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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75화 (75/202)

Master Smith (75)

손가락 크기만 한 장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지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니라.”

“잘 들었다.”

“흐음? 꽤 동요할 줄 알았는데 멀쩡하군. 특히 네 정체성에 대해서는 말이야.”

그녀가 제법이라는 마냥 눈꼬리를 추켜올리자 바드가 대답했다.

“놀랐다.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그런가? 이만 돌아가도 상관없겠군. 설화도 내게 볼 일 없지? 힌트는 이미 다 알려줬다고 생각한다만.”

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뵈러 올게요.”

“오냐. 현실로 돌아가는 문은 열어두었다. 마당으로 나가면 찾을 수 있을게야. 그리고 바드 너는.”

바드의 상태가 유독 걱정되었는지 장로는 그의 뒤태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어차피······”

“알고 있어. 어차피 지난일인거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할 필요 없다는 거.”

내 정체가 어떻게 되먹은 놈인지, 사람인지 아닌지, 이제 와서 과거를 들먹이며 감정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장로는 그 사실을 내게 이해시키고 싶을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할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 가족이라는 것. 결국 나를 키워준 것은 할아버지는 변함없이 대단하다는 것.

장로는 돌아선 바드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단계 더욱 성장한 모습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몸이다. 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야. 내가 시간의 흐름에 뒤떨어져 괜한 폭주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했나보지?”

“솔직히 그랬지.”

장로는 바드의 씩씩한 모습에 웃음을 머금은 도전적인 얼굴로 답했다.

“걱정도 팔자군.”

“그런 모양이야.”

잠시 후 오색찬란한 빛이 시야를 가득 덮었다. 날개모양의 알림창. 눈부신 황금빛 문장. 순백색 깃털들이 흩날리고 신성한 빛의 입자가 내 몸을 감쌌다.

《진의를 깨달은 대장장이 칭호를 얻었습니다.》

-제작 레시피 등록 및, 추출 가능.

-대장장이의 고장 헬리오스 방문가능.

인생이란 참으로 기구하다. 저마다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터지는데 그것이 경험이 되어 나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이다. 바라지 않은 결과가 벌어질 수 있고 전혀 도움 안 되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즉, 인생의 흐름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결국 그 사람 팔자라는 거. 내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어쩌면······.

‘이것조차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련히 피어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장로의 탑에서 빠져나왔다.

“조심히 돌아가거라. 나중에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구나.”

“이하동문이야. 엄마.”

“엥? 어, 엄마?!”

“뭘 그렇게 놀라? 한평생 내 성장과정을 몰래 지켜봤으니 그쯤 되면 엄마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 이거 눈물겨운 가족 상봉이군.”

“캬악! 아, 아니거든! 그거랑은 완전 다른 거거든!”

심히 혼란스러워하는 장로의 얼굴에 험악함 그려졌지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인형마냥 귀여웠다.

“내게도 엄마 아빠 다 있었군 그래.”

“캬아아악! 엄마 아니라고 했지! 당장 그만 둬!”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커억!”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턱주가리로 깊이 들어오는 강렬한 충격. 바드는 멀찍이 날아가 포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방지게 이 몸을 엄마라고 부르다니. 백만 년은 이르다!”

장로는 옷가지를 탈탈 털어내며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들도 어서 뒤따라가거라.”

“네! 안녕히 계세요.”

카스티바가 털털하게 인사하고,

“안녕히 계세요 꼬마사부님.”

레이나도 허둥지둥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장로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와아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인간 놈이 누구더러 꼬마라는 게야! 실제 사이즈는 내가 더 크단 말이야! 설화 너도 그렇게 생각 하······”

장로의 시선이 미호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봉긋 솟아오른 가슴께를 보며 장로는 할 말을 잃었다. 반칙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영문 모를 억울함이 그녀의 목을 막았다.

“희끅······! 흐으윽······. 너, 너어~ 그거 반칙이거든!”

“귀여우셔라~♪”

“그 비웃음은 뭐냔 말이야!”

“아무것도요. 장로님 안녕~”

미호가 승자의 미소를 과시했다. 장로의 온갖 욕설이 장대하게 이어졌지만 승자의 모습은 포탈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쓸쓸한 바람만이 휑한 마당 위를 스쳐지나간다. 그녀는 구름 한 점 남겨지지 않은 공허한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누군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네 말대로 정말 만났어. 위아래 없이 까불기만 하지만 꽤 늠름하네.”

너랑 많이 닮았네. 누구누구 영향을 많이 받았나봐.

