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82화 (82/202)

Master Smith (82)

《재앙의 산에 진입합니다. 마나 및 스태미나 소모량이 증가합니다.》

뜨거운 지열이 푹푹 올라온다.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용암이 위험천만해 보인다. 공기에는 유황가스가 섞여있고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와 호흡하기 불편하다. 도대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유가 뭐냐고 당사자에게 묻고 싶다.

“으으······ 짜증나······.”

노엘이 비지땀을 흘리며 괴로운 듯이 말했다.

“덥긴 덥네. 용암지대라 섣부르게 움직일 수도 없고.”

레이나도 덩달아 맞장구 쳤다.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니까. 왜 따라와서 고생이야.”

“그, 그치만. 당신 혼자 보내는 건 위험할 것 같아서······.”

“나 따라오는 게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

레이나는 살짝 토라진 어투로 소리쳤다.

“아, 그래서 뭐! 데려가야 된다면 꼭 노엘과 나를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은 당신이잖아! 그래서? 이제라도 내려갈까?”

이때 내 등에 업혀있던 노엘이 그녀의 머리를 꽁! 내리쳤다.

“오빠한테 화내지마 언니.”

“윽! 노엘이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네.”

레이나가 사뭇 순둥이로 변했다. 그녀역시 노엘의 어리고 순수한 면에 굴복한 것이다. 그녀는 애꿎은 옷에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들러붙어? 불편해 죽겠네.”

사제복이란 것이 원래 온몸을 꽁꽁 싸매는 옷이다. 이마에서 턱까지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털. 그녀 말마따나 딱 달라붙은 옷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리라.

“왜? 뭘 봐?”

“저, 그러니까······.”

의식하지 말자. 앞만 보자. 괜히 이상한 생각 말자.

엄청난 열기로 붉게 상기된 레이나의 얼굴. 촉촉이 젖은 턱선과 반들거리는 입술. 몸에 딱 달라붙어서는 희미하게 비치는 몸. 두꺼운 로브가 아니라 큰일이다. 레이나는 본인의 상태를 의식치 않는 듯했다. 그 점이 제일 난해하다.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더위에는 약한 체질인가 봐?”

“당신이야말로 상태가 썩 좋아보이진 않거든.”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꾸했다.

“맞아. 덥고 끈적끈적하고 발도 무겁고. 그래도 어쩌겠어? 이제 와서 돌아갈 수 없잖아. 그런데 당신 아까부터 내 시선을 피하는 거 같은데 무시하는 거야?”

더 이상 무시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몸을 돌려 레이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레이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당황했다.

“뭐, 뭐야. 도전이냐!”

“너. 옷 좀 어떻게 해봐.”

내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는 고개를 내려 본인의 옷차림을 살폈다. 바짝 달라붙은 옷에, 축축하게 젖은 옷. 가슴께가 훤히 비추는 상태였다. 그제야 상황파악을 했는지,

“이, 이이······!”

안 그래도 빨갛던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 마냥 빨개졌다. 입술이 달싹달싹 움직였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치심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한손으로 상체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 변태야! 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거야!”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몸조리는 스스로 하란 말이야!”

“완전 변태! 올라가는 내내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하고! 언제부터 의식하고 있던 거야!”

그녀가 힝힝 울며 무릎에 얼굴을 박아 넣었다. 나는 망토를 꺼내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덥겠지만 임시방편으로 가려.”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망토를 둘렀다. 후덥지근한 더위에 한층 더 괴로운 모습이다. 노엘은 레이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언니······ 울지 마.”

노엘이 주머니에 있던 작은 사탕을 건넸다. 더위에 녹아 포장지가 끈적끈적해졌지만 레이나는 흐느낌을 멈추고 사탕을 받아먹었다.

“고마워. 정말 착하네······.”

“으, 응.”

노엘이 뿌듯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 차린 마당에 미안하지만 전방에 뭔가 있어.”

“몬스터야?”

레이나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했다.

“잘 모르겠군.”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화산가스 너머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좁아서 그림자만 겨우 포착했다. 놈이 몬스터라면 그림자 상단에 몹 네임과 HP게이지가 표시될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너무도 크다. 최소 10미터는 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몬스터 같아.”

나는 관찰스킬을 사용하여 그림자의 레벨까지 확인했다.

“잘 보여?”

“잘 보여어~?”

레이나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자 노엘도 눈살을 찌푸렸다.

“LV.202라고 적혀있는 것 같아. 이름은 잘 안 보여. 덤벼들지 않는 몬스터랑 싸울 생각 없으니까 조용히 지나가자. 하네스를 찾는 것이 먼저야.”

위험을 자초할 필요 없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좋은 일은 돕고 나쁜 일은 말리라는 뜻이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 없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은가?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오는데?”

그렇게 레이나가 운을 뗐다.

“흠?”

정말이다. 의문의 그림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설마 저렇게 먼 거리에서 우리를 본 거야? 아니, 봤으면 됐지, 굳이 싸우려고 다가오는 심보는 무슨 심보람?

‘잠깐만······ 저렇게 먼 거리에서 10미터 크기로 보인다고?’

때마침 그림자의 이름이 일부 드러났다.

“볼케이노············?”

그런 이름이 들어가는 몬스터가 도감에 있었던가? 나는 머릿속을 뒤적였다. 그러고 보니 전설의 목록에서 본적 있다. 몇 초 뒤 볼케이노라는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그 순간 조그만 그림자가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더니 먼 거리를 단숨에 날아왔다. 내 얼굴을 못 봐도 어떤 얼굴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삽시간 만에 파랗게 질렸을 거다.

‘이런 월요일 아침 같은 녀석!’

