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66)
“여우불.”
미호의 등 뒤로 여섯 개의 불꽃이 떠올랐다. 파랗게 일렁이는 불꽃은 하나의 유성우가 되어 좌, 우측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광역범위기술치고는 엄청난 화력과 무식한 파괴력이었다.
“블레싱!”
가장 걱정되었던 레이나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전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잔에 다녀온 사이에 스킬숙련도를 꾸준히 올린 모양이다. 버프를 두른 카스티바는 긍정의 신호와 함께 신속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빈틈없는 파전공세가 이어졌고, 그녀는 훌륭하게 적들을 도륙했다.
여우불은 원숭이들의 HP를 단숨에 레드존으로 보내버렸다. 이어지는 카스티바의 뒷마무리 또한 훌륭하다.
“하압!”
파이터답게 전투에 능숙하다. 어느 부위가 치명적인 공격이 될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간간히 놈들의 대퇴부를 썰어내어 기동성까지 저하시켰다. 그 역시 미호가 뒷마무리 한다.
‘다들 제법 합을 잘 맞추는군.’
바드는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가장 독보적인 전투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바드지만 말이다.
“레이나 뒤쪽!”
카스티바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땐 몬스터는 레이나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카스티바라면 회피하거나 공격을 받아내서 카운터 했겠지만 실전경험이 적은 레이나에겐 불가능했다.
“꺄악!”
그녀의 비명과 동시에 일렁이는 그림자하나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다.
“어라?”
미호의 여우불이다. 그 모습은 불이 아니라 거대한 창에 가까웠다. 원숭이의 바위 같은 주먹은 청염에 뒤엉켜 격렬하게 불타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캬아앙!”
“괜찮아?”
“어, 응.”
레이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를 미호에게 향했다.
“고, 고마워.”
“주인님이 맡긴 포지션인데 뭐. 계속해서 지원해줘.”
두 사람이 미묘한 시선을 교환했다. 확실한 것은 서로 좋은 의미로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미호는 싱그럽게 웃으며 화염의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실로 살벌한 육탄전 이였다. 미호의 공격에 얻어맞은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즉사였다. 운 나쁘게 바닥에 흘린 불똥을 밟은 녀석들은 못해도 레드존까지 HP가 떨어졌다.
“카스티바. 레이나 쪽으로 두 마리!”
“확인했어.”
카스티바는 능숙하게 손을 놀려서 레이나를 목표로 한 몬스터 두 마리의 옆구리를 S모양으로 깊게 베어냈다.
얼마 남지 않은 HP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 사이 바드는 정면의 몬스터를 주시했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닥에는 몬스터의 잔해로 추정되는 아이템이 널려있다.
‘적당히 처리했으니 챙겨둬야겠군.’
각설하고 이번 기회에 그녀들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호는 범위형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으며 상당한 STR과 DEX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능력을 전투 중에 십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카스티바는 공격과 방어타이밍, 그리고 적의 취약점을 노릴 줄 아는 근접 특화형 검투사다. 다른 건 둘째 치고 탁월한 전투센스에 시점을 둬야 하리라.
레이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전형적인 사제다. 실드를 걸어주거나 힐을 해준다거나 디버프를 해제하거나 버프를 걸어주거나 등. 물론 마력관리라는 까다로운 숙제가 있지만 지금은 알아서 잘하고 있다.
남은 원숭이들은 아직도 물량만 믿고 덤볐다. 하지만 내가 누구란 말인가? 묠니르만 쥐었다하면 공간자체를 허물어트리는 슈퍼 대장장이다.
바드는 묠니르를 움켜쥐고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네놈들은 이거 하나면 족하다.”
묠니르가 붉은 호선을 그리며 지면을 때렸다. 아직까지 유효한 토르의 가호 탓에 무식한 굉음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바닥이 갈라지는 것은 기본. 몬스터의 비명은 보너스다. 미호는 레이나와 카스티바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갔지만 바드는 그러지 않았다. 갈라진 바닥을 타고 균열 속으로 떨어지는 아이템을 가만 놔둘 수 없었던 것이다.
바드는 아랫입술을 베어 물고 커져가는 균열을 주시했다. 카스티바는 당황한 듯 바드에게 달려갔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사람불안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내려갖다 올테니까.”
“무슨 소리야! 진짜 내려갈 생각이었어?!”
카스티바가 바드의 허리를 끌어안고 행동을 저지했으나 바드의 기하급수적인 힘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바드는 카스티바를 매단채로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카스티바는 괴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이 정신 나간 인간아아아아아아아!!!!”
카스티바는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며 엉엉 울었다. 이 상황에서 손을 놓으면 뼈도 못 추릴 상황을 맞이할 것이었다.
“와아~ 주인님 잘 한다!”
“지금 그렇게 여유부리며 구경할 때가 아니잖아!”
레이나가 말했다.
“응? 괜찮아. 주인님은 쉽게 안 죽어.”
미호가 콧방귀를 뀌며 확신했다.
“이제 그만해. 토 나올거 같아······.”
“슬슬 올라갈 참이었다.”
나는 떨어지는 바위덩어리를 발판삼아 지상을 향해 도약했다. 생각보다 깊이 떨어진 모양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위가 더 이상 없군. 난감한데?”
