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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64화 (64/202)

Master Smith (64)

잠깐 지나간 소나기 덕분인지 날씨는 맑게 개어있고, 뭉실뭉실 떠다니는 구름 속에선 따스한 햇볕이 산개하여 지상으로 내려온다. 손님들은 많고, 돈이란 돈은 싹싹 긁어모으는 중. 요즘 들어 단골손님도 많아졌다. 100개 단위 표창을 몇 묶음이나 구입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질 좋은 철 광물을 뽑아가는 사람도 있다.

때때로 나와 같은 대장장이가 찾아와서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한 마디씩하고 돌려보냈다.

“대장장이에겐 장인정신뿐이다. 돌아가.”

솔직히 말해서 좋은 장비를 만들기 위해선 까다로운 각종 요소를 인식해야 한다. 좋은 도구, 좋은 광물, 좋은 장소······ 하지만 그것들이 거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려줘서 뭐해? 마음만이라도 독하게 먹고 망치질하는 게 백번 중에 백번 나을 것이다.

오늘같이 바쁜 날엔 일손이 딸리기 마련인데. 오늘은 새로운 조수 한명이 더 들어온 탓인지 제법 여유롭게 작업할 수가 있었다.

“바드. 여기 있는 방어구는 여기다 진열하면 되지?”

“가만히 놔둬. 안토니오가 알아서 할 거야.”

“됐거든~ 네가 알던 레이나가 아니라고. 언제까지 약골로 보고만 있을 셈이야?”

그녀가 새침하게 몸을 돌리고 물건을 진열했다. 도와줄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사양했는데, “장사라도 돕고 싶어!”소리치며 마구잡이식으로 밀고 들어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

장비를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레이나는 뛰어난 화술과 웅변으로 물건을 팔아치웠다. 특히나 잘 안 팔리던 잡화까지 남김없이 전부············어라? 레이나! 그건 파는 거 아니야!

레이나는 물건을 팔 때마다 장부를 확인했다. 덕분에 안토니오가 제작연습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드 씨. 이 수리검 대단한데요? 기본 공격력을 가뿐히 넘기고도 +3강화라니요! 표창까지 강화하면 펠리토늄이 많이 소모될 텐데······.”

“모험가가 사냥터에 나가서 다치면 안 되지. 대장장이로서 최대한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제공한 것뿐이다.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마.”

사실 ‘1000년의 추억을 이어온 낡은 모루’ 효과로 제작하는 표창에 +3강화가 붙은 것이지만 말이야.

장사는 오후가 되어서야 《close》푯말을 달 수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 안토니오도 수고했다.”

“별거 아니야. 의외로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나 그냥 여기서 일이나 할까?”

“그건 안 되지. 한동안 다른 사람들이랑 파티 맺어서 실력을 키워.”

돈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다. 굳이 그녀가 수고해줄 필요는 없단 소리다. 더군다나 길드에서 레이나가 유일한 사제 아니던가? 그녀가 강해져야만 앞으로 일어날 전투가 수월해질 것이다.

“형. 죄송한데 저는 먼저 가볼게요. 두 분이서 오붓하게 걸어오세요!”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

안토니오는 이미 석양너머로 사라졌다. 북적이던 마을광장은 낮과 다르게 한적했다.

“뒷정리하고 돌아가자. 그나저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표정이 영 어둡네.”

“그게 아니라······ 생각 좀 하고 있었어.”

그녀가 초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생활이 되었구나~ 해서.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적응해서는······.”

그녀가 대견하다며 내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어느새 이렇게 성장해버려서는 내가 다가가기 힘들 정도야.”

“그건······ 질투?”

“아니거든.”

레이나가 그대로 손가락을 튕기며 이마를 때렸다. 그리고 쓴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이야. 친절한데, 악질이야. 매번 쓸데없는 오지랖에 일을 벌이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피곤할 정도거든. 그런데 그 모습이 언제부턴가······.”

“언제부턴가?”

“당신을······ 당신을······.”

그녀가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반쯤 저물어가는 황혼의 빛이 레이나의 뺨을 물들였다. 로브 안에 감춰진 아름다운 미모가, 심장을 간질이는 아기 같은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예뻐.”

“응? 바,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당신 덕분이야. 섬 밖에서 너를 처음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널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변했을 테니까.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겠지.

“자, 잠깐만 너무 가까이오지는······.”

나는 그녀의 로브를 들춰냈다. 반쯤 가리어진 눈부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안절부절 못하던 그녀의 행동이 놀란 듯 경직된다.

바로 눈앞이다. 그녀의 코끝이 바로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이 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뭔지 모르겠지만 강한 확신을 얻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바드?”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줘서.”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가 닿을 것 같은 애절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손은 그녀를 끌어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맡을 쓰다듬었다. 레이나의 몸이 약간 풀어진 듯 하더니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나한테 어리광 부리는 거야?”

“나도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거든.”

레이나가 헛기침을 한두 번 하면서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크흠! 그, 그럼 계속 이러고 있어봐. 혹시 알아? 무슨 감정인지 알게 될지.”

