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80)
이동하는 동안에 별별 몬스터를 조우했다. 많은 우역곡절을 겪었지만 길드원의 위기대처 능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보다 이틀째 최소한의 휴식을 제외하고 이동만 했으니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그런데요 형. 북쪽도시로 가려는 이유가 뭐에요?”
안토니오가 대뜸 이상한 걸 물어본다.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첫째로 국왕을 만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 그런 칭호 필요 없다. 나는 더 많은 대장장이들의 무기를 보고 싶을 뿐이다. 내 한계가 끝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답하자 안토니오가 다시 되묻는다.
“국왕이 몇 년째 최강의 무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요?”
“전쟁 때문이지.”
포악해진 몬스터와 마족이 하벨스 전역에 들끓고 있다. 당연히 국왕군은 그들을 소탕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마족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니 강력한 무기가 대거 필요할 터.
“20년 전. 사건 알고 있지? 마계의 문이 열리고 하벨스 대륙이 풍비박산 나버린 대대적인 비극.”
안토니오는 모를 리가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뒷받침했다.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지 과정조차 알려지지 않았죠.”
“그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 마계의 문을 닫았고 10년간 이어진 싸움이 결국 끝났다는 거다.”
“듣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네요. 마계의 문이 닫혔는데 어떻게 마족이 활개를 치고 있는 거죠?”
“내가 북쪽도시로 가려고 하는 이유 중에 그것도 포함되어있지. 조사할 것이 있거든.”
분명한 것은 엠페러 길드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거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나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만. 굳이 그 일을 조사해야 해? 너무 위험하잖아. 몬스터도 아니고 마족이란 말이야.”
“위험해도 해야 해.”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이다. 긴 침묵 끝에 레이나가 운을 뗐다.
“왜 굳이 너여야 하는데?”
바드는 짤막한 이유를 댔다.
“너희들을 지켜야 하니까.”
마족을 조사하는 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차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목숨 걸고 싸우는 데는 항상 이유가 있다.
“내 길드가 위험에 처할 일이 생기는 건 싫어. 내 힘으로 끝내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할아버지가 공백의 시기때······.”
나는 말을 멈추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해도 이들은 기억할 수 없다. 평생.
‘할아버지가 모든 걸 버려서까지 지키려했던 미래니까 나도 따라갈 거야.’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얼버무리며 말을 맺었다.
“걱정 마. 내 앞가림은 내가 해. 그리고 당신들은 내가 책임지고 강하게 만들 거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북쪽도시를 찾아가는 마지막 이유. 대장장이의 본고장 ‘헬리오스’를 찾는 것.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대륙 최대 규모의 도시인만큼 수소문하면 실마리정도는 잡을 수 있으리라. 각설하고, 숲속을 가로지르는 쪽이 지름길이라고 하더니 여긴 숲속이 아니라 정글이잖아? 맞게 걸어가고 있는 거 맞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해가 뜨는 쪽이 동쪽이고 지는 쪽이 서쪽이니까 이쪽이······.”
카스티바가 실없는 미소와 함께 뒷머리를 긁적였다.
“쿠샨. 어림짐작으로 얼마나 남았지?”
“곧 도착하겠군. 방향이 맞다면 말이지.”
그가 비지땀을 흘리며 가방을 고쳐 매고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 쿠샨의 말대로 정글을 빠져나오는 것은 얼마 뒤에 일이었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절경에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드넓은 벌판. 멀리 수평선 끝자락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먼동.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성벽과 구조물들.
“거봐. 방향 맞지?”
카스티바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나는 아름다운 파로나마가 펼쳐지는 꿈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도착했다. 북쪽도시 마그르스(Magress)’
뭐든 간에 매듭 지어주마 근례에 들었던 위화감까지 전부!
***
코지부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 듣기론 외각을 둘러싼 성벽의 길이를 전부 합치면 자그마치 158km나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도시 내부는 더욱 대단했다. 눈으로 헤아리기 불가능한 구조물이 가득했고 천공의 구름사이로 새벽녘 햇살이 내려와 도시를 밝게 비추었다. 마치 신이 내려오듯 황홀했다.
“우와아아~ 이런 대도시는 처음 봤어요!”
“너 귀족집안 아니었어? 한번쯤 마그르스에 와본 줄 알았는데.”
“북쪽도시로 오는 길목엔 몬스터가 많아서 방문할 기회가 없었어요. 바드 형도 여기까지 오면서 봤잖아요?”
그건 그렇지. 절벽에서 튀어나오는 골렘이라던가 한밤중에 나타나는 얼터들을 보면 아무리 돈 많은 귀족집안이더라도 위험한 여정일 것이다.
“역할을 분담하도록 하지. 게르덱 빼고 나머지는 짐을 들고 길드 하우스로 찾아가. 코지부락을 떠나기 전에 미리 전보 때려놨으니까 길드안내소로 가면 주소 알려줄 거야. 게르덱에겐 정보 수집을 부탁하지.”
“정보수집이라뇨?”
게르덱이 단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물었다.
“회색현자에 관한 정보를 말하는 거야.”
회색현자를 찾아서 케르드가 내게 넘긴 크리스털로 마왕을 완전 부활시킬 수 있는지, 그 외에 다른 용도는 없는지 물어봐야한다. 뿐만 아니라 내 할아버지와 어떤 관계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현자란 노인이 할아버지를 기억해주면 좋으련만······.’
“왕국은 어느 쪽이지?”
