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85화 (85/202)

Master Smith (85)

대강 감이 잡힌다. 전설의 아이템을 만들 정도의 사람이라면 헬리오스 주민쯤 돼야 하지 않겠는가? 내 눈앞에 있는 노인이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다.

흰 수염 난쟁이는 화로가에 앉아서 나이 지긋한 눈길로 불속을 들여다보았다. 주황색 불꽃이 그의 눈에 반사되어 세월의 흐름을 비추었다. 수염으로 덮여있는 그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아련한 눈동자가 바드에게 돌아갔다.

“헬리오스라.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추억이 있던 곳이지.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네. 어릴 적엔 그곳에서 뛰놀고 아버지를 따라서 망치를 두들겼지. 가레온 할버드는 내가 헬리오스에 살았을 때 만든 최고의 걸작이었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무기로서 가치를 잃었지.”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렇게 무식한 고철덩어리를 무기랍시고 휘두르는 건 정말이지 무식한 근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바드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진정 자신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대장장이가 실존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던 것이다. 하네스가 잠시 옛 이야기를 밀쳐두고 내게 질문했다.

“자네도 대장장이지? 헬리오스에 대한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헬리오스에 관한 정보는 하벨스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없었을 텐데?”

하네스는 질문이 틀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무의미한질문이었군. 진의를 깨달은 대장장이칭호를 얻었겠지? 자네도 전설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했다는 뜻이겠군. 보여줄 수 있겠나? 자네가 탄생시킨 생명을 말일세.”

언제부턴가 하네스가 흥분한 얼굴로 내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네스의 부담스런 시선을 피하며 뺨을 긁적였다.

“미안하지만 내가 만든 전설등급 아이템은 장비가 아니라 재료다. 전설장비를 수리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

천둥의 펠리토늄. 그것만이 묠니르를 수리할 수 있는 전설등급 아이템이었다. 표면에 고압의 전기가 흘러서 평범한 사람이 만지면 순식간에 이승을 탈출 할 수 있는 괴팍하고 위험한 물건이다. 여차하면 그냥 투척무기로 써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허리춤에서 작고 화려한 망치를 꺼내들었다. 보통망치와 현저히 차이 나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팔 근육을 찢어댔다. 하기야 전설의 무기인데 이 정돈 해야지. 너나나나 사용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디 전설의 무기겠는가?

“내가 만든 장비는 아니지만, 이걸 수리하기 위해서 천둥의 펠리토늄을 만들었지. 그리고 칭호를 얻은 것은 별개의 이유였어.”

나는 하네스의 앞으로 망치를 보였다.

“만지지 마. 무게도 무거운데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거든. 당장은 토르의 가호를 입은 나만 만질 수 있어.”

하네스는 깜짝 놀란 토끼얼굴로 온몸을 떨었다.

“서, 설마 이건······!”

그가 흥분과 감동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네스는 떨리는 손길로 묠니르의 상태정보를 열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그의 눈가에서 한 줄기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지, 진짜 묠니르 아닌가! 이 녀석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정말로······. 정말 기적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로군!”

“묠니르를 알고 있나?”

묠니르는 하벨스 대륙 최외각지역에 위치한 코지부락의 금지구역에 잠들어 있었다. 그 구역은 대장장이 숙련도를 마스터 하지 못한 사람이 발을 들이면 이성을 잃고 광분하게 되는 위험난이도 별 다섯 개 장소이다. 어째서 코지부락에 그런 장소가 있던 것인지 미스테리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하네스는 어떻게 이 무기를 알고 있는 것인가? 몇 가지 가설은 세울 수 있다. 그가 알던 사람이 묠니르를 사용했거나, 그가 만들었거나.

“코지부락. 자네가 이 망치를 뽑은 장소는 한 사람의 묏자리였을 게야.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고 아주 오랜 세월동안 방치된 무덤이지.”

“그것까지······. 정말로 전부 알고 있군.”

하네스는 나의 양손을 감싸 쥔 뒤에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좋아. 묠니르를 소유하고, 그 무기의 내구도 조차 완전히 회복할 정도의 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자네라면 모든 걸 이야기해도 될 것 같구먼. 하지만 아직은 아닐세. 며칠 뒤에 다시 와줄 수 있겠나? 묠니르와 헬리오스, 그리고 자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알려주겠네.

“지금 알려주면 되는데 굳이 며칠 뒤?”

더워죽겠는데 재앙의 산을 또 오를 수는 없다. 다시는 이딴 산을 오르지 않을 거다. 죽더라도 지금 당장 이야기를 들고 싶다.