***

“바드 비켜!”

“빌어먹을! 또 같은 전개냐!”

한 바탕 요란한 충격음이 잇따랐다. 중갑으로 무장한 붉은 포니테일의 여검사가 플라잉 니킥으로 안면을 찍었다. 그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남색 당고머리를 한 레이나가 복부 깊숙이 팔꿈치를 쑤셔 박는다. 이쯤 되면 다들 고의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드 괜찮아? 다치진 않았지?”

레이나가 사슴같이 순수한 눈으로 걱정했다. 나는 두 사람을 떨쳐낼 뿐이다.

“이 정도야 뭐······.”

바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하늘에서 세 번째 충격이 가해졌다. 이번엔 조금 아팠다.

“아야야~ 주인님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미호가 시야를 완전히 가렸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오묘한 감각이 전해진다. 전례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보는 눈이 많아서 조금 부끄러운데? 괘, 괜찮은 거야?”

난감하다는 듯 미호가 몸을 비틀었다. 한순간 시야가 밝아지고 나서야  손아귀에 붙들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 없겠지.

“당장 이 요망한 물건을 치우지 못해!”

펫 주제에 주인의 정조를 빼앗으려 들다니, 천 번 죽어도 마땅한 일이다.

“치이~ 자기가 먼저 만졌으면서.”

미호가 입을 빼죽 내뱉으며 몸을 뒤로 뺐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레이나가 다가왔다.

“바드가 무슨 잘못했어?”

“흐앙~ 있지 레이나! 내 말 좀 들어봐. 주인님이 말이야 나한테 무슨 짓을 했냐면······.”

미호의 말은 거기서 그쳤다. 바드가 그녀의 목줄을 통해서 전음을 날렸기 때문이다. ‘입 닥치지 않으면 전기충격이다.’ 라고······.

“쳇!”

“아무튼 이만 돌아가지. 해 뜬걸 보니까 벌써 오후인 모양이야. 잡템 정산해야 된다고.”

“주인님 얼굴 무서워······.”

“저기~ 그룹인벤토리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카스티바가 그룹인벤토리를 열어 내 쪽으로 손가락을 튕겨 보냈다. 그룹인벤토리는 파티원이 얻은 아이템과 실링이 일시적으로 보관되는 수납공간인데, 추후에 보상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래라면 이 보관함에는 실링과 분신들의 잔해가 남아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아이템도 없고 돈도 없는 거죠?”

“진짜 몬스터가 아니라 소환체니까?”

미호의 말이 정답이다. 내가 여우 꾐에 단단히 낚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다. 하하하하! 빌어먹을 여우자식! 한동안 실성한 듯 웃고 있던 바드가 갑자기 웃음을 그치더니 눈알을 까뒤집으며 소리쳤다.

“당장 문 열어! 이 쥐새끼를 그냥······! 가죽을 벗겨다가 팔아넘겨주마!”

“그건 불가능하지. 보름달도 안 떴는데 어떻게?”

미호가 혀를 찼다. 레이나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만 하고 돌아가자. 다들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잖아. 안 그래?”

그야 그렇다. 푼돈에 연연하지 말자.

“화낼 만도 하지. 그 난장판 속에서 열심히 주워 담은 아이템인데 헛고생 한 것이나 다름없잖아? 생각만 해도 달팽이관이 흔들리는 것 같아. 그때 나까지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카스티바가 비수 같은 날카로움을 쏘아 보냈다. 나는 애써 시선을 무시하며 발을 움직였다. 여관으로 돌아온 우리를 가장먼저 반겨준 것은 풍미 가득한 음식냄새였다.

“레이나 금방 돌아왔네! 다행이야~”

“많이 걱정했지? 이사벨라도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다.”

헤어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몇 년 만에 재회한 마냥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하기야 1년 이상이 걸릴 뻔 했던 위험한 여정이었으니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바드님 너무 반갑습니다! 이렇게 일찍 돌아와 주시다니. 너무 기쁘다고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흑흑······.”

“이 사람아 냉큼 떨어지지 못해? 코 닦지 마 더러.”

“바드냐! 잘 왔다. 오늘밤엔 술이다 젠장!”

쿠샨까지 감동의 눈물을 쏟아내며 나를 마중했다. 도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두 사람 얼굴이 잔뜩 핼쑥해 졌다. 나는 이사벨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기 같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네? 뭐가요~?’ 라고, 되묻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내려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 사람······. 마음고생 꽤나 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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