바드의 질문에 쿠샨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높은 작자가 사는 곳이니 제일 눈에 띄는 건물에 살지 않겠나? 무기를 등록하려나본데 등록은 왕국을 방문하고 무기고로 향해야 한다. 그곳에서 등록된 무기를 볼 수 있으니까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나는 일이 끝나는 대로 길드하우스에 가 있겠다.”
나는 냉큼 발길을 돌려 왕국으로 향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머금은 구조물이 화려하다는 표현 말곤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무튼 돈 꽤나 쏟아 부운 모양이다.
“멈춰라!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목적과 이유를 대라!”
“공고를 보고 찾아왔다.”
“아, 대장장이인가? 따라와라 안내하지.”
이건 또 무슨 건방진 말투인지 모르겠다만 일단 참자. 지금 날뛰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들 것이 분명하니까.
“한낱 대장장이 주제에 국왕님을 이리도 쉽게 만나다니······. 시대를 타고났다는 말밖에 못 하겠군. 공고가 없었다면 너희 같은 대장장이들은 평생가도 국왕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그러시겠지.”
건방진 경비병 나부랭이가 잘도 입을 터는 구나. 네놈이 목숨을 유지하는 것도 시대를 타고난 덕분이니 덤으로 사는 목숨 잘 살아봐라.
“놀라지나 마라. 이렇게 넓은 방은 또 처음 볼 테니까. 그리고 국왕님 앞에서 무례한 행동하지 말고! 무기만 보여드리고 끝내는 거다. 알았나?”
“입 닥치고 썩 꺼져버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금으로 치장된 대문을 밀어냈다.
끄드드드드드드득────!
문이 열리는 소리가 꽤나 그럴싸하다. 불순물 잔뜩 들어간 가짜 황금 문이지만 나름 분위기는 좋다. 나는 문 앞에 깔려있는 레드카펫을 따라서 넓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런 향기와 황홀한 장신구가 치장된 방이다. 보이는 것 전부가 비싸고 사치스러워 보였다. 얇고 부드러운 비단이 커튼처럼 걸려있고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청소부 꽤나 고생했겠군.’
그렇게 5분정도를 걸었다. 마침내 왕좌가 보인다. 그것 역시 순금으로 만든 의자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섬세하게 조각된 의자지만 말이다. 그 위에 앉아있는 남자가······.
“마그르스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네. 낯선 이여.”
“하벨스 대륙의 통치자인 국왕께 인사 올립니다.”
“그래! 공고 글을 보고 찾아온 대장장이지? 요즘 아무도 찾아오질 않아서 슬슬 그만 둘까 생각 중이었네.”
그의 덥수룩한 흑발과 뭐든 귀찮다는 식의 눈동자. 정리되지 않은 짙은 눈썹과 목소리로부터 묻어나는 나태함은 거만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는 4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이며 외관상 그렇게 보일뿐 더 늙었거나 젊을 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요즘 들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다니? 왕이 내리는 보상이 걸렸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굉장한 상품이 들어왔지. 모든 대장장이가 그 물건을 보고 체념하듯 돌아갔네. 내가 봐도 엄청나! 감히 대응할 무기가 없을 것 같아.”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모든 대장장이들을 감히 들이대지 못하게 만든 그 무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만든 사람은 누굴까? 내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었을까?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내 기술을 따라오려면 노가다에 대해서 나보다 독해야한다. 감히 견줄만한 상대가 없다고 보는데······.
국왕은 별 달갑지 않다는 행동을 취하며 허공에 대고 박수를 쳤다. 그 소리에 맞춰 어둠속에서 등장한 것은 투명한 유리케이스로 둘러싸인 거대한 폴암이었다. 겉보기에도 무식하게 거대했다.
“저기요?”
“이 괴물이 우승후보라네.”
무기란 것이 말이야. 사람이 휘둘러서 사용할 수 있어야지 이렇게 무식하게 큰 사이즈로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강해보이긴 한데 이렇게 사이즈가 크면 실용적이지 못하다.
높이만 4미터. 손잡이는 굵고 길다. 도끼부에는 예리한 날이 번뜩이고 높은 꼭대기는 뭐든지 꿰뚫어 버릴 듯한 창날이 박혀있다. 살상능력은 보장 할 만하지만 무기로서의 가치는 인정할 수 없다.
“이거 휘두를 수는 있습니까?”
“······흠?! 드,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그렇게 눈 동그랗게 뜨고 소리치지 말란 말이야. 상식적인 부분을 생각 못하면 안 되잖아!
“옵션만 보고 판단한 겁니까?”
“이렇게 큰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재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코 가볍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묠니르보다 무겁지 않다면? 폴암에 비해서 묠니르의 크기는 비교도 안 되게 작지만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초 파괴력을 지닌 전설의 망치 아닌가?
“괜찮다면 제가 둘러봐도 괜찮을까요?”
“마음대로 하게. 어차피 버릴 무기니까. 높은 능력치라 한들 쓰지 못하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지. 이렇게 되면 등록된 무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자네가 폴암에 견줄만한 것을 가져와 주게.”
“제가 왜······.”
“왕의 명령일세! 굳이 이유를 묻고 따지지는 말게. 이런 무기를 휘두를 사람이 없다고 깨우쳐준 사람은 자네 아닌가?”
라며, 호쾌하게 웃는 국왕의 입안에 똥을 처넣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는 신세한탄을 하며 폴암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그 순간 정면으로 황금테두리 알림창이 떠올랐다. 나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이런걸······ 하하······! 진짜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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