불완전했던 그림자의 모습이 이제는 똑똑히 보인다. 투박한 비늘과 단단해 보이는 피부.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붉은 기운의 움직임은 놈이 불꽃을 자유롭게 제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 용암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간 눈동자는 순수한 분노를 머금고 있다. 게다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다. 최소 30미터. 밟히면 끝장이다.

몬스터 네임은 《볼케이노 드래곤》. 퍼플네임을 초월한 옐로우네임의 진짜 보스몹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중간한 중간보스, 또는 마족장군쯤 되는 수준이 아니라. 전설의 해수 크라켄이나 레비아탄에 준하는 진짜 보스 말이다! 드래곤은 정말 전설에만 나올 줄 알았는데 실존했다는 건가?

“네가 왜 여기서 튀어나와?”

저놈 얼굴 좀 봐라. 뭐든 때려 부수고 싶어서 죽겠다는 얼굴이다.

“크르르르······.”

“헐. 이건 또 뭐지.”

레이나가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드래곤인 거 같아.”

노엘이 마른침을 삼켰다.

드래곤은 거대한 눈을 내리깔며 우리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뜨거운 콧바람을 뿜어내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크학! 귀청 떨어진다! 당장 그만둬!”

목소리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위엄. 나 혼자 치고 박고 싸워야 할 판에 레이나와 노엘까지 보호해야 한다니,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게도 볼케이노 드래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크기가······.” 레이나는 열기를 발산하는 볼케이노 드래곤이 작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계속, 계속 작아졌다. 인간 사이즈까지 작아지자 이번에는 형태마 변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나라도 황당무계한 상황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 말이다.

길게 늘어뜨린 잿빛 머리칼과 양옆으로 솟아난 갈색 뿔. 외견상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키큰 소녀가 경멸의 시선으로 나를 노려봤다. 외모가 성숙한 탓일까? 잡아먹을 듯한 눈매가 당장이라도 분전을 일으킬 기세다. 게다가 레벨202? 암만 봐도 303이다. 주변에 연기가 자욱하고 거리도 멀었으니 착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성체는 아닌 모양이군.”

드래곤의 성장도는 인간의 모습일 때 대강 측정 가능하다. 라고, 백과사전에서 본 기억이 있다. 다 큰 드래곤은 인간으로 변했을 때 완전한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눈앞의 그녀는 아직 앳된 티가 있다.

“레이나. 노엘과 함께 떨어져 있어.”

“싸우려고?”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방금 전 도약을 보지 않았는가?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날아온 것을. 레이나는 곧장 수긍하고 노엘과 함께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내게 방해만 될 뿐이란 것을 인정한 것이다.

“위험하면 도망치는 거다! 알았지?”

“너희들이야 말로 근처 몬스터한테 얼쩡거리지나 마! 위험하면 곧장 산을 내려가고!”

레이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이었다.

“돌아가······.”

그녀가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전설의 신수라니, 굉장히 놀랍다. 하지만 더위를 참아가며 개고생 한 일을 수포로 만들 수 없다. 드래곤이든 뭐든 내 앞길을 막겠다면,

“싸워야지.”

“돌아가······!”

거대한 홍염이 그녀의 몸을 나선으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살의가 담긴 동공이 크게 축소되었다. 철퇴 같은 꼬리가 바닥을 함몰시켰고 입가에 툭 튀어나온 송곳니가 불꽃을 씹어 삼켰다. 나는 그녀의 투기가 드세졌음을 직감했다.

“대단한 기세로군.”

내 화염저항력이 97%까지 달하지 않았더라면 통구이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반평생을 용광로 앞에서 살아왔는데 불꽃과 친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지만.

콰아아앙! 쾅! 콰쾅!

주변 산등성이에서 용암이 터져 나왔다. 과연 옐로우네임드의 위엄을 보여주시는 군. 예상대로 볼케이노 드래곤의 힘은 상당했다. 순간적인 도약으로 지면이 함몰되었고 사방으로 날카로운 파편이 흩날렸다. 불꽃을 휘감은 그녀의 주먹은 기형적인 압력을 머금고 내게 날아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주먹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화염 데미지 3800을 입었습니다.》

“······막았어?”

“데미지가 들어오는 걸 보니, 평범한 불꽃은 아닌 모양이군.”

“어떻게······.”

치이익───! 손바닥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마어마한 회전을 머금은 펀치가 잔상을 그리며 덮쳐왔으나 나는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투콰콰콰콰!!!!

파공음이 내달리고 산 전체가 울부짖었다. 덕분에 화산활동을 이루던 재앙의 산이 더더욱 성을 내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치솟는 화산탄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왜, 왜왜왜!”

“초조하냐? 애써도 힘들 거다.”

게틀링건을 연상케 하는 무식한 화력이 전설급 보스답다. 평범한 모험가라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산산조각 났으리라. 탱커 수백 명이 번갈아가며 몸을 대지 않는 이상 일말의 공격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잠시 후 그녀의 주먹을 휘감던 홍염의 물결이 유유히 사그라졌다. 제풀에 지친 그녀는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왜에······ 왜에에······!”

그녀가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위에 팔을 올려놓은 자세로 항의하듯 소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내가 더 강하니까?”

“싫어! 짜증나! 죽어버려!”

자포자기 한건가? 신수더라도 애는 애다.

“어리광도 적당히 해야 받아주지.”

나는 코앞까지 다가와서 주먹을 내뻗은 그녀에게 카운터펀치(꿀밤)를 날렸다. 따악! 하고, 깊고 낭랑한 울림이 산등성이에서 메아리쳤다. 최후의 일격이 막혀버리자 그녀가 침묵했다.

풀썩.

그녀가 침묵 끝에 주저앉더니,

“흐으읍······. 후그읍······! 흐으아아앙~!!”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뭐냐 이 백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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