 일어났다.
“여긴 어디?”
노엘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투로 말했다.
“길드하우스로 돌아가는 중이야.”
레이나가 노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노엘은 기분 좋은 얼굴로 그녀의 손길을 느꼈다.
“조금만 더 자고 있어. 바드 오빠가 금방 데려다 줄 거야.”
“웅······.”
노엘이 다시 눈을 감았다. 자는 척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피곤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레이나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귓속말로 말했다.
“노엘 자는데?”
“······!”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얼굴.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야~! 혼자만 가기냐? 같이 가!”
***
“다녀왔다.”
온몸이 무겁다. 하루 종일 재앙의 산을 오르락내리락한 탓에 피로가 누적된 모양이다.
“으어어어! 바드님 어서 오세요!”
반응을 보아하니 예상대로 게르덱이 더 고생이었던 모양이군.
길드하우스로 돌아오자마자 게르덱의 격렬한 환영에 마음이 짠했다.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얼굴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꼴이 그게 뭐야? 핏자국이냐?”
“이거 토마토케첩인데요?”
이제 보니 평소에 그가 입던 로브가 아니라 분홍색 꽃무늬가 들어간 에이프런 차림이다. 내가 없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그게 말이죠. 훌쩍! 이사벨라님이······ 훌쩍! 그 분이!”
서글픔이 목을 매어 게르덱의 하소연을 방해한다. 잠시 후 방 안쪽에서 쾅! 하고,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크아아악! 바, 바드! 도와줘라!”
40대 중반의 굵직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쿠샨의 절규어린 비명이었다. 게르덱의 얼굴이 한층 더 절망스러워졌다.
“히익! 시, 시작 됐어요! 그녀가 폭주했다고요!”
폭발이 일어난 방에선 온몸이 피칠갑이 된······ 아니, 토마토케첩으로 범벅이 된 쿠샨이 오두방정을 떨면서 뛰쳐나왔다. 메케한 연기와 알 수 없는 냄새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어머, 바드 씨 오셨군요? 지금 막 요리가 시작되려고 한 참이었는데 말이에요.”
“요리요?”
나는 흘끔 게르덱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절대 요리가 아니에요!’라고. 그리고 쿠샨도 말했다. ‘그게 요리일 리가 없잖아!’라고······.
“이상하군. 이사벨라 씨 요리 잘하잖아? 자기들도 맛있게 먹어놓고는.”
이사벨라가 박수를 짝! 마주치며 내 말에 맞장구 쳤다.
“맞아요~ 그랬는데요. 쿠샨이 프라이팬을 망가뜨렸지 뭐에요~ 요리도 망쳐버리고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려서 잠깐 반성의 시간을 가졌달까?”
“뭐······. 그럼 일 끝나는 대로 불러주시죠. 저희는 방으로 올라가 있겠습니다.”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상책. 말려드는 것은 완전 사양이다. 레이나나 노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갔다.
게르덱과 쿠샨은 내 팔과 다리를 덥석 부여잡고 가지 말아달라며 애걸복걸했다.
“가, 가면 안 돼요! 저희는 아무잘못 없다고요! 요리 못하는 사람에게 요리 시킨 게 잘못이잖아요. 그렇죠 바드님? 바드님! 그냥 가지마시고요 제발!”
“미안하군. 나도 살아야하는 지라. 괜히 도왔다가 주방용품을 망가뜨리면 나도 힘들어져.”
나는 그들을 떼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윽고 문 건너편에서 두 사람의 구슬픈 절규가 뒤따랐다. 나는 그 문에 등을 기대어 애도했다.
‘미안하다······.’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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