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76화 (76/202)

Master Smith (76)

잠시 후 각종 요리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커다란 볼에 담긴 샐러드와 그 위에 뿌려진 상큼한 키위드레싱. 얇게 썬 햄을 끼워 넣은 샌드위치사이엔 벌꿀이 흘러넘치고, 커다란 접시 위엔 통째로 구워낸 멧돼지 바비큐가 간장소스로 양념되어 나왔다.

마실 것은 하늘보리맥으로 만든 시원한 음료다. 맛은 맥주와 비슷하지만 알코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진수성찬도 한순간이다. 쿠샨과 게르덱, 안토니오 마저 걸신들린듯 음식을 흡입했기 때문이다.

“당신들, 무슨 일 있었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게르덱이 단안경을 번뜩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운 안토니와 쿠샨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잘 먹었어. 날로 실력이 늘어나는 군.”

“뭘 새삼스럽게 그래요? 다들 먹었으면 뒷정리를 해야지? 쿠샨! 게르덱! 빨리 움직여!”

“자, 잠깐. 바드님 오기 전에 그렇게 일했는데 또요?”

게르덱이 진저리치며 경악을 토했다. 쿠샨 또한 지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며 신음했다. 피곤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모양이다.

“불평하지 마. 나 같은 미소녀의 음식을 먹었잖아? 게다가 시중까지 들 수 있다니? 엄청난 영광 아니겠어! 그치 쿠샨?”

“쿠샨님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난다고요!”

‘명복을 빈다. 게르덱.’

바드가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쿠샨이 봄기운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입을 열었다.

“나, 나는 괜찮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마침 잘 됐군! 하, 하하하!”

“아아. 쿠샨님 제발······.”

게르덱의 바램은 완전히 좌절되었다. 안토니오는 진즉 포기했는지 묵묵히 빈 그릇을 치우고 있다.

나는 뒷정리를 끝내고 자유시장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식재료와 다양한 수공구들이 진열되어있고, 모험에 필요한 필수아이템이 가득하다.

“오늘도 시작해 볼까.”

힘찬 기합과 함께 대장간 오픈. 보조는 피곤에 찌든 안토니오가 한다.

“여어! 바드잖아? 며칠간 안 보여서 걱정했다고. 무슨 일 있었어?”

일이라면 있긴 있었지. 엠페러 길드를 풍비박산내고 호족장로까지 만나고 왔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레어한 재료도 잔뜩 회수했다.

“바쁜 일이 있었다.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군.”

“하하!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을 그리 하는가? 다른 친구들도 불러올 테니 장사준비나 잘 해두게. 새로운 물건도 많이 들어왔지?”

“물론이지.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전부 팔려서 없어질걸?”

“어이쿠! 그럼 안 되지. 금방 다녀오겠네.”

중년의 모험가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놀렸다. 내가 그 얄팍한 속을 모를 줄 알아? 우리사이? 여느 때와 같이 흥정하려는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알고? 괜히 친한 척 다가와서 물건 값 깎아내릴 생각이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된다. 내 사전에 에누리란 단어가 없으니까.

“안토니오. 내 가방 안에서 에픽등급 재료 진열해둬. 시간 날 때마다 숙련도 올리는 거 잊지 말고.”

“네~”

선천적으로 이쪽 직업이 맞는 건지, 아니면 단순 노동 체질인 건지 모르겠지만 안토니오는 싱글벙글 웃으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일손 돕겠다더니 정말 대장장이 할 생각인가?’

나는 대장간 구석으로 들어갔다. 《진의를 깨달은 대장장이》칭호와 함께 얻어낸 새로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제작서 등록 및 추출이던가?’

나는 오른손을 그어내려 매뉴얼을 열었다. 사용자 정보와 보유능력 버튼을 순차적으로 누르자 눈앞에 각종 기술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었다.

‘이쯤 어디에 섞여있을 텐데······.’

주르륵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중간쯤에 《NEW!》라는 로고가 붙어있는 스킬이 생겼다.

『제작서 등록 및 추출』

사용자가 제작해본 장비품을 등록목록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장비를 등록하면 장비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종류와 자원개수가 표시되며 제작서 추출을 통해 해당 장비를 만드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단, 높은 등급의 장비 제작서를 익히기 위해서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합니다.)

-등록한 장비개수는 0개. 남은 공간 1024칸입니다.

‘장난이지?’

장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즉시 습득할 수 있다고? 말이야 쉽지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물론 이런 것과 비슷한 아이템이 있다고 들었다.