동시에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려 나를 안았다. 좀 더 세게. 좀 더 강하게.

“나도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줘서.”

당신 덕분에 많은 게 바뀌었어. 내 인생이 변했어. 힘든 일도 분명 많아질 거야. 하지만 그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온전히 내 일이니까 노력할게. 우물 안에 갇힌 나를 끌어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너니까.

레이나의 대답이 바드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막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나는 잘 하고 있었구나, 잘 적응하고 있구나. 강한 확신이 들었다. 우리 둘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메리데이로 돌아갔다.

***

보름달이 떠올랐다. 미호가 시공의 문을 열 장소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언덕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까워 보이는 보름달.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보이지 않는 별. 플로스티아 길드 전원은 한 자리에 모여 밤하늘을 감상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평소와 다르게 뭐랄까······. 바람이 소란스럽군요.”

게르덱이 어떤 의미로 표현해서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자 바드가 곧바로 설명했다.

“다른 시공간에서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미호는 그 마력에 공명하는 거고. 아마 장로라는 녀석이 정해둔 호족들만의 신호겠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는데 싫다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일종의 도어락 시스템이라 볼 수 있겠네요.”

잠시 후 미호의 머리위로 균열이 발생했다.

“바드님. 저건!”

“드디어 접신 했나보군.”

균열 틈으로 방출되는 방대한 마력. 이것이 바로 공간마저 비틀어버린다는 순도 높은 마력이다. 미호의 말대로 1년이 넘도록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군.

“레이나. 카스티바. 둘 다 준비 됐지?”

“물론이지. 후딱 갖다오자고.”

“나도 열심히 수련했으니까 문제없어,”

“······아. 이제 보니 내가 준비가 안 됐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저 무식한 공간 뒤틀림을 깨트리기 위해선 그 이상의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무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것 까지는 무리야.

“주인님! 균열이 커지면 곧장 들어가야 해. 문은 그리 오래 열리지 않아!”

미호는 내 팔을 붙잡고 균열 속으로 끌어당겼다.

“잠깐만!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니까!”

“잔말 말고 빨리 들어가! 여기까지 와서 지체할 필요는 없잖아? 후딱 끝내고 돌아오자고.”

카스티바도 내 등을 떠밀었다. 이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니까? 안쪽에서 1년 넘게 방황하고 싶어?

“그럼 다녀오십쇼! 바드님~”

“몸조심해 레이나! 바드 씨 뒤에 꽁꽁 붙어 다녀!”

이사벨라가 손을 흔들자 레이나도 손을 흔들었다. 카스티바와 미호는 내 목덜미를 붙잡고 반강제적으로 균열 속으로 끌어당겼다. 달빛으로 환했던 언덕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석조계단이 눈앞에 등장한다.

‘최소 1만개는 넘어 보이는데 뭐냐 이건?’

카스티바와 레이나도 압도적인 계단 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색찬란한 공간 속에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계단들이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처럼 보인다.

“여기야?”

“설명할게. 이 계단들은 전부 다른 차원과 이어져 있어서 밟으면 반대쪽 차원으로 빠지게 돼. 블랙홀과 화이트홀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그리고 반대쪽 차원으로 빠져나가면 마족이 잔뜩 깔려있어.”

“마족이 어째서? 하벨스 대륙으로 넘어온 녀석들 제외하고 나머지는 마계에 있는 거 아니었어?”

“마족은 장로님이 만들어낸 분신이라서 진짜보다 약한 편이야. 우리 같은 호족들은 그 분신들을 쓰러트려가며 계단을 올라가지. 때문에 우리 마을로 향하기 전에 정기를 두둑하게 빨고 출발해야 돼. 안 그러면 중간에 굶어죽을 수도 있거든.”

바드는 난처한 얼굴로 질문했다.

“잠깐만. 그 말은 이 계단 전부를 밟아가면서 일일이 마족을 처치해야 끝에 도달할 수 있단 소리냐?”

“정답! 그 뿐만이 아니야. 분신을 쓰러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원래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계단으로 빠져나올 수 있어. 예를 들어 1번 계단을 밟고 차원에 들어갔다 나오면 100번 계단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지!”

“좋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에 원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헤헤~ 그렇게 되나?”

미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네 하고 넘어가주겠지만 이건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금은 원래 세계로 못 빠져나가나?”

“응.”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어떤 계단을 먼저 밟을지 상관없는 거지?”

“나는 한번에 30개씩 뛰어가. 계단이 약1만5천개 되니까 500번 정도 도약하면 도착하지! 물론 운이 좋아야 하지만!”

입안으로 넣으려던 튀김을 된장국 위로 빠트린 기분이다. 기분이 매우 언짢다는 뜻. 솔직히 말이 되느냔 말이야. 이런 마력의 공간을 깨트릴 만큼의 마력이 내게 어디 있겠어?

아냐, 나 말고 다른 놈은 있잖아?

옆구리에 매달린 화려한 황금망치. 그 묵직함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니, 무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묠니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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