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81)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폴암을 들여다보았다. 손잡이에 아름다운 금색 무늬가 물결처럼 흘러가고 폴암의 가운데에는 크림슨 레드에 가까운 홍옥이 잔잔한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웅장하고 압도적인 자태도 대단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능력치였다.
이름: 가레온 할버드+24(전설)
내구도: 32000/32000→50000/50000
레벨제한: 540
공격력: 440+631(특수공격력 부여:+1)
속성: 화(火)
특수능력: 화염면역력, 화염친밀도, 피지컬
화염면역력(레벨10)- 화염속성 공격에 대한 면역력이 90% 증가합니다.
화염친밀도(레벨10)- 화염속성 공격력이 100% 상승합니다. 화염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레벨10)- 근력과 방어력이 20%증가합니다.
설명: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강함을 지녔으나 과연 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자가 존재할지 알 수 없습니다. 가레온 할버드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면 사용자의 신체를 파괴할 것입니다.
웃기지도 않는다. 전설등급인 걸로 모자라 +24 초월강화? 공격력 1천? 나보다 더 뛰어난 대장장이가 존재한다. 묠니르처럼 어디선가 얻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들지 못한 전설의 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여튼 누가 만들긴 했다는 것이다.
나는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좌절? 나보다 더 대단한 대장장이가 존재해서? 그게 아니라 흥분된다.
‘제법이군.’
할아버지 말씀 하나 틀린 것 없다. 세상은 넓고 엄청난 놈들은 차고 넘친다. 내 눈앞에 증거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대장장이의 정점을 찍지 못했단 사실을.
“어떤가? 말도 안 되는 능력치지?”
“놀랄만한 무기군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할버드로부터 눈을 떼며 말했다.
“이 무기의 출처를 알고 싶습니다.”
“자네는 다른 대장장이들과 다르게 도망치지 않는군?”
왕이 박수를 치자, 수백 명의 인력과 도르래가 동원되어 가레온 할버드를 옮겼다. 그 무기가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왕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하네스. 본인 입으로 말하길 헬리오스 출신이라고 하더군. 그런 곳이 있나 찾아봤는데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네.”
“헬리······오스?”
헬리오스는 대장장이의 고장. 신의 도시이다. 그곳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묠니르에게 물어볼 참이었다만······.
‘일이 잘 풀리는군.’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마그르스 동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재앙의 산 정상일세.”
“재앙의 산이라면?”
“말 그대로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일세. 레벨200이상의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잦은 화산활동으로 화산탄과 용암이 끝임 없이 흘러나오는 장소지. 누군가 거주하기는커녕 발을 들이는 순간 목숨이 위험해 지는 극악의 위험지대라고 알려져 있어.”
“그 인간도 별난 사람이군요.”
“그렇지. 그 덕분에 우리가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네. 설마 그곳까지 찾아갈 셈인가?”
국왕이 눈앞까지 길게 흘러내린 흑발을 뒤로 쓸어 넘기며 질문했다. 가봤자 개죽음이라는 눈이었다.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저보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인의 자존심인가?”
“그거야 만나보면 알겠죠.”
하네스라는 작자가 어떤 인간인지 확인해볼 것이다. 무엇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는지 알고싶다.
나는 가레온 헬버드의 무식한 공격력을 떠올리며 전혀 다른 차원을 바라보듯 침묵했다. 전설등급의 +24 초월강화. 특별한 잠재능력이 없지만 무기 자체의 공격력만으로 천재지변을 일으킬 것이다. 물론 사용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적당한 무기가 생기면 가져와 주게. 알다시피 무기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족들과 싸우는 기사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벨스 북쪽에 위치한 만년설산 너머가 마족과 인간간의 분쟁지역이다. 그곳은 아직까지도 피 튀기는 살육전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쪽 상황을 생각해서라도 클래스 높은 무기는 언제든 환영이리라.
각설하고, 재앙의 산이 문제다. 레벨200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이라면 나 혼자 가는 것이 좋으리라. 길드원 실력은 충분하지만 굳이 험난한 산길까지 끌고 올라갈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나나! 같이 갈래!”
“나도 가겠다! 부탁이다!”
“바드님! 무릎 꿇고 빌면 되나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길드하우스로 돌아와 재앙의 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몇몇 인원이 자리를 박차며 소리쳤다. 처음엔 미호가, 두 번째로 쿠샨이, 세 번째로 게르덱이 애걸복걸 빌었다.