일명 ‘스킬북’이라는 것인데 이 아이템은 별다른 수행 없이 직업과 어느 정도 능력치가 만족되면 스킬을 익힐 수 있는 초레어 아이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킬북’의 가치이다. 얼핏 듣기론 싼 게 몇 천만 실링, 비싼 건 수억 실링이라고 한다. 이번 경우는 차원이 다른 큰 메리트가 있다. 본래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선 세심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법. 그러니까. 좋은 장비를 만들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과 실력이 크게 적용된다.

스킬도 자체적인 연습이 필요하지만 순수한 기술을 요하는 대장장이 기술과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 그 부분만 봐도 ‘스킬북’보다 비싸면 훨씬 비쌌지 결코 싸거나 비슷한 가격은 아닐 것이다. 허나!

오랜 경력과 노력을 요하는 제작기술을 고작 제작서라는 아이템 하나로 퉁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나는 한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왔다. 아무리 힘들고 인정받을 수 없는 직업이라고 해도 장인의 긍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진의를 깨달은 대장장이에게 부여되는 스킬이 고작 이따위 것이란 말인가? 나를, 세상의 모든 장인들을 욕보이는 기술이다. 아무리 희귀하고 수억 실링의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해도······.

‘이딴 스킬 못 쓰지.’

돈도 좋지만 나를 팔아넘기는 짓은 안 한다. 내가 제작서를 추출할 날은 영원히 없으리라.

“바드 형 준비 끝났어요.”

“어~ 나간다. 밖에 손님 몰렸다. 빨리 받들어 모셔!”

“앗! 갑니다. 거기 손님! 함부로 만지지 마요. 때탄다고요!”

“보니까 오늘도 바빠질 것 같군. 망치질을 쉬어선 안 되겠어.”

나는 망치를 들어올렸다. 빨갛게 달궈진 강철이 망치와 충돌하자, 빨갛고 아름다운 진홍색 불똥이 화사하게 터져 나왔다.

깡! 깡! 깡!

손아귀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에 마음이 춤추기 시작했다. 수많은 정전기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나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기분을 수없이 맛보았다.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최고의 장비.’

장인의 혼을 발동시키는 조건은 장비에 담는 절실한 감정이다. 암만 제작서가 뛰어나다 한들 이런 세부적인 요소는 결코 따라오지 못하리라. 상상해보라. 아름다운 불놀이를, 여름바다의 어둠을 밝히는 환상적인 불꽃들을! 영혼과 심열에 퍼지는 깊은 울림을, 나를 만족시킬 유일무이한 작품을! 이해 못해도 상관없다. 남을 이해시키려고 장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보라. 막연히 눈부신 불꽃과 울림소리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황홀함에 사로잡혀 망치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하! 저 친구 또 시작 됐구먼. 변함없이 대단한 망치질이지?”

“누가 아니래? 이 주변에 있는 대장장이들은 먹고살기 힘들어 졌다고. 이젠 대장장이 하면 바드의 이름이 툭 튀어나온 다니까?”

“대단한 물건이 나올 것 같은데? 미리 예약구매 해둘까?”

주변이 소란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청아하고 맑은 고음이 소음을 밀쳐냈다.

깡! 깡! 깡!

《명성 21이 올랐습니다.》

《명성 30이 올랐습니다.》

《명성 27이 올랐습니다.》

‘아, 완성했군.’

찬란한 광휘가 번쩍이자 사람들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충동구매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누가 아니래. 지난번에 100만 실링 꿨는데, 또 돈꾸게 생겼어.”

“젠장! 저 물건은 내꺼다. 다들 비켜!”

“어림없는 소리! 여기 줄선 거 안 보여?!”

순차를 지키지 않아 불화가 생긴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의 역할은 그들을 달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정들 하세요. 좋은 물건은 계속 나옵니다! 경거망동 하지 마시라니까요! 거기, 아저씨! 줄서요 줄!”

“안토니오! 외상은 안 될까? 딱 한번만~ 응?”

“저희 가게가 외상받는 거 본적 있어요?”

어떠한 상황이라도 외상은 없다. 사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매번 외상으로 가져가면 반칙이니까.

안토니오가 팻말을 Open으로 돌렸다. 영업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우워어어! 이 대거. 어제보다 더 좋잖아! 아이고, 하루만 더 참을 걸!”

“어라? 안토니오. 오늘은 표창 안 파는 거야?”

“응? 분명 진열해 뒀을 텐데 왜 없지?”

누군가 안토니오 앞으로 표창을 무더기로 가져온다.

“전부 내가 사지!”

안토니오는 범인을 찾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한 사람당 구입할 수 있는 매물이 제한되어있거든요. 이만큼 빼고 나머지는 도로 갖다놔 주세요~”

남자는 시무룩한 얼굴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내일 또 올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사는 성공적. 가게의 인지도는 날개 돋친 듯 솟구쳤다.

나와 안토니오는 무언의 파이팅 신호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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