“지금은 결단코 안 되네. 왜냐하면 지금은······.”

하네스의 단호한 거절에 바드의 기세가 살짝 꺾여나갔다. 하네스는 바드의 어께에 달라붙은 볼케이노 드래곤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우리 고추장 목욕시간이거든!”

“············고추······장?”

“자네 어께에 붙어있는 그 녀석 말일세. 이름이 고추장이야.”

“어째서?!”

나는 항의하듯 소리쳤다.

“레벨300이나 되는 신수에게 고추장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

“부르기 편하고 좋지 않은가? 본인도 맘에 들어 하고 말이야.”

하네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팔을 푸닥거리며 밝은 눈웃음을 지었다.

“고추장 이름 좋다! 나 고추장이다! 에헤헤······.”

그것 참 매워 보이는 이름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방금 뭐라고 했지?

“목욕을 시킨다고?”

“왜 그러는가 무슨 문제라도?”

“당신 나잇값을 하라고.”

바드가 경멸의 눈초리로 쏘아보자 하네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설마 인간으로 변한 드래곤의 여체를 보고 흑심을 품을 거라 생각하는 겐가? 나는 한 점 부끄럼 없네! 자네야말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완전 저질이구먼! 나는 그렇게 막돼먹은 놈이 아닐세! 그리고 말이야. 고추장은 성숙한 나이대가 아니라서 아직 제 구실을 할 줄 몰라요! 내가 씻겨주지 않으면 몇 백 년 이상 씻을 생각을 않는다고! 나를 그런 식으로 보다니 실망이 크군!”

그가 랩하듯 속사포로 부정했다. 저렇게 까지 말하는데 내가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가 없다.

“그렇게 까지 말하면 할 말 없지. 괜히 오해해서 미안하다. 쓸데없는 말을 꺼낸 것 같군.”

“알면 됐네. 이만 돌아가 보게. 고추장을 씻기는데 3일은 걸릴 테니까.”

그가 나와 레이나를 서둘러 내보내려고 했다. 아직 노엘도 안 일어났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목욕 싫다! 나 목욕 싫어한다! 하네스 맨날 이상한 짓 한다! 긴 막대기로 내 몸을······, 몸을······!”

“그럼 그렇지.”

그가 황급히 도리질 치며 반박했다.

“아, 아니야. 오해야! 저건 고추장의 단어선정이 잘못 된 거라고!”

“하네스. 목욕할 때마다 막대기로 내 몸을 문지른다. 기분 나쁘다! 그래도 다 하고 나면 개운하다. 기분 좋아진다!”

하네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그의 입가에 흐느끼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해야······.”

바드의 주먹이 하네스의 머리를 따악! 내려찍자 한바탕 거친 돌개바람이 휘몰아쳤다. 흙먼지가 걷힐 때쯤 땅에 머리를 처박은 하네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해라고 말했잖아!”

그의 얼굴에서 쌍코피가 터져 나왔다. 얼굴 주름살에는 흙이 파묻혔다.

“오해는 무슨 오해?”

“고추장이 말하고 있는 막대기는 드래곤 전용 세면 솔이라고! 드래곤의 가죽은 두꺼워서 그만큼 크고 길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야!”

“하지만 분명 인간 모습일 때 목욕시킨다고······.”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나는 인간모습으로 변한 고추장의 몸 따위에 흑심을 품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이네. 목욕은 당연히 드래곤의 모습일 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날개를 씻겨줄 수 있는 거고. 나 참! 멋대로 생각하기는······ 썩 꺼지게!”

하네스는 마음이 상했는지 더 이상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었는지 뒷말을 덧붙였다.

“돌아갈 때 몬스터 조심하게. 마덤골렘은 이 주변에서 가장 성가신 녀석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나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노엘을 업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레이나는 하네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내 뒤를 따라왔다.

“불꽃 맛있었어!”

고추장은 과즙미 터지는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배웅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 ‘화염장착’ 스킬은 죽어도 안 쓸 거다. 이렇게 더운데 온몸에 화염을 두르라고? 그거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나는 5분의 1정도 줄었든 MP게이지를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곳을 또 올라와야 하나.’

앞날이 막막했다. 다음에 또 방문하면 불꽃을 달라고 아우성 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귀찮은 녀석을 펫으로 키우고 있군. 별난 인간이 다 있네.’

“가자 레이나. 노엘."

우리는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움직였지만, 고추장이 사냥에 나서지 않은 지금. 길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마덤골렘을 전부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워어어어!”

“그냥 넘어가는 일이 하나도 없군.”

늙어가는 바드의 한숨이 재앙의 산 중턱쯤에 길게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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