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62)
길드창설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길드원들은 꽤 높은 성취를 이룩했다. 나와 안토니오는 대장간을 운영하며 여행자금을 모았고 쿠샨, 카스티바, 게르덱, 레이나는 2:2 로테이션 사냥으로 레벨과 스킬 숙련도를 올렸다. 이사벨라는 여전히 실력을 감추며 여관을 운영했으며, 노엘은 미호 밑에서 꾸준히 가르침을 받는 모양이다.
안토니오는 내 밑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터득하며 꽤 숙련된 대장장이로 성장했다. 나와 비교하면 세발의 피도 안 되지만 하여튼 간에 가게를 맡기고 땡땡이를 칠 수 있게 되었다.
말은 이래도 매일같이 놀고만 있진 않다. 길드원이 사용할 장비와 무기를 제작하느라 하루하루 고되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피쯤 되면 모두가 내 장비를 착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길드원 평균레벨이 450쯤은 갈 것이다. 어지간한 상위길드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간다는 소리다. 그 유명한 엠페러 길드도 평균레벨이 403에서 머물렀다지?
각설하고, 나는 간만에 길드 안내소를 찾았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길드스킬을 강화하고 싶은데.”
길드를 창립하면 3일 안으로 7개의 혜택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혜택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사냥 경험치 10%증가 (레벨1)
2. 공격력&마력 +5증가 (레벨1)
3. 아이템 획득확률 5%증가 (레벨1)
4. 실링 획득확률 5%증가 (레벨1)
5. 스킬 숙련도 +1 (레벨1)
6. 길드 하우스 50% 할인가격에 지급 (Master)
1번부터 5번까지는 실링을 지불해서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강화레벨은 5레벨이 최대이고, 한번 강화할 때마다 소모되는 실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보유한 실링으로는 원하는 혜택을 한 가지 강화할 수 있다.
“1번을 레벨2로 강화시키겠다.”
“필요한 실링은 1천만입니다. 결재하겠습니다.”
《길드혜택: 사냥 경험치 15%증가 (레벨2)가 적용되었습니다.》
당장은 길드원의 성장이 시급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선적으로 사냥 경험치를 증가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리라.
나는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곳은 코지부락 주민들이 마련해준 중앙시장 가운데에 위치한 대장간이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아쉬움이 적지 않다.
“안토니오 잘 되가?”
“바드형! 제가 만든 대거인데 이것 좀 봐주세요.”
잘 정리된 짧은 금발에 사파이어 수정 같은 벽안의 눈동자. 풋풋하고 사뭇 분위기 있는 안토니오가 씩씩하게 웃으며 대거를 넘겼다. 과거 귀족가문의 아들이라더니 이제는 대장장이가 다 된 모습이다.
“직접 만들다니 대단한데?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운 거죠 뭐.”
예리한 칼날과 눈부신 광택. 적당하게 묵직한 그립감이며 모양새도 꽤나 그럴싸하다. 무기의 능력치는······ 보나마나 훌륭하다.
나는 다소 긴장한 안토니오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
“제법인데?”
안토니오는 그제야 웃음의 싹을 틔우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까지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인정받지 못했으니 그 기쁨도 몇 배는 컸을 것이다.
안토니오는 땀으로 푹 찌든 얼굴로 환한 이를 드러냈다. 한때 귀족이란 녀석이 이제는 얼핏 대장장이 느낌이 나오고 있다. 머리엔 하얀 수건을 싸매고, 몸에는 두꺼운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한손에는 망치를 쥐고 있다. 누가 봐도 대장장이 아닌가?
“즐겁냐?”
안토니오는 내 질문에 확신하며 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형처럼 훌륭한 대장장이가 될 거에요. 역사적으로 아주 위대한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가끔 그리울 것도 같은데. 귀족생활.”
편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신분적으로 하대 받을 일도 없다. 게다가 안토니오의 뛰어난 미모와 마음이라면 좋은 대를 이어 갈수도 있다. 나는 아직까지 헷갈린다. 안토니오가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이쪽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무슨 소리에요?”
“아니, 그냥 한 말이었다.”
선택은 녀석이 하는 거다. 안토니오가 귀족신분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면 굳이 이야기 꺼낼 필요도 없다.
“아직 멀었어! 초절정 대거를 가져오라고!”
***
오후가 되어서야 사냥조가 복귀했다. 쿠샨과 게르덱, 레이나는 메리데이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위로 몸을 날렸다. 게르덱은 죽어가는 얼굴로 신음했다.
“끄어어어······ 다들 너무 열심히 사냥하는 거 아닙니까? 체력이 못 버틴단 말입니다.”
쿠샨은 무뚝뚝하게 반론했다.