“이 사람들아. 거긴 위험한 곳이라니까? 몬스터 사냥하면서 안전하게 레벨이나 올리면 될 걸, 왜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거야?”
“그, 그러니까. 제가 바드님을 따라가려는 이유는······.”
게르덱이 눈을 돌려 이사벨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아······.”하고, 탄식했다.
“그래도 안 돼. 꼭 데려간다면 노엘과 레이나를 데려갈 거야. 노엘은 서머즈 능력을 다듬어야 하고, 레이나는 실전 경험이 필요하니까. 마나 관리하는 연습도 필요할 거야.”
“내, 내가? 따라가도 돼?”
“안 될 거 없지.”
레이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에 보탬이 안 되는 자신을 데려가겠다니 무슨 속셈이지? 그런 눈치였다. 평소에 표정 변화가 없던 노엘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눈망울도 점점 커졌고 여태 빠지지 않은 젖살에 기쁨이 차올랐다. 노엘이 짧은 걸음으로 오도도 달려와 내 다리를 껴안았다.
“열심히 할게······.”
조곤조곤한 노엘 특유의 말투였다.
“갔다 오면 단거 많이 먹자?”
나는 노엘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답했다.
이번일은 내 개인적인 일이므로 사적인 일이프로 타인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노엘과 레이나의 레벨을 올리기 위한 정도이려나?
“괜찮을까? 거기선 내 몸 챙기기에도 바쁠텐데.”
“방패 역할은 확실히 해줄 거야. 그리고 이번 원정에 두 사람을 데려가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기도 해.”
나는 마법가방을 터치해 인벤토리를 연 뒤, 구석에 옮겨둔 장비들을 죄다 꺼냈다. 총 6세트의 장비들이고, 무기까지 겸허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장비들을 본 쿠샨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것들은 설마······.”
“이 몸께서 친히 만들어 봤다. 각자 체구에 맞춰서 제작한 거니까 사이즈는 걱정 마라. 기능은 내가 보장하지.”
전설 등급은 아직 무리다. 에픽 재료를 어떻게 조합해야하는지,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
“착용 레벨제한이 250이다. 아직 착용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은 실력을 쌓아서 이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목표로 둬.”
그때 안토니오와 이사벨라가 실망한 눈치를 쏘아 보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우리 거는요?!””
나는 두 사람을 떼어놓으며 논리적으로 따져들었다.
“이사벨라 씨는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까 안 만들었어. 안토니오 또한 지금까지 싸워본 경험도 없고, 전투능력도 기르지 않았는데 장비가 왜 필요해?”
“그, 그야 그렇지만 저도 멋진 장비 착용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안토니오의 어깨가 풀죽은 듯 내려갔다.
“대신 네게는 대장간 도구를 만들어주마. 장비제작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럼 저는요?”
이사벨라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내리면서 말했다.
“프라이팬이라도 만들어 드릴까?”
“치이~ 그게 뭐야? 그래도 일단 만들어 주세요. 없는 것 보다 좋겠지 뭐.”
“합리적인 선택이군.”
대화가 끝나고 다른 길드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새로운 장비를 구경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중에서 제일 기뻐하고 있는 사람이 미호였다.
“우와! 주인님이 날 위해 만들어줬어! 카스티바 이거봐, 이거봐~ 예뻐? 예쁘지?”
“보기 좋은걸? 여신이 따로 없어! 너무 예쁘다.”
미호가 입은 옷은 ‘마나의 결정체’라는 에픽재료로 만든 근접형 전투마법사 전용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얇고 가벼운 비단옷처럼 보이지만 뛰어난 방어력과 높은 내성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호의 외견에 맞추느라 디자인에 신경 좀 썼다.
비단은 티끌하나 묻어나지 않은 눈부신 백광채를 머금었고 넓은 옷소매에는 은빛 여우무늬가 물결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온 반투명한 비단은 하늘 선녀의 날개처럼 유유히 흘러가기를 반복했으며, 머리에 착용한 금빛 장신구는 눈꽃 같은 이펙트를 흩날리며 마나를 방출했다.
미호가 자신의 조그만 배꼽을 만지작거리며 의아했다.
“근데 가슴이랑 배꼽이 파여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아?”
“재료가 조금 부족했어. 아무튼 잘 어울리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나는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전에 냉큼 대답했다. 잘 보면 등과 어깨도 파여 있다. 평소에 흰색 소복만입다가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고 나니까 사람이 달라 보인다. 아니, 요괴가 달라졌다.
미호가 대뜸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한 발짝 물러서며 경계했다.
“오, 오지 마!”