“그러게 누가 여기까지 뛰어들래? 아이템에 목숨 거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걸?”
“아직 새파란 애송이군. 세상은 돈이 곧 힘이야. 돈이 있어야 뭐든 잘 먹고 잘 살수 있단 말이지.”
그녀가 재잘재잘 소리쳤지만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다고 지상까지 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까. 아직 50미터는 더 올라가야 되는데. 그래야 되는데!
“떠, 떨어진다? 꺄아아악!”
카스티바는 또다시 엄습하는 낙하감에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바위를 박차고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콰드드득!
나는 맨손으로 절벽을 붙잡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가속하던 낙하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멈춰라. 좀 멈춰라······!”
손가락에서 피어오르는 탄내와 연기. 그리고 뿌연 모레먼지까지 휘날렸다. 50미터 이상을 미끄러진 뒤에야 두 사람은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손 놓지 마! 놓으면 죽는다? 진짜!”
“제발 입 좀 다물지? 그러게 왜 따라와서 사람 귀찮게 만들어?”
바드의 팔이 성을 내며 크기를 키웠다. 그가 한 차례 숨을 돌리고 팔을 움직이자, 두 사람은 급비상하기 시작했다.
“흐읍!”
점점 지상과 근접해진다. 고지가 보인다. 이대로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쿠드득······.
불길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손아귀에 붙들린 무언가가 힘없이 떨어져 나왔다. 절벽에 붙어있는 돌이 운 나쁘게 부서진 것이다.
“흐음. 손을 헛디뎠다.”
“이······이잉!!!!”
카스티바가 귀엽게 울상을 지었다.
다행히 심연의 어둠으로 완전 낙하하는 사태는 면했다. 미호가 미리 마련해둔 여우불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우불은 무언가를 불태워 버리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용도가 없지만 97%라는 화염 저항력을 소유한 바드에겐 반가운 도약발판이었다.
바드는 자세를 고치고 불덩이를 발판삼아 각력을 쥐어짜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우웨에에엑!”
카스티바는 오바이트를 쏟아냈다. 바드는 그녀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겠냐! 나는 뭐 때문에 끌려간 거냐고······.”
몇 분이 지나서야 그녀가 핼쑥한 몰골로 한숨 돌렸다.
“아무튼 장로의 분신은 마무리 된 거지? 마을은 어디야?”
미호가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남쪽으로 쭉 가면 돼. 우리 마을은 엄청 으리으리하니까 깜짝 놀라지 말라고~”
미호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는 미호의 안내로 꽤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때까지 나오는 풍경이라곤 죄다 복숭아나무밖에 없으니 꽤나 지루했다.
“도착! 이곳에 방문한 인간은 아마도 너희가 처음일거야! 대박 아니야?”
미호가 자랑스럽다는 듯 콧대를 높였다.
그야 당연하지 인간이 이곳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 구미호에게 정기나 안 뺏겼으면 다행이지. 바드는 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 동편에는 높이 50미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여우조각상이 자리 잡았다. 미호는 설명하듯 미리 운을 뗐다.
“저 여우상은 3만년동안 정기를 품고 산 적목으로 만들어졌어. 마을을 지키는 연꽃마을의 신령님이지.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는 구미호들은 저 신령님으로부터 정기를 받아먹고 살아.”
“일종의 생명줄 이라는 건가······.”
마을 내부는 적갈색 기와지붕이 올라간 나무집이 넓게 퍼져있었다. 규칙적인 구조가 보이고, 미로 같은 골목도 많았다. 거리에는 꼬리 하나달린 어린 호족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술래잡기를 한다. 수많은 사람들. 아니, 호족들은 인간세계와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카스티바와 레이나는 한동안 얼빠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이 그렇게 박대하던 요괴가 이런 문화와 생활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으리라.
“호족들도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건가요?”
레이나가 질문했다.
“몇몇은 그래. 하지만 대다수의 호족은 독신이야! 우리는 남과 교감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든!”
미호가 백치미 넘치는 미소로 답했다.
“한 가지 당부해둘게 있는데, 다른 호족들은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으니까 너희가 인간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무턱대고 달려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 옆에 잘 따라붙어야 돼. 특히 주인님은 더!”
그녀가 내 팔에 찰싹 달라붙으며 완고하게 말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미호가 말했다.
“주인님은 온몸으로 마력을 풍기잖아. 알다시피 호족은 마나와 마력에 민감한 코를 가지고 있거든. 내가 없으면 인간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들킬 거야. 저기 높은 탑 보이지? 마을 가장안쪽에 있는 거.”
보인다. 저것 또한 만만찮게 높다. 길이로만 따지만 신령님인가 뭔가 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저 탑에 장로님이 살아. 어쩔 수 없이 마을을 거쳐야 한다는 거지. 그때까지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면 내가 꼭 필요할걸?”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그러고 있으니까 레이나의 눈초리가 한 층 따가워져서 불편하다.
“출발하지. 후딱 일끝내고 돌아가자고.”
피곤하다. 정신적으로 아주 많이. 빨리 돌아가서 침대에 드러눕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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