“카스티바가 매일같이 말하더군. 네놈은 체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고 말이야.”
“저보다 레이나님이 더 죽어가고 있단 말입니다!”
게르덱이 혼절하듯 쓰러진 레이나를 가리켜며 소리쳤다. 레이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장으로 침대에서 몸부림쳤다.
“흐아아앙~ 힘들어 죽겠다고! 몬스터는 무서워 죽겠지, 하나같이 나만 물어뜯으려고 몰려들지! 왜 자꾸 나만 노리는 거야?”
이번에도 쿠샨이 입을 열었다.
“사제니까. 치유스킬과 디버프를 겸비한 동시에 팀원에게 버프까지 제공하니, 몬스터에겐 가장먼저 처리할 대상이지.”
레이나가 푹 눌러쓴 로브를 벗어젖히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남일 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나는 아저씨처럼 잘 싸우지도 못하고 우락부락한 근육 돼지도 아니란 말이야! 괜히 사제했어. 차라리 카스티바처럼 검사직으로 갔으면······.”
“몬스터랑 정면으로 맞설 일이 더 많아지겠지?”
카스티바가 레이나의 볼을 잡아 늘어뜨리며 말했다.
“으어으아아아······.”
“레이나 덕분에 우리가 열심히 싸우는 거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해 지켜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레이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뒤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바드는? 점심시간인데 아직도 장사중인가? 하여간 끼니좀 거르지 말래도.”
“그럴까봐 도시락 준비해놨지. 누가 좀 갖다 주고 와.”
오늘도 당근앞치마를 두르고 블루베리색 머리칼을 찰랑이며 등장하는 이사벨라. 오늘따라 뽀송이 솟아오른 토끼 귀가 분주하게 떨리고 있다. 레이나는 자연스레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오늘따라 바빠 보이네?”
“손님이 방을 난장판으로 어지르고 체크아웃 했거든. 나중에 걸리기만 해봐 뼈를 분질러 버리겠어!”
“흐음. 그럼 카스티바가 도시락좀 전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사벨라를 도와줄게.”
카스티바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이사벨라가 쿠샨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도 따라와! 제일 힘 쌘 남자가 멀뚱히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야? 게르덱도 엄살 그만 피우라고요!”
한 바탕 이사벨라의 잔소리가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졌다.
“나 왔다.” “다녀왔습니다!”
바드가 복귀하자 겨우 소란이 잦아든다.
“왜 이렇게 정신 사나워?”
“마침 잘 왔네. 당신 도시락 갖다 주러 갈 참이었는데.”
“카스티바가?”
때마침 잘 됐군. 나도 네게 볼일이 있었거든.
“도시락은 잠깐 내려두고 밖으로 나와. 할 이야기가 있다. 안토니오는 오늘 수고했어. 오후에는 쉬어도 돼.”
나는 카스티바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이사벨라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중요한 대화야? 굳이 단둘이서 해야 할 정도로?”
“물론. 다잔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는지 모르겠군.”
케르드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 카스티바가 전장에 끼어들었다. 엠페러 길드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며 같은 팀인 나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은 3자의 개입이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다잔에서 누굴 만났나?”
“만나다니 무슨 소릴······.”
“질문이 잘못되었군. 너와 엠페러 길드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엠페러의 말살에 왜 그렇게 연연하는 건지 묻고 있는 거다.”
본래 그녀가 속해있던 길드일 때문이라 하더라도 카스티바가 무모하게 싸움을 걸어올 리 없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냉정하지 못한 성격도 아니니까.
“······.”
“묵묵부답이군. 뭔가 있긴 있나보지? 말 못할 정도의 사정이냐?”
“그건 아니지만 당신에게 말해줄 이유는 없어.”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다고 내가 “그러세요?”하고, 마무리 지을 사람이 아닌데.
“이유 많은데? 네가 언제 또 폭주해서 날 공격할지 모르거든.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네가 엠페러 길드와 연관되어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신발 끈도 매듭을 확실하게 지어놔야 다음에 같은 일을 번복 안 한다고. 무슨 소린지 알지?”
그녀는 못미더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마음을 털어놓았다.
“끈질긴 남자네.”
“내 특기거든.”
“정확한 설명은 못해줘.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은빛 타이머를 꺼내들었다. 보기엔 평범한 타이머일지 몰라도, 영문 모를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카스티바는 확신에 찬 눈으로 대답했다.
“이 타이머가 폭주의 원인이야.”
“어디서 난건데?”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어. 확실한 것은 헨다스와 연관이 있다는 거야.”
“헨다스라면 안토니오의······.”
카스티바가 확실하게 얘기했다.
“안토니오의 고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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