“흐아앙~ 주인님 사랑해에에!”
“빌어먹을 요물 녀석! 당장 떨어져! 떨어지라고!”
이 녀석 만큼은 장비를 만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착용조건을 가뿐하게 넘어버린 덕분에 모든 장비와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았는가? 녀석의 무력이 훌쩍 증가되었다.
‘뭔 힘이 이렇게······!’
이젠 비무장 상태로 미호의 무력을 대적할 수가 없다. 호랑이등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쿨럭! 나 죽어 이 년아.”
“아! 미안미안. 너무 기쁜 거 있지?”
미호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훌쩍였다.
“끄응. 다른 사람들은 어때? 마음에 들어?”
“훌륭해! 힘이 넘쳐흐르고 있어! 이렇게 완벽한 장비는 처음 본다.”
모든 장비를 착용한 쿠샨이 두꺼운 목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하기야 엠페러 길드에서 한자리 꿰찼다 한들, 이만한 거물은 못 봤을 테지.
그의 모습은 천상에서 내려온 심판의 기사 같았다. 우람하고 드넓은 덩치에,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판금 갑옷. 안면을 전부 뒤덮은 투구안쪽엔 어둠의 그림자가 퍼져있다. 쿠샨이 움직일 때마다 철컹거리며 큰 소리가 났다. 마치, 기계적인 움직임이다.
“이리도 두꺼운 갑옷인데 전혀 무겁지 않군.”
“무게경감은 기본이지.”
“무게경감 10단계라······. 넌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야.”
쿠샨이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차오르는 기쁨을 마다않고 발산했다. 나또한 드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나머지는 아직 못 입는 건가?”
나는 남은 4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벨이 조금 부족하네.”
카스티바가 아쉬운 억양으로 대답했다.
“레이나와 노엘은 아직 한참 수련해야 할 거야. 이번 원정에서 레벨 좀 올리고, 일 끝나면 카스티바와 게르덱이 도와서 사냥에 전념해. 그리고 마그르스에는 임무 게시판이 널려있으니까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하고 말이야.”
네 사람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게르덱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다.
“나 없는 동안 집안일을 부탁하지.”
“자, 잠깐만요! 또 이사벨라님에게 저를 떠넘기실 생각인가요? 그거 완전 지옥 그 자체라고요!”
“그 입 다무시죠 게르덱님?”
죽여 버리겠다는 이사벨라의 눈빛이 게르덱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 없는 수고해라. 명복을 비마.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카스티바와 쿠샨은 주변의 사냥터에서 훈련하고 있어. 당장은 카스티바가 장비를 착용하게끔 만들자고. 안토니오는 주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봐.”
“자리요?”
“장사 자리를 잡아야 할 거 아니야? 돈은 벌어야 한다고. 엠페러 길드에서 털어온 아이템이 많아서 다 처분하려면 10년을 장사해도 모자랄 판이야.”
비싼 길드하우스 비용까지 빠져나갔으니 한동안은 절약생활을 해야 하리라.
“그, 그럼 저는 정말로?”
나는 본인을 가리키는 게르덱에게 지조 있는 목소리로 단답했다.
“이사벨라를 돕는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해.”
“저도 바라던 바에요! 그냥 저 좀 도와주세요~ 부탁할게요. 네?”
이사벨라는 게르덱의 오른팔에 찰싹 달라붙어 길게 뻗어 나온 귀로 그의 얼굴 인근을 간질였다. 그녀의 가슴께가 팔에 닿을 때마다 게르덱의 얼굴에 짙은 공포가 묻어나왔다.
“제, 제발 이러지 마세요!”
“뭐야? 나 무시당한 거예요? 이렇게 귀여운 여자가 애교를 부리는데도 거절?!”
“마음씨 좋은 여자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걸 감안하면 이사벨하님은 전혀 아름답니 않······”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사벨라의 거침없는 스트레이트가 게르덱의 복부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게르덱은 거친 기침과 함께 방구석 안에 찌그러졌다. 몸이 아픈 것 보다 앞날로 인한 마음고생이 더 걱정인 듯하다.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두고 어서 가보세요. 게르덱 씨와 제가 이곳을 지킬게요.”
나는 구석에 처량하게 누워있는 게르덱 쪽으로 동정의 눈길을 보내주고는 이사벨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고생시키진 마.”
“후훗. 그것 또한 걱정하지 마시길.”
라고, 대답한 그녀였다.
고생길이 훤하군. 미안하다 게르덱. 그리고 수고해라. 나 먼저 떠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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